여자친구 – Season Of Glass (2015)

Season Of Glass
쏘스 뮤직
2015년 1월 15일
트랙리스트
  1. Intro (Season Of Glass)
  2. 유리구슬 (Glass Bead)
  3. Neverland
  4. White (하얀마음)
  5. 유리구슬 (Glass Bead) (Inst.)
음반소개글

김윤하: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여러 면에서의 노림수였다 싶은 대혼란의 티저 영상을 지나 우리를 찾아온 건 '의외로' 멀쩡하며 준수한 타이틀곡 '유리구슬'이다. 익숙한 학교종 모티브에서 그보다 더 익숙한 후렴구 멜로디, 브릿지에 들어가기 전 '후예~'하며 스쳐 지나는 스캣, 발차기 안무까지 우리가 인상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걸그룹들의 모든 요소를 버무려 부르마까지 입혀 낸 패기에 정말이지 할 말이 없어진다. 케이팝이란 근본 없음에 근본을 두고 있는 장르다 주장해온 과거에 역공이라도 당한 기분이다. 개인적으로 스윗튠의 뒤를 잇는 '복고 아이돌팝'의 강자라 생각하는 이기용배의 존재감에 눈길이 간다.

미묘: 처음 티저를 보았을 때 나는 "그들이 S.E.S.를 훔칠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S.E.S.의 팬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라고 적을 만반의 준비를 했다. 그런데 막상 '유리구슬'의 악곡은 에이핑크를 참조한 부분이 많고, 또한 오리지널이라 봐도 좋을 부분들도 있다. 즉 티저에는 소녀시대를 연상하고 경악할 수 있는 부분들을 전략적으로 넣었다는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이쯤 되니 차라리 유쾌해지기도 한다. 인트로를 포함하여 (그렇다, 인트로마저 근사하다) 수록곡들은 모두 딱 좋은 정도의 '빤함' 속에 모두 상당한 완성도와 매력을 가진, '좋은 아이돌팝'이라 할 수 있다. 특히 'Neverland'는 아이돌 레퍼런스들을 충실히 소화한 뒤 시원한 청량감과 귀여움으로 멋지게 뽑아냈다. 이 점이 다시 나를 갈등하게 한다, '유리구슬'을 슬퍼해야 할지 흥미롭게 들으면 될지.

블럭: 개인적으로는 레퍼런스가 아무리 세게 보여도 작품에 레퍼런스를 향한 열망과 정성이 담겨 있으면, 특히 그 레퍼런스를 꼼꼼하게 연구했다는 생각이 들면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편이다. 하지만 이 미니 앨범은 어딘가 애매한 구석들이 있다. 무엇보다 어느 한 그룹의 초기 정체성을 보고 배웠을 때 가장 큰 위험부담은 '그다음'이다. 다음 걸음마저도 따라갈 것인지 혹은 또 다른 레퍼런스를 찾아 나설 것인지 모르겠지만, 결국 '지금'은 재미있을지 몰라도 '다음'이 기대되지는 않는다. 내가 느낀 애매한 구석들은 맛있는 파히타님의 글에 잘 담겨있는 것 같아 링크로 대체해본다.

MRJ: 내게는 곡과 비디오 모두 초기 소녀시대를 연상시키는 영리한 마케팅 기법처럼 느껴진다. 아니, 연상시킨다기보다는, 디지털 클릭 퍼커션 이펙트와 의상, 카메라 쇼트까지 사실상 클론이라 해야 하겠다. 나는 소녀시대가 수년간에 걸쳐 음악적 진화를 거듭한 최근의 곡들을 더욱 즐겁게 지켜보았기에, 초기 소녀시대의 사운드를 특별히 아끼진 않는다. 그래서, 아이콘이 된 그룹에 대한 귀여운 트리뷰트로 보아야 할지, 혹은 아주 끔찍한 도둑질로 보아야 할지 분간이 가지 않는 이 곡을 놓고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유제상: "지난 아이돌 데뷔곡의 장점만 대충 베끼고, 긴 생머리에 미니스커트 교복 입히고, 그룹 이름은 '여자친구'로 해야지" 같은 노골적인 결과물을 시장에 출시하는데 장애물이 오직 '창작자로서의 양심' 하나뿐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래서 이렇게 노리고 만드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콘텐츠 제작 현장은 그렇게 단순하게 돌아가지 않으니까. 그리고 그런 노골적인 결과물이 비록 진부하다는 평가는 받을 수는 있을지언정 무성의하다는 비난을 받을 수는 없는거다. 왜냐하면 적어도 이 그룹은 '동시대적인 색기'라는 최소한의 차별점은 가지고 있으니까.

조성민: 태초에 H.O.T.가 있어 후대의 모든 아이돌 보이그룹의 모티브가 된 것처럼, 걸그룹 역시 선배 그룹을 안팎으로 답습하며 성장해온 것이 지금의 형태 되겠다. 그러나 모방을 통해 한 단계 진보하는 것과 그저 도용해오는 것에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는데, 여자친구의 신보는 그 경계에 아슬아슬 걸쳐있어 그다지 편하게만은 볼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 앞서 맛있는 파히타 님의 칼럼 '유리구슬, 그리고 다만세'에 언급된 대로, 이 팀은 분명 무언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 분명 콘셉트란 어떤 이미지들의 나열이고, 이미지는 본질과 차이를 가질 수밖에 없지만, 본질과의 괴리 여부를 떠나 이미지를 나열하는 방식은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다시 말해, 여자친구가 차용한 '스쿨 걸' 콘셉트는 그동안 꾸준히 봐왔던 이미지들의 나열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 나열의 방식에서 설득력을 갖추지 못한 채 파편적인 이미지만 둥둥 떠다니고 있다. 이것은 이들 작품에서 사용된 언어에서 더 잘 드러나는데, 1차적으로 파악되는 언어인 가사에서는 모호한 상황 설정과 작위적이고 상투적인 어휘의 반복으로 집중이 방해되고 있고, 미니멀리즘과 귀차니즘의 경계에 있는 듯한 의상과 소품은 소녀 특유의 섬세함과 큰 거리감을 보여 또다시 몰입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게다가 안무는 조심스럽게 '표절' 이야기를 꺼내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소녀시대의 데뷔곡 '다시 만난 세계'를 모방하고 있다. 이미 논란(?)이 되고 있는, 클라이막스 부분의 발차기 안무를 빼고도, 한 손을 들어 사선으로 내리긋는 동작이나, 건반 소리에 맞춰 한쪽 무릎만 올리며 이동하는 동작, 한 손가락을 펴서 앞쪽으로 들어 올리는 동작, 양팔을 옆으로 뻗어 올려 손을 맞잡는 동작 등은 정확히 '다시 만난 세계'에서 가져온 동작들이다. 이러한 몇 가지 판단착오는 이들의 목표가 아이돌의 정도(正道)라 할 수 있는 '판타지 세계로의 초대'가 아니라 단순한 '이미지의 전달'에 그쳐있는 데에 기인한다. 다시 말해, '소녀들의 이야기에 몰입시키는 것'이 아니라 '소녀임을 알림(혹은 과시함)'이 목표인 것이다. 물론 이런 단순한 명제가 강력한 메시지는 될 수 없음을 대중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제는 꽤 긴 역사를 갖고 있는 아이돌 장르에서 긴 시간 사랑받아온 작품들이 어떻게 사람들을 끌어들여 집중시켰는지를 생각해보면, 이 어설픈 모방작이 어떻게 설득력을 잃었는지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단순 이미지의 나열이 위험한 이유는 또 있다. 바로 멤버 고유의 개성과도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무작위로 긁어온 이미지들을 이어 붙여 멤버 각자의 본연의 매력과도 별개로 존재하는 콘셉트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작품을 공연하는 사람들조차도 설득하지 못하는 이야기가 관객들에게 와 닿을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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