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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블리즈 – 안녕 (2015)

러블리즈는 앞선 선배 여자 아이돌들이 아닌 순정만화 속 소녀들을 모티브로 한다. ‘안녕’은, 남성 일반은 정말 깊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이상 절대로 파악할 수 없는, 소녀만의 언어로 가득 차있다.

소녀 시절 동경했던 순정만화 속 소녀

향수는 지금의 세계를 부정하고 미화된 과거로 돌아갈 수 없게 된, 시간의 흐름이라는 절대적인 조건으로 인한 현실을 인정하는 데에서부터 출발한다. 그 미화된 과거를 지금보다 아름답다 느낄수록, 그리하여 돌아가고자 하는 욕망이 강해질수록, 향수도 강해진다. 다시 말해, 향수는 현재에서 과거로 보내는 동경이라 할 수 있으며, 이것은 동시대를 향해 보내는 동경보다도 훨씬 강력한 욕망으로 작용한다.

러블리즈의 신곡 ‘안녕’은 작품의 여러 면에 걸쳐 만화적 세계관을 드러낸다. 여기서 ‘만화’란, 많은 소녀들이 어린 시절 한 번쯤 동경했던 여주인공이 등장하는 그 순정만화를 말한다. ‘안녕’ 뮤직비디오에서 러블리즈 멤버들은 〈츠바사 크로니클〉의 사쿠라이기도 하고,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마코토이기도 하며, 사와코(〈너에게 닿기를〉)나 유미(〈마리아님이 보고 계셔〉), 혹은 지율(〈언플러그드 보이〉)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다. 동경심은 되고자 하는 욕망에 근거하고, 욕망은 불가능할수록 커짐을 감안했을 때, 러블리즈가 앞선 선배 여자 아이돌들이 아닌 만화 속 소녀들을 모티브로 하고 있는 것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보다 더 강한 욕망을 끌어내는 역할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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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 뮤직비디오에서 러블리즈 멤버들이 앉아있는 곳이나 앉아있는 상태는 대부분 비일상적으로 연출되어 있다. 게다가 고백 직전의 설레고 두근거리는 감정이 가득 담긴 가사와 달리, 영상은 마치 고백을 거절당한 직후인 듯 한없이 아련하고 차분하다. 심지어 갓 피어난 꽃이 아니라 바짝 말라버린 꽃잎들이 날리는 장면도 있고, 머리 끝에 달려있던 두 개의 풍선 중 하나를 잘라내거나, 유리창에 그린 미소에 눈물이 고여 흐르기도 하여, 분명 밝고 활기찬 곡의 무드와는 다소 괴리를 갖는다. 발랄한 춤 동작이 등장하는 화면을 제외하면, 영상 언어는 한결같이 상실을 표현하고 있다. 바로 여기에 ‘순정만화’의 공식이 있다. 순정만화 특유의 비일상적으로 부드럽고 다정한 언어들은, 그러나 전체 스토리에서 보이는 주인공 소녀의 격한 감정 변화를 애써 포장해내는 역할을 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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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안녕’은, 철저히 소녀의, 소녀들을 위한, 소녀들에 의한 노래다. 남성 일반은 정말 깊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이상 절대로 파악할 수 없는, 소녀만의 언어로 가득 차있다. ‘안녕’에 등장하는 러블리즈 멤버들은, 순정만화 속 여주인공을 동경하는 현실의 소녀를 묘사함과 동시에, 스스로가 순정만화 속 소녀이기도 하다. 순정만화 속 클라이맥스에는 언제나 남주인공의 미소 짓는 얼굴이 있는 것처럼, ‘안녕’의 하이라이트 부분에도 “나는 심각한데 대체 뭐가 재밌는지 자꾸 웃기만 하는 너”가 등장한다. 순정만화의 결말이란 ‘그래서 사귀었대, 차였대?’가 아니라 ‘그래서 앞으로 걔를 계속 볼 수 있대?’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안녕’의 가사와 영상의 괴리는 일순간 전혀 어색하지 않게 느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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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이 누구나 되고 싶은 무언가를 묘사하고 표현하는 것은 무척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아이돌은 사실 무엇을 해도, 그리고 무엇이 되어도 어색하지 않을 필요가 있다. 절대로 될 수 없을 것 같은 동경의 존재가 기꺼이 되어 보이는 것. 그래서 보는 이들과 동경의 방향성을 나란히 하는 것. 언뜻 모순되어 보이지만 분명 불가능하진 않은 이 과정을, 러블리즈는 해내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어쩌면 ‘아직 충분히 소녀’들보다 ‘더 이상 소녀가 아닌 소녀’들에게 ‘향수’로서 더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Hi~
울림 엔터테인먼트
2015년 3월 3일

러블리즈의 리패키지 앨범 “Hi~”에 관한 아이돌로지 필진의 단평은 1st Listen : 2015년 3월 초순에서 확인할 수 있다.

By 조은재

우리 존재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