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물병 편지를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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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 BY Susan Nilsson

*이 기사는 기고자의 요청에 의해 익명으로 가필되었습니다. – 에디터

1. 나는 아주 평범한 한국의 여자 사람이다. 집안의 첫 아이로 태어나, 아들이 아니라고 실망한 친척들도 있었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럭저럭 사랑 받으며 자랐고, 말 잘 들을 땐 듣고 고집 피울 땐 피웠다. 평범한 유년기였다. 학창시절부터 아이돌을 좋아했다. 뭐든지 좋아하면 빠지는 성격이라서, 지금까지 몇 명의 ‘오빠’들을 가슴 깊이 사랑했다. 10대 후반부터 20대 초반까지 미친 듯이 불태운 ‘오빠’들이 해체할 때는 ‘이 놈의 아이돌 판, 다시는 기웃거리지 않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걸 내 맘대로 할 수 있으면 사랑이 아니었겠지. 또 다시 예기치 못한 ‘덕통사고’를 당했고, 이젠 나보다 어린 ‘오빠’를 응원하며 살고 있다.

2. 내 멋대로 해석하는 것이겠지만, 나의 ‘오빠’ 역시 아주 평범한 한국의 남자 사람이다. 인터뷰를 통해 짐작하기에 그는 집안의 자랑스러운 아들이었던 듯하고,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남자로서 ‘나 정도면 디폴트 인간형’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을지도 모른다. 잘 생겼고, 음악도 내 취향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코어 팬이 된 건 그의 자기 세계가 깊다는 인상 때문이었다.

3. 내게 2015년은 마치 한국 인터넷 페미니즘 운동의 원년 같았다. 연초부터 김태훈이 페미니즘을 IS에 빗댔고, 그가 아카데미 시상식 해설을 맡은 것에 대해 보이콧이 일었다. 소라넷의 몰카와 성범죄가 이슈화 됐고, 이는 SBS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서도 조명을 받았다. 여성혐오적 발언이나 행동을 보인 유명인들이 화두에 올랐고, 더는 가만히 있지만은 않겠다는 적극적인 문화 소비자가 늘었다. 사안들을 살펴보면 사실 새삼스러운 것들이었다. 일상적인 성희롱, 언어 폭력, 차별 대우, 더 나아가서 데이트 폭력, 무조건적인 혐오와 멸시, 직장 내 임금과 승진의 차별 등. 우리는 그 속에서 살고 있었다. 너무 오랜 시간 동안,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는 것조차 잊고 살았다. 계기가 있어 물결이 생기자, ‘그래, 내게도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 동일 임금을 받을 권리, 희롱 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었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와중에 조명 받은 것은 남자들의 행동들이었다. 자신은 평범하다고 믿었겠지만 실제로는 기울어진 사회에서 쉽게도 말하고 행하던 혐오였다. 이슈가 된 유명인들 중에는 아이돌들도 있었다. 오래 전의 발언도 영상과 텍스트로 기록되어 인터넷에 남아 있으니, 언제든 끌려 나와 비판 받게 됐다. 이런 일들을 지켜보며 나는 새로운 질문에 봉착했다.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이 비난을 받으면 괴롭다. 그런데 여성 팬도 많은 아이돌이 혹 여성혐오적인 사고를 하고 있다면, 나는 그를 계속 좋아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쉽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소비자니까, 소비를 끊으면 된다고 말이다.

4. 아이돌의 여성혐오적 발언이나 행동 탓에 탈덕한 사람들은 사실 내 주위에 꽤 많다. ‘고작 그 정도로 오빠를 버리다니 그러고도 팬이냐?’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웬만큼 충격적인 일에는 굴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던 사람들이 탈덕을 할 때는, 사안이 ‘고작 그 정도’가 아니라는 뜻이 아닐까? 여성혐오가 만연한 이 나라에서 아이돌은 그나마 여성 소비자에게 귀 기울이는 몇 안 되는 분야고, 그래서 다른 직업군보다는 눈에 띄는 잘못을 하는 이도 적기는 하다. 그러나 거지 같은 현실에 대한 위로로 아이돌을 찾았더니 거기서도 똑 같은 모습을 봐야 한다면, 마음이 돌아서기에는 충분한 이유가 아닐까?

그러나 이미 어떤 아이돌을 떠날 수 없는 사람에게는 일이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사람마다 다를 순 있겠지만 내 경우는 그랬다. 아이돌, 특히 코어 팬질을 정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기엔 마음이 너무 깊이 얽혀버렸기 때문이다. ‘덕통사고’가 내 의지가 아니었던 것처럼, ‘탈덕’, 내 ‘오빠’가 싫어진다는 것 역시, 내 의지와는 별개의 일이었다. 부질 없는 ‘유사연애’라고 해도 좋다. 실제로 나는, 이런 일에서조차 과거 전 남자친구와 겪은 어떤 기억과 몹시 비슷한 감정이 들기까지 했으니까. 관계가 깊어지면서 그의 집에 어마어마한 빚이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 그를 떠나겠다는 생각이 쉽게 들진 않았다.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나의 모든 사고와 행동은 전부 그 질문을 향했더랬다.

5. 여성혐오 이슈 앞에 내 ‘오빠’가 아슬아슬한 모습을 보일 때도 그랬다. 내가 떠나기엔 이미 늦었기에, 어떻게 해야 내 스트레스를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었다. 같은 속앓이를 하던 지인들에게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 보았다. 우리는 우리의 ‘오빠’에게 편지를 보내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물병 편지 프로젝트’였다.

당연히 걱정과 회의감이 속출했다. 이런 식의 접근을 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하는 것이었다. 지나친 ‘고나리’는 아닐까? 고민이 많았다. 결국엔 ‘오빠’의 말에 용기를 얻었다. 평소 우리가 어떤 마음이고 어떤 생각인지 궁금하다고 했으니까. 그가 SNS를 통해 우리에게 자신의 생각을 들려주듯, 우리도 우리의 생각을 전하자는 것이었다. 그제서야 우리는 시작할 수 있었다.

6. 우리는 각자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만큼 했다. 누군가는 편지를 썼고, 누군가는 자료를 수집했다. 겉모습은 서포트와 비슷한 형식이었다고 해도 좋겠다. 몇 장의 편지와, ‘오빠’가 봐줬으면 하는 TED 강연 영상, 기사를 묶었다. 책도 몇 권 넣었다. 페미니즘을 설명하는 책보다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고르기로 했다. 여성이 자주성을 갖는다는 의미와 일상에서 일어나는 여성혐오의 폭력성 등을 표현한 고전 문학 작품과 만화 등이었다. 우리는 ‘고나리’를 하고 싶지 않았고, ‘고나리’처럼 받아들여지지 않길 원했다. 회사 주소로 일반 우편을 발송한 것도 그래서였다. 어느 정도 사회 생활을 한 사람들이니 보다 확실하게 들어가는 방법을 찾으려면 찾을 수는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인연이라면 닿겠지’하는 마음으로 바다에 띄우는 물병 편지처럼, 그렇게 소포를 발송하고 싶었다.

7. 나는 편지로 참여했다. 태어나서 써본 모든 글 중에 가장 힘들게 썼다고 해도 무방했다. 읽는 사람의 생각에 그렇게까지 온몸의 털을 곤두세워가며 쓴 적은 없었다. 내 뜻이 제대로 전달되어야 하지만, 동시에 그를 늘 사랑하고 지지한다는 확신도 주고 싶었다. 그렇게까지 절박한 심정으로 편지를 쓸 일이 평생 몇 번이나 있을까 싶었다. 그나마도, 읽어줄지 그렇지 않을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래도 결국 보내고 나니 기분만은 홀가분했다.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모든 건 내 마음이 편하자고 한 일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내가 속한 인간 군상을 존중해 주길 바랐다. 그는 평범하면서 동시에 특별한 사람이다. 의식하지 않고 산다면 한국 사회의 견고한 ‘맨박스’(감정을 숨기거나 약자를 무시하는 등의 ‘남자다움’을 요구하는 사회화 과정)에 갇히기 쉬운 평범한 사람. 동시에 수많은 여성 팬들에게 귀 기울여야 하는 특별한 사람. 그런 처지의 그에게, 이 이슈를 좀 더 생각할 기회가 있었으면 했다.

8. 며칠 뒤 랜덤으로 음악을 틀었다가 문득 트래비스(Travis)의 ‘Writing to Reach You’를 듣게 되었다.


Because my inside is outside

My right side’s on the left side

‘Cos I’m writing to reach you

But I might never reach you

Only want to teach you about you

But that’s not you

나는 안팎도 좌우도

뒤죽박죽 혼란스러워

너에게 보낼 편지를 쓰고 있지만

내게 닿지 못할 지도 모르니까

네가 어떤 사람인지 네게 말해주고 싶을 뿐

하지만 그건 진짜 네가 아니겠지

 

‘그건 네가 아닐 것’이란 말이 그토록 씁쓸하게 들릴 수가 없었다. 내가 한 일은 어쩌면, 그저 미디어를 통해 본 ‘오빠’의 인격, 그러니까 결국 가상의 존재에게 영혼을 털어가며 달갑지도 않은 선물을 보낸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노래를 통해 그렇게나 우리가 이어져 있다고 믿었지만 말이다. 그런 마음의 짐은 지금도 있다.

9. 이 글에 결론은 없다. 어쩌라는 거냐고 묻는다면 대답할 말도 없다. 단지 나는 한낱 덕후의 고민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고자 했다. 어떤 제작자나 아이돌은 팬들이 이런 일로 고민하거나 이탈하기도 한다는 걸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이런 팬, 이런 일이 있다는 걸 아는 것만으로도 뭔가는 달라지기도 하지 않을까 해서였다. 나는 평범한 여자 사람이다. 내 모습 그대로 존중 받고 싶고, 내 ‘오빠’가 나를, 여자들을 그렇게 존중해줬으면 하고 바란다. 그와 동시에 나는 평범한 덕후다. ‘오빠’를 놓을 수 없고, 더 많은 사람들이 ‘오빠’의 좋은 음악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이 두 가지가 서로 충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와 내 친구들이 물병에 편지를 담아 ‘오빠’를 향해 띄워보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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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ology.kr 에디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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