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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nzie 12주년 : (1) 켄지 연대기 (상)

2002년 9월 이삭N지연의 ‘The Sign’으로 세상에 이름을 알린 SM 전속 프로듀서 켄지. 데뷔 12주년을 맞아 살펴보는 그녀의 역작들 속에서 켄지의 음악 여정과 매력포인트, 그리고 그녀의 의미를 찾아본다.

켄지의 현재도 그렇지만, 과거는 더욱 많은 수수께끼에 싸여 있다. “시마네현 가와사키 출신”, “초등학교 입학 전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난 소꿉친구 마쓰모토 겐지를 추모하기 위해 ‘켄지’란 예명을 사용”, “MacKenzie를 줄인 것”, “전미 음악 콘테스트에서 작사작곡 부문 수상”, “콘테스트 현장에서 이수만 대표의 눈에 띄어 캐스팅”, “애니 주제가를 부른 적 있음” 등. 이중 일부는 한국어 위키에도 등재되어 있지만, 그 중 일부는 도시전설에 가까운 이야기이며, 그 출처를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은 많지 않다. 인터뷰 등에 거의 응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켄지에 관해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내용은, 피아노와 트럼펫을 배웠고, 밴드 활동을 한 적 있으며, 버클리 음대에서 음악 프로덕션 및 엔지니어링을 전공했고, 그곳에서 파트너 김정배를 만났으며, H.O.T.와 S.E.S.에 자극을 받아 SM에 합류했다는 것 정도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사생활은 아니다. 1999년 버클리 음대를 졸업한 켄지가 2002년 9월 첫 정규작 이삭N지연의 ‘The Sign’을 발표했고, 올해로 12주년이 되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하필 12주년을 기념하는 것이 핑계처럼 느껴진다거나, 필진 중 특정 인물이 켄지의 악성 개인팬이라서 생겨난 기획인 것만 같다면, 기분 탓이다, 아마도.)

아트웍 강동
아트웍 강동

‘SM다움’을 계승하다 (2002년~2004년)

켄지의 데뷔 시기를 살펴보면, 그야말로 ‘착실하다’는 형용사가 어울린다. 이삭N지연의 ‘The Sign’, S.E.S.의 ‘Season In Love’, 다나의 ‘남겨둔 이야기’, 동방신기의 ‘지금처럼’을 들어보면, 유영진의 색채가 짙게 드리워져 있음을 누구나 느낄 것이다. 따뜻하고 다정한 멜로디가 약간의 서글픔을 품고 흐르며, 비교적 어두운 음색의 악기들을 이용해 풍성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한다. 보아의 ‘Time To Begin’이 풍기는 짙은 ‘SMP 스타일’의 느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당시의 켄지를 그저 유영진의 카피캣 정도로 이해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이삭N지연의 데뷔곡, 다나의 2집 타이틀곡, 보아의 3집 오프닝 트랙을 맡았다는 것은 결코 함부로 내린 결정이 아닐 터이다. 특히 보아의 경우를 주목할 만한데, 타이틀곡을 첫 트랙으로 배치하는 성향이 강한 SM에서 보아의 3집, 5집, 6집에 별도의 오프닝 트랙을 두었으며 그 중 두 번 연속으로 켄지가 이를 담당했다는 점 때문이다. 시스템화에 대한 관심이 지대한 SM에서 이 같은 예외를 둔 것은, 그만큼 보아의 앨범을 켄지가 연다는 것이 훌륭한 조합임을 인정받았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기의 켄지는 차라리, 여성 아이돌을 보다 잘 다룰 수 있는 유영진의 대체재 같은 자리였다고 볼 수 있다.

이후까지 이어질 켄지의 특징들 중 이 시기에 발현된 것들이 있다. 위에서 언급한, 유영진을 닮은 듯한 서글픈 멜로디도 그 중 하나다. 단, 이와 조합되는 R&B 스타일은 이후로 가면서 줄어드는 추세를 보이며, 슬픔의 정서는 밝은 분위기 속에 심어져 특유의 묘하게 비현실적인 색채감을 형성하게 된다. (이는 종종 켄지의 곡이 ‘애니메이션 주제가 같다’는 평을 듣게 되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 애수 섞인 멜로디에 산뜻한 그루브를 결합한 S.E.S.의 ‘Season In Love’도 주목할 만하다. 하우스 스타일이 켄지 음악세계에서 중요한 자리를 점하기는 하지만 이 곡처럼 고전적인 하우스 풍을 구사하는 곡은 흔치 않기 때문이다. 보아의 ‘Milky Way’는 모던록을 접목한 상큼한 사운드로 불안 속에서도 건강미와 긍정을 놓치지 않는 사랑스러운 소녀를 표현한다. SM이 추구하는 아이돌의 이상 중 커다란 한 축을 강하게 움켜잡아 보인 이 곡은 대표적인 ‘켄지 감성’의 한 축을 형성하는 ‘건강하고 씩씩한 소녀’ 이미지를 선보인다.

SM의 ‘그’ 프로듀서 (2004~2009년)

기존에는 보기 힘들었던 세련미를 뿜어낸 보아의 ‘My Name’은, 이수만이 한 인터뷰에서 언급했듯 “좀 어려운 곡”이지만 “보아라면 이 정도는 해줘야” 하는 곡이었다. 급격한 곡조의 변화를 이어 붙이면서도 탄탄한 설득력을 보여, 강한 흡인력과 음악적 완성도를 동시에 잡아냄과 동시에, 다소 어지러웠던 ‘SMP’의 미학을 깔끔하게 정리해낸 것이다. 꿈틀거리는 베이스라인과 오케스트레이션, 일렉트릭 피아노 등이 깔끔하게 잘려가며 레고 블록처럼 쌓아 올려진 사운드 또한 혁신적이었다. 당시 인터뷰에서 이수만이 “우리 직원이었던 켄지”라 부르던 그녀는, 이 곡을 통해 SM의 명실상부한 대표 작곡가의 지위에 오른다.

이전 시기에 발표된 보아의 ‘Time To Begin’과 ‘I Kiss’, 그리고 이 시기의 곡들을 나란히 이어 놓으면, ‘SMP’ 식의 어둡고 강렬한 사운드를 켄지가 자신의 것으로 새롭게 만들어내는 여정이 보인다. 동방신기의 ‘Phantom’이 중간지점 중 하나일 것이다. 보아의 ‘moto’, 천상지희의 ‘한번 더 OK?’, 슈퍼주니어의 ‘마지막 승부’, 소녀시대의 ‘소녀시대’ 등을 거치며 켄지는 선 굵은 저음의 리프를 통해 곡에 확실하게 힘을 실어준다. ‘흑켄지’라 불러도 좋겠다. 그 과정에서 록 사운드의 활용이 늘어나기도 했다.

이후 몇 년간, 켄지에겐 거칠 것이 없었다. 리메이크인 동방신기의 ‘풍선’과 소녀시대의 ‘소녀시대’는 켄지만의 매력이 무엇인지 보다 극명하게 드러내준다. 여러 명의 멤버가 나눠 부르며 퍼포먼스하기 위해 쓰여지지 않은 이 곡들이다. 이를 아이돌 무대에 올리기 위해 (브리지의 추가 작곡을 포함해) 많은 변화와 장식적 요소를 도입한 것이다. 그러나 켄지는 이 복잡한 소리의 혼합체를 구석구석 통제하며 휘어잡아 역동성을 부여한다. 또한 원곡과 화성적으로 작은 차이들을 만들어 넣음으로써, 특유의 화사하고 건강한 ‘아이돌미(美)’를 살려내기도 했다.

특히 동방신기의 곡들은 그녀에게 많은 기회를 주었다. ‘전원이 리드보컬’인 아카펠라 콘셉트의 동방신기는 전통적인 아이돌팝보다 작편곡자에게 자유도를 부여했다. 켄지의 모습을 TV에서 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송이었던 2007년 엠넷 <21c 아티스트 – 동방신기 편>에서도 그녀는, 각 멤버의 보컬 특성에 대한 이해도가 높을수록 더 밀도 있는 곡을 만들 수 있게 된 환경을 시사한 바 있다. 또한 전통적인 편곡보다 훨씬 과감한 텐션 화성을 보컬로 쌓아 올리는 방식도 이 때부터 켄지의 무기 중 하나가 되었다. 특히 [#음덕주의] sus4와 도미넌트 페달 등은 보컬 뿐 아니라 편곡의 전반에 걸쳐 켄지의 화사한 사운드를 구사하는 시그니처를 이루기도 했다.

이처럼 이 시기의 켄지는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다. 장르적 다양성, 퍼포먼스를 위한 안배, 아이돌의 사랑스러움을 극대화하는 색채까지. 특히 그녀에게 두드러지는 강점은 밴드 구성을 염두에 둔, 혹은 전자악기들로 이뤄진 밴드를 지휘하는 듯한 밴드마스터적인 성향이었다. [#음덕주의] 최근까지도 켄지의 곡에서 사이드체인 사운드가 두드러지는 경우는 찾기 힘든데, 훵키 베이스, 디스코 베이스, 혹은 사람이 건반으로 (휠을 돌리며) 연주하는 듯한 베이스의 비중이 높다. 이는 스스로 “좋은 안무를 만들어낼 수 있는 비트와 사운드”를 중시한다고 말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기계보다는 ‘손맛’을 통해 구현하고자 하는 욕심으로 읽힌다. (그리고, 이런 작업을 기계를 통해 구현하자면 소리 하나하나가 변화하는 속도를 섬세하게 조절할 필요가 있다.) 리듬에 변화를 주는 순간들 또한, 등장하는 모든 악기들이 편곡자의 손끝에서 밴드의 멤버들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패턴이 많다. 켄지는 빠르게 바뀌는 사운드의 유행 속에서도 밴드가 연주하는 정통파 팝의 언어를 선호하는 것으로 보이고, 이를 구사하기 위한 실력과 정밀함을 갖추고 있었다.

그녀가 꼼꼼하게 쌓아 올린 소리들은 아이돌팝으로서의 매력과 정통 팝의 완성도를 겸비하고 있었다. 보아의 ‘공중정원’, ‘Moto’, 트랙스의 ‘초우’, 동방신기의 ‘One’, ‘Phantom’, ‘Remember’, ‘무지개’, 천상지희의 ‘한 번 더 OK?’, 동방신기와 슈퍼주니어의 ‘Show Me Your Love’, 슈퍼주니어의 ‘마지막 승부’, ‘미워’, ‘앤젤라’,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 ‘소녀시대’, ‘Merry-Go-Round’, ‘힘내’, ‘여자친구’ 등이 이 시기의 곡들이다.

또한 SM의 인하우스 프로듀서답게 정규작 이외에도 SM과 관련된 많은 활동을 했다. 아이돌로지가 2002년 9월로 켄지의 데뷔를 잡았지만, 사실 그녀는 같은 해 6월 SM 타운 여름 앨범에 이미 블랙비트의 곡으로 참여한 바 있었다. 2002년에서 2007년까지 켄지는 17곡을 SM 타운 앨범에 수록했고, 소녀시대의 ‘하하하송’과 ‘햅틱모션’ 등 광고 프로젝트나 드라마 OST에도 이름을 올렸다. 특이한 것은 아이비(‘Do It’, 앨범 “My Sweet And Free Day”, 2005), 정철(앨범 “聽”, 2005) 그리고 (…) 장우혁(‘F.A.S.T. Love’, 앨범 “No More Drama”, 2005)의 음반에도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떤 의미에서든, 창작력이 폭발하던 시기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착실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자라난 씩씩한 켄지! 그녀에게 닥쳐올 어둠의 그림자와 ‘흑켄지’의 각성! 과연 켄지의 앞날은… 다음 이 시간에.

미묘

By 미묘

가식과 내숭의 외길 인생. 음악 만들고 음악 글 씁니다.
f(x)는 시대정신입니다.

2 replies on “Kenzie 12주년 : (1) 켄지 연대기 (상)”

ㅋㅋㅋㅋㅋ 여기 여기 켄지빠 한명 추가요..
아는사람만 안다는 켄지음악의 묘한매력
그리고 켄지님 트위터하고 요샌 인스타그램도 하신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