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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청의 아이돌 8선

아이유는 왜 촉촉한 굴비를, 레인보우는 왜 홈쇼핑을 노래했는가. 가끔은 음원에 귀신이라도 씌인 듯 환청이 들리는 곡들이 있다.

가요계의 도시전설 중, 앨범 준비 기간에 귀신을 보면 대박이 난다는 것이 있다. 어느 음반에 귀신 소리가 들어가 있다는 류의 괴담도 어쩌다 한 번씩 들린다. 공론화되지는 않아도, 가끔은 음원에 귀신이라도 씌인 듯 환청이 들리는 곡들이 있다. 내가 경험한 환청 중 8곡의 사례를 소개해 본다.

"제대로 들은 것 맞니?" (CC BY NC jkirkhart35)
“제대로 들은 것 맞니?” (CC BY NC jkirkhart35)

1. 아이유 – 마쉬멜로우 (2009)

“굴비처럼 촉촉해”

언젠가 한정식집에서 촉촉하게 구워진 통통한 굴비를 먹어본 적이 있다. 굴비는 보통 말린 생선일 텐데, 어떻게 이렇게 촉촉하고 부드러운 맛이 날 수 있을까 궁금했다. 아이유도 맛을 아는 여자라 “굴비처럼 촉촉해”라고 노래한 걸까. 혹은 뻣뻣하게 마른 굴비 따위 먹어본 적 없는 곱게 자란 여자라 당연히 굴비는 촉촉하다고 생각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원래 가사는 “쿠키처럼 촉촉해”였다. 두 배로 억울한 일이다. 쿠키가 왜 촉촉해야 하냔 말이다. 촉촉한 굴비와 촉촉한 쿠키 중 어느 쪽이 잘 된 요리냐 하면, 굴비 아닌가?

2. 레인보우 – A (2010)

“그저 홈쇼핑이야”

이 곡은 매일 홈쇼핑을 하며 답답하게 살아가는 삶으로부터 씩씩하게 뛰쳐 나오는 여성의 삶을 노래하고 있다. 레인보우의 이전 곡도 ‘가십 걸’이었다. 이들은 소비사회에서의 삶을 꾸준히 노래하는 콘셉트를 잡은 것이었다. 사실 드라마 <가십 걸>의 세계와 홈쇼핑을 하는 삶은 쉽게 대조를 이룬다. 혹시 팬들은 자신들의 일상이 다소 찌질한 듯이 묘사되어 불쾌감을 느끼진 않았을까.

원래 가사는 “그저 감출 뿐이야”였던 모양이다.

3. f(x) – 미행 (2013)

“난 마니-마니또 좋아하고 있어”

마니또란, 제비뽑기로 한 사람을 정해 상대방 모르게 상대방을 위한 좋은 일을 하는, 일종의 게임이다. 어렸을 때 몇 번 경험했지만 크게 좋은 기억이 남아있진 않다. f(x)는 현재성이 강한 가사를 쓰는 경향이 있는데, 마니또를 요즘도 하는지는 모르겠다. 하긴, 사실 연애란 아무리 세련된 사람이라도 통속적으로, 올드패션하게 만드는 일이다. 동성간의 연대감을 남녀간의 애정과 거의 비등하게 드러내는 f(x)니만큼, 굳이 최첨단의 데이트 기호가 아니어도 과감하게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마니또가 주는 비밀스러움이란 클래식한 로맨스를 보여주는 일면이기도 하다.

원래 가사는 “난 많이, 많이, 또 좋아하고 있어”.

“태양이 맺은 인연, 함께 이루요(いるよ)”

한편 “함께 이루요(いるよ)”는 무척 충격적이었다. 한국어 가사에 영어를 섞어 넣는 게 흔한 일이지만, 일본어도 섞을 수 있다니. 번역하자면 “함께 있는 거야”인 셈. 아이돌 종주국인 일본인만큼 일본어가 가사에 들어오지 못할 이유는 없다. 영어도 한국어로 하면 뻔하고 밋밋한 말에 신선함을 부여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지 않은가. 다만 일본에 대한 국민감정이 곱지 않기에 일본어는 가요계에서 늘 어떤 금기였다. 그런 금기를 돌파하는 것이야말로 아이돌 아방가르드 f(x)답다. 또한 일본 진출에서 그다지 재미를 보지 못한 점까지 고려할 때, 무척 과감한 시도라 할 수 있다. 앞서 등장한 “좋아하고 있어”도 대표적인 일본어 번역투가 아닌가.

하지만 제 정신 박힌 원래 가사는 “함께일 운명”이었던 모양.

4. f(x) – Toy (2013)

“이제 나는 더 이상 조그맣고 귀여운 네 거위가 아냐”

동화나 전설 모티프를 가져오는 가사가 드물지 않은 만큼, 거위가 가사에 등장한다 해서 이상할 것도 없다. 사실 거위는 조그맣고 귀여운 동물이다. 그렇지 않은가?

원래 가사는 “네 Toy가 아냐”.

5. 샤이니 – 히치하이킹 (2013)

“찬란히 눈이 부신 지구 멸망 Season”

개인적으로 “The Misconception of You” 앨범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이다. 시간여행과 차원이동을 그린 우주적인 이 노래의 가사. 조금 오글거리지만 샤이니가 부르니 제법 그럴 듯하다. 지구의 멸망이 찬란히 눈이 부시다니, 이 얼마나 세기말적 탐미주의란 말인가. 게다가 “지구 멸망 Season”이라니, 지구 멸망의 시기를 너무나 캐주얼하게 일컫는 이 쿨함. 솔직히 잘못 들은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Season”을 잘못 들었을 수 있다고는 생각했지만, 원래 가사가 “찬란히 눈이 부신 지구별 Four Seasons”였다니. (솔직히 이건 잘못 들어도 할 말 없는 작사라는 생각도 든다.)

6. 아이유 – 분홍신 (2013)

“거긴 아냐 (나는 괜히 웃어)”

위치를 헷갈리면 서로 민망하니 함께 웃어 넘기는 게 가장 우아한 방법인 것 같다. (…) (이해가 안 되시는 마음씨 고운 분들은 넘어가자.) 더 이상은 얘기를 못 하겠다.

원래 가사는 “겁이 나면 (나는 괜히 웃어)”.

7. 걸스데이 – Something (2014)

“혈을 찔리니까 넋이 나가”

사실 그리 주의 깊게 들은 가사는 아니었다. 그런데 트위터의 타임라인에 @Tadaaaaaaaaaaaa 님이 작성하신 트윗이 올라온 뒤로는 이 가사가 신경쓰여 견딜 수가 없게 되었다. 워낙 약간 미묘하게 아저씨 취향의 가사를 쓰곤 하던 걸스데이지만, 이런 무협 풍의 가사를 쓰다니. 긴 슬릿의 무대의상도 차이나 드레스의 모티프를 가져온 것이 분명하다. 바닥에 엎어지는 안무도 이해가 간다. 그야 혈을 찔려 넋이 나갔으니 엎어질 수 밖에 없겠지.

원래 가사는 “허를 찔리니까 넋이 나가”.

8. 선미 – 보름달 (2014)

“Perfect mother, can’t get no better”

보름달은 뱀파이어와의 상징성도 있지만, 또한 여성과 재생산의 상징이다. (반면 나바호, 에스키모, 일본, 마오리, 오세아니아 등에서는 오히려 남성성을 상징하기도 한다.) 근래에 화제가 된 ‘타이거 맘’ 등과 관련하여, 보름달이 뜨는 밤에 완벽한 어머니상을 꿈꾸는 노래다. 더구나 이 곡의 뱀파이어 이미지와 결부시켜 바라보면, 완벽한 어머니의 등골을 빨아먹는 내용은 아닌가.

아니다. 원래 가사는 “Perfect weather”.

대박을 향한 심령 아이돌 전략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영감이 뛰어난 여러분이 찾아낸 환청이 있다면 공유해 주시라.

미묘

By 미묘

가식과 내숭의 외길 인생. 음악 만들고 음악 글 씁니다.
f(x)는 시대정신입니다.

9 replies on “환청의 아이돌 8선”

헉 정말이네요! 전 지금까지 진짜로 “베개”인 줄 알고 있었습니다…………………………. 베개 속에 묻었구나 짠하다 했는데…

시대정신^^ f(x)의 ‘지그재그’ 중 이런 가사가 있길래 이상하다 생각했더니 원래 가사는

개인적으로 마쉬멜로우는 2분 33초경 ‘꿈을 꿨나봐 눈을 뜨니까 거짓말처럼 살이 쪄’로 들림, 마쉬멜로우 많이 먹으니까 살이 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