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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nder Years’는 돌아오는가

우리에게 원더걸스는 (이미) 존경과 흠모, 영향을 선포할 모범적 클래식인가. 혹은 원더걸스가 아닌 그 누구라도, 케이팝에 정전의 옹립은 필요한가.

사진 ⓒ JYP Entertainment

많은 사람들이 여성 아이돌 붐의 끝을 말한다. 사실 이미 오래전부터 말해지던 것이다. 2NE1은 ‘Come Back Home’으로 ‘어떤 완성’을 추구하고, 소녀시대는 작년의 ‘I Got A Boy’로 또 다른 ‘어떤 완성’을 이룬 뒤 ‘Mr. Mr.’로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으며, 포미닛은 이미 작년 ‘이름이 뭐예요?’를 통해 (아이돌팝의 대칭점으로서의) 가요를 향한 급진적 선회를 도모했다. 원더걸스는 중도에 탈퇴했던 선미가 솔로로 컴백했고, 예은은 정글을 탐험하고 있으며, 선예는 선교자와 어머니의 역할을 탐험하는 모양이다. 카라의 내일은 아무도 모르는 듯하다. 2007년 원더걸스와 함께 일어난 여성 아이돌 붐은, 이미 죽었을지 모르나 이제는 확인사살마저 지나갔다. 이제 사람들은 갓세븐과 위너, 엑소를 꼽으며 남성 아이돌 시대의 전개를 예측한다.

그런데 묘한 분위기가 흐른다. 그것은 올 1월 갓세븐의 데뷔앨범에서 시작되었다. 타이틀곡 ‘Girls, Girls, Girls’가 원더걸스의 ‘Tell Me'(2007)를 샘플링한 것이다. 인트로부터 등장하는 익숙한 “엄-머나”는 곡 전체에서 들려오고, 혹여 못 알아듣는 청자를 위해 안무에도 얼굴에 손을 대며 놀라는 표정이 친절하게 포함되었다. 놀랄 일만은 아니다. JYP는 원래 루츠에 천착하는 성향을 가졌고, 대중음악에서 루츠를 밝히는 중요한 방법 중 하나는 바로 인용이다. 같은 앨범에 수록된 ‘여보세요’에서도 한영애의 ‘누구세요’와 미쓰에이의 ‘Bad Girl Good Girl’을 인용하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놀라게 되는 점은, 이것이 중요한 시점에 야심차게 발표하는 신인의 데뷔 타이틀곡 메인 모티프라는 것이다. 질러 가자면, ‘원더걸스가 우리 시대의 클래식이 되었나?’하는 점이다.

바로 다음 주에 발매된 스피카의 ‘You Don’t Love Me’ 또한 많은 이들에게 원더걸스의 ‘Nobody'(2008)를 연상시켰고, 보름 뒤의 레이디스코드는 보다 노골적인 ‘So Wonderful’을 내놓았다. ‘Nobody’의 무대와 의상, 안무는 물론 원더걸스의 뻣뻣한 보컬 톤까지 고스란히 가져온 이 곡은 심지어 제목부터 “Wonder Girls”와 ‘So Hot'(원더걸스, 2008)의 조합이었다.

신인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박지윤의 ‘Beep’ 뮤직비디오는 황금빛 글리터 배경 앞에 선 MC의 소개에서 박진영의 원더걸스 소개를 떠올릴 법도 하다. 또한 원더걸스와 거의 동세대라 할 수 있을 포미닛도 신보 “4Minute World”의 인트로 ‘Wait A Minute’에서 “핫뜨거뜨거핫”을 외쳐 원타임을 인용한 뒤 “핫둘셋넷”으로 의미심장하게 혀를 빼문 뒤, 타이틀곡 ‘오늘 뭐해’에서 가히 변증법적으로 원더걸스의 ‘So Hot’을 호출한다. 인트로의 드럼 리듬과, 한 마디의 뒷부분을 채우는 8비트 클랩 연타, 그리고 리드미컬하게 오르내리는 신스와 베이스 조합을 비슷한 톤의 신스와 브라스의 조합으로 바꿔 가져온 것이다

물론 나는 시시한 표절 의혹 따위를 제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사례들은 표절의 범주와 상당히 거리가 있다. 또한 ‘오늘 뭐해’와 ‘So Hot’의 리듬이나 이를 구성하는 방식은 거의 고전적이다. 다만 이 사례들 대부분, 결과물과 맥락이 원더걸스를 연상시킬 수 있음을 창작자나 기획자가 전혀 몰랐을 것이라 상정하는 것도 부자연스럽다. 또한 올해의 첫 석 달이 채 지나기도 전에 이 정도의 사례들에서 원더걸스의 맥락을 연상하게 되는 것만은 단순한 우연이라 보기 힘들다.

2007년 원더걸스는 거의 명백하게 영화 <드림걸즈>(2006)를 참고점으로 삼았다. JYP의 취향과도 맞았을 법한 이 영화는 한국에서 보기 드물게 음악영화로서 흥행을 기록해 음악 비지니스의 새 모델에 대한 힌트가 되었다. 우선 웬만한 사람은 다 알 법하기에 친숙한 테마가 되었고, 가수의 꿈을 위해 노력하는 서사도 아이돌과 맞아떨어졌으며, 슈프림스와 모타운의 전설 또한 아이돌의 ‘음악성’과 ‘실력’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돌파할 무기가 된 것이다. 말하자면 그냥 ‘가져오기만 하면 되는’ 친절한 모범이었던 것이다. 비록 일렉트로닉의 유행으로 인해 2010년까지 음악적 측면에서 그 영향이 두드러지진 않았으나, 이는 우리 대중음악계에 깊은 영향을 남겼다. 수많은 여성 아이돌이 즉시 (다른 숱한 테마들을 버려두고) 소울-디스코와 글리터, 미러볼, 분장실, 댄서를 꿈꾸는 소녀 등의 이미지를 프리셋처럼 가져와 쏟아부은 것이다. 또한 오늘날 소울-훵크와 이를 연상시키는 브라스 사운드가 어떤 ‘음악성’이나 ‘음악적 성숙’의 대명사처럼 자리잡은 것도 이와 관련된다.

그 와중에서 앞서 언급한 스피카와 박지윤의 경우는 예외적이다. 스피카는 모타운을, 박지윤은 소울트레인을 (화면 질감까지) 직접 인용한 듯한 모습이다. 그러나 나머지 사례들은 하나 같이 원더걸스를, 혹은 원더걸스의 액자를 거친 <드림걸즈>를 가져오고 있다. 말하자면 ‘레이디스코드의 원형인 원더걸스의 원형인 <드림걸즈>의 원형인 슈프림스’가 되는 것이다. 그 결과, 2007년과 2014년은 <드림걸즈>의 원형이 계승되는 다음 스텝, 혹은 기묘한 수미쌍관을 보이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원더걸스의 화려한 경이의 시대(‘Wonder Years’)는 애매한 전설로 남았다. ‘Be My Baby’ 등 후기 곡들의 퀄리티 있는 우아함에도, 만두가 박지윤으로 변하는 마술쇼에도 ‘과거의 영광’은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다. JYP 개인에게 있어 원더걸스는 어쩌면 납득할 수 없는 신탁 같은 뼈저림으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원더걸스의 커리어에 아쉬움을 느끼는 것이 JYP와 원더걸스 본인들만은 아닐 터, 누구라도 “그 시절 좋았지” 할 수는 있다. 또한 레이디스코드 등은 그저 걸그룹이 잘 안 되는 요즘인지라 지푸라기라도 끌어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당시의 원더걸스는 매력이 입증된 모델이고, 입증된 쾌감을 재현하는 것은 팝 음악에서 결코 금기가 아니라 때론 오히려 미덕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원더걸스 레퍼런싱은 과연 아름다운가, 하는 의문은 남는다. 우리에게 원더걸스는 (이미) 존경과 흠모, 영향을 선포할 모범적 클래식인가. 혹은 원더걸스가 아닌 그 누구라도, 케이팝에 정전의 옹립은 필요한가. 이는 어떤 의미에선 미8군에서 성장한 신중현에 대한 한국 록의 헌사와 겹쳐보인다. (마침 YB는 최근 ‘해외를 겨냥한’ 곡 ‘Cigarette Girl’에 신중현의 ‘미인’의 리프를 (다소 뜬금 없이) 삽입했다.) 신중현에 관해서도 그가 우리 록의 ‘만들어진 정전’은 아닌가 하는 논의는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논의는 신중현의 음악성 혹은 전설을 폄하하지 않는다.) 한국 대중음악이 상실한, 혹은 가져본 적 없는 뿌리와 정통성은 우리를 ‘상상의 이상향’ 영미권에 대한 변방의식 속에 위치시켜왔다. 뭘 해도 ‘짝퉁’이란 의식 말이다. 그렇다면 케이팝의 ‘근본 없음’이야말로 제3세계의 프레임을 비로소 벗어나는 저력인 것은 아닌가.

이제 우리의 질문은 바뀐다. 원더걸스 레퍼런싱은 ‘근본 없는’ 일인가, 혹은 ‘상상의 근본’에 대한 욕망인가. 전자라면 반드시 나쁜 일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혹 부정적이라 해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후자라면 한국 대중음악에 새로운 허위의 굴레가 씌워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새로운 음악을 찾는 것이 오덕스럽다고 생각할 수는 있지만, 혹시, 그보다도 ‘못난’ 짓이 시작되고 있지는 않은가. 원더걸스에서 ‘정통성’을 구하려다, 원더걸스의 ‘근본’인 슈프림스의 ‘짝퉁’으로 전락하는 일 말이다.

미묘

By 미묘

가식과 내숭의 외길 인생. 음악 만들고 음악 글 씁니다.
f(x)는 시대정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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