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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그룹의 이름은 과연 누구의 것인가?

아이돌들이 언젠가 소속사의 품을 떠났다가 다시 뭉쳐 활동하고자 한다면, 그 이름을 그대로 쓸 수 있을까? 1세대 아이돌들을 중심으로 현실적 상황을 점검해 본다.

최근 아이돌 관련 방송 콘텐츠로 가장 대중에게 화제를 모은 것은 단연 MBC 〈무한도전 ‘토.토.가’ 2 – 젝스키스〉 에피소드들이었다. 이미 10여 년 전에 해체했던 젝스키스 멤버들 외에, 이 이벤트를 통해 가장 큰 기쁨을 만끽한 이들은 아마도 젝스키스 팬덤이었을 것이다. 팀이 해체했거나 활동을 중단했어도 팬들의 맘 속에는 세월이 또 흐르면 언젠가 ‘오빠들’이 다시 만나 함께 무대에 서는 모습을 보여줄 날이 올 거란 기대가 작든 크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방송을 보면서 오래전부터 가져왔던 궁금증이 본격적으로 머리를 가득 채웠다. 바로 ‘아이돌은 활동 이후에도 자신의 소속 그룹의 이름을 사용할 권리가 있는가?’, 다시 말해서 ‘아이돌 그룹의 이름은 과연 누구의 것인가?’라는 질문이었다. 물론 아이돌 출신의 어떤 가수, 연예인이 방송이나 여타 개인 활동을 통해 ‘A그룹 출신의 누구입니다’라고 말하고 그 시절 이야기를 하는 건 당연히 본인의 자유다. 그러나 아이돌들은 둥지를 떠났어도 소속 기획사가 그대로 존재하는 경우가 많은 21세기의 한국 아이돌 팝 시장에서, 이번의 젝스키스처럼 다시 뭉쳐 어떤 활동을 하고자 할 때, 아니면 그룹의 이름을 앞세워 자신의 활동을 하고자 할 때, 그 이름을 사용할 권리에 대한 문제는 생각보다 간단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1세대 아이돌 그룹들의 사례를 중심으로 이 질문에 대한 현실적 상황을 체크해보고자 한다.

DSP의 아이들이지만 젝스키스와 핑클의 이름은 그들의 것

일단 이번 화제의 중심이었던 젝스키스의 상황부터 보자. 이미 젝스키스의 멤버들과 YG 엔터테인먼트(이하 ‘YG’) 양현석 대표의 만남이 공식 인정됐으며, 5월 11일 고지용을 제외한 다섯 멤버들은 YG와 (개인 활동은 각자 소속사에서 하는 전제하에서) 그룹 단위 활동 계약을 완료했음을 발표했다. 결국 젝스키스의 향후 새 앨범 발매와 공연 활동은 YG의 관리 아래 있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 그들의 원래 소속사였던 대성기획, 지금의 DSP 미디어(이하 ‘DSP’)의 존재감은 과연 무엇일까? 그 해답은 생각보다 쉬웠다. DSP와 멤버들 사이에는 아무런 법적 관계가 없고 상표권도 등록되지 않았음이 이미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멤버들은 대성기획 시절 정식으로 계약서를 쓰지 않고 고용되었음을 방송 등에서 밝힌 바 있고, 3년 조금 넘는 그룹 활동 끝에 회사 주도(?)로 해체가 이뤄진 면도 있었기에 이호연 대표와 DSP 측도 그룹의 상표권 문제에 대해 주도권을 내세우지 못했을 것이다.

한편, 같은 소속사였던 걸그룹 핑클의 경우도 비교해 살펴볼 여지가 있다. 이들은 2001년 4집 “영원” 활동을 끝으로 해체라는 표현 대신 ‘따로 또 같이’라는 형태로 활동을 중단했다. 이진과 성유리가 DSP를 먼저 떠났고, 옥주현과 이효리 역시 각각 솔로 앨범 1장씩을 발표한 이후에는 회사를 떠났다. 그런데 2005년에 내놓은 디지털 싱글 “Fin.K.L”은 DSP의 이름을 전혀 달지 않고 발표되었다. 이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호연 대표가 ‘핑클’에 대한 상표권 등록을 시도하였으나 이뤄지지 못한 부분에서 기인한다. 언제든 멤버들이 그 이름을 활용하는 것에 대한 제약이 없다는 얘기가 된다.

3대 기획사 아이돌들의 이름은 대체로 회사의 것

DSP의 전성기를 이끈 양대 그룹의 사례는 사실 많은 1세대 중소기획사 아이돌들의 상황과 비슷하다. 그 시절 기획사들은 아티스트와의 계약 관계가 투명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고, 그 이름의 소유가 자신들에게 향후 꾸준한 수익을 낳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여력조차 갖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런 쪽에 해당되는 1세대 아이돌들은 향후 JTBC 〈투유프로젝트- 슈가맨을 찾아서〉나 〈무한도전 ‘토.토.가’〉 시리즈와 같은 방송에 재결합해 출연한다 해도 이름의 사용 권리에 대해 큰 고민은 필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이미 그 시절부터도 우리가 잘 아는 3대 기획사나 대형 연예 매니지먼트 회사들은 아이돌 그룹의 이름을 확실하게 소유하는 과정도 놓치지 않았다. 거의 10년 가까이 말만 무성하다가 근래 와서 가능성이 좀 보이기 시작한 H.O.T.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미 SM 엔터테인먼트(이하 ‘SM’)은 이 그룹의 상표권을 등록해 보유하고 있고, 특히 멤버 강타가 여전히 SM의 미등기 임원(이사)인 상황이다. 그렇기에 H.O.T.의 멤버들이 재결합 활동을 하게 된다면 SM의 이름을 걸고 하게 될 것임은 자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공식 활동은 없었어도 2015년 첫 번째 〈무한도전 ‘토.토.가’〉에 출연했던 S.E.S.의 경우는 어떠할까? 유진, 슈, 바다가 개인 차원에서 S.E.S.의 이름을 사용하는 일에 대해선 SM도 그렇게 큰 제약을 둔 것은 없어 보인다. (지금은 세 멤버 누구도 SM 소속이 아니다.) 그러나 지난 〈토.토.가〉 무대에서 유진의 출산으로 인한 빈자리에 소녀시대 서현이 참여한 것의 의미는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결국 〈무한도전〉과 슈-바다 측이 S.E.S.라는 이름을 원만하게 사용하기 위해 SM 측과 협의를 했음을 유추할 만한 증거일지도 모른다.

한편, 이미 재결합 공연과 음반 발표까지 해낸 god의 경우를 들여다보자. god가 2014년 재결합하고 난 후 현재까지 그들의 활동, 홍보와 마케팅은 과거 이들의 소속사였던 iHQ(싸이더스HQ)가 맡고 있다. 물론 재결합 당시에는 박준형이 배우로서 이 회사 소속이긴 했으나 나머지 멤버들은 당시에도 모두 다른 소속사에서 활동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매우 복잡한 ‘여러 지붕 한 가족’ 체제를 멤버들 스스로 합의해 만들었지만 여전히 그룹의 ‘이름’에 대한 모든 권리는 iHQ에게 있었던 것이다. 이 점은 앞으로도 god가 활동하는 한 꾸준히 이 회사의 개입을 불가피하게 만들 것이다.

2015년에 정말 오랜만에 대중에게 완전체의 모습을 보여준 클릭비의 경우는 이와 비슷한 듯 다르다. 이미 2011년 7명의 완전체 팬 미팅을 통해 재결합의 의지를 보여주었고 그 당시에는 DSP가 아닌 다른 기획사의 이름으로 디지털 싱글을 냈지만, 이후 멤버들의 군 복무가 완전 종결될 때를 기다리는 동안 오종혁이 DSP로 귀환했다. 이 영향으로 2015년의 재결합 디지털 싱글 “Reborn” 활동과 공연은 DSP의 관리 아래 이뤄졌다. 멤버 중 일부가 다시 소속되면서 그룹의 이름에 대한 권리를 회사가 다시 행사한 케이스가 된 셈이다.

신화의 사례가 보여주는 아이돌 그룹의 ‘이름 찾기’의 힘겨움

그러한 점에서 12년간의 긴 노력 끝에 마침내 그룹의 이름을 멤버들이 찾아온 신화의 사례는 긴 세월 소속사의 재산 증식(?)을 위해 노동(!)했음에도 그곳을 떠나 자신들의 이름을 맘껏 사용할 수 없는 아이돌들에게 한 번쯤 살펴볼 사례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SM은 신화가 2003년 계약 종료 후 회사를 단체로 떠난 뒤인 2005년 1월에 신화라는 이름을 특허청에 등록하고 이를 오픈월드 엔터테인먼트라는 기업에 대여한다. 결국 당시 신화의 새 소속사였던 굿 이엠지는 그 이름을 사용하기 위해 오픈 월드와 상표권 계약을 맺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룹의 스케줄 관리, 해외 팬클럽 모집 등의 업무는 오픈 월드가 담당했다.) 그리고 군 복무 후 멤버들이 직접 설립한 신화 컴퍼니 역시 이런 계약을 계승했다. 그러나 2012년 오픈 월드가 파산 위기를 겪은 후 준 미디어로 변신한 뒤부터 신화 컴퍼니는 (소송에서 문제를 막기 위해 ‘신컴 엔터테인먼트’로 이름을 변경했다) 2014년 7월 본격적인 소송전을 시작했다. 준 미디어에 “상표권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서류를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이 분쟁은 결국 2015년 5월 재판부의 조정안을 양측이 받아들이면서 6월 11일 신화 컴퍼니 측으로 상표권 명의 이전이 완료되었다. 마침내 아이돌 그룹이 자신들의 ‘이름’을, 그 이름을 소유했던 ‘회사’에서 합법적으로 되찾아온 것이며, 현재까지 국내에선 유일한 경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기간이 첫 소속사를 나간지 12년이나 걸렸다는 것은, 아이돌 그룹과 그 멤버들이 자신들의 이름을 전 소속사에게서 되찾기를 원한다면 법적으로 얼마나 지루하고 복잡한 싸움을 해야 하는지, 그 싸움의 승산이 아이돌들에게는 애초부터 얼마나 낮은지를 말해주는 것 같기도 하다. (만약 SM이 계속 신화의 이름에 대한 권리를 직접 소유하기로 고집했다면 이 분쟁은 더 힘겨웠을지도 모른다.)

아이돌 그룹의 이름: 현실적으론 회사의 것에 가까운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 아이돌은 기본적으로 회사의 기획 아래에서 탄생한다. 그리고 (물론 멤버들이 정할 수도 있지만) 대체로 회사가 정한 이름을 사용하게 되고, 회사와의 계약 기간 동안의 활동을 바탕으로 대중에게 어필하고 때로 스타덤에도 오른다. 그러나 모든 계약에는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계약이 끝난 뒤 일부 멤버들이 재계약을 포기하고 소속사를 이적해버리거나, 아예 계약 종료 후 멤버들이 거의 소속사를 떠나버려 그룹의 활동 자체가 정지해버리는 상황으로 귀결되는 경우도 있다. (근래 카라의 경우가 가장 대표적일 것이다.) 이런 상황들이 2세대 아이돌 초창기 그룹들의 계약 관계의 수명이 다해가는 현시점에서는 더 늘어날 확률이 높다. 그러나 그들 역시 그 후 5년~10년쯤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대중의 추억에 자신들이 남아있다면 다시금 ‘뭉칠 기회’를 탐색할 것이다. 그리고 위에서 나열한 사례들과 같은 ‘그룹명 사용권’의 문제에 반드시 직면하게 될 것이다.

정리해보자. ‘아이돌 그룹의 이름은 과연 누구의 것인가?’라는 화두에 대해 대중이나 팬들은 무의식적으로 “당연히 그룹 활동을 했던 당사자들이 그 이름을 쓸 자격을 갖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 어느 팬들이건 “그때, 그 그룹에, 그 사람들이 멤버로 있지 않았다면 과연 그 그룹을 사랑했을까?”라는 사고를 하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실정법과 연예 매니지먼트의 세계에서는 “아이돌 그룹의 이름은 당연히 그것을 기획한 회사의 것이다.”로 그 운동장이 대체로 기울어있다. 이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하느냐는 결국 아이돌들 본인의 몫이다. 만약 자신의 아이돌 시절을 영원히 과거로만 묻어둘 것이 아니라면, 그들은 바로 이 화두에 대해 미리미리 고민해 두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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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환

장르 불문, 어떤 음악도 고정된 선입견 없이 듣고 글로 풀어내고픈 음악 글쟁이. 당연히(?) 아이돌(특히 걸그룹!)의 세계도 진지 탐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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