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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민, 우리가 몰랐던 요정 진화론

솔로 가수 태민은 더 이상 샤이니에 갇힌 어린 요정이 아니다. 그에게는 나이도, 성적 구별도 무의미하다. 태민이 보여주는 독립적인 자아는 ‘무성적’ 콘셉트로 성별 이분법을 뛰어넘는다.

샤이니 팬덤에서 고유명사처럼 통용되는 태민의 별명이 있다면 이는 두말할 것 없이 ‘요정’일 것이다. 이는 데뷔 초, 마른 몸과 작은 얼굴, 동그란 눈매를 지닌 태민이 마치 동화 속 요정처럼 아기자기하고 신비로운 매력을 지닌 데서 비롯됐다. 막내라는 포지션이 주는 사랑스러운 가치를 가장 직접적으로 투영시킬 수 있는 존재가 요정이라는 점도 중요한 포인트였을 것이다.

그러나 솔로 가수 태민은 더 이상 샤이니에 갇힌 어린 요정이 아니다. 이제 막 미니 앨범 한 장과 정규 앨범 한 장을 각각 발표한 그에게서는 성적 구별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기이한 힘이 보인다. 신화적 존재인 요정에게 성별의 구분이 없기도 하듯이. 예쁜 얼굴과 생물학적 남성성의 공존. 양성 혹은 중성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태민은 이조차도 거부하는 듯 보인다. 그는 애초에 성별의 개념 자체를 애매한 것으로 유도하고, 이를 통해 ‘태민’이라는 독립적인 자아를 확립해 가는 중에 있다.

‘아름다움’은 태민의 것이지 여성의 것이 아니다

솔로 앨범 콘셉트 포토나 뮤직비디오에서 발견되는 태민의 특질은 ‘구별’을 어렵게 만든다는 점이다. 한 발짝 더 나아간 태민의 질문은, ‘왜 ‘아름다움’을 생물학적 여성에게 쓰는 수식어처럼 가두려 하는가’이다. 아름다운 존재는 생물학적 혹은 철학적 성을 포괄할 수 있는 무경계한(borderless) 존재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태민이든 누구든 말이다. 태민에게는 ‘나누다(別)’라는 개념이 무의미하다. 그가 보여주는 콘셉트에 대해 감히 ‘무성적’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 것도 그래서다.

먼저 발표했던 첫 번째 미니 앨범 “Ace”(2014)에 실린 ‘Pretty Boy(feat. Kai of EXO)’를 예로 들자. 언뜻 보면 이 노래는, 예쁜 외모라고 해서 내 남성성을 폄하하지 말라는 외침을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이 곡의 가사는 공교롭게도 샤이니 멤버 중 가장 근육질 몸매에 굵은 얼굴선을 보유한 종현이 쓰지 않았던가. 설상가상으로, 우리는 일반적으로 ‘근육질의’, ‘굵은’, ‘거친’ 등의 형용사가 생물학적 남성에게 ‘사회적 남성성’을 평가하는 척도가 된다는 사실까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가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예상과는 사뭇 다른 흐름이 읽힌다. 이 곡은 생물학적으로 성별을 분류하는 기준에 반발하고 있을 뿐 아니라, 사회적 관점에서 나뉜 ‘남성성’이 ‘여성성’을 비하한다면 그것이 얼마나 편협한 일인지 지적한다. 그것도 아주 직설적으로 비웃어가며. ‘예쁜 소년’이란 워딩을 애당초 곡 제목으로 내세웠다는 점이 중요한 것도 그래서다. 태민은 나르시즘적 시각으로 양성성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그 구별 자체를 별것 아닌 대상으로 희화화시킴으로써 무의미하게 만드는 대담함을 보인다. 자신의 아름다운 외모를 찬양하되, 이를 편협한 시각으로 ‘여성성’이라 인식하는 남성들에 대해 정면으로 날리는 반박이다. 당연한 것처럼 사회적으로 고정된 시각아래 통용되고 있는 ‘여성성’보다 자신들이 우월하다 여기는 일부 남성들의 심리. 이 또한 태민에겐 하찮은 공격 대상일 뿐이다. 태민은 “난 네 머릿속 상상뿐일 걸”, “거기 터프가이 / 돌 같이 굳어 버린 어깨 힘 좀 빼”처럼 직접적으로 남성성이라 칭해지는 것들만 예리하게 골라 공격 대상으로 상정한다.

그러나 실컷 공격을 퍼붓고 난 뒤가 더 인상적이다. 태민은 “내가 너보다 멋진 면에는 이러이러한 게 있지”라고 주관적 남성적 상징 따위를 내세우며 더 우수한 성적 개체인 양 굴지 않는다. 거대한 신화적 존재로 자라난 요정은 안다. 굳이 좁아터진 세상에서 이런 식의 나누기가 얼마나 사소하고 부질없는 것인지. (덧붙이자면, 평소 젠더 이슈에 관심을 지닌 것으로 알려진 종현이 실제 가사로 이런 가치를 구체화한 점 또한 상당히 인상적이다.)

마초를 압도해버린 요정, 성별 이분을 비웃다

첫 솔로 앨범 타이틀곡 ‘괴도(Danger)’와 두 번째 앨범 타이틀곡 ‘Press Your Number’ 뮤직비디오에서 태민과 함께 춤을 추는 댄서들은 하나같이 ‘마초’란 단어를 떠올리게 하는 외모를 지녔다. 그러나 정작 이들 사이에 서서 퍼포먼스를 지휘하는 인물은 종잇장처럼 얇고 가볍고, 예쁜 태민이다. 지극히 의도된 대비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사회적으로 ‘남성적’이라고 추앙 받는 특질 위에 더 강한 존재로 군림하는 카리스마는 어디서 나오는가. ‘남성성’에 대비되는 ‘여성성’인가? 아니면 ‘더 강한’ 남성성? 그러니까, 태민은 대체 어떻게 이들을 압도할 만한 존재감을 지닐 수 있나? 정답은 “글쎄, 아무것도.”

‘괴도’, 성별 이분을 훔쳐간 태민
‘괴도’, 성별 이분을 훔쳐간 태민

이것이 요정 이태민이 괴팍한 후크 선장을 이긴 방법이다. “Press It”(2016) 앨범 속 태민은 팔을 하늘거리며 유연한 움직임을 강조한 동작 위주로 춤을 추지만, 뜬금없이 강한 힘이 필요한 동작을 서슴지 않는다. 성적인 구별이 무의미한, 미묘한 심미적 밸런스는 그렇게 유지된다. 여기에 앨범 전체에 걸쳐 동화적이고 몽롱한 분위기로 이어지는 가사, ‘Soldier’와 ‘Sexuality’처럼 일반적으로 남성(군대를 통한 사회화), 여성(남성을 향한 성적 유혹) 이분법처럼 나뉜 관심사를 소재로 차용한다. ‘벌써(Already)’ 같은 트랙에서 태민은 수많은 미디어에서 집착의 주체로 묘사되는 여성의 스탠스를 그 스스로 꾸준히 취하면서도, ‘상남자’라는 타이틀에는 전혀 관심 없어 보인다. 성별 따위에 얽히지 않는 기묘한 피사체를 관찰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런 주장에 아직도 공감할 수 없다면 ‘괴도’와 ‘Press Your Number’ 뮤직비디오를 반드시 챙겨 볼 것을 권한다. ‘괴도’에서는 여성의 것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태민의 것인 가녀린 상반신 누드가 오묘함을 자아내고, ‘Press Your Number’에서는 그가 애타게 찾던 “Girl”이 태민과 일체화되는 괴상한(!) 장면도 볼 수 있다. 두 성별이 합치되는 순간, 뮤직비디오 초반에 여성에게 총을 겨누고 위협적으로 굴던 ‘남성’ 태민이 결국 자기 자신에게 총을 겨누고 있었다는 점을 목도하게 된다.

태민 ‘Press Your Number’, 유약함-강함의 개념을 여성성-남성성으로 상정하지 않는다.
태민 ‘Press Your Number’, 유약함-강함의 개념을 여성성-남성성으로 상정하지 않는다.

이건 꽤 획기적인 시놉시스다. 성애의 대상이나 감금, 피학의 대상으로 여성을 상정하는 대신에 스스로 그 여성이 되어버리는 쪽을 택하는 것. 이렇게 모든 성적 양립을 자신 안에서 무의미하게 만들어 버린 태민은 물리적 퍼포먼스의 흐름을 바꾸는데, 이 순간을 기점으로 태민이 추는 안무의 흐름은 격렬하게 자유로워진다. 이제 알 수 있겠다. 집착하는 남자의 심리를 묘사했지만 결국 집착의 대상은 사랑하는 여자가 아니라 푸른 장미로 둘러싸인 가운데 핀 아름다운 태민 자신인 것이다. 이때 태민은 남성도 여성도 아니다. 자아를 찾은 아리땁고 거친, 무성의 요정이다. ‘누난 너무 예뻐’의 요정은 정말로 진화했다.

Press It
SM 엔터테인먼트
2016년 2월 23일
Ace
SM 엔터테인먼트
2014년 8월 18일
박희아

By 박희아

음악기자. 사랑스런 콘텐츠들을 골라 듣고, 보고, 읽고, 씁니다.
https://instagram.com/36_muse
http://musep.tistory.com

4 replies on “태민, 우리가 몰랐던 요정 진화론”

사회적 관점에서 나뉜 ‘남성성’이 ‘여성성’을 비하한다면 그것이 얼마나 편협한 일인지 지적한다.
??? 이게 대체 무슨 말도안되는 소리죠. Pretty Boy의 가사가 말하는 “예쁜남자에 대한 기존 남자들의 편협한 시각”은 여성성 자체를 비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확히는 서양에서 말하는 Manbox에 해당하지 않는, 정확히는 마쵸들이 전적으로 말해왔던 “남자답지 않은 것에 대한 시각”에 대해서 말하는겁니다. 후반부에 말한 양쪽 성의 벽을 허문 것에 대한 이야기는 통감하지만(흔히 여성성으로 표현되는 섬세함과 남자다움이 어째서 반비례 하냐는 가사의 지적과도 같이) 앞선 논제가 이상하군요.
어째서 논제가 “남성성이 여성성을 비하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되었는지 알 것도 같지만 알고싶지도 않군요.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것은 좋지만 임의의 곡을 끌고와 자기 입맛에 맞게 요리하려는 것 같아 아이돌로지를 좋아하는 한 독자로서 입맛이 많이 쓰네요.

제발 샤이니를 특히 종현이를 도마위에 올리지좀 마세요 여긴 늘 자기들 입맛대로 아이돌을 해석하더라 제발좀 그만두세요. 종현은 그냥 종현이고 태민인 그냥 태민이 입니다 왜 당신들맘대로 여성성이든 남성성이든 껴서 해석한거를 그래도 나름 전문성을 띤 공간에서 편협하게 다루시면 안돼죠. 해석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는 인정한다만 아이돌로지 아이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사이트에서 너무 페미니즘과 연관된 평론가들만 즐비하는것도 문제있다고 보는데요 저번에도 비슷한 문제로 팬들한테 지적받았는데도 그대로네요 사회적이슈와 싸우고 싶다면 본인들이 알아서 싸우세요 자꾸 샤이니 엮지마시고요

요정으로 진화는 무슨 아이돌의 성장이 이상적으로 본다는건 알겠다만 무슨 원래 요정이었고 그 전에는 자아가 없었겠나요? 아이돌 판타지에 그만좀 사로잡혀있으세요 할말은 많지만 이런글조차 샤이니한테 피해갈까봐 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