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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은 이것 : 아이유 – 꽃갈피

‘너의 의미’의 마지막에서 김창완은 “도대체 넌 나에게 누구냐?”고 묻는다. ‘국민 여동생’과 ‘삼촌’의 묘하게 어긋난 족보의 소용돌이를 정면으로 뚫고 지나온 아이유는 대체 지금 무엇이 되려 하고 있는 것일까.

이미지 ⓒ 로엔 엔터테인먼트

나는 지금부터 ‘여동생’이 아니다.

5월에는 인상적인 음반들이 많이 나왔다. 그 중 아이돌로지에서 이미 다각도로 다룬 음반들은 잠시 내려놓고, 아이유의 “꽃갈피” 앨범을 들어보도록 하겠다. (아이유가 아이돌인가 하는 질문은 조금 기다려주기 바란다.)

원곡의 세계와 현재

아이유의 리메이크 앨범에 관해 많은 평자들은 놀라움을 표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주로 원곡들을 현재로 가져오기보다 원곡의 시점으로 돌아간 듯한 접근방식이 가장 큰 놀라움을 자아낸 듯하다. 음반 커버와 뮤직비디오 등의 시각적 요소들이 특히 그런데, 음악적으로도 이 음반은 (굳이 꼬집자면) 원곡이 위치한 시대보다는 각 원곡의 세계를 따라가고 있다. 단적으로 아이유의 보컬은 ‘나의 옛날 이야기’의 “아름답던 그 밤들을” 부분에서 다소 비음을 섞은 허스키 보이스로 음정을 올렸다가, 반복되는 음정을 바이브레이션으로 흩어버리는 식으로, 조덕배의 시그니처를 시뮬레이션하는 듯하다. ‘꽃’에서는 김광석처럼 중고역을 쨍하게 찌르고 들어가며, ‘너의 의미’에서는 소년 같은 김창완의 목소리와 조금은 지나칠 정도로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룬다.

그런 의미에서 원곡을 가장 멀리 가져간 것은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이다. 퓨전재즈 풍으로 만들어진 이 곡에서 아이유는 숨이 넘어갈 듯한 김완선을 시큰둥하게 내려놓은 목소리로 노래한다. 또한 스타일적으로도 아이유의 전작 “Modern Times” (2013)에 근접해 있는 이 곡은, 원곡이 발표된 1991년과의 차이를 가장 쉽게 캐치할 수 있는 트랙이기도 하다. 초반부터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백업보컬은, 기계적으로 처리된 소리임을 굳이 숨기지 않는다. 한 사람의 목소리를 서너 겹으로 겹쳐놓고, 같은 프레이즈를 반복하면서 한 박자 뒤로 밀어낸다든지, 왼쪽과 오른쪽 스피커를 오가며 서로 겹쳐지는 등, 다분히 ‘악기처럼’ 사용되고 있다. 보코더 소리에 가깝게 들릴 정도로 음정을 평탄하게 눌러둔 이 목소리들은 2절 뒤에서 칼 같이 잘려 반복되면서야 (“삐에로, 삐에로, 삐에로, 가, 가, 좋아”) 안심이 될 만큼, 시퀀서 상에서 편집된 보컬로서의 정체성을 어필한다.

깨알처럼 들어간 ‘현재’의 흔적은 이 곡에 한정되지 않는다. ‘김창환 표’ 댄스곡을 느긋하게 만들어둔 ‘꿍따리 샤바라’도 원곡의 보컬과 큰 차이를 보이는 편인데, (물론 아이유가 클론을 모창하는 걸 들어보고 싶은 사람은… 아니다.) 노래와 말과 랩의 경계를 오간다든지, 불과 몇 년 전에 유행하게 된 우쿨렐레를 사용한다는 점이 그렇다. ‘너의 의미’의 해먼드 오르갠 소리 또한, 국내에서 풍금과 교회 오르갠처럼 들릴까 하는 염려를 딛고 이런 톤을 사용하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여름밤의 꿈’의 코드 진행은 포크에 가깝게 편곡됐던 1988년보다 현재의 우리가 윤상에게서 떠올리는 섬세하고 화려한 코드웍을 사용한다. (이 곡은 “Piano Re Programming”과 “Mixed by”로 원작자인 윤상의 이름을 올려두었다.) ‘나의 옛날 이야기’에서 들리는 깊은 공간감의 패드나, ‘사랑이 지나가면’의 오케스트레이션 질감도 다분히 현재의 기술임을 단단히 보여준다.

애매함의 이유

그런데, (‘꽃’과 함께, 차라리 소극장 연극의 음악감독 취향에 가까워 보이는) ‘사랑이 지나가면’은, 결코 오케스트레이션을 폭발시키지 않는다. 원곡이 발표된 1987년과는 압도적인 차이를 보이는 스튜디오 기술을 자랑하는 듯한 유려하고도 힘 있는 오케스트라 사운드를 선보임에도, 3분을 지나 조옮김을 하고 드럼이 빠졌다 다시 들어오면서 절호의 타이밍을 가짐에도 말이다. 그런 절제의 안배 역시 곳곳에서 드러난다.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도 혹여라도 숨차게 들릴까 (기계적인 백업보컬의 모티프를 강조하면서) 1절 중간의 간주를 길게도 삽입했다. 아이유의 보컬은 “삼단고음” 혹은 “나가수” 같이 뻔한 가창력 자랑을 하지 않는다. 김광석을 재현하는 듯이, 바이올리니스트의 왼손 같은 운동감의 바이브레이션을 선보이는 ‘꽃’의 몇몇 소절, ‘사랑이 지나가면’을 제외하면 말이다. 달콤한 서정이 돋보이는 ‘나의 옛날이야기’가 타이틀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원래 댄스곡인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와 ‘꿍따리 샤바라’가 이 “꽃갈피”의 세계에서도 가장 덜 ‘발라드적’으로 위치하고 있는 점도 마찬가지다. 이미 원곡의 판이한 재해석으로 재미를 주면서도, 그 간극의 폭을 생각하면 사실 뻔한 선택이기도 하다. (기획력이나 크레이에티비티, 실력이 모자라서라고 생각하긴 힘들다.) 차라리, 듣는 이에게 충격을 주지 않는, 팝의 미덕 혹은 한계를 보여주는 절제라 함이 옳겠다.

강명석의 지적(링크)처럼 이 음반은 “스물한 살 여가수가 30년 전부터 원곡을 들어온 것 같은” “기묘한 노래들”이다. 선곡도 마찬가지다. 김광석이나 조덕배를 리메이크하는데, 더 알려진 곡들을 제하고 하필 ‘꽃’과 ‘나의 옛날이야기’를 선택한다는 식의 미묘함 말이다. (‘여름밤의 꿈’은 김현식을 리메이크하기보다 윤상의 초기곡을 찾아간 듯한 인상이다.) ‘꿍따리 샤바라’를 제하면 1991년 이전의 곡들로 구성된 이 플레이리스트는, 윤상이 아이유를 기특해하며 선물했다는 MP3 플레이어 속 그가 듣고 자랐다는 곡목을 상상하게 한다. 1991년 이전의 가요를 살아내지 않고는 나오기 힘든 곡목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앨범은 40대를 향한다. (그리고, 30대 중 선배 세대를 따라 음악을 들은 ‘음악덕후’들을 포함한다.) 그리고 그것이, 다시 강명석의 표현을 빌어, “조카나 딸 같은 여가수가 옛날 곡들을 대견하게 해석하는 결과물”이 되지 않은 것은, 이 앨범의 선명하고도 놀라운 성취다.

아이유는 누구냐

‘너의 의미’의 마지막에서 김창완은 “도대체 넌 나에게 누구냐?”고, 투박한 듯 다정한 어미로 묻는다. ‘국민 여동생’과 ‘삼촌’의 묘하게 어긋난 족보의 소용돌이를 정면으로 뚫고 지나온 아이유는 대체 지금 무엇이 되려 하고 있는 것일까. 40대에게 귀여운 조카가 되고자 했다면 각 아티스트의 조금 더 유명한 곡을 선택하면 될 일이었다. 그리곤 완연한 현재적 음악으로, 혹은 시대상이 거의 사라진 담백한 어쿠스틱 연주로 일관하면 됐을 것이다. ‘어른들’은 “하긴 요즘 애들이 조덕배의 ‘나의 옛날이야기’를 알리가 없지. ‘꿈에’를 아는 게 어디야?”라며 충분히, 오히려 더욱 사랑스러워했을 것이다. 실제로 데뷔 초 아이유가 인기를 끈 라이브 영상들이 그랬고, 많은 아이돌들은 ‘어른들은 이해할 수 없는 요즘 아가씨’의 모습으로 매력적인 젊은 여성을 어필했다.

그러나 “꽃갈피”는 그렇지 않다. “삼단고음”을 내뿜는 기특한 ‘조카’로서 수많은 ‘삼촌’들을 녹다운시키다가 유난한 스캔들을 겪은 뒤 ‘분홍신'(2013)으로 도발과 ‘성숙’을 묘하게 선보인 아이유다. 3-40대와 문화적인 공감을 넘어 동조하고 있는 “꽃갈피”는, ‘아저씨에게 어필하는 (기특한) 소녀’나 ‘아저씨를 이해하는 (기특한) 소녀’ 같은 이미지를 넘어서 ‘아저씨를 뼛속까지’ ‘알고’ 있는, 혹은 ‘아저씨와 뼛속까지 똑같은’ 음반이다. 아이유가 “나의” ‘옛날이야기’를 부르는 기묘한 풍경은 그렇게 설명된다. (처참한 현실의 20대 앞에서) “황금기를 누리지 못하는” 3-40대가 아이유에게 힐링을 받았다는 글도 나왔다. 혹시 아이유가 보컬 올림픽 금메달이라도 따오는 날에는 차라리 제2의 김연아가 될 것 같은 풍경이다.

아이유의 노래 제목으로도 존재하는 ‘삼촌’은 한동안 우리에게 큰 화두였다. 이제는 그 경계가 많이 불분명해지면서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하지만, 여전히 어떤 ‘삼촌’들은 ‘여동생’을 은밀한 이성애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가족관계의 호칭을 그 위장막으로 사용한다. 그 비중은 여기서 중요하지 않다. ‘국민 여동생’이나 ‘조카’는 그런 일부 ‘삼촌’들을 안고 갈 수밖에 없는 존재다. (이와 관련한 이야기는 나의 웨이브 연재 [미묘의 아이돌 LAB] 삼촌 혁명을 참조하기 바란다.) 그러나 “꽃갈피”는 이 관계를 버린다. 이 음반에 담긴 아이유는 ‘삼촌’들의 동료거나, 혹은 나이만 어려서 ‘내가 못했던 것들’을 해낼 수 있는 ‘나’의 복제판, 즉 딸이다. 지금까지 아이유를 바라보던 성인 이성애자 남성의 시선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 음반의 커버에서 누군가는 한없이 청순한 소녀를, 누군가는 ‘순수하던 과거’를, 누군가는 8-90년대 일본 그라비아 화보집 표지를 읽어낸다. 아이유가 성인 남성의 비성애적인 동료이자 존경받는 음악가가 될지, 성애적 시선이 더욱 금기시되는 (그러나 존재하는) ‘국민의 딸’이 될지는 아직 모른다. 그것은 다음 정규작에서부터 갈피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기점은 선언되었다.

꽃갈피
로엔 엔터테인먼트
2014년 5월 16일

1. 나의 옛날 이야기 / 원곡 조덕배, 1985 / 편곡 김제휘
2. 꽃 / 원곡 김광석, 1991 / 작곡 문대현 / 편곡 G.고릴라
3.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 / 원곡 김완선, 1991, 작곡 손무현 / 편곡 이종훈
4. 사랑이 지나가면 / 원곡 이문세, 1987, 작곡 이영훈 / 편곡 G.고릴라
5. 너의 의미 / 원곡 산울림, 1984, 작곡 김창완 / 편곡 고태영
6. 여름밤의 꿈 / 원곡 김현식, 1988, 작곡 윤상 / 편곡 김선희*
7. 꿍따리 샤바라 / 원곡 클론, 1996, 작곡 김창환 / 편곡 이종민

*음반 부클릿에는 편곡자 표기 없이 “Piano 김선희, Piano Re Programming 윤상”으로, 음악저작권협회에는 편곡 김선희로 기재돼 있다.

아이유의 “꽃갈피”에 관한 아이돌로지 필진들의 단평은 1st Listen : 2014.05.01~05.20에서 확인할 수 있다.

미묘

By 미묘

가식과 내숭의 외길 인생. 음악 만들고 음악 글 씁니다.
f(x)는 시대정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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