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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민과 ‘Nice Body’의 섬뜩한 나선

용감한 형제의 미드템포 여자 곡들이 모두 이 한 곡을 위한 프로토타입이었다 해도 좋겠다. 그러나 너무나 매력적인 이 곡은 매우 큰 불편함을 남긴다.

용감한 형제의 느긋한 미드템포 여자 곡이 다 엇비슷하다고 한다면, 지금까지의 모든 것이 이 한 곡을 위한 프로토타입들이었다고 해도 좋을 법하다. 효민의 음색은 어느 때보다도 이 곡에 매끈하게 잘 묻어난다. 적당히 싼 느낌의 오르갠은 일렉트릭 기타와 함께, 유쾌하게 책상 위를 달리는 손가락처럼 흐른다. 간편한 악기 구성은 비트의 페이지를 차곡차곡 넘겨가면서 거의 전적으로 보컬 멜로디에 의해 흐름을 이뤄낸다. 적당히 블루지한 버스(verse)는 아슬아슬할 정도로 좋은 수위의 뽕끼를 담아 매력을 흘리고, 후렴은 매우 단순하면서도 담백해 비트에 맞춰 인상을 남긴 뒤 딱 좋은 시점에 변화를 가져온다. 효민의 보컬은 버스에서 약간의 교태를 섞어 달콤하게 감기다가, 후렴에선 힘을 빼고 음색 자체가 갖는 매력을 공중에 띄워놓는다. 그리고 비디오 속 효민은, 참 예쁘다.

어느 것 하나 거슬릴 것 없이 매끈한 이 곡은 그러나, 매우 큰 불편함을 남긴다. 비디오의 인트로에 등장하는 여성은 바비 인형의 아름다움을 꿈꾸고, 이를 위해 다이어트도 시도한다. 효민이 직접 분장했다는 이 여성(이하 ‘효민A’라고 하자.)이 바비 인형을 바라보며 도넛을 먹는 장면은, 모순된 욕망과 스트레스성 폭식을 내비친다. 그녀가 엉덩이를 손으로 치며 춤출 때, 카메라는 명백하게 그녀의 상반된 욕망을 조롱한다.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지는 곡의 내용은 “Nice body”를 가진 ‘효민B’의 기쁨이다.

이 곡과 비디오의 주제를 그나마 가장 긍정적으로 해석하기 위한 색안경을 써보자. 첫 버스의 가사에는 다소 맥락 없이 “꿈속의 왕자님은 분명히 나타날 거예요”란 대목이 삽입되어, 이 두 시퀀스를 암시적으로 연결한다. 효민B가 노래하는 내용은 효민A의 꿈이란 해석이다. 후렴의 멜로디도 마침 ‘꿈에 불과한 세계’를 노래하듯 다소 우수가 깃들어 있다. 어쩌면 제작진은 이런 내러티브가, ‘늘 더 아름다워지고 싶어하는 여성층’에게 공감을 일으킬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효민 자신이 효민A로 분장한 것에서도 그런 의도가 읽힌다.

그러나 용감한 형제 특유의 매력인 통속적 가사는 여기서 지뢰밭으로 변한다. “여자라면 누구나” “분명히” 아름다워지고 싶어 하고 사랑받길 원한다고, “남자라면 누구나” “하나같이” “이런 여잘” 원한다고 단정 지음으로써 젠더 스테레오타입을 확정한다. 그리고 “이런 여자”가 되어서야 “이제 나를 무시 못 해요”, “당당해졌어 이젠”이라며, 스테레오타입에서 벗어나는 것, 즉 효민A의 존재를 죄악시한다. “먹고 싶은 것도 참고”, “아픈 것도 모두 참고”, “나 정말 힘들었어요 / 그대 땜에 얼마나 노력한 지 몰라요”는 여성의 미가 남성을 위한 것이며, 여성이 남성의 선택을 받기 위해 고통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한다. 34-24-36의 쓰리사이즈를 새겨넣은 옷을 입고 바비 인형을 보여주며 “남자라면 한 번쯤 야한 생각을 해요 / 그게 나였으면 좋겠어”라 하여 여성의 성적 대상화와 성상품화를 노골적으로 내면화하기도 한다. 따로따로 떼어놓는다면 혹시 모르겠다. 그러나 이 가사와 뮤직비디오는 마치 여성학 개론 교과서를 펼쳐놓고 챕터별로 하나하나 비웃는 것 같은 조합이 된다. (이쯤 되면 “마치 운동하는 서양 누나들”이란 로꼬의 랩은 사실 애교다.) 효민B의 기쁨은 ‘내가 효민A가 아닌 것’이다.

분명 우리는 신자유주의 사회 속에 살고 있고, 여성의 성 상품화와 폭력적인 젠더 의식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또한 (전형적) 미를 뽐내는 형태의 팝도 존재한다. 그런 뻔뻔한 도발은 어쩌면 팝의 한 얼굴이다. 기본적으로 인간을 상품화하는 아이돌 세계에서 그 정도에 놀라기도 힘들다. 그러나 이 곡과 뮤직비디오는 젠더적 폭력과 남성의 욕망을 뻔뻔하게 수용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런 불편한 이슈들을 외면하기보다 정면으로 가져와 겹겹이 불편하게 만들면서, 다시 한 번 선언한다. ‘나는 그런 성 정치를 지지한다’고, 그리고 “여자라면 누구나” 그런 성 정치를 내면화해 마땅하다고.

효민(과 티아라)의 소속사 코어 콘텐츠 미디어는 확실히 보통 기획사가 아니다. 그들의 가장 큰 무기는 아마도 ‘몰염치’와 ‘근본없음’일 것이며, 이를 그들만큼 강하게 밀어붙일 수 있는 기획사는 드물다. 이 두 단어의 어감이 악랄하긴 하나, 적어도 팝에 있어 그것은 나쁜 것만은 아니다. 앞뒤 가리지 않는 근본없음은 어쩌면 오늘의 케이팝을 일군 공신의 대열에 들어가고, “X까지 마라”며 고개를 돌리는 몰염치는 팝의 가장 혁신적이고 역동적인 순간들을 만들어낸 미덕의 하나다. 가면놀이가 아이돌을 즐기는 테이블 매너라고는 하나,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순백의 연예계에 가끔은 공공연하게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올릴 줄 아는 반항아도 있어야 물이 고이지 않는다. 그렇게 충격을 던지고 맨바닥을 드러내는 천박함이야말로 팝이다. 그런 면에서 이 곡과 뮤직비디오는 매우 인상적이다. 그야말로 몰염치와 근본없음이 함께 나선을 그리며 팝 속으로 뛰어드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악녀’가 되려는 듯했던 티아라 N4의 ‘전원일기’는, 이 곡에 대면 장난이다.

효민이 악녀 아이돌이 되겠다면, 그녀가 받아야 할 상처에 마음은 아프지만 한편으로는 기대되는 일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티아라와 효민이 이대로 묻히기 아깝고, 더구나, 혹은 하필, 그 소속사가 코어 콘텐츠 미디어이기에 상상도 못 한 콘셉트를 보게 되길 기대하기도 한다. 심지어 그것이 용감한 형제와의 파트너십으로 이 정도의 퀄리티를 내준다면 더더욱 흥분되는 일이다. 하지만 이 곡이 보여주고 있는 모든 의견은 그저 폭력이다. (효민A를 부정하는 주체가 효민B라는 것까지는 가지 않아도 충분하다.) 약자를 향해 들어 올리는 가운뎃손가락은 반항도, 쿨도 아니다. 사람에 따라 선 긋기 나름인지 모르겠으나, 내가 일베를 긍정할 수 없는 것은 그들의 표현수위가 높아서가 아니다.

*티아라 N4의 공격성에 관해서는 나의 블로그에서 다룬 적 있다. : http://verymimyo.egloos.com/5797124

미묘

By 미묘

가식과 내숭의 외길 인생. 음악 만들고 음악 글 씁니다.
f(x)는 시대정신입니다.

3 replies on “효민과 ‘Nice Body’의 섬뜩한 나선”

ㅋㅋㅋㅋㅋㅋㅋㅋ 똥 같은 소리하고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