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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동 덕후들을 위한 해동 안내서

젝스키스까지 돌아온 지금, 순정과 지조를 지켜온 덕후들을 위해 21세기 뉴밀레니엄 시대의 덕질을 정리해보았다. 오빠들 데뷔 이후에 태어난 친구들에게 ‘냉동인간’으로 놀림 받지 않게 충분히 숙지하자.

결국, 젝스키스까지 돌아왔다. 재작년 god 컴백과 토토가 열풍 때부터 심상치 않더니, 이제는 젝스키스가 재결합하고, H.O.T. 컴백설도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물론 그동안 오빠가 자기보다 어려지도록(!) ‘본진’을 옮겨가며 덕질을 이어온 덕후들도 있겠지만, 오빠에의 순정과 지조를 지켜온 덕후들도 심심치 않게 있을 터. 21세기 뉴밀레니엄 시대의 덕질이란 과연 어떤 것인지 정리해보았다. 오빠들 데뷔 이후에 태어난 친구들에게 ‘냉동인간’으로 놀림 받지 않게 충분히 숙지하기를 바란다.

1. 엽서와 사서함이 사라졌다.

이 얼마나 절망적인가. 스케줄을 알려주던 전화 사서함과 팬레터를 적어 보내던 엽서가 사라졌다니. 아이돌의 스케줄은 트위터, 페이스북 등 각 소속사 공식 SNS나 공식 팬카페에서 공지한다. 최근에는 아이돌 본인들도 SNS 계정에 직접 활동 홍보를 하는 경우가 많고, 특히 1인 기획사를 운영하는 1세대 아이돌이라면 더더욱 그런 경우가 많다. SNS 서비스별로 덕질용 계정을 하나 더 마련해두는 것이 21세기 뉴밀레니엄 시대의 덕질의 기초이다. 운이 좋다면 오빠가 직접 내 댓글에 답변해줄 수도 있으니, 이 얼마나 좋은 시대인가! 이제는 오빠 집 앞에서 밤을 새우지 않아도 오빠와 인사하고 대화할 수 있다!

티켓팅
2. 줄 서지 않아도 된다.

그 무엇을 결제하든, 팬클럽 회장 언니 계좌로 송금하기 위해 은행 앞에 밤새 줄 설 필요가 없다. 콘서트 티켓은 예매 사이트를 통해 예매할 수 있으며, 공식 팬클럽 가입 역시 같은 곳에서 이루어진다. 공개 방송도 마찬가지. 공식 홈페이지나 공식 팬카페에서 양식에 맞추어 신청을 하면, 공지된 시간에만 맞춰 번호 순으로 입장하면 된다. 더울 때 더운 데 서 있고 추울 때 추운 데서 떨던 시대는, 아니, 솔직히 아주 끝난 건 아닌데, 어쨌든 예전보단 나아졌다. 물론 편해진 몸에 반비례해 ‘티켓팅’의 심적 부담감이 늘어난 것도 사실. 티켓팅 시기가 다가오면 주변의 어린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해 보자. 엑소, 인피니트, 방탄소년단 등 티켓팅에 능한 팬들이라면 아마 기꺼이 도와줄 것이다.

임원 언니
3. 임원 언니가 아니다.

공개 방송 등에서 팬들을 인솔하는 것은 이제 카리스마 넘치는 임원 언니가 아니라, 각 소속사에서 고용한 팬매니저다. 물론 팬클럽 임원 출신의 팬매니저들도 있다고는 하지만, 대부분은 그다지 많지 않은 나이의 계약직, 혹은 회사 평직원들이다. 오빠를 보기 위해 임원 언니에게 잘 보일 필요가 없어진 대신, 회사에 고용된 정식 직원에게 팬레터나 선물을 전달할 수 있다. 오프라인에서 만나면 ‘언니!’ 말고 ‘팬매님!’이라고 불러보자.

4. 색깔은 우리 것이 아니다.

잠실을 수놓았던 우리의 풍선 색깔들, 다들 기억할 것이다. 풍선은 물론이고, 그 색상 자체가 우리의 상징이고 정체성인 시절이었다. 그러나 연속적으로 존재하는 가시광선의 스펙트럼과 달리, 인간이 육안으로 식별 가능한 색상의 가짓수는 무척 제한적이고, 과거와 달리 대규모 팬클럽을 거느린 아이돌은 많아졌다. 기존 팬클럽의 상징성을 훼손하지 않는 일말의 배려와 자체적인 차별화를 위해 기특한 후배들은 그냥 ‘분홍색’이 아닌 ‘파스텔 로즈’, 그냥 ‘보라색’이 아닌 ‘펄 라이트 페리윙클’ 같은 색들을 찾아내 지정하고 있다. 솔직히 눈 가리고 아웅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 했으면 인정해 주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공개 방송에서 비슷한 색깔의 응원 도구를 든 친구들을 발견하면 시비 걸지 말고 ‘오늘 우리 팬들 많아 보이겠네’하고 뿌듯하게 지켜보며 넘어가 주는 것도 새로운 덕질의 즐거움일 것이다.

대포
5. ‘아직도 대포가 있어?’

무한도전의 젝스키스 공연 직캠이 올라온 어떤 커뮤니티에서, 누군가 댓글로 ‘아직 젝키 대포가 있어?’라고 물었다. DSLR 카메라의 망원 렌즈를 뜻하는 ‘대포’가 아이돌 덕질의 필수 요소가 된 환경에서 자란 어린 친구만이 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 아이돌 덕후들이 DSLR로 직찍을 찍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후반부터였고, 그 전에는 문방구에서 프로필 인화 사진 따위를 장당 몇 백 원 정도에 사서 모을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사서 모을 필요도 없이, 그냥 집에서 몇몇 SNS 계정만 구독해 놓아도 전문가 못지않은 퀄리티의 사진, 영상 자료들을 받아볼 수 있다. 손가락만 조금 움직이면 공짜로 사진을 볼 수 있는 세상이라니, 이것이 진보가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6. 엔티카가 사라졌다.

엔티카는 수많은 덕후들의 흑역사를 끌어안고 장렬히 산화했다. 대체재로 팬카페나 디씨인사이드 갤러리 등을 떠올리는 덕후들도 많겠지만, 얼마 전까지는 사실 팬들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팬 커뮤니티 사이트들이 꽤 번성했었다. 자료를 아카이빙하고 팬덤 내 의견 교환도 하는, 명실공히 팬덤 커뮤니티의 허브 역할을 하던 사이트들었는데, 최근 SNS의 발달로 인해 그 또한 점점 유명무실해지고 있다. 이제 막 해동돼서 허브 사이트도 없을 냉동 덕후들은 이참에 새로운 아지트를 만들어도 좋겠지만, 사실 그냥 SNS만 꼬박꼬박 열심히 해도 그다지 부족함은 없을 것이다. 개인 팬사이트나 블로거들을 팔로우 하다 보면 그다지 심심하지만은 않은 덕질을 할 수 있다.

응답하라 1997
7. 음반 판매량은 ‘초동’이다.

예전에는 안 쓰던 새로운 개념이 대두되었으니 바로 ‘초동 판매량’이다. 그냥 ‘판매량 백만 장 돌파!’라면 ‘와아’하고 말았던 예전과 달리, 이제는 발매 후 일주일간의 음반 판매량이 아이돌 팬덤 규모와 구매력의 기준이 되고 있다. 충성도 높은 팬들이 대부분 초동 판매 기간에 앨범을 구매하기 때문에 이 시기가 바로 팬들의 ‘화력’을 보여줄 수 있는 시기다. 그러므로 음반 매장 앞에서 기웃거리지 말고, 까먹기 전에 온라인 음반 판매 사이트에서 예약 판매 기간에 음반을 결제해 두자. 참고로 예약 판매는 티켓팅과 달리 선착순이 아니니, 예약 판매 개시일부터 초동 판매 집계 마감일 전까지 열흘 좀 넘는 기간 내에 언제든 결제하면 된다. 조급하게 서두르다가 신나라 레코드 서버를 마비시킬 필요는 없다.

By 조은재

우리 존재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