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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콘 – Airplane : 공항이 주는 꿈

공항이 주는 달뜬 꿈은 “그녀를 내려줘 / 아님 나도 태워줘”라고 떼를 쓰고 싶어지게 만든다. 그러나 인천공항을 담은 영상이 종종 푸른 빛을 띠듯, 공항은 냉정한 곳이기도 하다.

공항에는 사람을 꿈꾸게 하는 재주가 있다. 현재의 삶이 너무나 만족스럽지만 않다면, 혹은 생업이 공항에 있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우리는 현대인이고, 세상 곳곳의 아름다운 풍경과 우아한 삶을 손바닥에 놓고 구경한다. 하지만 현실의 삶은 그저 가만히 살아있기만 해도 방바닥을 기어 다니며 머리카락을 치워야 한다. 현대를 구분하는 기점으로서 현대성을 온몸으로 뿜어내며 비행기들을 날려대는 공항, 그것이 우리를 꿈꾸게 한다면 ‘우린 분명 현대인인데…’라는 위화감 때문인지도 모른다. (덧붙이자면 지방 국도 같은 자유로를 지나 마음껏 달리는 인천공항 고속도로는 내가 제법 좋아하는 드라이브 코스이기도 하다.)

나는 유난히 장거리 연애가 많았다. 무슨 저주가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연애를 했다 하면 반드시 장거리 연애가 되곤 했다. 유학생 커뮤니티에 “저와 연애하시면 예정보다 일찍 유학을 마치고 떠나실 수 있습니다”라고 광고를 내겠다는 농담을 친구와 주고받기도 했다. 지금은 그때의 그 친구와 사귀고 있고, 또 얼마 뒤에는 장거리 연애가 될 운명에 처했다. 공항 마중을 어떻게 할지는 아직 차마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내 경우에는 연애를 할 때마다 “공항 나오지 마”와 “공항 나갈게”의 티격태격을 몇 번이고 거듭해야 했다. 번거롭게 하기 미안해서, 공항에서 울기 싫어서, 또는, 나를 가족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그런 경우도 있었을지 모르겠다. (딱히 뒤끝이 있는 것은 아니다. 서운할 순 있어도 다 지나간 일들이다. 내 연인이 읽을까 봐 하는 소리는 아니지만, 뒤끝 부리는 것 아니다.)

하지만 미안한 마음 때문이라면 대체로는, 남겨진 사람의 쓸쓸함에 대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떠나는 사람은 사실 분주하다. 검색대의 괜한 긴장, 면세점, 좌석 찾기나 짐 싣기, 하다못해 기내 영화로 뭐가 있는지, 기내식은 한식으로 할지 양식으로 할지도 전부 신경 쓸 일들이다. 반면 남겨진 사람은 게이트에서 등을 돌리는 순간, 떠난 사람의 빈자리라는 오직 한 가지에 덥석 안기고 만다.

아이콘의 ‘Airplane’은 어수선하다. “세상 잃어버린 듯한 / 슬픔이 보였어”와 “가벼운 미소만을 남기고 / 웃는 얼굴로 넌 떠났지”가 충돌하고, “이대로 가면 우린 다신 못 봐”와 “우리 기약”도 조금 삐걱거린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분다고 위험하다며 비행기를 멈추라는 가사는, 시사적인 함의가 있는 게 아니라면 조금 과한 것도 같다. 구체적인 장면이 좀처럼 그려지지 않는 이 가사는 쓸쓸함으로 마구 몸부림친다. 그것을 과장됐다고만 말하기 어려운 것은, 남겨진 사람에게 남겨진 것이 오로지 그것뿐임을 알기 때문이다.

공항이 주는 달뜬 꿈은 “그녀를 내려줘 / 아님 나도 태워줘”라고 떼를 쓰고 싶어지게 만든다. 그러나 인천공항을 담은 영상이 종종 푸른 빛을 띠듯, 공항은 냉정한 곳이기도 하다. “하루만, 한 시간만, 딱 일 분만”이라고 해봐야, 항편 변경 수수료는 차치하고 비행이 없으면 어쩔 도리가 없다. “3분 뒤 성수행 다음 열차 타고 가면 안 돼?” 같은 응석을 받아주는 곳이 아니다. (물론 “쉬고 가면 안 돼?”도 안 통한다.) 이미 최소 며칠 전, 길게는 몇 달 전에 예약하고 컨펌한 비행기다. 진인사대천명이라고, 기상사정의 핑계를 대기 전에 미리 며칠 전에 붙잡았으면 좋았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공항은 현대 문명의 이정표답게, 시간이 정해진 것을 봐주는 일이 없다. 이륙을 시작하면 통화도 할 수 없는 무지막지한 단절을 가차 없이 수행해버리는 곳이다.

“이따가 영화나 보러 가자”, 이 곡에서 핵심적인 행은 아니다. 쓰는 이가 이 아이러니를 중히 여겼더라면 몇 줄 더 넣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난 이 한 줄에 잠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공항이 사람을 꿈꾸게 하든, 좌절하게 하든, 혹은 꿈꾸게 하기에 좌절하게 하든, 남겨진 이가 몸부림치며 바라는 것은 시시한 일상이다. 다만 “그녀”가 있는 것이다. 어지간한 꿈으로는 어지간히 비루한 삶을 연인과 함께하는 것보다 꿈결 같을 수 없다.

비행기 시간처럼 어쩔 수 없는 사정들로 사람들은 장거리 연애를 시작한다. 비아이는 “잘 지낼 수 있겠냐 너라면”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그들이 모두 잘 지냈으면 좋겠다. 정 어렵다면, 나처럼 알 수 없는 대자연의 힘으로 인한 장거리 연애의 저주만은 아니길 빌어 본다.

아이콘의 ‘Airplane’이 수록된 “Welcome Back” 하프앨범은 10월 초순 발매된 신작들과 함께 1st Listen 코너에서 리뷰될 예정이다.

정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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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담요

귤 까먹고, 등 지지고, 아이돌을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