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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연 “Purpose” (2020)

‘Fine’에서 ‘Make Me Love You’로 옮겨간 “My Voice”가 태연의 ‘목소리’를 공고히 뻗치는 과정이었다면, ‘불티’에서 ‘내게 들려주고 싶은 말’로 돌아온 “Purpose”는 외부를 향하던 목소리를 다시 자기 자신에게로 수렴시키는 과정처럼 보인다.

태연의 Me, Myself and I: “My Voice”, “Purpose” 그리고 “I”

1집 “My Voice”와 2집 “Purpose”의 차이를 곱씹어본다. ‘Fine’에서 ‘Make Me Love You’로 옮겨간 “My Voice”가 태연의 ‘목소리’를 공고히 뻗치는 과정이었다면, ‘불티’에서 ‘내게 들려주고 싶은 말’로 돌아온 “Purpose”는 외부를 향하던 목소리를 다시 자기 자신에게로 수렴시키는 과정처럼 보인다. 그것이 아마도 태연의 ‘목적’이었나 보다.

새로 짜여진 트랙 배치를 따라 앨범을 들으며 그 ‘목적’이 비로소 완성되었음을 실감한다. 먼저 “Purpose”의 새로운 프리퀄에 주목해본다. 비장한 독백을 아득히 쏘아올리는 ‘Here I Am’과 ‘불티’ 앞에 놓인 새로운 도입부에는 일종의 전운(戰雲)이 감돈다. 자존의 어구를 꾹꾹 눌러담는 수필 ‘내게 들려주고 싶은 말’과 냉혈한 느와르 ‘월식’은 앞으로 이어질 모노드라마의 초석을 단단히 다지고 있다. “길었던 어둠을 견딘 나를 봐 또 다시 밤이 와도 숨지 않아”(‘내게 들려주고 싶은 말’), “그림자 속에 핀 My tragedy 이제 안녕”(‘월식’), “Here I Am 널 떠나온 그 너머에”(‘Here I Am’), “이제 타이밍이야 눈 뜰 새벽이야 불티를 깨워”(‘불티’)로 이어지는 촘촘한 가사 전개는 이를 더욱 탄탄히 뒷받침한다. 더불어 이 프리퀄은 연정을 흘려보내는 에필로그 ‘Blue’와 ‘사계’의 감성과도 맞물리며 “Purpose”의 초석을 다지는 것을 넘어 앨범의 프레임을 완성하기에 이른다.

후반부에 새로이 추가된 ‘너를 그리는 시간’은 ‘Wine’, ‘Do You Love Me?’, ‘City Love’, ‘Gravity’로 쌓아올린 낭만을 한 층 더 끌어올리며 앨범의 하이라이트를 수놓는다. 극적인 구성과 태연의 절창은 솔로 데뷔앨범의 ‘U R’을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U R’의 화자가 터질 듯한 설렘을 상대방에게 올곧게 전달하고 있다면 ‘너를 그리는 시간’의 화자는 상대방을 그리는 나 자신에 보다 집중하며 “내가 느낀 모든 떨림” 하나 하나를 설렘에 겨워 펼쳐보이고 있는 듯하다. 비슷한 내용과 구성을 가지더라도 ‘너’에게서 ‘나’로 수신자를 달리 했을 때의 감흥은 완전히 다르다. ‘너를 그리는 시간’은 ‘U R’을 착실하게 변주하며 “Purpose”의 주제의식을 한층 더 강화한다.

‘U R’을 떠올리고 보니 “My Voice”에서 “Purpose”로 변모하는 과정이 곧 솔로 데뷔곡 ‘I’의 재현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I’의 뮤직비디오 속에서 초원 위를 자유로이 누비는 태연이 “Why”와 “My Voice”의 태연과 같다면, 가게를 박차고 떠나 초원 위의 태연을 찾아가는 태연은 “Something New”와 “Purpose”의 태연에 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이번 리패키지 앨범에 이르러 태연의 두 ‘I’가 마침내 완전히 바로서게 된 셈이다. ‘I’로 쏘아올린 태연의 서사가 “Purpose”에 이르러 디스코그래피로서 완성되었다는 데에 더 없는 뭉클함을 느낀다. 솔로 아티스트로서 한 단락을 공고히 매듭지었기에, 태연이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더라도 그 가운데 심지는 결코 흔들리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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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큅

머글과 덕후 사이(라고 주장하는) 케이팝 디나이얼 러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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