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본색 에이핑크 : 에이핑크의 오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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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에이큐브 엔터테인먼트

끝났다는 선언이 오래전부터 이어지면서도 좀처럼 끝나지 않는 걸그룹의 시대. 그 긴 ‘끝’에서 돌아보는 에이핑크는 각별하다. 그들이 사랑받는 이유와 더 사랑받지 못하는 이유는 사실 한 가지이기 때문이다. 오늘 3월 31일 컴백을 예고한 에이핑크에 우리가 주목하는 이유다. -에디터
 

2007년 이래 태평성대를 누렸던 수많은 걸그룹들이 이제 그 시대를 마감하고 낙엽처럼 떨어지고 있는 시점에서, 걸그룹이 지향해야 할 바는 무엇인가? 이러한 시기에도 그나마 꿋꿋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걸그룹들이 그 해답이 될 것이다. 그중 에이핑크를 살펴보아야 할 이유는 매우 명백하다.

걸그룹 붐 동안 씬에는 수많은 걸그룹들이 쏟아져 나왔다. 신생 걸그룹은 누구랄 것도 없이 모두 새로운 콘셉트와 포지셔닝을 추구했다. 소녀시대와 원더걸스, 그리고 카라 등의 빅네임들이 장악한 시장에서 차별성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2011년 데뷔한 에이핑크는 조금 남다른 구석이 있었다. 시대착오적으로까지 보일 흰색 드레스를 입은 소녀들로 등장한 에이핑크는, 사실 새롭다기보다는 과거의 걸그룹들을 그냥 옮겨온 것 같을 정도였다. 아마도 ‘오리지널리티 보다는 익숙함’이 이들의 모토일지 모르겠다.

익숙한 장르적 전형의 힘

그 ‘익숙함’이란 주로 아이돌 걸그룹이라는 장르적 전형의 결과일 것이다. 2010년 무렵은 매우 특수한 시점이었다. 걸그룹은 무수히 많았지만 전형적인 아이돌 걸그룹의 위치가 비어 있었던 것이다. 에이핑크는 그 자리를 잘 채워넣은 것이다. ‘새로움’에는 필연적으로 적응을 위한 시간이 필요한 데 비해, ‘익숙함’은 손쉽게 다가갈 수 있으며 비교적 호의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리고 그 ‘익숙함’이 장르적 전형에서 온 것이라면, 그 장르를 꾸준히 소비하는 이들에게는 판단의 여지도 없이 받아들여질 것이다.

아이돌 걸그룹을 꾸준히 소비하는 이들, 이른바 ‘걸그룹 덕후’들이 바로 그들이다. 걸그룹 덕후들은 아이돌 걸그룹의 성패를 결정짓는 중요한 변수이다. 대중적인 인기를 얻는 걸그룹은 그에 상응하는 코어 팬들이 기저에 이미 자리잡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이돌로지의 필진 중 한 명인 강동은 이를 “지남철 이론”이라고 불렀다. 자석이 쇳가루를 끌어당겨 붙이듯이 코어 팬층이 존재하고, 그 팬들이 충분히 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어야 대중적인 인기도 이끌 수 있다는 것이다.

에이핑크가 데뷔한 당시 팬덤 상황을 간략하게 회고해 보자면, 빅네임 걸그룹 덕후들이 본진에서 이탈해 에이핑크라는 신대륙을 향하거나, 걸그룹 직찍을 찍는 무소속 덕후들이 에이핑크에 관심을 보여 엄청난 양의 직찍을 뽑아내는 팬사이트를 만들거나 하는 일들이 벌어졌다. 나는 그들의 데뷔곡 ‘몰라요’ MV를 보고 걸그룹계의 폭풍을 예감하고 전율했다(하지만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차트의 메이저라고 보기는 쉽지 않다).

통조림 속의 100%

에이핑크의 데뷔곡 ‘몰라요’는 개인적으로 걸그룹 데뷔곡의 마스터피스로 꼽는 곡인데, 짝사랑하는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상대방을 기다리다가 이젠 스스로 고백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것은 노래를 듣는 청자에 대한 간접적인 사랑 고백이며, 걸그룹의 고정 수요층은 ‘100%의 소녀’가 이어폰을 통해 자기에게 고백하는 것을 듣는 경험을 구매하는 것이다. 아이돌 걸그룹의 전형은 바로 이런 판타지에 기초하고 있다.

세상엔 소녀들의 수만큼 다양한 소녀들이 존재하지만, 걸그룹 씬이 만들어내는 것은 ‘통조림 속의 소녀’이다. 예쁘고, 건강하고, 언제나 신선하고, 때 타지 않은 순수한 소녀, 게다가 변하지 않는 소녀인 것이다. 물론 이것은 다분히 판타지지만 아이돌 산업은 결국 판타지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런 판타지를 찾는 수요는 언제나 있어왔고 심지어는 아이돌의 암흑기에도 존재했다. 콘크리트같이 고정되어 있는 수요에 맞춰져 있다는 것은 그들의 안정적인 기반을 의미한다.

에이핑크의 시기

아직 에이핑크의 시기는 오지 않았다. 이제까지 발표곡 중에서 ‘NoNoNo’ 정도가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을 뿐이다. <응답하라 1997>로 대표되는 멤버 정은지의 배우 커리어도, 에이핑크의 이름을 알리는 데에 다소 도움을 주긴 했으나 이것이 그들의 인기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간판 멤버인 손나은이 드라마와 예능을 통해 얼굴을 알리긴 했으나 그 영향력도 크지는 않을 것이다. 하물며 윤보미의 예능 출연은 어떤 도움이 되었겠는가.

그러나 에이핑크는 언젠가 그 시기를 맞이할 것이다. 꾸준하고 고정적인 팬층이 결국 대중을 이끌고 있다. 그 와중에 걸그룹 붐은 막을 내려가고 있고, 콘셉트의 빈곤과 원천기술의 부족은 결국 수많은 걸그룹을 내리막길로 내몰고 있다. 에이핑크는 대단하지는 않지만 꾸준한 다크호스이다. 그들이 물려받은 걸그룹의 정수는 오랫동안 전해져 내려온 비전 같은 것이다. 그들은 충실히 100%의 소녀를 추구했다. 에이핑크 함부로 까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단 한 번이라도 100%의 소녀였느냐?

 

  에이핑크의 “Pink Blossom”에 관한 아이돌로지 필진들의 단평은 1st Listen : 2014.03.21~03.31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맛있는 파히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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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후는 혈관으로 흐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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