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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방분석노동 : 2014년 3월 셋째주 투하트 – Delicious

상상력을 자극하는 투하트의 뮤직비디오. 인기가요의 연출은 액션과 안무의 합보다는 표정과 감정선에 집중한다. 투하트라는 기획을 가장 잘 이해하고 세밀하게 표현해낸 결과물이다.

사진 ⓒ SBS

지난 3월 23일 있었던 <인기가요> 763회에서는 총 18팀이 무대에 올랐다. 이중 오렌지 캬라멜, 베스티, 투하트, 소녀시대, 2NE1, 포미닛의 무대가 훌륭했다. 그 중,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인기가요>의 매력을 부각시켰던 투하트의 ‘Delicious’로 음방분석 노동을 한다.

곡명으로 가득 채운 LED 디스플레이 화면으로 시작한 투하트의 무대는, 음악의 시작과 동시에 줌 아웃과 지미집 무빙을 하면서 안무 대형의 전체상을 인식시킨다. 키의 보컬이 나오고, 이에 대한 조응으로서 그가 무대에 등장한다. 닫힌 문 노릇을 하고 있는 백댄서들의 팔을 밀고 무대 앞으로 나오는 키의 바스트 샷이다. (<인기가요>의 공식 계정에 등록된 영상에는 여기까지가 포함돼 있지 않다.) 이후 보컬 파트 전환에 따라 화면을 전환하며 키와 우현의 바스트 숏을 내보내는 와중에, 무대를 반으로 갈라 활용하는 안무의 특성을 전달하기 위해 키와 우현의 단독 풀샷을 보여준다.

인트로가 끝나고 1절이 시작되면 기타 사운드에 조응하는 카메라가 키의 하반신을 잡아 리듬을 강조한다. 여기서 재미있는 지점이 발견되는데, 우현의 파트가 다 끝나기 전에 카메라를 등지고 있는 키의 바스트 샷으로 전환되고, 곧이어 키가 몸을 돌린다. 이게 왜 재밌냐면 키가 몸을 돌림과 동시에 우현이 “너를 아니까”라고 노래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현과 키가 자신의 사랑을 받아달라고 애원하는 대상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키가 들어앉는다.

이 화면전환의 재미를 설명하기 위해 잠시 옆길로 빠져 ‘Delicous’의 뮤직비디오를 이야기해 보자. 단도직입적으로 이 뮤직비디오의 흥미로운 지점은 뮤직비디오 안에 시청자가 동기화할 대상이 없다는 것이다. 보통 K-Pop 아이돌 뮤직비디오에는 시청자의 몰입을 극대화하기 위한 캐릭터들이 존재한다. 이 캐릭터들은 해당 아이돌의 주요 소비층으로 염두 되는 이들의 모습을 하고 있거나, 아이돌의 연인-배우자로 적합하다 여겨지는 이상형의 모습을 하고 있다. 시청자들은 아이돌들의 카메라 정면 응시 장면을 통해 이 캐릭터에 접속하게 된다. 이로써 시청자는 뮤직비디오가 그리는 상황의 한 축이 되어, 아이돌들이 이 캐릭터에게 시도하는 신체적 접촉, 구애 행동들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판타지를 극대화한다.

헌데 ‘Delicious’ 뮤직비디오에는 이런 캐릭터가 없다. 뮤직비디오의 내러티브는 키와 우현이 한 여자를 차지하기 위해 (장난스럽게) 다툰다는 것인데, 정작 그들의 구애의 대상은 인트로의 플립북 애니메이션에서 잠시 등장한 이후엔 흔적도 찾아보기 힘들다. 시청자를 극 안에 위치시켜 판타지를 극대화하는 대신, 키와 우현 사이에 오가는 감정적 교류를 관찰하게 만드는 것이다. 인트로에 나오는 키와 우현의 카메라 정면 응시는 그들이 서로 주고받는 시선으로 수렴된다. 시청자는 둘의 시선을 받는 대상이 아니라, 둘이 시선을 교환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관찰자다.

이후 뮤직비디오는 키와 우현의 일상생활의 파편들을 늘어놓고, 둘이 어떻게 지내는지에 집중한다. 이러한 점이 ‘Delicious’ 뮤직비디오가 주는 쾌감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시청자는 키와 우현이 주고받는 행위의 미세한 부분들을 관찰하며 둘의 관계에 대한 상상, 나아가 뮤직비디오에서 드러나지 않는 그들의 일상을 상상하게 된다. 이 상상으로 인해 디테일이 더해진 그들의 일상은, 다시 둘의 관계를 보다 견고하게 만든다. 이런 과정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것은, 시청자가 능동적으로 투하트라는 기획에 몰입하게 할 요소를 자가생산하게 만든다.

그러니까, [00:30]의 화면 전환은 이 기획에 대한 이해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이러한 지점은 이후에도 나오는데, 특히 곡이 2절로 넘어가며 안무의 전개가 바뀌는 부분을 주목할 만하다. 키와 우현이 꽃을 들고 서로 자신을 받아달라는 구애를 안무로 표현한다. 이때 다른 음악방송에 비해 <인기가요>의 카메라는, 둘 간의 액션보다는 얼굴 표정에, 키보다는 우현에게 집중한다. 안무의 합보다는 감정의 교류를 보여주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극화된 연기를 능숙히 수행하는 키보다는 다소 어리숙한 표정을 하고 있는 우현에게 집중하여, 캐릭터 차이를 명확하게 드러낸다. 이는 뮤직비디오로 촉발된 둘의 관계에 대한 상상력을 자연스럽게 TV 안으로 끌고 들어온다. 이후 키와 우현의 투샷이나, 둘의 시선을 교환하는 장면들은 안무에 조응하는 시원스러운 카메라 워크로 달린다. 그리고 마지막 투샷으로 돌진한 키와 우현은, 포즈와 표정의 차이를 부각시켜 완벽한 마침표를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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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나머지 음악 방송들에서도 [00:30] 부분을 비롯한 몇몇 장면에서 유사한 장면 연출이 보인다. 아마 SM 측에서 자신들이 만든 매뉴얼을 제시하여 투하트란 기획에 대한 이해를 도왔으리라 생각된다. 이 부분을 염두에 두고 각 음악방송들의 투하트 무대를 보면, <인기가요>가 기획을 가장 잘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표현했다는 것이 눈에 띈다. <쇼 챔피언>과 <뮤직뱅크>의 경우 무대를 분할하여 사용하는 안무의 특성을 전달하는 데에만 집중하는, 다소 경직된 모습을 보인다. 때문에 투하트가 공간을 활용하는 방식, 즉 분할하고, 교차하고, 다시 합치는 과정들이 잘 보이긴 하지만, 나머지 요소들이 주는 재미가 죽는다. <엠 카운트다운>은 준수한 카메라 워크와 장면 전환으로 안무의 세부 요소와 전체를 촘촘히 엮어 전체상을 그리는 데에는 성공하지만, 투하트란 기획에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음악중심>의 경우, 뮤직비디오에서 나왔던 카메라 워크를 적극적으로 차용하고 LED 디스플레이로 화사한 색감을 자랑하며 무대를 화려하게 감싸는 등, 기획사에서 내놓은 콘텐츠를 적극 수용하려 한다. 하지만 위에 언급한 뮤직비디오의 묘미에 대한 이해는 떨어지는 편이다.

기획사가 제시한 기획을 이해하기 위해 뮤직비디오의 카메라 워크나 공간 미술 등을 고스란히 차용하는 시도는 많다. 하지만 763회 <인기가요>처럼 소화하려 하는 방식은 흔치 않았다. 콘텐츠와 가이드라인 안에서 수용자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파악하여, 보는 이의 흥분을 발생시킬 구조를 이끌어내는 방식이다. 이것은 시각적인 화려함만을 목표로 하는 방식에 비해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 생각한다. 이렇게 투하트의 팬들은 자신들의 상상과 욕망을 응원하는 훌륭한 협력자를 얻었다. (관찰자 입장을 고수하는 이 팬덤, SM이 투하트란 실험을 통해 적극적으로 조성해 나가고 있는 이 팬덤이, 앞으로 무엇을 보여줄지 궁금해진다.)

투하트의 ‘Delicious’에 관한 아이돌로지 필진들의 단평은 1st Listen : 2014.03.01~03.10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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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L

요즘은 주로 뮤직비디오를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