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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미 – Full Moon (2014)

다소 무뚝뚝하고 뻣뻣해 보이는 모습으로 성장한 선미는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JYP는 다른 기획사에 비해 타고난 것을 본다는 인상이 있다. 리듬감, 성량, 혹은 ‘소울’ 같은, 트레이닝으로 어느 정도 보완될 수도 있으나 그 성장이 객관적으로 눈에 띄지는 않는 부분들 말이다. ‘루츠’에 천착하는 듯한 JYP의 성향과 결부해 보면, 어쩌면 인종적으로 ‘다른 나라’를 지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선미의 컴백은 조금 의아한 일일 수도 있었다. 원더걸스에서 (소희에 비해) ‘정통파 취향의 귀염상’을 담당했던 그녀가 ‘JYP의 솔로 여가수’에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준 것 같진 않았기 때문이다. 다소 무뚝뚝하고 뻣뻣해 보이는 모습으로 성장한 선미는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JYP가 작업한 우아하면서도 강렬했던 싱글 ’24시간이 모자라’에 비해 ‘보름달 (feat. Lena)’은 다소 밋밋하게 느껴진다. 용감한 형제 특유의 탄력적인 스네어는 정박을 길게 벗어나며 탱탱한 그루브를 만들고, 그가 꽤나 재미를 본 8비트 베이스라인도 기분 좋게 담담한 흐름을 짚어낸다. 버스(verse)에서는 베이스와 피아노가 주고 받으면서 유쾌한 걸음걸이를 만들고, “에-에-에-에-에-” 하는 보컬이나, 들릴 듯 말 듯한 기타도 유쾌하게 맛깔스럽다. 그럼에도 이 곡은 그저 장난끼 어린 걸음걸이로 물처럼 흘러간다. 2번 트랙인 ’24시간이 모자라’로 넘어가는 순간이 그 인트로만으로 제법 가슴이 설레는 것도 ‘보름달’이 다소 밋밋한 덕분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세간의 이미지처럼 ‘자의식 과잉’인 JYP가 자신의 곡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이런 배치를 한 것일까.

East4A가 작업한 4번 트랙 ‘내가 누구 (feat. 유빈 of Wonder Girls)’는 이 대답에 대한 힌트를 하나 준다. 버스 내내 같은 코드로 진행되며 긴장을 쌓는 이 곡은 2절에선 프리코러스(pre-chorus)에서부터, 1절에서는 후렴에서부터 코드가 하강하기 시작하며 갑작스러운 쾌감을 준다. 후렴에서 선미의 보컬은 제법 감정을 담고는 있지만, 어마어마한 열창은 아니다. 반면 “어떠니 1, 2, 3, 4 you and me”하는 무덤덤한 보컬은 가사 그대로, “어떠니?”라고 은근하게 묻는 듯하다. 아주 시큰둥한 표정이기에 더욱 섹시한 느낌으로.

꽉 차는 화려한 신스에 실린 3번 트랙 ‘burn’에서 보컬이 다소 묻히는 감이 있는 것을 보면, 분명 선미의 음색은 밋밋하다. 대개의 경우에는 보컬리스트로서 약점이다. 그러나 이 음반에서 그것은 오히려 다양한 표정을 숨기고 있는 무표정이 된다. 그 속에서 보컬 이외의 연주가 어떤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보컬이 약간의 뉘앙스를 달리 하면, 감정은 반전을 거치며 더욱 크게 와닿는다. 때로는 관능으로, 때로는 우울함으로, 때로는 애잔함으로. 어찌 보면 라인의 인기 캐릭터 브라운이나 미피가 무표정하기에 더욱 감정에 이입하기 쉽고 더욱 사랑스러운 것과도 비교할 수 있을까. 6번 트랙 ‘그게 너라면’의 인트로가 예쁜 멜로디를 무덤덤하게 연주하는 것과, 후렴에서 확실하게 달라붙는 후크보다는 예쁘게 흘러가는 멜로디로 은근히 가슴을 울리는 것도 마찬가지의 이치일 것이다.

그 시점에서 ‘보름달’을 다시 들어보면, 그 밋밋함이 더없이 매력적이다. 가녀리게 연출된 백업 보컬과 크레센도 스트링이 윤기를 얹고, 처량한 멜로디와 집요하게 반복되는 IV-iii-vi 코드웍이 만들어내는 퇴폐미가 즐거운 분위기 속에 깔려 들어간다. 속을 알 수 없는 뱀파이어처럼, 그저 걸어갈 뿐인 무표정이 미세하게 포인트를 줬다가는 다시 빠진다. 다시 들어볼 때마다 은근하게 두드러지는 매력이다.

그러고 보면 JYP에 대한 인상도 어쩌면 편견처럼 느껴진다. 그러고 보면 오랜 시간 JYP의 ‘어떤 디바’였던 박지윤을 잊기 힘들다. 이 음반은 JYP가 특정한 취향의 고집보다도 보컬리스트의 특성에 따라가는 프로덕션을 해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The first collaboration of JYP and Brave Sound”라는 인트로는 “JYP에 처음으로 곡을 팔았다”는 선언 이상의 의미로 다가온다. 알싸한 밋밋함이 우아한 ‘보름달’은 선미의 약점일 수 있는 특징을 매력으로 살려내는 이 음반의 열쇠기 때문이다.

Full Moon
JYP Entertainment
2014년 2월 17일
  1. 보름달 (feat. Lena)
  2. 24시간이 모자라
  3. burn
  4. 내가 누구 (feat. 유빈 of Wonder Girls)
  5. 멈춰버린 시간 (feat. Jackson of GOT7)
  6. 그게 너라면
미묘

By 미묘

가식과 내숭의 외길 인생. 음악 만들고 음악 글 씁니다.
f(x)는 시대정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