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nd Listen : 베이비복스를 회상한다

1997.07.03~2004.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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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례 없는 대국민 통합을 이뤄낸 촛불 집회, 그 안에서도 여성혐오는 있었다. 여성 혐오적 가사로 촛불 집회 무대에 서려고 했었던 DJ DOC에 비판이 일며, DJ DOC의 멤버 이하늘이 과거 베이비복스를 대상으로 했던 여성혐오 발언이 다시 화제가 되었다. 당시의 불쾌한 표현을 복기해서 베이비복스 멤버들과 팬들을 괴롭게 할 생각은 없다. 대신 베이비복스의 커리어를 되돌아보며, 우리가 무책임한 혐오를 통해 어떤 그룹을 잃어야 했나를 함께 생각해보고자 한다.

베이비복스는 등룡기획, 현 DR뮤직이 내놓았던 첫 번째 여성 아이돌그룹이다. 데뷔 당시에는 H.O.T.의 여성 버전을 만들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힙합을 의식한 콘셉트와 음악을 고수했고, 잠시 트렌드를 따랐던 2집의 ‘야야야’를 제외하고서는 캔디 뮤직은 거의 하지 않았다. 베이비복스뿐만 아니라 2000년대 중반에 라니아를 내놓은 것을 생각하면, DR뮤직이 구현하고자 한 여성 그룹의 모습은 ‘힙합 음악을 베이스로 한 강한 여성’이었다. 이하늘이 힙합을 흉내 내려 한다며 모욕적인 언사로 공격하기 훨씬 전부터.

참고로 2017년은 베이비복스가 데뷔한 지 20주년이 되는 해이다. 요즘 90년대 아이돌의 대거 컴백을 보며, 이 시기의 베이비복스 5인을 다시 보고 싶다는 마음도 든다. 각자의 커리어와 사정이 있으므로 쉽지는 않겠지만, 분명 베이비복스는 그런 식으로 흐지부지 마지막을 맞기에는 너무 아까운 그룹이었다. 그들이 가요계에 제시한 음악이나 스타일이 아직도 후세대 그룹들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는데 말이다. 아직 베이비복스를 잘 모르는 청자들이 있다면, 오늘 소개한 노래들과 그 무대 영상을 꼭 권하고 싶다. 90년대 말 ~ 2천년대 초의 진한 감성을 느껴보시라. 돌돌말링과 유제상, 두 필진이 각 앨범의 타이틀곡과 활동곡을 중심으로 추천곡을 하나씩 골라보았다.

베이비복스
Voice Of Xpression
DR MUSIC
1997년 7월 3일

   

남자에게 (민주주의) : 심의 때문에 ‘머리 하는 날’로 데뷔했지만, 베이비복스 1집의 진짜 타이틀곡은 이 곡이었다. 등룡기획의 대표 윤등룡은 베이비복스를 처음 제작할 때 스파이스걸즈를 염두에 뒀다고 하는데, 그래서 이들의 초기 콘셉트 자연히 ’여성들의 대변자’가 되었다. S.E.S나 핑클보다도 먼저 데뷔한 90년대 말 여성 아이돌의 시작이 페미니스트 아이돌이라니 퍽 고무적이지 않은가. ‘민주’라는 다른 여자에게 남자친구를 빼앗겼다는 가사지만, 그 핑계(?)로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반복적으로 말하는 점은 다분히 H.O.T. 등이 내놓던 사회 비판적 가사를 의식하고 이식하려던 시도일 것이다. 그 밖에도 ‘엄마 제발 좀 내버려 둬 나는 엄마의 인형이 아냐’ ‘나를 비교하지 마 나는 그냥 나일 뿐야 누가 뭐라 하든지 나만의 길을 갈 거야’ 같은 가사를 싣고 있다.

Waiting : 2집으로 베이비복스를 처음 접한 사람이라면 수록곡 ‘Waiting’을 들으며 ‘낯선 목소리가 있는데?’ 할 수 있었을 것이다. 1집과 2집 사이에 멤버 변화가 있었는데, 1집의 노래를 2집에 재수록했으니 당연하다. 그러나 재수록이 납득될 만큼 좋은, 90년대에 유행하던 멜로딕한 팝 발라드 스타일의 곡이다. 타이틀을 비롯해 1집 대부분의 수록곡을 작곡한 원상우의 작품. 당시 메인보컬이던 차유미의 분위기 있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베이비복스
Baby Vox Ⅱ
DR MUSIC
1998년 9월 15일

   

야야야 : 베이비복스의 첫 번째 리즈를 만든 김형석의 곡. 5집까지 베이비복스의 대부분의 타이틀곡을 책임지며 팝적인 멜로디로 베이비복스 특유의 이미지를 구축했다. 2집은 베이비복스가 꼭 히트해야 하는 시점이었기 때문에, 만일을 위해 여러 장르를 시도 했고, 결론적으로 앨범 자체는 다소 중구난방이다. 심지어 쇼넨나이프 버전의 “Top of the World”를 리바이벌한 트랙도 있는데, 이는 2집 베이비복스를 밴드 아이돌(!)로 만들려고 했던 시도의 일부이다. 애교로 중무장한 타이틀곡 ‘야야야’는 1집 때를 생각하면 전혀 다른 방향의 노래이지만, 주영훈이 작곡한 후속곡 ‘Change’나 수록곡 ‘Break It Up’ 같은 노래들로 1집의 무드를 이어가려 노력했다. 2집 때 함께 활동한 이가이는 나이를 속였다는 이유로 대중의 분노를 사 탈퇴해야 했지만, 정확히 같은 경우였던 god의 박준형이 아직까지 사랑 받으며 활동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공식적인 첫 스캔들부터, 베이비복스는 여성혐오로 인한 불이익을 겪었다. 참고로 나머지 멤버들은 힘든 시절 함께 한 이가이를 많이 믿고 따랐다고 전해져 아쉬움을 더한다.



베이비복스
Come Come Come Baby
DR MUSIC
1999년 7월 0일

   

Get Up : 어찌 보면 1집의 목표 지점으로 돌아왔다고 볼 수도 있겠다. 3집 ‘Get Up’부터는 S.E.S나 핑클이 선보이던 청순한 이미지가 아닌, 자기 주도적으로 섹스어필하는 여성을 내세웠다. 김이지나 심은진 같은 멤버를 두고 ‘야야야’ 같은 곡만 부를 수는 없었던 게 당연하지 않나! 박진영 작사, 김형석 작곡. 김이지의 랩도 훌륭하지만, 이희진의 느른한 보컬 톤이 정말 매력적이다. 이 앨범부터 윤은혜가 합류했는데, 아직 본인의 캐릭터를 충분히 보여줄 기회가 없었던, 당시 중학생이었던 그에게 적극적인 성적 은유 라인을 부르게 한 것은 비판의 소지가 있을 것이다. 사족으로, 윤은혜가 발탁되던 당시 오디션에서 노래 실수가 민망해 벽을 잡고 무너지자, 윤등룡 대표가 그걸 벽을 발로 차는 것으로 잘못 보고 ‘깡이 있네’ 하면서 뽑았다는 것은 유명한 비하인드다. 이 이야기에서마저 ‘어디 가서 꿀리지 않는 여성’이란 베이비복스의 기획 방향성을 조금 엿볼 수 있다.

Killer : 역시 김형석의 곡이다. 사비로 시작하는 도입부가 귀를 잡아끈다. 심은진이 ’자꾸 떠오르는 그대의 웃음소리’ 하며 삼백안으로 차갑게 쏘아볼 때의 매력은 베이비복스에게 또 하나의 히트곡을 만들어주기에 충분했다. 이 시기에 학창 시절을 보낸 나로서는 체감적으로 이 노래가 베이비복스의 가장 큰 인기곡이었다고 생각한다. 장기자랑을 할 때면, 이 노래에 춤추는 그룹이 반마다 꼭 하나씩 있었다. 지금 보아도 세련되고, 당시 걸그룹 트렌드를 생각했을 때 꽤 격한 축에 속한 안무다. 중간에는 아예 본격적으로 댄스 브레이크까지 들어간다. 이때는 간미연이 H.O.T. 문희준과의 열애설과 그에 따른 안티 행위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낸 시기이기도 하다.



베이비복스
Why
DR MUSIC
2000년 5월 16일

   

Why : 앞서 베이비복스의 3집이 'Get Up'이나 'Killer'로 화끈한 섹시 이미지를 구축했다면, 4집은 이를 고급스럽게 다듬는 데 주력했다. 타이틀 'Why'는 그런 의미에 있어서 4집의 대표 노릇을 한 노래다. 사실 2000년이면 아직까지 작곡가 김형석의 위세가 등등할 때인지라, 이 곡은 김형석 표 '비트 있는 발라드'의 특징을 고스란히 지닌다. 또한 인위적인 스트링이 전면에 배치되어 듣는 이의 호불호가 갈릴 법하다. 그러나 이러한 곡의 거슬리는 점들을 멀리 뒤켠에 밀어낼 정도로 당시 멤버들의 매력은 한껏 피어올라 있었다. 2000년을 산 젊은 남성이라면 이국적인 고택 아래 부채춤을 추며 하늘거리던 이들을 잊을 수 없을 터. 평자 또한 그 남성 중 한 명에 불과하다.



베이비복스
Boyish Story
DR MUSIC
2001년 6월 4일

   

인형 : 개인적으로는 베이비복스 최고의 트랙으로 꼽는 곡. 당시에는 샵과 스페이스A, 듀크 등의 댄스 가수들을 중심으로 대중에게 '들끓는 열기'를 전달하는 것('잘됐어'나 'Party Tonight'을 되새겨보라)이 하나의 경향이었던데 반해, 이 곡은 대중가요의 방식으로는 미니멀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차분한 어조로 이별을 노래하였다. 바로 앞 트랙인 타이틀 'Game Over'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면서도, '다음 사람을 만나는 데 너는 방해가 되니 사라져야겠다'는 가사의 어조가 일치하는 점이 흥미롭다. 멜로디야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으며, 비트의 측면에서도 하우스를 기반으로 브레이크 비트로 변조되는 부분들이 더할 나위 없이 섹시하게 느껴지는 평자의 올타임 페이버릿 넘버.



베이비복스
Baby V.O.X Special Album
DR MUSIC
2002년 4월 23일

   

우연 : 무려 CD 3장, 마흔하나의 수록곡으로 구성된 스페셜 앨범의 타이틀인 '우연'은 아마도 베이비복스의 노래 중에서 가장 통속적인 넘버인 듯싶다. 이 곡은 당시 인기 절정을 구가하던 백지영을 벤치마킹한 것인지 라틴 비트를 차용하였으며, 짧은 노래 파트가 빠르게 반복되는 스피디한 구성을 갖추고 있다. 사실 평자의 취향상 이 노래가 발매 당시 좋게 들릴 리는 만무하겠으나, 그래도 2002년 4월에 나와서 곧 있을 월드컵 광풍을 피해 줄창 들리기도 했거니와(그래서 '인형'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곡보다도 기억에 생생히 남아있다) "발라 발라 꼬미꼬..."로 시작하는 전주는 이후 유행할 훅송의 특징을 미리 선보인 것으로 생각된다. 사실 이런 통속적인 곡이 가장 무섭다. 30년 뒤의 가요무대에서 이 노래가 베이비복스의 대표곡으로 불릴지도 모를 일이고.



베이비복스
Devotion
DR MUSIC
2003년 4월 3일

   

나 어떡해 : 사실 5집이 발매된 지 딱 1년 만에 돌아왔건만, 이 시기에 워낙 여러 일이 있었던지라 대단히 오랜만의 컴백인 것 같은 느낌을 주었던 6집의 타이틀곡. 'Why'가 김형석 특유의 비트 있는 발라드를 들려주었다면, '나 어떡해'는 김창환 특유의 '어때 세련되지 짜샤' 휠링을 들려주는 곡이다. 사실 이미 당시에도 유로 테크노라면 '복고의 복고'와 같은 느낌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나 어떡해'가 유독 박한 평가를 받았던 건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멜로디와 비트, 가사의 덩어리었다는 점이 이유였을 게다. 사실 이 노래는 베이비복스의 실질적인 마지막 곡이라는 점보다, 티아라 같은 이후 아이돌이 부르는 노래의 전초를 보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그만큼 이 곡의 뽕끼만은 예사롭지 않다.



베이비복스
Ride West
DR MUSIC
2004년 4월 16일

   

Xcstasy (Korean Ver.) :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이하늘과의 대립의 단초가 된 곡. 사실 곡 자체는 크게 유명하지 않고, 대립과 무관하게 베이비복스가 이미 이 시기에 하향세였음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곡이 논쟁적인 이유는 ① 베이비복스가 이전과 다르게 힙합 스타일의 곡을 타이틀로 내세웠다는 것, ② 힙합 팬들에게 신성시되는 투팩의 랩을 샘플링했다는 것, ③ 지금 이상으로 힙합은 '아는' 사람만이 '하는' 곡으로 (소위) 힙합퍼들에 의해 규정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진성 록커들이나 하고 자빠졌을 이상한 순혈 논쟁을 곱씹어 보니 그때나 지금이나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인 것만은 분명하다. 논쟁의 이면에 가려진 여성혐오의 불쾌함을 굳이 끄집어내지 않더라도, 이 곡은 좋든 싫든 '2000년 이후의 가요사'에서 지속적으로 언급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만 힘 빠지는 멤버들의 랩만은 실드쳐주기 어렵다.



사실 베이비복스가 처음 등장한 1997년, 당시에는 이미 S.E.S.와 핑클을 비롯한 1세대 여성 아이돌들이 고정 팬을 확보하면서 난공불락의 성을 구축하던 시기이다. 또한 샵과 스페이스A를 위시로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룰라의 연장선상에 선 혼성 아이돌이 적지 않은 인기를 얻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롱런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후에도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콘셉트에 있다. 베이비복스는 여성의 순종성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20년 전의 한국에서 ‘여성 주도 콘셉트’를 내세운 것이다. 그것도 ‘성적인 면에서의 여성 주도 콘셉트’를. 사실 이러한 콘셉트는 이들이 아마도 김완선 이래로 가장 터무니없는 비난을 받은 여성 아티스트가 되는 데 크게 일조를 하였을 것이다. 3집의 ‘Get Up’, ‘Killer’, ‘Love & Extasy’가 이러한 편견을 강화한 것도 사실이고.

물론 음악적인 면에서는 이들이 통속적인 가요를 부른 수없이 많은 아이돌 중 하나였음은 부정할 수 없다. 특히 대부분의 음반이 타이틀곡을 제외하고는 크게 건질 노래가 없다는 점도 이러한 평가를 부추긴다(물론 이들의 인기가 절정에 달했던 4집과 5집은 예외일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뷔 20주년을 목전에 둔 지금, 1세대 아이돌인 베이비복스를 다시금 회상하는 이유는 이들이 남긴 족적이 결코 작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이들은 당시 여성 아이돌로는 드물게 5인조 체제를 출범하여 이를 성공시켰다. 역할 분담도 S.E.S나 핑클보다는 최근의 그룹에 더 유사하다. 댄스곡 위주의 타이틀을 내는 뚝심을 보여준 것도 여성 아티스트로서는 드문 일이며, 윤은혜의 배우로서의 성공 등 그룹 활동 이후를 구체적으로 보여준 것도 이들이 처음이다. 이런 선구자적인 역할이, 시간이 지난 후에 이들을 달리 보게 하는 족적인 것이다.

돌이켜보면 베이비복스는 섹시한 그룹이 아니었다. 이들의 선정성은 지금의 아이돌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건전함 그 자체이다. 멤버들의 활동이 상대적으로 뜸한 탓인지 당대의 인기에 비해 이들에 대한 언급이 크게 준 것도 아쉬운 점 중의 하나이다. 그런 의미에서 리스트 업한 곡들은 이들의 업적을 되새기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짧지만 누구보다 화려한 전성기를 지녔던 이들을 추억해본다.

Editor

Author:

idology.kr 에디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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