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하게 빛나는 아이돌, 그 뒤에는 자신의 분야에서 부지런히 움직여온 또 다른 주인공들이 있다. 그들은 한창 K-POP 열풍이 불던 시기에도 있었고, ‘한류’라는 말이 고유명사로 쓰이기 한참 전에도 역시 같은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아이돌 메이커〉는 조금 더 자세하게, 다른 시각과 온도로 아이돌 산업에 들어와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담아보고자 기획된 책이다. 7회에 걸쳐 책 내용 일부를 발췌해 게재한다. 인터뷰 전문은 〈아이돌메이커〉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 한영애 밴드
“제가 배운 건 음악을 하는 태도, 음악 하는 사람들을 존중하는 태도였어요.”
박희아 : 이 많은 아이스 커피를 혼자 드신 거예요?
범주 : 아니에요. 워낙 들락날락하는 애들이 많아서…. 와서 녹음하고 그러다가 죄다 놓고 가요. 과자에 자기들 가방에, 아주 여기가 창고예요. 세븐틴과 뉴이스트의 합작품인데, 요새는 슬슬 플레디스 걸즈까지 오기 시작했어요. 아휴.
박희아 : 정말 어마어마한 숫자가 동고동락하는 곳이네요. 사실 처음에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할 때만 해도 아이돌 그룹과 함께 작업하게 되실 거라곤 상상을 못했던 게 사실이에요. 게다가 Mnet ‘슈퍼스타K4’에 출연했을 때에도 아이돌과는 전혀 관련 없어 보였고.
범주 : ‘슈퍼스타K4’도 우연찮게 나간 거였어요. 그전에 Mnet ‘Show me the money’에서 주석 형 피처링을 하면서 무대에 섰고, 그 이후에 섭외전화 비슷한 걸 받았죠. “한 번 나와 볼래요?” 하셔서 제가 그랬어요. “아뇨. 저 언더그라운드인데요.” 하하. 그때는 소위 ‘언더 부심’을 부리던 때였죠.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 저기 출연하면 굉장히 재미있을 것 같은데? 한 번 붙어? 그럴까?” 스물두 살 때니까 패기 넘치는 나이잖아요.
박희아 : 그럼 한영애 <누구 없소>를 부르게 된 특별한 이유라도?
범주 : 제가 한영애 밴드 출신이거든요. 한영애 선생님은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안 좋아 하셔서 저희가 ‘나무님’이라고 불렀어요. 아무튼 그때 나무님께서 듀엣 무대도 서게 해주시고, 그분 밑에서 백업 코러스를 하면서 차근차근 음악을 배웠어요. 덕분에 영향을 많이 받았죠.
# 아이돌리쉬 로망
“제가 힙합을 하고 있지만, 아이돌리쉬에 대한 로망이 있어요.”
박희아 : 사실 오늘 인터뷰는 작곡가, 또 음악 프로듀서로서의 범주를 조명하는 건데요. 그 렇다보니 세븐틴과 뉴이스트 이야기가 태반일 수밖에 없거든요. 플레이어로서의 이야기를 이렇게 열심히 했는데 조금 섭섭하지 않으세요?
범주 : 그런데 스스로는 그렇게 섭섭하지 않아요. 회사에서 저를 담당하시는 형 입장에서는 조금 섭섭할 수 있지만…. 지금은 프로듀서나 작곡가로서 할 말이 더 많거든요. 동생들을 통해서 약간의 자아실현을 하는 느낌이 있어요. 저도 한국에서 태어났으니까 한국의 아이돌 문화를 보고 자랐잖아요. 유치원에 다니고 초등학교에 다니면서 그때 나오는 걸 그룹들을 보고 “와!” 하면서 커온 거죠. 그래서 제가 힙합을 하고 있으면서도 아이돌리쉬에 대한 로망이 있어요. 현실적으로 제가 아이돌을 할 수 없다는 건 알지만, 아이돌이 지닐 수 있는 매력적인 부분에 관해선 약간의 이상을 갖고 있었던 거죠.
# 세븐틴과 뉴이스트
“세계관도, 거기서 비롯된 음악적 분위기와 비주얼 콘셉트도 다르니까.”
박희아 : 세븐틴 음악 프로듀서이기도 하고, 뉴이스트 같은 경우에는 좀 더 폭넓은 부분을 담당하고 계시는데, 어쨌든 두 팀 모두 타이틀곡부터 쭉 작업하실 정도로 음악적으로 깊이 관여하고 계시잖아요. 그러면 콘셉트에도 어느 정도 범주 씨 의견이 들어갈 것 같은데.
범주 : 실제로 뉴이스트는 콘셉트 정하는 것부터 제가 같이 들어가요. 공식적으로 제가 음반 프로듀서로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죠. 앨범 텍스트까지도 제가 관여해요. A&R도 같이 하고 있고. 덕분에 외부 프로듀서, 작곡가들도 많이 만나고, 같이 작업도 하고요. 그런데 세븐틴은 우지가 있잖아요. 그래서 공동으로 음악 프로듀싱에만 들어가는 형태죠. 구체적인 콘셉트 같은 경우는 회사와 멤버들 사이에서 정해지는 것들에 제가 양념을 추가하는 정도예요. 보통은 이렇게 진행이 돼요.
박희아 : 뉴이스트 [Q is] 앨범이 더 주목받지 못했던 것은 매우 아쉬워요. 음악적으로도 그렇고, 비주얼적인 요소들도 퀄리티가 굉장히 높다는 평이 이어졌었죠.
범주 :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보람찼어요. 그 앨범부터 제가 애들의 음반을 끌고 간 거니까. 저에게는 도전이었는데 진짜 즐거운 도전이었죠. 세븐틴과 작업할 때와는 또 다른 행복감을 느꼈어요. 세븐틴과 작업할 때는 제 작업실 안에서, 말 그대로 ‘작업’을 하면 되는데, 뉴이스트를 하기 위해서는 이 친구들을 위해 내가 밖에 나가서 직접 미팅을 해야 하고, 원하는 것을 찾아와야 하고, 찾지 못하면 만들어야 하고, 만들고 싶은 것도 만들어야 하고. 그런데 이 과정이 모두 즐겁고 좋은 거예요. 제가 먼저 신나서 하니까 애들도 밤새서 가사 써오고, 다른 부분도 많이 찾아보고 오고, 미팅 갈 때 응원도 해주고요. 팀 상황에 대해서 계속 체크를 하는 거죠. 아, 이런 건 있어요. 뉴이스트나 세븐틴은 세계관도 다르고, 앨범을 제작하는 방식도 달라요. 하지만 저에게 가장 중요한 건 이거에요. 두 팀 모두 친동생 같은 친구들이고, 따라서 이 친구들이 어떤 컨디션인지를 잘 체크하는 게 가장 필요한 일이죠. 작업할 때나 기타 여러 프로세스를 진행할 때 얘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고, 요즘 기분은 어떤 상태고, 어떤 삶을 살고 있고.
박희아 : 이건 ‘형’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관심이네요.
범주 : 그래서 이렇게 된 것에 매우 감사하죠. 일로 만나서 일로 끝나는 건 싫어요. 물론 저는 애들의 형이면서 스태프이니까, 그 경계를 지키는 건 중요하고 또 매우 어려워요. 하지만 그렇게 살 수 있는 것 자체가 굉장히 감사한 부분이에요.
박희아 : 예전에 인터뷰로 만났을 때, 세븐틴 멤버들 모습이 기억나요. 한 명 한 명 모두 인상 깊었지만 호시 씨가 유독 눈에 띄었어요. 춤에 대한 열정이 굉장하더라고요.
범주 : 순영(호시 본명)이는 정말 춤을 좋아해요. 제가 [Love&Letter] 앨범 같은 경우에는 순영이에게 영향을 정말 많이 받았어요. 그리고 순영이는 노래의 느낌을 춤으로 설명해요. (중략)
# BUMZU STYLE
“제가 여기서 안주해버리면 애들한테 피해가 가는 게 싫어요.”
박희아 : 세븐틴 음악은 뉴이스트와 다르게 굉장히 극적이잖아요. 곡 구성도 그렇고, 무대 연출도 이 구성에 따라서 무척 빠르게 바뀌고요. 그런 부분은 특별히 신경 쓰시는 거죠?
범주 : 네. 정말 많이요. 애들이 데뷔할 때부터 제가 제일 신경 썼던 부분이에요. 물론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언젠가는 이걸 단순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 점에 대해 대표님께도 항상 말씀을 드려요. 그렇지만 일단 현재로서는 파트 체인지에 적극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어요. 멤버가 많잖아요. 같은 편곡 가지고는 멤버가 눈에 다 안 들어오니까. 저는 그게 너무 싫었어요. 다들 개성 있고 하나하나 빛나는 애들이잖아요. 거기다 얘도 내 동생이고 쟤도 내 동생이죠. 그러니 제 입장에서는 대중이 얘도 예뻐해 주 고 쟤도 예뻐해 줬으면 하죠. 얘를 쟤로 알면 싫잖아요. 그렇게 시작된 거예요. 아이들이 자기 개성을 보여줄 수 있도록 송폼(song-form)을 다 바꾸기 시작했죠. 모든 파트가 빠르게 전환되는 쪽을 택했죠.
박희아 : 작업했던 팀이나 멤버 중에 본인 색깔과 가장 비슷했던 친구가 있을까요.
범주 : 승관이요. 제가 멜로디를 가지고 장난치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잘 받아들이고, 제 알고리즘에 대해 잘 이해해줘요.
박희아 : 자신과 똑같아지길 바라는 건 아니지만, 노하우를 쏙쏙 가져갔으면 좋겠다는 의미죠?
범주 : 네. 그런 건 정말 다 가져갔으면 좋겠어요.
# 인생의 회전목마
“제가 요즘 인생의 회전목마를 아주 세게 돌리고 있다고 얘기하거든요. 열심히 살고 있다는 뜻이죠.”
박희아 : 작곡이라는 작업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정리한다면?
범주 : 인생의 회전목마에 함께 돌아가는, 친구 같은 존재요. 인생의 회전목마를 설명해주는 존재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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