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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곡 이야기 : 플레디스걸즈 – We

데뷔곡의 주된 서사가 되곤 하는 ‘시작의 순간’을 보여주는 플레디스걸즈의 ‘We’. 이 곡이 말하는 것은 어쩌면 정확히 〈프로듀스 101〉와 정반대의 세계관일지도 모른다.

문득 초심에 대해서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시작의 순간 가졌던 목표와 꿈, 그리고 다짐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누구에게나 처음은 가장 순수한 순간이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 이유로 아이돌 걸그룹이 세상에 처음 발을 내딛는 순간은 아이돌 걸그룹 데뷔곡의 주된 서사가 되곤 하는 것 같습니다. 플레디스걸즈의 ‘We’는 그런 순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곡과 뮤직비디오가 지닌 가치들을 짚어보고자 데뷔곡 이야기 시리즈로 올립니다.

10인조 걸그룹인 플레디스걸즈는 I.O.I로 데뷔한 주결경과 임나영을 포함해서 〈프로듀스 101〉 참가자가 7명이나 소속된 팀입니다. ‘국민 아이돌’을 만들겠다는 목표로 작년 말에 시작한 〈프로듀스101〉은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돌 걸그룹이 절대로 보여주고 싶지 않은 가치를 보여주었습니다. 그것은 ‘각자도생’이었죠. 100여 명의 아이돌 지망생들의 운명은 소속사나 프로그램 내 유닛과는 관계없이 개별적이었습니다. 각각의 운명은 각자의 것이었고 각자가 자신의 생존을 꾀해야 했던 것입니다.

저는 2016년의 우리에게 ‘각자도생’이 얼마나 뼈에 사무치는 말인지 생각해봅니다. 사고는 피해자의 몫이고, 실업은 구직자의 몫, 저임금은 노동자의 몫, 여성혐오는 여성의 몫인 세상에서 ‘각자도생’이라는 네 글자는 현실 그 자체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프로듀스 101〉의 아이돌 지망생들을 전지전능한 위치에서 내려다보며 그들의 손을 떠난 운명에 힘을 보탰던 것이죠. 우리 스스로가 똑같은 상황에 처해있다는 것도 잊은 채 말입니다.

아이돌 걸그룹에게도 ‘각자도생’이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지옥도입니다. 멤버 각자가 자신의 인지도에만 신경을 쓰며, 다른 멤버를 시샘하고 경계하는 모습. 혹은 팀에 무임승차하거나 다른 멤버의 희생을 강요하는 모습… 〈프로듀스 101〉에 출연한 연습생들에 관련되어 불거진 논란들은 이런 그림들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아이돌 걸그룹이라는, 팀이라는 개념은 ‘각자도생’ 위에서는 성립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죠.

플레디스걸즈 - We MV

그런 의미에서 플레디스걸즈의 ‘We’는 제목만으로 가슴이 설렙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라는 말을 좀처럼 쓰지 않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이돌 걸그룹의 시작에 ‘우리’를 새기는 것은 매우 특별한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서로에 대한 믿음이라는 것, 그건 어쩌면 정확히 〈프로듀스 101〉이 보여주는 것과 정반대의 세계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플레디스걸즈에게는 다른 도움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 함께라면 늘 괜찮아 오늘도 내일도 / 언제나 다 같이 힘내 힘내 / 우리 함께라면 늘 괜찮아 시작해 / 새로운 내일이 우리 향해 기다려”

‘우리’라는 안도감은 가사뿐만이 아니라 뮤직비디오 내내 보입니다. 함께 뛰놀고, 함께 청소하고, 또 함께 연습하는 모습은 마치 특별활동부의 친구들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여기에는 ‘연습생의 고된 일상과 피 말리는 경쟁’ 같은 케이팝 씬의 해묵은 클리셰가 적용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마치 친구와 함께 찍어서 올린 인스타그램 포스트처럼 뮤직비디오는 서로 교감하는 멤버들의 모습을 끊임없이 보여줍니다. 서로 바라보고 몸을 기대며 손을 잡는 모습들이 주는 친근감과 안도감은 ‘우리’라는 단어와 동반하는 긍정적인 가치들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플레디스걸즈 - We MV
플레디스걸즈 - We MV

팀이란, 그룹이란, 친구란 무엇일까요. 기쁨을 함께하고, 슬픔을 나누고, 서로를 아끼고 배려하는 일은 ‘우리’라는 단어와 함께 잊혀진 지 오래입니다. “하지만 우린 알고 있어 / 서로가 서로를 믿는다는 걸 / 손을 잡고 걸어봐”라는 가사는 〈프로듀스 101〉을 겪은 멤버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가치로 다가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심지어는 〈프로듀스 101〉 당선 멤버로 I.O.I에서 활동 중이라 잠시 공석인 주결경과 임나영마저도 닫힌 사물함으로 함께하고, 나아가 아이돌과 꿈을 같이 하는 그 팬들까지 모두 ‘우리’가 되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의 강력한 힘이란 같은 공간의 누구도 타인이 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아이돌의 눈부신 순간은 밝은 조명도, 화려한 무대와 의상도, 빼어난 외모도 아닌, 이런 긍정적인 가치들이 진실로 다가올 때라고 생각합니다. 플레디스걸즈의 ‘We’는 그런 점에서 아이돌의 본질에 한 발자국 더 다가간 좋은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플레디스걸즈와 그 팬들이 부럽습니다. 이들이 훗날 먼 걸음을 나아가서 문득 뒤돌아보았을 때 저런 순수하고 아름다운 시작을 했다는 기억을 가질 수 있겠다 싶기 때문이죠. 이건 정말 멋진 선물입니다.

플레디스걸즈 - We MV
We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
2016년 6월 27일
맛있는 파히타

By 맛있는 파히타

덕후는 혈관으로 흐르는 것

One reply on “데뷔곡 이야기 : 플레디스걸즈 – We”

이런 관점이. . . !
플레디스 걸즈는 크게 관심가지고 있지 않았는데, 이런 형태의 리뷰를 보니 왠지 뮤직비디오나 음악이 새롭게 들리는 것같네요. ㅎㅎ 잘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