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랙리스트
- Intro : Boy Meets Evil
- 피 땀 눈물
- Begin
- Lie
- Stigma
- First Love
- Reflection
- MAMA
- Awake
- Lost
- BTS Cypher 4
- Am I Wrong
- 21세기 소녀
- 둘! 셋! (그래도 좋은 날이 더 많기를)
- Interlude : Wings
음반소개글
미묘: '힙합 아이돌'의 음반이라기보다는 '아이돌적으로 어필하는' 힙합 아티스트의 작업 같다. 그것은 음악의 수준이라기보다는 시선의 차이인데, 불안하고 사랑스러운 소년의 비관적인 관조가 곡마다 한 사람의 시선으로 집중돼 있다. (덧붙이자면 유난히 자주 귀에 밟히는 가족의 호명이나 유년기에 대한 거론이 〈쇼미더머니〉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앨범 전체에 걸친 무거운 정서들이 진솔한 서술과 함께 더욱 무겁게 다가오는 것은 강점이자 약점일 수도 있겠는데, 기존의 탐미적인 세계관이 집중력 있는 1인칭 속에서 전개되기 위해 대부분의 곡이 어두운 색채를 띠게 된다는 부분이다. 다만 각곡은 방탄소년단의 기존 어느 앨범에 따로 삽입되어도 자연스러울 법한데, (5개월 만이라는 짧은 발매 텀이 그래서 마치, 꾸준히 따로 준비해 온 '진짜 작업'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트렌디한 사운드를 조금씩 건드리면서도 아주 조금 짓궂은 궁상 소년 같은 기존의 질감을 사운드적으로 잘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방탄 스타일'이란 애매한 개념을 나름 꽤나 구체화하고 있을 것을 짐작게 하며, 15곡의 수록곡으로 상당히 일관성 있는, 서구 관점에서의 '정통파 앨범'을 만나는 반가운 경험을 제공한다. 앨범의 성격과 기조를 잘 보여주는 곡으로 'Lie'와 'Lost'를 추천하고 싶다.
박희아: 괜찮은 작품이지만, 아쉬운 점이 뚜렷한 결과물이다. 트랙리스트를 구성한 방식 자체가 전례 없이 획기적이라는 점, 모든 수록곡들이 일정 수준 이상의 퀄리티를 담보하고 있다는 점은 이 앨범이 괜찮은 작품인 이유. 반면에 솔로 트랙에 담긴 개인 서사가 너무 무겁고, 수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해서 혹자에겐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후반부에서는 분산시켰던 이야기들을 하나로 모으려는 시도가 이어지지만, 이미 전체적인 밸런스가 살짝 무너진 느낌. 무엇보다 세상 진지했던 "화양연화"에도 '머리 풀고 뛰놀던' 방탄소년단이 있었는데, 그 에너지가 다운된 것이 아쉽다. 그렇지만 마지막 트랙이 'Interlude'니까, 뒤에 뭔가가 이어질 거란 기대가 있다. 지민의 솔로 트랙 'Lie', 팬이라면 속상할 정도로 솔직한 가사가 놀라운 팬송 '둘! 셋!'은 매우 인상적.
돌돌말링: 1집 "Dark & Wild" 이후 두 번째 정규 앨범이다. 이런 해외 직송 같은 사운드를 차트에 한꺼번에 열다섯 곡씩 드롭할 수 있는 것이 현재 씬에서 방탄소년단이 갖는 포지션이자 그들의 강점인 것 같다. 타이틀곡 '피 땀 눈물'은 레게, 하우스, 트랩의 영향을 받았다는데, 느른하면서도 격렬한 것이 쌀쌀해지는 날씨를 거부하듯 아주 훅훅 찌는 톤이다. 무대는 원숙해진 개개인의 표현력에 더해, 제이홉을 필두로 섬세하면서 격렬한 안무를 순조롭게 소화하고 있다. 전 멤버의 솔로곡 수록이라는 기획이 꽤나 파격적인데, 그룹 내에서 내는 솔로곡들이 자칫 보너스 트랙 같은 퀄리티가 되기 쉬운 솔로곡들이 하나하나의 만듦새가 꽤 훌륭하다는 것은 장점이겠고, 개인적인 가사들 탓에 앨범보다는 믹스테입 같은 인상을 준다는 것은 단점이겠다.
수록곡 중 '21세기 소녀'의 가사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 곡이 지난 여성혐오 가사 관련 피드백의 팔로우업이라면 더 세심해야 했다. "Tell 'em you're my lady" 같은 라인은 남성이 본래 가진 젠더 권력을 여성이 자기 소유라는 조건 아래 시혜적으로 베푸는 모습일 뿐이다. 이는 여성의 주체성을 긍정하는 게 아니라서 우먼 임파워먼트라는 애초의 의도를 퇴색시킨다.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그룹이기 때문에 만회할 기회는 또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두 번째 기회란 것조차도 남성이기 때문에 더 쉽게 주어지는 것은 아닌가 돌아보았으면 좋겠다. 'Girls Do Not Need A Prince' 이슈로 김자연 성우를 지지한 안예은 같은 여성 가수가 어떤 괴롭힘을 당했는지 안다면 말이다.
조성민: '상남자'나 '호르몬전쟁'을 부르던 방탄소년단은 이제 아주 사라져버린 걸까. "화양연화" 연작의 히트가 이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컸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방탄소년단만의 패기나 치기가 갈수록 보기 힘들어지고 있는 것은 못내 아쉽다. 애초에 'I NEED YOU'가 히트했던 이유는 섬세하게 쌓아 올렸던 감정이 후렴에 가서 처절하게 터져 나왔고, 그것이 이전부터 단련해왔던 강렬한 퍼포먼스와도 잘 맞아들어갔기 때문이었다고 본다. '피 땀 눈물'이 'I NEED YOU'에 비해 크게 뒤떨어지는 곡인지는 아직 판단하기 힘들지만, 전체 방탄소년단의 디스코그래피를 놓고 봤을 때 이상적인 방향으로 나아간 작품인지 역시 쉽게 판단하기 힘들 것 같다. 성장 서사에 어떤 분절이 온 것 같달까. 다이내믹 없이 현학적인 상징만 한가득 채워져 있는 뮤직비디오 또한 모호해진 팀의 방향성을 드러내는 듯하다. 아이돌의 성장이란, 차트 순위와 같은 양적 성장보다는 팬덤이 공유하는 스토리와 같은 질적 성장에 더 장기적인 의미가 있음을 레이블에서 상기할 때가 왔다.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의 음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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