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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하는 아이돌 – 미스터미스터의 선택

유명 아이돌 팀의 컴백에 맞추어 동명의 노래, 그것도 디스곡을 발표하는 전면전을 벌였던 경우는 이제껏 본 기억도 없고 매우 흥미진진한 일이다.

소녀시대가 컴백을 했다. 타이틀곡은 ‘Mr.Mr.’, 공교롭게도 이 노래 제목은 한 보이그룹의 그룹명과 같았다. 결국 이 보이그룹은 곧장 자신들의 팀명과 같은 ‘Mr.Mr’ 라는 노래를 발표했다. 유명 아이돌 팀의 컴백에 맞추어 동명의 노래, 그것도 디스곡을 발표하는 전면전을 벌였던 경우는 이제껏 본 기억도 없고 매우 흥미진진한 일이다. 이런 행보를 이해하는 구도는 꽤 다양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SM은 절대강자의 입장이라는 것이고, 미스터미스터의 소속사인 위닝인사이트엠은 약자의 입장이라는 것이다.

배경을 설명하자면 미스터미스터는 2012년에 데뷔했지만 아직도 존재감이 없는 그룹이다. 한 장의 EP, (‘Mr.Mr’를 포함해서) 네 개의 싱글 동안 주목할 만한 활동내용은 없었다. 그런데 이들이 최근 잠시 언론에 주목을 받게 된 일이 있었는데 멤버 혼의 스캔들이 그 이유였다. 구체적인 이야기야 굳이 할 것 없겠지만 이 일로 인해 멤버 혼은 탈퇴를 하고 6인조 그룹은 5인조가 되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 소녀시대가 ‘Mr.Mr.’로 컴백을 한 것이다. 거대 기획사가 군소 기획사의 아이돌 팀명을 노래 제목으로 택해서 한 팀을 검색순위에서 살해하는 것이 문제인 것인가 혹은 유명 아이돌의 인기에 편승해 이슈 마케팅을 하는 군소 기획사가 문제인지를 다루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이들의 선택에 대해 들여다 보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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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공개한 ‘Mr.Mr’ 의 자켓에는 “Mr.Mr” 라고 적혀있는 글자를 깨부수는 팔이 프로파간다 느낌으로 그려져 있다. 가사를 조금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보이는 게 없나본데 무서운 게 없나본데
무시하니 만만하니 투명인간이 아냐
높은 곳에서 바라 본 나는 작아보였겠지
그래서 그랬니 내게

나의 편은 없는 걸까 이기는 쪽만 이기는 걸까
너란 주인공을 위해 나는 점점 희미해져
난 loser인가 넌 winner인가 같은 길을 가잖아
높은 곳에서 바라본 나는 작아보였겠지
그래서 그랬니 내게

매우 중의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너무 노골적인 것도 아닌 가사, 스토리를 알면 무슨 이야기인지 대번에 알아차릴 수 있는 가사라고 하겠다. 목적은 분명하다. 소녀시대와 동일한 타이틀의 노래를 발표해서 화제를 만들고, 또한 그 노래가 SM 또는 소녀시대를 디스하는 곡이라는 점을 또 화제로 만들고, 이미 공공의 적으로 여겨지는 SM에게 억울한 일을 당했다는 스토리를 통해서 또 화제를 만들어서 팀 자체의 인지도를 상승시키려는 것이다. 위기는 기회라고 했던가. 시장의 많은 아이돌들이 매체 상에 기사 한 줄을 올리기 위해 별의 별 일을 벌이는 시점에서 이런 일을 당한 것은 어쩌면 그들에겐 좋은 기회였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멤버의 스캔들로 인한 탈퇴는 팬들과 심지어 팀 자체에게도 엄청난 멘붕이었을지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정확한 목표설정, 더 구체적으로는 외부의 적을 만드는 것일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시도는 무의미한 방향으로 진행되었는데, 이들의 존재가 너무 작았기 때문에 이런 대담한 시도조차도 이슈화되기조차 어려웠던 것이다. 차라리 노이즈 마케팅이라는 비난은 환영해야 한다. 나쁜 퍼블리시티는 없다고 하지 않는가. 어떤 방식으로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었는데 그 조차도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는 누구의 탓을 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문제는 그들의 절박함에서 비롯되었다. 만약에 이런 대담한 시도가 성공해서 어떻게든 이슈가 되었다면 소속사는 “이 노래는 SM/소녀시대와는 관계 없는 곡입니다.”라고 해명하면 되는 것이었다. 아이돌은 더러운 디스전에는 휘말리면 안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시도가 의도한 바대로 이슈가 되지 않자 소속사는 “이 노래는 SM을 디스하는 곡이 맞다”고 스스로 공지를 낼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의 아이돌을 더러운 디스전에 던져넣고, 심지어는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자 알아서 실토까지 한 셈이니 아이돌이 지켜야 할 클래시함이란 사라질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노래 ‘Mr.Mr’는 스스로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노래이다. 분명 노래는 거대 기획사 대 군소 기획사, 대형 아이돌 vs 무명 아이돌이라는 구도이므로 피해자로서의 억울함을 노래하는 것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아이돌이 스스로 불쌍해지면서까지 디스를 해야 하는 것인가 하는 회의가 있다. “난 loser 인가 넌 winner 인가”, “높은 곳에서 바라본 나는 작아 보였겠지” 같은 수준의 가사에서 더 발전하지 못한다는 것은 큰 문제가 있다. “왜”를 발표할 당시 동방신기의 상황은 미스터미스터 같은 피해자나 다름 없었지만 “난 참아내고 내 자릴 지켜” 같은 가사가 그들이 당당하게 버티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더우기 ‘Mr.Mr’는 그들의 셀프타이틀 곡이다. 팀의 이름을 제목으로 붙인 노래를 팀의 아이덴티티와 별개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그들이 자기네 아이돌에게 ‘loser’ 딱지를 붙이고 싶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않지만 결과적으론 커리어에 남는 실수를 한 셈이다.

무명 아이돌의 절박함이 하루이틀의 일은 아니다. 때론 위태로운 방식을 이용해서까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하려는 팀들도 있고, 그것조차도 그들의 생존방식이라고 생각하면 이 디스전도 담담하게 바라볼 수 있다. 미스터미스터의 방향은 옳았다. 옳지 않았던들, 비난도 그들에게는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아이돌은 디스하지 않는다”라는 룰은 지켰어야 했고 “loser” 아이돌이 되는 것도 피해야 했다. 왜냐하면 아이돌은 하늘에서 반짝여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맛있는 파히타

By 맛있는 파히타

덕후는 혈관으로 흐르는 것

One reply on “디스하는 아이돌 – 미스터미스터의 선택”

미미 짠내 제대로죠… 이번 혼 사건 때도 팬들 멘붕+우왕좌왕에 시종일관 분위기 짓누르는 것은 ‘이제부터 카오스는 해체합니다.’ 그런 전력이 있는 회사라서 ㅠㅠㅠㅠ 내 눈엔 내 귀엔 너무좋은 그룹이고 노래들인데 안 뜨니까 많이 아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