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일 ~ 10일에 발매된 아이돌 언저리 신작들에 대한 필진들의 단평이다. 1PS, 스칼렛, 투하트를 들어보았다.
맛있는 파히타: 연초에 걸그룹의 과도한 노출이 이슈가 되었던 예와 같이 최근 걸그룹 씬은 대체로 극단적인 콘셉트와 퍼포먼스로 치닫고 있는데, 이런 시장 상황에 대한 반작용으로 가창력을 앞세우거나 청순미를 앞세우는 그룹들이 나타나고 있다. 새로 데뷔한 1PS도 그런 움직임의 하나로 보여진다. 이들의 데뷔곡 ‘여자이니까’는 그 중에서도 인상적인 데뷔곡이다. 특히 상승감을 자아내는 스트링의 사용은 걸그룹 데뷔곡의 필수요소로 보아도 좋을 만한 것인데 아주 제대로 사용되고 있어서 그룹 자체에 대한 기대감을 준다. 짝사랑을 다룬 노래 가사 또한 데뷔곡에 매우 적절한 주제라고 하겠다. 너무 쌔끈하고 세련되지 않은 점도 걸그룹의 데뷔곡에서는 플러스가 될 지도 모르겠다.
미묘: 화사한 계통의 ‘가요’적 멜로디나 곡의 전개, 적당히 댄서블한 편곡 등이 매우 고전적이다. 그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어서, 오히려 여성 아이돌로서의 양식미마저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 있다. 우아하게 연출된 스트링을 비롯해 사운드의 균형감도 웰메이드에 가깝다. (반면 후렴 뒤의 리프레인(“This is my true love”)은 가사/멜로디/편곡 모두 다소 고리타분하게 들린다.) 슈퍼 걸그룹들의 격돌 속에서 무난하고 평이하게 손이 갈 만하다. 작곡에 참여한 서재하(킹스턴 루디스카)와 이유진의 향후에도 관심이 간다.
미묘: 다소 전형적인 편성인 것은 사실이나, 후렴의 “Shout it out!”을 포함해 보아의 목소리를 매우 매력적으로 찌그러뜨린 디스토션이 시원한 쾌감을 준다. 한 옥타브 아래 저음 등으로 여러 겹 겹쳐진 보컬을 듣고 있으면, 이 곡을 이끄는 힘이 확실히 보아의 보컬임을 느끼게 해준다. 이는 커플링인 ‘close to me’도 마찬가지여서, 자칫 따분할 수 있을 정도로 고전적인 편성과 사운드가 정통파의 감동을 안겨준다. 한동안 일본에서 보아의 곡들에 아쉬움이 있었다면, 정도를 걷는 프로덕션과 보컬의 저력을 살린 이 싱글에 앞으로를 기대하게 될 듯하다.
오요: 숨 쉴 틈도 없이 빠르게 내달리는 첫 소절을 듣자마자 ‘그래 이 맛이야!’를 속으로 외쳤더랬다. 일본 활동 기간이 길었던 탓일까. 보아의 목소리는 일본어 가사에서 그 진가를 발휘한다. 곡 자체만 보자면 새로울 것도 없고 구성도 기존의 SM산 K-Pop곡들에 비하면 단촐하다. 다만 이 싱글이 어떤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것만은 확실하다. 이를테면 각자에게 ‘보아’라는 아티스트가 차지하고 있는 기억과 감정을 고스란히 환기시키는 트랙이 아닐까 싶다.
맛있는 파히타: 정박으로 찍어내는 전자음에다가 까리한 베이스를 올려놓은 그 불균형은 흡사 탕수육 튀김에다가 청국장을 쏟아붓는 느낌이다. 가요 멜로디도 촌스럽다.
미묘: 현란한 베이스 태핑을 비롯해 흔히 ‘덥스텝’이라 불리는 워블베이스의 브리지까지, 사뭇 강렬하고 시원한 사운드로 구성돼 있다. 포미닛, 비스트 등의 음반에 참여한 공동작곡가 임상혁의 경력을 실감하는 한편, 짤막한 영어 문장 모티프나 감탄사로 이뤄진 리프레인 등 또한 ‘케이팝’을 이리저리 모니터하며 작법을 모색했음을 느끼게 한다. 특히 브리지 부분은 신인에게서 기대할 법한 정도보다 훨씬 매력적이고 신선하게 들린다. 그러나 ‘뽕끼’ 깃든 멜로디가 쉽게 스쳐 흘러가 버리는 가운데, 군데군데 가사와 리듬의 조합이 “질척질척”하고, 보컬 디렉팅 역시 허점이 많다. 만일 이들이 훗날 대형 아이돌이 된다면 ‘팬들은 아는 초기곡’으로 남을지 모르겠다.
13: 저예산임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신선한 콘셉트을 살린 뮤직비디오가 돋보인다. 물론 그룹명부터 멤버들의 스타일링, 뮤직비디오 아트 디렉팅 모두 어디선가 본 듯한(아, 인터넷 쇼핑몰!) 감각의 색감과 타이포를 ‘안전하게’ 따오기만 한 느낌이 없잖아 있다. 쇼핑몰 모델처럼 일관된 예쁜 표정과 포즈에 매달리는 구성도 사실 아쉽기만 하다. 안무도 아마추어 댄스팀의 느낌이 완연하고 노래 역시 예측하지 못한 시점에서 끝나버리는 바람에 다소 어리둥절하긴 했지만, 이보다 더욱 난국인 걸그룹 비기너들도 넘쳐나는 요즘 이 정도의 콘셉트와 퀄리티를 들고 나온 건 적어도 죄는 아니렷다.
미묘: 기대하기에 충분한 이름들, 그리고 실제로도 수려한 질감. 타이틀 ‘Delicious’가 샤이니에게서도 인피니트에게서도 흔히 들리지 않던 색다름을 매끈하게 선보이는 것은 미덕이라 할 만하고, 이어지는 ‘미로’와 ‘You’re My Lady’도 스타일리시한 훵크 질감을 보여준다. 그러나 어딘지 미심쩍은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그리고 그것은 어떤날의 ‘출발’이 그다지 큰 재해석의 여지 없이 들려오는 순간 거의 확신으로 바뀐다. 각 곡이 평균은 충분히 되는 퀄리티와 나름의 팀 컬러를 선명하게 보여주고, 무대에서는 즐겁고 화려한 퍼포먼스를 기대해 볼 만하다. 그러나, 특정 멤버에 대한 애정에도 불구하고, 이 음반이 충분한 준비를 거친 결과물인지에 대해선 좀처럼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다.
ML: 샤이니와 인피니트에 눌리지 않고 투하트라는 팀의 개성을 끄집어내는 청량감 있는 곡들이 재밌다. 곡 안에서 스윗튠과 SM 쪽 작곡가들의 협업으로 발생하는 긴장감이 주는 잔재미도 상당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앨범 커버나 화보, 뮤직비디오와 같은 시각적 참조점이 없을 경우, 왜 하필 우현과 키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뚜렷하게 개성이 드러나지 않는 둘의 보컬을 듣고 있으면, 일부러 차이를 최소화하였단 생각이 불쑥불쑥 솟아 오른다. 그때야 이들의 주 소비층이 동기화할 대상이 없이 우현과 키의 조응만으로 이루어진 ‘Delicious’ MV의 표백된 세계를 이해하게 된다.
오요: SM이 울림 엔터테인먼트를 ‘레이블’로 흡수한 뒤 내놓는 결과가 이것이라면 실망스럽다. ‘울림 엔터테인먼트의 색깔을 유지하면서 SM 엔터테인먼트의 장점을 접목시키겠다’는 공약 비슷한 무언가에 대한 강박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투하트라는 유닛과 이 미니앨범은 너무 급작스럽다. 스윗튠과 션 알렉산더(Sean Alexander)의 협업이 꽤나 상징적이지만 원래 잘하던 사람들이 잘한 것일 뿐 협업으로 인한 시너지는 찾아볼 수 없다. 그렇다면 나머지 수록곡들은 어떨까. 딱히 언급할 필요도 없어 보인다. 우현과 키의 조합은 좋다, 그렇지만 엉성한 기획으로 인해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음반이 나와버리고 말았다.
유제상: 정규 앨범에는 다소 무리를 두더라도, 미니 앨범은 최대한 준수하게 가는 SM 엔터테인먼트 특유의 성향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앨범. 인트로부터 마지막 트랙까지 무지하게 달린다. 중간에 ‘Tell Me Why’에서 미드템포로 바뀌긴 하지만 하여튼 달린다. 그리고 달리면서도 크게 처지는 느낌이 없다. 부르는 쪽이나 듣는 쪽이나. 그래서 즐겁다. ‘조밀한 완성도’라는 측면에서 소녀시대의 근작과 비슷하지만, 좀 더 들을 건덕지가 많아서 즐거운 ‘좋은 앨범’이라 평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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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replies on “1st Listen : 2014.03.01~03.10”
보아의 앨범 커버는 TLC 같은 90년대 팝을 모티브로 한것으로 그에 맞춰 메이크업이나 컨셉을 잡았죠. 오요님께서 안타까워할정도로 손을 댄것이 아니구요. 북클릿만 봐도 안할 소리는… 팬이라서일수도 있겠으니 의미없고 (또 괜히 이런 댓글 달았다고 보아팬들 유난이라는 소리나 들을까 안달려고 했지만;;) 음반과 더불어 커버까지 평가를 하고 싶었다고하면 추측보단 팩트가 좋았겠고, 본인 추측이 팩트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생각해보니 어쩔수가 없네요; 다 써놓고보니;;;;
에디터입니다. 중요한 의견 감사합니다. 필자님과 상의해본 결과 약간 오해도 있었고^^; 또한 내용이 부적절하다는 지적에도 동의할 수 있었습니다. 해당 문구는 삭제하였습니다. 언짢으셨다면 사과드립니다. 앞으로 많은 관심 부탁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