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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마의 억장이 무너지게 했던 한 마디

‘홈마란 누구인가’와 같은 기사들이 잔뜩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철없는 10대 소녀’로 인식하는 시각의 벽이 두터운 것도 사실이다. 그들이 누구인지 물어보기 전에, 그들이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지 물어보는 게 어떨까.

‘홈마’. ‘홈페이지 마스터’의 준말로, 아이돌 팬페이지를 운영하는 팬을 말한다. 그중에서도 ‘홈마’라는 말을 들었을 때 떠올리는 것은 거대한 DSLR을 들고 뛰는 아이돌 팬들이다. 지금 ‘홈마’는 ‘사진 찍는 팬’의 다른 말이 되었다.

‘홈마란 누구인가’와 같은 기사들이 잔뜩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철없는 10대 소녀’로 인식하는 시각의 벽이 두터운 것도 사실이다. 그들이 누구인지 물어보기 전에, 당신은 그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게 어떨까. 그래서 많은 ‘당신’들이 그들에게 한 말들을 모아보았다. 아이돌 팬들, 방송국, 기획사 스태프, 매니저, 공연장이나 행사장의 일반 관객, 일명 ‘머글’까지. 현직 홈마들의 이야기를 모은 뒤 몇 가지 유형으로 다시 나눠보았다. 상황 일부는 각색되었으나, 소제목은 실제로 이들이 들은 말을 거의 그대로 옮겼음을 밝힌다.

“야, 빠순이, 나가라!”

– 포토월 앞에서 연예부 기자들에게 홈마 ㄱ이 들은 말

“연예부 기자들 중에도 사진 찍어서 다른 홈마들한테 파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홈마들이 직접 찍으러 오는 건 막고 싶어 한다. 이미 홈마를 사진 데이터 장사의 경쟁자 정도로 인식하는 모양이다. 개별 행사의 취재 권한은 주최 측이 판단하고 교부하는 것이지, 기자들이 공동체로서 결정할 일이 아니다. 고작 포토월에서 연예인 사진 못 찍게 방해하는 게 연예부 기자의 취재권을 보장하는 일이라고 믿는다면 언론고시를 다시 보셔야 할 일이다. 더 재밌는 사실은, 나는 이 말을 덩치 큰 남자 찍덕과 함께 갔을 땐 들어본 적이 없다. 그들이 “얼굴이 낯선데, 기자 맞냐”고 물어본 것은, 그들이 생전 처음 봤을 것이 분명한 그 남자 찍덕과 동행했을 때가 아니라,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음에도 동안의 외모인 나 혼자 있을 때였다.”

“내가 쟤네 부모면 난 저런 딸 있는 거 싫을 거 같아”

– 영화 시사회장에서 지나가던 커플에게서 홈마 ㄴ이 들은 말

“아마도 내가 ‘딸’이기 때문에 더 이런 말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이돌이 등장하는 행사장은 대개 일반인 기준에선 그닥 대단치 않은, 돈 안 들이고 쉽게 즐길 수 있는 여가 공간이다. 세상에 돈 이렇게 열심히 벌어서 열심히 쓰고도 욕먹는 거 아이돌 팬 밖에 없을 것이다. 아이돌 팬들은 돈 덜 쓸수록 ‘순정’이고, 돈 많이 쓸수록 ‘불효’부터 ‘정신병’까지 아주 다양하게도 매도되기 때문에.”

“이런 데까지 따라오고, 정신병자 같아”

– 항공편 대기 중에 게이트 앞에서 동행하던 스태프와 매니저에게서 홈마 ㄷ이 들은 말

“해외 공연을 해외 팬들만 봐야 한다는 법이 어디 있나요. 아이돌이 투어를 떠나면 국내 팬들은 가만히 기다리거나, 아니면 기다리지 않고 떠나는 일밖에 남지 않게 됩니다. 어떻게든 한 번 더 보고 싶어서 따라 나서면서, 사생으로 오해 받기 싫어 숙소나 교통편이 겹치지 않도록 노력도 합니다. 피치 못하게 공항에서 한 번 마주치는 일이 ‘정신병자’가 되는 짓일까요. 업계인이 교양 없이 ‘정신병자’ 운운하는 건 또 어떻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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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와요? 누구에요? 아이돌?”

– 행사장 앞에서 신인 아이돌 무대를 기다리다가 행인들에게서 홈마 ㄹ이 들은 말

“아이돌 팬이 오프를 뛰다 보면 거의 무조건 한 번은 들어보는 말이다. 순수하게 궁금해서 물어보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행사 출연진 명단을 읽을 줄도 모르고 네이버에 포토 뉴스를 검색해볼 줄도 몰라서 팬들에게 질문을 할까? 답을 하고 나면 대부분 ‘누구야? 모르겠는데. 안 유명한가 봐’라고 비웃으며 자리를 뜨거나, ‘대단한 가수도 아닌데 왜 길을 막고들 서있어?’라며 짜증을 퍼붓고 간다. 현장에 나온 여성 팬은 무시할 만하다고 생각하니까. 특히, 대포를 들고 있는 홈마는 쉬운 표적이다.”

“우리 애들로 돈 버는 주제에”

– 커뮤니티에서 툭하면 욕먹느라 지쳐서 탈덕한 홈마 ㅁ

“내가 진짜로 포토북을 수천 권 팔아서 수천만 원을 벌었다면 억울하지 않을 것 같다. 그런 홈마가 어딘가에 있다는 풍문은 들은 적 있었지만, 내가 살면서 직접 만나본 홈마들 중엔 없었다. 아마 극소수일 것이고 체감상은 제로다. 하지만 그 풍문만을 들은 팬들은 모든 홈마들이 정말 포토북으로 떼돈을 버는 줄 오해하기도 한다. 나는 결코 작지 않은 팬덤을 보유한 남자 아이돌의 큰 팬페이지 홈마였지만, 회사가 정식 화보집을 수만 권씩 팔아치우던 때 내 포토북은 최대 200권 미만만이 팔렸다. 서포트는 팔 할이 내 카드빚이었다. 좋은 선물을 해주고 싶지만, 내 돈만 가지고는 절대 무리니 조금이라도 더 모아보려 한 결과가 그랬다.”

“이건 무슨 수작이야?”

– 일본 공연장의 진행 스태프와 경호원에게서 홈마 ㅂ이 들은 말

“일본 콘서트를 보러 입장하다가 넘어졌다. 전석 스탠딩이었던 공연장에 의료진이 없어서 파스 하나 겨우 얻어다 발목에 붙이고 공연장 복도의 휠체어에 앉았다. 사진은커녕 공연 관람도 물 건너 간 셈이니 우울해져 우두커니 있었는데, 다짜고짜 경호원이 오더니 들고 있던 가방을 수색해서 마운트조차 안 돼 있던 카메라를 꺼내서 가져갔다. 그리고 “지금 무슨 수작이냐”, “진짜로 아픈 거 맞냐”고 따지기 시작했다. 일본 공연이 유독 한국, 중국 팬들을 잡아먹을 듯이 군다는 건 들었지만, 정당히 티켓 사서 온 관객을 테러리스트마냥 다루는 걸 겪고 나니 다시는 오고 싶지 않아졌다. 최근에 방탄소년단 홈마들이 겪은 일들이 폭로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놀랐지만, 솔직히 홈마들은 놀라지 않았다. 일본에서는 예전부터 그랬으니까.”

이 외에도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홈마들에게 가해지는 압박은 상당하다. 해외 투어를 기꺼이 따라나서는 홈마의 숫자가 늘어나기에 이들이 해외에서 겪는 문제 또한 점점 가시화되고 있다. 물론 현장 판매 등 현지법과 관련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하지만 모두 불법 상행위를 하는 것으로 간주되거나, 공연장 내 촬영만이 목적일 것으로 짐작해 모멸감을 주는 수준의 정밀한 수색을 거치는 경우도 많다. 이 과정에서 성추행 또한 빈번히 일어난다. 이런 일이 해외일 경우 보는 눈이 적다는 이유로 보복하듯이 일어난다는 지적도 있다. 단속을 빌미로 ‘홈마’나 ‘찍덕’의 인권이 침해되거나 편견으로 인한 불이익을 받는 일은 분명 문제적이다.

지적재산권, 초상권, 사생활 등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많은 경우 형사가 아닌 민사의 영역이고, 소속사들이 마케팅의 대승적 차원에서 묵인하고 있다는 시각 역시 거기서 비롯된다. 그런 한편, 커뮤니티에는 방학과 졸업 시즌마다 ‘카메라 스펙’을 묻는 글이 왕왕 등장한다. 상당히 많은 ‘소녀팬’은 ‘풍선 든 10대 소녀’에 그치려 하지 않는다. 과거엔 ‘팬클럽 임원 언니’가 로망이었고, 지금은 그것이 ‘홈마님’이 되었다. 홈마는 팬 문화의 일부로서 역사성을 갖고 현재의 균형점에 도달한 것이다. 이렇듯 복잡한 타래를 푸는 일에는, 홈마에 대한 신비화나 편견보다는 합리적인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조은재

By 조은재

우리 존재 화이팅

2 replies on “홈마의 억장이 무너지게 했던 한 마디”

홈마 출신의 걸그룹 멤버도 알려졌죠.
가수와 팬 입장에서 고마운 분들이기도 하구요. 부정적인 인식을 해소하기 위해서 개선할 부분도 필요해 보여요. 음악방송 출근길에서 위험해 보이는 장면도 있더라구요. 다른 가수나 심지어 다른 멤버에 방해가 되는 경우도 있구요.
위에 나온 사례 중에 홈마에만 해당하지 않는 부분이 있죠. 아이돌 팬 전반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인데요. 이건 따로 해결해야 할 문제죠. 본문엔 여성의 언급이 나오는데, 삼촌 팬에 대한 시각도 곱진 않죠.

여태까지 아이돌로지에서 봤던 중 가장 흥미로운 관점이네요. 홈마 문화가 뮤출과 만나서 보여주는 악질적인 면모라든지, 붙수니, 사생집단의 자료판매 등 부정적인 면이 있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소비자이자 2차적 문화창작자로 활동해주는 팬덤 집단을 판매자가 무시하는 해괴한 상황에 문제의식이 없어선 안 되죠. 본문에 나와있는 일본 건만 해도 그래요. 이를테면 일본 유명 음방에 가서 함부로 직캠을 찍고 올려서 본인이 좋아하는 가수와 다른 팬들까지 제재받을 위험을 남기는 일은 잘못입니다. 하지만 그걸 일본 공연만 갔다하면 일본 방송국의 제재와 전혀 관계없는 공연임에도 케이팝 아이돌 모두가 그러한 제재를 따라하는지, 왜 그걸로 갑질을 시작하는지에 대해서도 누군가는 물어봐야죠.
세상 어디 소비자가 어린 여성팬층이면 철없는 빠순이, 어린 남성이면 한심한 빠돌이, 어른 남성이면 늙어빠진 저씨, 어른 여성이면 줌내나는 줌마 취급을 받는지, 심지어 팬들끼리도 계자들의 영향을 받아서는 서로 어디는 줌마들이 먹어서 댓글에 줌내 난다, 어디는 빻은 저씨들이 머머리인데 팬싸에 간다, 어디는 초딩 티나서 숙연하다라며 비난을 하는 건지. 왜 나이 성별 같이 지불한 금액과 전혀 상관 없는 이유로 대접에 차등을 두려고 하는 건지 누군가는 이해가 안 간다고 말해야죠.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