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사실 저도 한국의 지하돌에 대해 특별히 잘 알진 못합니다. 어떤 방식으로 써야 할지도 고민이었죠. 일단은 활동을 쭉 정리하는 것에 중점을 둘 생각입니다. 예고했듯 시작은 비운의 컨셉돌 식스밤입니다. 왜 저는 식스밤을 ‘비운의 컨셉돌’이라고 부르는 걸까요?
1.
식스밤은 데뷔한 지 어느덧 6년이 넘은, 아이돌로는 꽤 오래된 그룹입니다. 하지만 실질적인 활동 기간은 3년 남짓 밖에 안 되는 슬픈 그룹이기도 합니다. 이름이 ‘식스밤’인데 6명이었던 기간은 데뷔 때밖에 없는 특이점도 있죠. 데뷔 전에도 부상으로 한 명이 탈퇴해 뮤직비디오에 5명만 출연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영지가 추가 합류해 6명이 되었지만, 영지는 음반이 완성된 이후에 합류했기 때문에 곡에는 참여할 수 없었다더군요.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수빈, 나비, 의현, 지우, 영지, 그리고 혜진의 6인조로 첫 미니앨범이 발매됩니다. 타이틀곡은 ‘치키치키 밤’.
‘치키치키 밤’의 M/V. 5명만 나오는 게 눈에 띕니다.
‘치키치키 밤’은 좀 묘한 부분이 있습니다. 1절인지 후렴인지 애매한 초반부의 진행, 지금의 식스밤을 생각하면 다소 생소할 소위 ~쎈 언니~ 풍의 곡과 스타일링, 과하게 드럼이 강조된 사운드까지. 이 중 ~쎈 언니~ 부분이 특히 눈에 띄는데 아마 당시 2NE1, 포미닛, 브라운아이드걸스 등의 영향인가 싶네요. 미니앨범의 전체 프로듀싱을, 래퍼 도끼의 친형이 소속된 3인조 그룹 ‘이지스’가 맡은 것도 영향을 줬을지 모르겠네요. 이지스는 피처링으로도 참여했는데, 식스밤의 몇몇 멤버는 분량이 그 피처링 아닌 피처링보다도 적습니다. 그 때문인지 ‘치키치키 밤’ 활동 후 별다른 소식이 없던 식스밤은 4명의 멤버가 탈퇴하며 팀이 해체됩니다.
2.
남은 혜진과 나비는 ‘듀오플로’란 힙합 듀오를 결성하지만, 식스밤과 마찬가지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진 못합니다. 이는 홀로서기를 선택한 나비의 탈퇴로 이어지며 그룹은 자연스레 또 해체됩니다. 이후 남겨진 혜진은 특별한 활동이 없다가 ‘소아’로 활동명을 바꾸고, 다인, 유청, 한빛을 새로 영입해 재결성된 4인조 식스밤으로 돌아옵니다. 그 후 첫 미니앨범의 수록곡이었던 ‘Step To Me’를 리메이크해 발표하죠. 사실 이 곡은 이지스의 전신인 2인조 그룹 ‘DnG’의 곡을 리메이크해 수록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사실상 두 번째 리메이크인 셈인데, 이 곡에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 걸까요? 물론 그럴 리는 없겠지만, 아무튼 행사를 위한 리메이크인지 아예 ~나이트 댄스~ 풍으로 더욱 댄서블해지고 템포도 빨라졌습니다. 문제는 의상인데요. 제게 식스밤이 비운의 컨셉돌이 된 것은 이때부터입니다. 래쉬가드와 레깅스라는 다소 선정적인 스타일링을 시작으로, 이어지는 콘셉트들이 점점 더 과격해지거든요.
‘Step To Me’의 미니앨범 버전과 싱글 버전. 유튜브라 둘 다 음질이 별로지만, 싱글 버전은 사운드가 너무 납작하고 라디오 톤이라 더욱 듣기 불편합니다. 목소리가 특히 비교되네요.
‘Step To Me’의 직캠. 의상이…
당시 반응을 실시간으로 확인하지는 않아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유튜브에 업로드된 직캠 숫자만 세어봐도 확실히 ‘치키치키 밤’보다는 인기가 더 많았던 거 같습니다. 그 이유가 의상이라 생각했는지, 이어진 ‘10년만 기다려 베이베’에서는 분홍색 라텍스 바디수트라는 더욱 충격적인 의상을 입히게 됩니다. 이 곡은 SNS에서 ‘경운기 춤’으로 화제가 되었던 바비문의 ‘10년만 기다려줘 (Ma Baby)’를 조금 바꾼 리메이크인데, 곡 자체는 전형적인 멜버른 바운스 기반의 EDM으로 특별할 건 없습니다. 원곡의 화자는 남성인데 가사를 그대로 가져와 화자만 여성으로 바꾼 게 좀 재밌긴 하지만 그런 건 사람들에겐 아무 의미가 없었고, 속칭 ‘분홍 소시지 의상’만 남게 되었죠.
‘10년만 기다려 베이베’의 M/V. 여러모로 굳이 할 필요 없는 것들을 합니다. 당시에 행사 좀 했다던데 돈은 많이 버셨나 모르겠네요. 여담인데 원곡보다 악기의 톤이 대체적으로 가벼워진 건 의도인지 궁금합니다.
3.
이후 유청이 건강 문제로 탈퇴, 한빛도 연이어 탈퇴한 뒤 슬비와 가빈을 새로 영입해 또 4인조가 된 식스밤. 의상으로는 더이상 갈 곳이 없다 느꼈는지 급기야 극단적인 콘셉팅을 합니다. 바로 공개 성형수술입니다. 장기 프로젝트라는 이름 하에 ‘예뻐지는 중입니다 Before’와 ‘After’로 나눠 성형 전후를 영상으로 담는 다소 끔찍한 활동을 하게 됩니다. 사실 콘셉트가 극단적이어도 음악이 좋으면 일부 납득할 수도 있겠지만, 딱히 할 말이 없는 곡들인 게 문제네요. 굳이 곡에 대해서 특기한다면 ‘Before’는 유치하다 싶을 정도로 밝고 가벼운 곡에서 갑자기 안 어울리는, 그렇다고 자연스럽지도 않은 EDM 드롭이 나오는 당혹감 정도입니다. ‘After’는 큰 특징 없는 EDM일 뿐이라 뒤에 깔린 인터폴레이션 샘플만 좀 귀엽네 싶은 정도입니다. 하지만 콘셉트와 영상은 정말 할 말이 많아지는 것들인데 제가 하지 않아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했을 테니 아끼겠습니다.
4.
파격의 연속으로 화제가 되긴 했는지 ‘예뻐지는 중입니다 After’의 조회 수는 역대 최고를 기록했습니다. 과연 그것으로 만족한 건지 아니면 지친 건지 소아와 다인은 유닛 ‘소다밤’을 결성하고, 그간의 식스밤을 쭉 팔로잉했던 사람이라면 당황스러울 콘셉트 변화를 보여줍니다. 싱글 ‘왜 떨려!?’는 전반적으로 90년대 한국의 여름 시즌송같은 느낌을 주는데, ‘Step To Me’ 이후로 줄곧 ~행사음악~만을 만들었던 팀인지라 편안하고 무리하지 않는 곡 운용이 괜시리 신선하기까지 합니다. 보컬도 아주 수려하다고 할 순 없지만 이런 곡에 생각보다 훨씬 잘 어울리네요.
이 이후로 최근까지 발매된 두 장의 싱글은 모두 차분하고 무리하지 않는 음악들입니다. 지난 극악의 콘셉팅을 벗어나 조금은 편안한 음악들을 들려줄 수 있을 것 같아 향후를 기대하게 됩니다. 두 싱글이 음악적으로 아쉬운 점이 없는 건 아닙니다만 좋은 점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는 무리수를 두지 않고 활동을 이어가게 된다면 좋겠네요. 다만 유일한 데뷔 멤버인 소아가 올해로 데뷔 7년 차고 계약이 어떻게 되어있는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내년에 어찌 되려나 궁금한데, 만약 탈퇴하게 된다면 식스밤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짐작하기 어려운 것도 아쉽네요.
5.
‘Beautiful Life’가 1월에 발매되었으니 글을 쓰고 있는 오늘을 기점으로 약 3개월 정도가 지났네요. 차기작이 언제 나올진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정규음반이 하나쯤 발매될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최근 멤버 가빈의 탈퇴 소식이 있었는데 다음 활동은 어떻게 될는지 궁금하기도 하네요. 앞으로 좋은 활동을 기대해보겠습니다. 이 연재도 좀 더 빠른 시일 내에 다시 찾아뵙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다음은 배드키즈입니다.
- 지하돌 열전 :① 식스밤 - 2018-05-06
- 지하돌 열전 : 시작하기에 앞서 - 2018-0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