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듀스 48〉 – 이 멋진 프로그램에 축복을!

이미지 ⓒ 엠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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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번에는 또 뭐라고?”

그래, 평자 입장에서는 이번 칼럼이 새삼스럽다. 허다한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중에서 평자는 〈프로듀스〉 시리즈를 가장 싫어한다. 매우 가학적이기 때문이다. 모두들 잘 알다시피, 〈프로듀스〉 시리즈는 일종의 새디즘으로 점철되어있다. 시즌1이고 시즌2고 경쟁에서 아득바득 살아남아 최종 11인에 오른 이들은 성장 드라마의 주인공이 아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와 한층 더 강해진 초사이어인 같은 존재지. 그런 의미에서 이 프로그램은 〈우상의 황혼〉에 나오는 니체의 경구를 가장 충실하게 실현하고 있다. “나를 죽일 수 없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한다.”

각설하고, 〈프로듀스〉와 관련된 모든 요소들이 평자에겐 그리 달갑지 않았다. 뇌에 부하 걸리는 참가자 수, 악마의 편집, 목숨 건 국민 프로듀서들의 픽, 거기에 내재된 힘과 힘의 충돌, 끽해야 평자 또래밖에 안 되는 꼰대들의 갈굼 등등… 게다가 이번에는 AKB48을 위시로 한 AKS산 아이돌까지 참가한다고 하니 점입가경으로 여겨질 수밖에. 이들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은 〈프로듀스〉 못지않게 부정적이었다. 아키하바라에서 출발, 멤버가 많고 수시로 바뀜, 찾아가는 소극장 공연, 복고풍의 노래 등등…

심지어 〈프로듀스〉와 이들은 몇몇 단점을 공유하기도 한다. 서로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프로듀스〉 시리즈가 AKS산 아이돌을 레퍼런스 삼았기에, 이 둘의 결합은 사실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바였다. 표절 논란이 일어나면 원곡을 사버리는 최근 한국 가요계의 힘을 생각했을 때 글로벌 프로젝트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 테고.

다만 상상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것을 실현시키긴 어려운 법. 개인적으로는 모든 48들의 아버지인 아키모토 야스시(秋元康)가 한국방송에 직접 등장할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게다가 이들에 대해 무지한 평자조차 그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 무토 토무(武藤 十夢), 미야와키 사쿠라(宮脇 咲良) 등도 출연한다고 한다. (사쿠라 팬들이 DC 인사이드에 몰려와 움짤로 영업도 했다.) 이렇게 〈프로듀스 48〉은 시작되었다.

대충 이런 GIF로 영업했던 것 같다.

보는 재미가 살아있는 프로그램

솔직히 말해 첫 화는 적잖이 충격적이었다. 90명이 넘는 얼굴도 모르는 소녀들이 줄줄이 입장하는 가운데, 전체 참가자 중 절반을 약간 밑도는 39명이 일본 출신이다. 게다가 ‘그래, SKE48까지는 그래도 들어봤다. HKT48은 뭐고 NGT48은 또 뭐냐’ 같은 혼란스러운 상황이 계속되는 가운데, 한 손에는 리모컨을 쥐고, 다른 한 손에는 나무위키를 연 휴대폰을 들며 방송을 봤다. 그런데… 재밌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프로그램이 상당히 안정적이라는 것이다. 물론 TV 프로그램이니 어느 정도 연출자의 의도가 반영되어야겠지만, 사실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특히 아이돌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은 이 ‘의도의 적절한 적용 지점’을 찾기가 상당히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 가급적 의도 적용을 배제하고 성장기만 드라이하게 담으면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 더 유닛〉이 될 것이고, 뭔가 의도를 잔뜩 적용했는데 별로 살릴 장면이 없으면 〈믹스나인〉이 될 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프로듀스 48〉은 ‘프로그램도 만드는 사람도 성장했구나, 훌륭해!’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방송이다.

게다가 양국의 아이돌이 나와서 직접 대결을 펼치니 자연스럽게 한·일전 분위기가 형성되는데 이 진부한 지점이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이 재밌다. 사실 시작지점에서 양측의 대결은 아예 상대가 될 수 없을 테고, 특히 48계열은 뮤직비디오를 찍어도 합이 안 맞는 춤을 추기로 유명한 이들이니 ‘어느 쪽이 우월할까’ 하는 관심이 생길 일은 없다. 그런데, 프로그램이 시작되고 한국 아이돌이 압도적인 실력을 보이자 이게 의외의 카타르시스를 자아낸다. 그렇다. 이 프로그램의 캐릭터 설정은 한국 출연진이 최종 보스고, 일본 출연진은 성장하는 주인공인 것이다. 이들을 볼 때 생성되는 감정은 한국인들이 ‘김연아 대 아사다 마오’를 보았을 때의 그것과 매우 흡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국뽕 방송…’하는 불쾌감이 막 올라오기 직전에 제작진은 성장하는 주인공의 가치를 인정한다. 그리고 화제의 주인공 사쿠라의 무대를 다음 화로 넘겨버린다. 프로그램도 만드는 사람도 성장했구나, 훌륭해!

재밌지만 지금까진 솔직히 딱 이런 기분.

문화의 차이는 이해한다. 그러나…

다만 이런 능숙해진 연출 속에서 아쉬운 점도 엿보인다. 아직 시작지점임을 감안하더라도, 양국의 출연진은 스테레오타입 그 자체의 행동을 한다. 아마 프로그램이 진행되면서 차차 이런 점도 사라지겠지만, 적어도 1, 2화의 한국 출연진은 전형적인 한국 아이돌다웠고, 일본 출연진은 전형적인 일본 아이돌다웠다. 이상한 춤을 추며 분위기를 돋우는 방식마저 말이다. 그리고 양자가 자아내는 차이를 (심사자가 앞장서서) ‘문화의 차이’로 얼버무린다. 물론 〈프로듀스 48〉이 다큐멘터리 프로그램도 아니고, 그 이상 무슨 말을 벌써 할 수 있겠냐마는, 저런 식으로 이야기하면 통용이 안 되는 것이 없다.

  • 한국 라면이 일본 라면보다 매워요! → 문화 차이야.
  • 일본 모텔은 방이 정말 작네요. → 문화 차이야.
  • 일본은 PC엔진 듀오(PCエンジンDuo)용 아케이드 카드 중고 가격이 확실히 싸네요. → 문화 차이…

출연진의 대사를 통해 문득 보이는 디테일들이 이런 프로그램의 단점을 커버하려는 듯하다. 일본 출연진 중 한 명의 대사가 떠오른다. “일본 아이돌은 아이돌의 귀여움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게 중요하니까…” 이 말은 양국 아이돌의 지향 차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국 아이돌이 군무와 화려한 연출에 초점을 맞춘다면, 일본 아이돌은 팀보다 사람 개개인에 집중하고, 그의 사랑스러움을 보여주는데 열을 올린다. 일본 아이돌이 일본적인 상황 아래 태어난 것 못지않게, 한국 아이돌 또한 대단히 한국적인 상황 속에서 탄생된 것이다. 아이돌을 삼성 휴대폰 만들 듯이 키워낸다. 그게 우리가 자랑하는 케이팝 아이돌의 실체다.

대중문화에 있어서 국민성 혹은 민족성이 개입된 담론은 결코 단순히 풀어낼 수 없다. 현대인은 미국 중심의 글로벌 스탠더드 시대를 살지만, 대중문화는 결코 글로벌 스탠더드가 모든 지역에 적용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한류를 위시로 한 케이팝 담론 전반은 대단히 보편주의적이고 폭력적이다. 우리는 방탄소년단이 세계적으로 인기 있다는 사실을 대단히 자랑스러워 한다. 그러나 방탄소년단의 인기가 자랑스러울지언정, 그들이 다른 나라의 가수들보다 반드시 우월하다고 할 수는 없다. 케이팝 스타들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잘 맞춰져 있다고 해도 그들이 세계 최고의 가수일 수는 없으며, 그럴 필요도 없다.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건만 유독 성과가 중시되는 한국에 사는 우리들에게 이는 당연하지 않은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모두들 러시아 월드컵에서 죽을 쑤고 있는 리오넬 메시의 발언을 잊었는지? “승리는 너의 모든 것이 될 수 없다. 설령 모든 경기를 이겼다 해도.”

〈프로듀스 48〉이 우리에게 던지는 시사점

이야기의 원점으로 돌아와 보자. 어찌되었든 이 프로그램은 아이돌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이므로, 출연자들은 경쟁을 피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이런 프로그램을 수도 없이 봐왔기 때문에,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잘 알고 있다. 타이틀 곡 암기, 등급의 이동, 경연곡 선택, 탈락자 발생, 즙 짜기, 빠른 년생 등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의 〈프로듀스 48〉이 기대된다면, 그건 아마도 이 프로그램에 ‘일본 출연진’이라는 기존 방송과의 현격한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언어와 문화의 차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한국식 트레이닝을 통해 어느 정도의 실력 향상을 이뤄낼 것인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국에서 어떻게 팬덤을 형성하여 12명 안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인가.

다른 한편으로는 불편한 마음도 없지 않다. 사실 평자는 몸 쓰는 일이 젬병이기 때문에, 춤을 암기하는 걸 보면 그저 ‘잘하는 사람이 있겠거니’하는 생각 정도다. 하지만 〈프로듀스 48〉의 출연진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죽어라 안무를 암기하고, 거기에 맞춰서 노래도 불러야 한다. 케이팝 아이돌 전반이 그러하듯 〈프로듀스 48〉의 출연진은 고도의 기술력을 요하며, 그것의 상당부분은 암기에 의지하고 있다. 사실 기예의 상당부분은 같은 행위를 반복하여 그것을 가다듬는 것이므로, 그것이 그른 행위라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일본 (그것도 현역인) 아이돌까지 불러가지 저런 걸 굳이 해야 되나’라는 생각을 해본 것도 사실이다. 타인을 즐겁게 하기 위해 이들은 꼭 괴로워야 하는 걸까?

프로그램의 2화를 통해 희망까진 아니지만 그래도 한 줄기 빛을 본다. 오랜 촬영으로 모두들 지쳐가고 있을 때, 애증의 곡 ‘나야나’가 나오자 적잖은 출연자들이 나와서 정말 즐거운 표정으로 춤을 춘다. 아이돌과 전혀 무관한 인생을 사는 평자가, 이들의 진정성을 느끼는 것도 바로 이런 순간이다. 살아온 인생도 짧고 춤과 노래밖에 모르고 자라온 이들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져 움직인다.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진정 좋아하는 일을 서로 공유하는 것이다. 만약 〈프로듀스 48〉의 모토가 단순히 양국 모두에게 인기 있는 아이돌을 키워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진정한 문화교류’를 이뤄내는데 있다면, 한국 아이돌 시스템의 장점 못지않게 일본 아이돌의 장점 또한 프로그램에 반영되었으면 한다. 이미 프로그램 내적, 외적으로 이 정도를 이뤄냈는데 그 뒤의 진행이 뻔하다면 정말 아까운 일 아니겠나.

그러니까 오버히트 그만좀 나오라고…

유제상

Author:

대학에서 문화콘텐츠, 스토리텔링, 신화와 문화원형 가르치고 있습니다. 내년에도 그럴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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