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로지 필진 단평. 정세운, 민서, 풍뎅이&뉴타운보이즈, 아스트로, 시크엔젤&큐피트, 뉴키드02, 카드, 아이리수, 백퍼센트, 인투잇, FT아일랜드, 열혈남아(타지혁)의 새 음반을 다룬다.
마노: 어쿠스틱 세션으로만 오롯이 채운 사운드 위에 얹어진 단조풍의 멜로디를 읊조리는 목소리는 마치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는 듯하다. 잘게 떨리는 불안을 노래하다가도, 이내 희망과 설렘을 품은 목소리가 햇살 들이치는 틈 사이에서 기분 좋게 살랑인다. ‘20 Something’이라는 제목처럼, 딱 그 또래의 명과 암을 고스란히 담아 담담하게 읊조리는 목소리가 구간별로 환기되는 곡조와 편안하게 어우러진다. 프로듀서들의 면면만큼이나 다채로운 장르로 앨범을 채웠음에도, ‘정세운’이라는 이름 아래 하나로 정갈하게 묶여 있어 편안한 마음으로 전체를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미덕. 피톤치드 과다 함량의 보컬과 산들산들 흔들리는 어쿠스틱 멜로디의 조화가 기분 좋게 귀를 간질이는 ‘Eye 2 Eye’를 꼭 놓치지 말길.
심댱: ‘아이유가 열었던 20세 이미지의 연장선 아냐?’하고 삐딱하게 들었지만 올곧게 펼치는 순수함에 무장해제 되어버리는 정세운의 EP. 트랙별로 프로듀싱 타이틀을 거는 것은 이제 그의 시그니처가 된 듯하다. 어쿠스틱 기반으로 아이돌보다 부드러운 노래를 하는 것 같지만 ‘Waterfall’처럼 트랙 안의 다이내믹, 멜로한 ‘Eye 2 Eye’를 지나 다소 냉정한 이미지의 ‘La La’의 낙차 등은 아이돌이 가져야 할 그 무언가다. 솔로 아티스트면서도 아이돌의 면모를 가진 그의 음악은 듣기 좋지만 흥미로움도 함께 가져다준다. 귀를 무디게도 지치게도 하지 않는 편안함이 그의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묘한 위치에서 노래하는 그의 앞을 기대한다. 아직 그는 ‘20 Something’이니까.
유제상: 음원 강자들이 자주 선보이는 이지리스닝 계열의 음악을 담았는데, 타이틀 ‘20 Something’에는 아니나 다를까 멜로망스의 정동환이 참여해 그런 색채가 더욱 짙다. 괜찮은 결과물이고, 여섯 곡이나 수록되어 볼륨 면에서도 나쁘지 않은 편. 타이틀 외에 한 곡 정도 추천하자면 이단옆차기가 프로듀싱한 네 번째 트랙 ‘La La’를 들 수 있겠다. 벌써 가물가물한 정세운의 아이돌스런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까.
조은재: 지나치게 감상적인 표현인 것 같지만, 섬유유연제 냄새가 날 것 같은 앨범이다. 포근한 어쿠스틱 기타가 앨범 전체에 잔잔히 깔려 있고, 정세운의 음색은 그런 기타 사운드와 쉽게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섞여 들어가 있다. 부제처럼 표기한 각 트랙별 프로듀서의 이름이 무색할 만큼, ‘정세운’이라는 색깔 하나로 예쁘게 칠해진 앨범. 앞서 발표했던 미니앨범들의 색깔과도 큰 괴리가 없다. 오히려 유기적인 디스코그래피를 그려 나가며 아티스트 정세운만의 ‘빅 픽쳐’를 레이어링 하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준다. 소년미를 한껏 강조한 ‘20 Something’의 뮤직비디오 또한 추천할 만한데, 덤덤하게 위로를 건네는 가사와 보는 이까지 편하게 해주는 따뜻한 톤의 화면이 곡의 완결성을 더욱 부각시킨다. 잘 키운 소년 하나, 열 멤버들 부럽지 않다.
랜디: 데뷔작 “Is Who”를 놓치긴 했다만 민서는 진작부터 아이돌로지에서 다뤄야 했을 가수다. 텔레비전 오디션에 처음 출연했을 때만 해도 숏컷에 기타를 든 포크싱어의 모습이었기 때문에, 미스틱 엔터테인먼트로 간다고 할 때엔 당연히 퓨어킴처럼 미스틱89에 소속될 줄 알았다. 의외로 그는 조영철이 프로듀싱하는 에이팝에 소속되었고 현재는 아이유와 가인의 전철을 밟아가는 중이다. 새 싱글 ‘Zero’는 일본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을〉을 참고한 듯하다. 시원시원하고 멋진 뮤직비디오지만 레퍼런스가 오래지 않은 터라 현세대 일본 문화 덕질 혹은 편승 정도로만 보인다. 아쉬운 콘셉트. 데뷔 프로젝트가 4부작으로 기획되었다던데, ‘Zero’가 그 마지막 곡인지는 홍보 내용에 없어서 확인하기 어려웠다. 아마 이 싱글은 깜짝 발매고 한 곡이 더 남은 것으로 보인다.
프리데뷔 프로모션으로 유튜브에 꾸준히 다양한 어쿠스틱 커버를 올린 것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현재 세미-아이돌 외피를 입은 이상 그렇게 보여준 음악성은 단지 ‘보통 아이돌 보다 음악 잘함’을 증명하려 한 시도처럼만 보이게 되었다. 민서에게 조금 더 잘 붙는 기획이 등장할 때에 이 겉도는 느낌은 자연스레 사라질 것이다.
유제상: 바로 전 EP인 “Is Who”의 느끼함이랑 전혀 다른 방향성의 곡. ‘Zero’는 시원하게 지르는 2000년대 중반 여성 보컬리스트의 음원 같은 건데, 개인적으로는 이런 계열의 곡이 오히려 민서의 매력을 잘 살린다고 생각한다. 뭐 그것이 평자 취향에 가깝기 때문에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사실 올해에만 네 장이 싱글이 나왔는데, 결과물들이 전반적으로 중구난방이었다. 이래서야 민서가 계속 반(半)곡 갑에 머무를 수밖에 없지 않나.
조성민: 어쩔 수 없이 ‘시대성’을 생각하게 되는 뮤직비디오들이 있는데, 민서의 ‘Zero’ 뮤직비디오는 ‘과연 이 영상이 가까운 미래에 어떻게 평가될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영화 〈너의 이름은〉을 모티브로 한 스토리는 오리지널리티를 찾기 힘들고, 웅장한 오케스트레이션은 얄팍한 패러디에 부딪혀 오히려 몰입을 깬다. 게임 OST는 무엇보다도 몰입감이 생명인데, 알 수 없는 비장함과 끊어지는 호흡이 도저히 액션 게임의 배경음악으로는 쓰이기 힘들 것 같다는 인상. 굳이 게임 OST여야 했다면, 액션 MORPG인 〈던전 앤 파이터〉보다는 차라리 〈블레이드&소울〉이나 〈아키에이지〉와 같은 필드형 어드벤처 RPG가 더 어울리지 않았을지.
미묘: 풍뎅이의 노래가 이다지도 맥 빠질 줄이야. 전체적으로 다들 (‘스파클링’하기보다는) 더위에 지친 것처럼 들리는데, 굳이 비교하자면 뉴타운보이즈 멤버들의 목소리는 BPM을 잘못 설정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평평해서 더욱 기운이 없다. 편곡요소도 들어갈 것들이 들어가긴 했으나 뚜껑을 연지 너무 오래된 것처럼 들큰하다.
마노: 굳이 ‘스페셜’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필요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전체적인 만듦새가 나쁘지 않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묵직한 느낌의 퓨처베이스 트랙인 ‘너잖아’를 타이틀로 내세웠는데, 곡 자체의 완성도는 준수하나 퍼포먼스에서 묘하게 삐걱대는 느낌이 드는 것을 보니 팀과의 상성이 좋은 장르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메인댄서 라키의 날렵한 춤사위를 볼 수 있다는 점은 좋았다). 잔잔히 일렁이는 일렉기타 리프와 함께 찬찬히 쌓아 올리고는, “너에게로, 왔잖아”하며 신스가 파도처럼 와르르 출렁이는 코러스까지의 구조가 상당히 매력적이다. 반면 브리지부터는 긴장감 없이 어수선하게 흘러가다 어물쩍 끝나고 마는데, 마무리가 다소 엉성한 인상을 주어 아쉬운 부분. 지금까지 팀이 추구해온 ‘청량미’를 계승한 듯한 ‘외친다’, 빌리어코스티가 가사를 붙인 어쿠스틱 팝 발라드 ‘내 곁에 있어줘’도 들어봄 직하다. 그리고 간곡히 부탁하건대, 조금이라도 어둡고 무거운 곡이다 싶으면 ‘성숙한 남성미’니 ‘성장’이니 운운하는 것 제발 좀 그만하시라.
심댱: 산뜻한 시도를 마치고 난 다음의 기획은 왜 해 질 녘 풍의 상승하는 듯한 스케치를 그리는 것일까. 남자 아이돌의 성장을 의미하는 키워드가 되었던가? 싶을 정도로 작년 세븐틴 혹은 갓세븐의 흐름이 슬쩍 느껴지는 아스트로의 스페셜 미니앨범이다. 강렬한 퓨처베이스와 함께 상대를 절실하게 붙잡는 듯한 가사, 케이팝식의 모호한 오브제를 뒤섞은 뮤직비디오는 아스트로가 그간 보여주었던 이미지와는 살짝 미끄러져 가는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이 앞으로 성숙한 이미지를 가지기 위해서 꼭 필요한 작업으로 보인다. 당장 100%를 보여주는 대신 다음을 위해 에너지를 아끼며 보여주는 느낌. 초기작의 향이 첨가된 ‘외친다’와 분홍빛 솜사탕 같은 달콤한 팝 ‘Real Love’에서는 여유로움이 드러나는데, 그들이 보여줄 성장의 윤곽이 잡힐 듯한 이 두 트랙을 짚으며 필자 역시 다음을 기약해 본다.
유제상: 솔직하게 말하면 개인적으로 아스트로에 대한 인상은 흐린 편이지만, 남성적인 콘셉트를 한결같이 유지한다는 생각은 들었다. 이 EP는 그러한 활동의 연장선상에 서있다. ‘너잖아 (Always You)’는 비록 기시감이 심한 곡이지만, 점점 고조되어가는 진행 자체는 나쁘지 않고, 중간 중간 들어가는 랩이 매끄러워 듣기 좋다. 눈에 띄는 점이 부족하긴 하지만 양질의 EP라고 말할 수 있겠다. 수록된 다섯 곡 중 네 곡에 짧은 영어 부제가 붙어있는 것도 인상적이고. 세 번째 트랙 ‘외친다 (Call Out)’의 청량감도 평범치 않고, 음감용으로 삼아도 무방할 EP.
마노: 안 하느니만 못할 뿐만 아니라 하지 말았어야 했던 리메이크다. 원작과 큰 변별점이 없는 편곡은 둘째 치고, 보컬이고 랩이고 전부 활기가 부족해 곡과 심하게 겉돈다. 더 노골적으로 모질게 말하자면, 노래방에서 부르고 녹음했어도 이것보다는 나았을 것이다. 여름 특수를 노린 장삿속도 정도껏이다.
랜디: 작년 말 뉴키드-Lemme Spoil u-라는 이름으로 싱글 발표를 한 뉴키드가 두 번째 유닛곡을 가지고 왔다. 멤버는 4인에서 6인이 되었다. 아직은 완전체가 아니라고 하는데... 유닛 발매의 이점을 충분히 살리고 있지는 못하다. 발매 사이 뜨는 기간이 너무 길어 유기성이 떨어진다. 신혁 등이 참여한 곡의 퀄리티 자체는 아주 준수하다. 뮤트 먹인 전자드럼이나 신스 필링 등 레트로한 요소요소를 딱 요즘 케이팝 EDM적인 구성으로 꾸며 발랄한 느낌을 줬다. 작년부터 온앤오프 등 적당히 칠링한 EDM에 케이팝 아이돌스러운 안무를 매칭해서 데뷔하는 팀들이 늘고 있으나, 아직까지 파괴력이 크지는 않은 것 같다. 빅네임들이 지나치게 건재해서 파고들기가 어려운 것일 수도.
랜디: 어느새 케이팝 팬들에게 대표적 여름 가수로 자리매김한 카드의 트로피컬 싱글. 언제나처럼 낯선과 작업했다. 크게 도드라지는 곡은 아니지만, 여남 멤버들이 주고받는 젊은이 사랑노래 가사처럼 고만큼 딱 듣기 편한 하우스 넘버다. 제목은 혹시 또 다른 여름의 대표 가수 야마시타 타츠로의 ‘Ride on Time’에 대한 오마주일까? 초기 기획부터 혼성그룹이라는, 케이팝 산업의 이단아 같은 존재로 등장해서, 딱히 커다란 한 방을 노리지 않는 이런 행보가 오히려 힙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마노: 허밍과 스캣과 휘파람이 대화처럼 오가는 ‘Intro: Humming’으로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나면 한여름의 열대 파티가 우리를 반긴다. 딥하우스에 트로피컬에 레게톤에, 아무튼 여름에 어울릴 만한 것은 죄다 쏟아 넣었는데 유기성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적절히 잘 안배되어 있어 꽤 듣기 편하다. 가사의 절반가량이 스페인어로 이루어져 있는 ‘Dimelo’를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미니앨범의 분위기가 한국보다는 지구 반대편 남미의 공기를 더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더 큰 반응을 얻고 있는 팀의 입지를 고려했을 때 당연하다면 당연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대목. 시종일관 흐르는 산뜻하고 청량한 무드가 기분 좋게 다가오는 한 장. 무더운 열대야를 한풀 서늘하게 해줄 딥하우스 트랙 ‘Moonlight’도 놓치지 않길.
미묘: 언젠가부터 (누구나 트로피컬을 하고 있음에도) 라틴 리듬의 하우스와 카드가 강하게 결속돼 있고, 마침 세계적으로도 라틴팝의 물살이 제법 있다. 이런 흐름을 타고, 무리하거나 서두르지 않고 내실을 다져 나가는 듯한 행보의 연속이다. 지금 팔리는 것을 더 팔겠다는 자세라기보다는, 기왕 생긴 이미지와 일정 정도의 보장된 흥행성 위에서 표현의 범위를 넓히는 시각인 듯하다. ‘Ride On The Wind’는 격렬하고 화려하게 펼쳐지지만 카드 멤버들은 그 위에서 느긋하고 너그러운 감성을 노래하는 식이다. EDM의 하위장르들에 걸친 팝이 감상적인 분위기로 흐르는 경우가 많기는 하다. 하지만 이 곡에서 태도가 드러나는 방식에는 분명 남녀 멤버들의 주고받음에서 생기는 낙차와 드라마가 작용하고 있어, 혼성 케이팝 그룹으로서 카드만이 담아낼 수 있는 어떤 정서를 발견해 나가고 있다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어쩌면 카드는 가장 ‘탈-케이팝’스러운 팀이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유제상: 카드를 보면 DSP 미디어가 바라본 케이팝 아이돌의 미래가 무엇인지 그려진다. 이들의 전략은 고급스러우며, 글로벌하지만(정확히는 무국적적이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안정지향적이다. 아마 실력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멤버들이 고도의 훈련을 받아 무대를 누비지만, 이상하게 평자는 이들에게서 지루함을 느낀다. 여기에 혼성 그룹이 주는 예스러움까지 더해져, 이들의 음악에 몰입하기 쉽지 않다. 이들의 모든 EP가 그러했으니 아마도 문제는 평자에게 있겠지.
미묘: 이렇게 클리셰만 가득 모으기도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연상시키려는 바가 분명한 “,오빠!”와, 그를 향한 응원, 동요적인 멜로디, 감탄사 연발, ‘뭔가 없을까?’ 하는 느낌으로 들어가는 칩튠 사운드, 그리고, 댄스 가요의 전형이라고 흔히 인식되어 있지만 정작 성공한 댄스 가요에서 사용되어 본 일은 매우 드문 트랜스게이트 베이스까지. 물론 이렇게 늘어놓지 않더라도 편곡이 얼마나 단순 반복되고 있는지 들으면 곡의 무성의는 충분히 알 수 있다. 특이한 부분이라면 베이스가 피치업하면서 굴러가는 대목인데 그리 효과적이진 않다. 짓궂은 듯한 느낌의 음색이 마냥 뻔하지 않고 발성도 안정적인 편이라 뭔가 해보려 한다면 어떻게든 될 것도 같지만. 기획사인 가온 엔터테인먼트와 장 엔터테인먼트는 지금껏 소규모의 아이돌을 꽤나 많이 데뷔시킨 곳인데, ‘이렇게까지?’라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유제상: ‘오빠’의 시작은 칩튠이고, 멜로디는 한스밴드를 연상시키며(도입부가 합창이라 더 그런 듯), 가사는 심플하게 오빠 찬양이다. 이 클리셰 덩어리의 곡에서 평자의 관심을 끈 것은 단 하나, 그룹명 아이리수인데, 눈의 홍채를 의미하는 아이리스(iris)에서 따왔다고 한다. 근데 왜 정작 결정된 그룹명이 가상화폐 이름(Airisu Coin)이랑 겹치지? 검색하니까 ‘흑우’들만 잔뜩 나오잖아!
미묘: 가창력을 과장하기보다 편안한 와중에 자연스레 풀어져 나오도록 한 것이 느낌이 좋다. 곡도 그만큼 편안하다면 좋았겠지만 유감이다. 어느 정도 트렌디한 느낌을 주면서 나긋나긋하면서 조금은 특이하면서 제법 감성적이면서 동시에 청량한 것을 노린 것 같은데, 모든 요소들이 서로 싸우고 있는 것처럼 들린다. 후렴의 멜로디만 해도 완전4도와 완전5도를 꾹꾹 찍으며 선언적인 분위기를 낸 뒤 고음에서 리드미컬하게 감성을 흩날리도록 되어 있어 구성 자체가 이미 드라마틱한 힘을 갖고 있다. 그러나 장식이 너무 많고 또한 무절제하다 보니, 뒤엉킨 덩어리가 되어 어느 것 하나 튀어나오지 못한다.
랜디: 미워할 수 없는 ‘끼돌이 그룹’ 인투잇이 두 번째 싱글을 냈다. 디스코 콘셉트라고는 하나 음악이나 스타일링, 안무 중 무엇도 6-70년대를 제대로 재현하지 못하고 있다. 하나라도 제대로 된 것이 있다면 무게 중심이 되어줄 좋은 기획인데 말이다. ‘Saturday Night Fever’을 2018년 느낌으로 해석하겠다는 야심 찬 포부는 간데없고 너무 많은 부수적 요소가 흩날리는 어수선한 곡이 되었다. 곡 중반에 등장하는 댄스배틀은 경쟁하듯 끼를 발산할, 인투잇이 아주 잘할 스타일의 무대 구성이었을 텐데, 그나마도 앞뒤 안무 맥락과 선명하게 대비되지 않아 아쉬움을 남긴다. 영어를 외국어로 쓰는 사람으로서 조금 민망하게 느껴지는 곡의 제목은 케이팝 해외 팬덤을 겨냥한 애교일지도 모르겠다. But no I'm not sorry for my English, learn Korean you ‘K-pop’ fans.
미묘: ‘여름밤의 꿈’은 여름 시즌송의 외형을 취하면서 살짝 변화를 가미한다. 포지션, K2 등의 대중적 로커 듀오들의 향취가 그것인데, 그렇다고 그저 과거의 곡처럼 들리지만은 않도록 균형점을 잡는 것이 다름 아닌 (디스토션 4박자 스트로크와 특유의 가요적 멜로디감으로 대표되는) ‘FNC 컬러’란 점이 재미있다. 간만에 외부 작곡가의 곡인데, 수행력과 사운드는 안정적이고, 여름 노래를 불러도 영혼의 고통을 담아내는 듯한 이홍기의 보컬 톤도 여전하다. 수록곡에서 곡 구성을 복잡하고 다이내믹하게 가져가려는 시도들이 눈에 띄는데 ‘이거다’ 싶은 안정감을 주는 것은 아직인 듯하다.
미묘: 다섯 명 중 세 명으로 이뤄진 유닛인데, 통상의 표기처럼 ‘열혈남아-타지혁’이 아니라 ‘열혈남아(타지혁)’이다. 그 덕분인지 몇몇 음원 사이트에서는 아티스트명 검색의 메인에 타지혁이 올라와 있기도 하다. 격정적이고 애절한 발라드 두 곡을 수록했는데, 종종 차라리 프로토콜의 결집체에 가까운 가요 발라드의 요소를 충실히 채운다. 보컬 라인으로 구성돼 가창력으로 주먹질을 하듯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인상인데, ‘노래 잘하는 사람은 워낙 많지’ 하는 감상으로 새나가곤 한다. 아티스트보다 일반론을 떠올리게 되는 데에는, 곡 자체가 특별히 품위 있거나 참신하진 않은, 대학가의 수더분한 호프집에서 늘상 들리는 예스러운 가요 발라드에 그치는 이유도 있다. 혹 플레이리스트에 남아있게 된다면 개강시즌의 와글거림을 뚫고 나올 수 있는 보컬이라는 생각은 들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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