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ft : 이달의 소녀 – [X X]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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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 본 리패키지작에 앞서 발매된 데뷔 EP “[+ +]”를 다루며 필자는 이렇게 말했다. ”완전체’에 그렇게 큰 의미부여를 하며 기대하게 해놓고는 이런 결과물이라면 가히 대중을 향한 배신이라고 해도 그리 모진 표현은 아닐 것이다’. 많은 공과 시간을 들여 12명의 멤버를 소개해오는 과정에서 ‘완전체’라는 하나의 목표로 귀결되는 세계관을 선보인 것 치고는 몹시도 김이 빠지는 결과물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각양각색의 매력과 재능으로 번뜩이던 12명의 멤버들을 ‘납작하게 보정한 보컬 톤과 테니스 스커트라는 몰개성으로 표백’한 프로덕션의 게으름과 안일함에 대해서는 ’12명을 채 다 보여줄 여력이 되지 않아 결국 1명으로 퉁치고 만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 역시 내비친 적 있다. 다소 모질게 말하건대, 프로덕션 자체에 대한 기대감이 0으로 수렴하던 상태였다. 대중의 평가 역시 대체로 그러했을 것이다.
그러던 중 리패키지 형태로 본작이 발표되었다. ‘Butterfly’를 타이틀곡으로 내세운 본작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12명이라는 ‘완전체’가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 그리고 내외적으로 많은 변화를 일구어냈다는 것은 분명 고무적인 성과다. 단면적이고 루즈하기만 했던 퍼포먼스는 우아하면서도 파워풀한 춤 선과 입체적이고 역동적인 포메이션 변화를 입고 풍성해졌고, 그 속에서 몇몇 멤버들의 존재감이 유독 빛나는 순간도 다수 존재한다. ‘남자는 조심 조심 조심’ 같은 시대착오적 문장에 더불어 외부로부터 타자화 및 객체화된 ‘소녀’를 전시하는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던(‘김밥처럼 넌 만두처럼 달콤해’, ‘수능보다 더 사랑이란 잔인해’ 등) 가사 역시 크게 달라졌다. 팔랑이는 나비 날개처럼 가볍게 날리는 듯한 어감을 최대로 살린 노랫말은 다양하게 해석될 여지를 남기며 ‘날아오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불쾌하기 짝이 없는 관음적 시선으로 가득하던 뮤직비디오에는 대신 자유로움과 ‘나 자신다움’을 강조하는 이미지를 입은 다양한 모습의 ‘이달의 소녀들’이 등장한다. 특히 히잡을 쓴 아랍계 여성과 흑인 여성이 출연하는 장면은 케이팝 뮤직비디오의 역사에 있어 가장 진보적인 순간으로 기억될 것이라 감히 확신한다. 팀은, 그리고 프로덕션은 분명 변했다. 이것은 업계가, 더 나아가 사회와 세계가 변화하는 추세를 외면하지 않고 받아들여 나름의 방식으로 재해석한 결과물이다. 전작을 향한 대중의 볼멘 목소리에 대한 나름의 피드백으로 읽히기도 한다.
팀 내외적으로 많은 진보를 끌어낸 것은 분명 사실이나 그럼에도 한계점 역시 존재한다. 팀의 역량에 비해 다소 벅차 보이는 퍼포먼스, 아직 채 다 드러나 보이지 않는 각 멤버들의 캐릭터, 다소 피상적인 이미지 나열에 그친 가사, 하나의 완전한 메시지 제시에는 미처 이르지 못한 뮤직비디오 등. 사회의 변화상을 외면하지 않고 그에 발맞추려 한 노력은 가상하나 그럼에도 어딘가 ‘안전한’ 범위 내에서의 진보에 그친 듯 보이는 것도 한계라면 한계일 것이다. 프로덕션의 각 요소가 잘 맞물린다기보다는 다소 ‘따로 노는’ 느낌이 드는 것 역시 석연치 않은 부분.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모든 시도가 폄훼되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시도 그 이후가 중요할 뿐이다. 작은 날갯짓에 지나지 않는 시도라 해도, 그것이 또 다른 날갯짓과 다양한 시도를 끌어낼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이미 몫을 다한 것이 아닐까. “시작은 작은 날갯짓”이라는 곡의 노랫말처럼. 그리고 분명, 이들의 날갯짓으로 인해 씬은 이전과 같지 않게 되었다. 어찌 보면 폭풍은 이미 시작된 것이다.
팬덤 내외에서는 ‘이번 작품으로 데뷔한 것이라고 치자’는 반진반농이 오간다고 들었는데, 어쩌면 이 팀은 본작을 통해 비로소 온전한 그들만의 출발선에 서게 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대중을 향한 배신’ 운운하며 치를 떨었으나, 이쯤 되면 눈 감고 속아 넘어가 주지 않을 수 없겠다. 바라건대 그들의 날갯짓이 순풍과 함께 늘 앞을 향해 있길.


스큅: 여태 이달의 소녀의 독특한 음악 세계를 담보해온 것은 소복이 쌓인 소리의 겹이었다. 음색의 표준편차가 작아 촘촘히 배치된 열두 보컬을 포함해 교묘하게 조정된 사운드의 층위는 굳이 복잡한 세계관을 운운하지 않더라도 초현실적인 ‘루나버스’ 가운데 신비로이 반짝이는 ‘이달의 소녀’의 이미지를 충분히 구축해주었다.
‘Curiosity’, ‘색깔’ 등 이번 앨범 역시 그 정수를 보여주는 곡들로 채워져 있다. 하지만 그 중 단연 빛나는 곡은 ‘Butterfly’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보컬의 활용이다. 거의 가성으로 일관하는 목소리는 전경에 위치하는 대신 곡의 틈새로 스며들어 하나의 소리 겹에 지나지 않게 되고, 이에 따라 선율, 가사 혹은 가창 자체에 경도되는 대신 소리의 총체를 오롯이 체험하게 된다. 다시 말해, ‘Butterfly’는 노래라기보다 그저 음악이 된다. 보컬을 전면 후퇴시킨 채 드랍으로 꾸민 훅은 가장 상징적인 순간이다. 일전에도 ‘Loonatic’과 같은 수록곡이 있었지만, 가창자의 존재감을 중요시하는 아이돌 팝이 이런 곡을, 그것도 타이틀곡으로 내세운 것은 분명 이례적인 결단이다.
퍼포먼스는 이 총체성을 더욱 강화하고 극화시킨다. 열두 명의 멤버들은 완벽히 동기화되어 한 마리 거대한 나비를 형상화하고, 걸그룹을 향한 잣대를 깨부수는 힘찬 움직임으로 나비의 ‘작은 날갯짓’에 잠재된 ‘허리케인’의 동력을 꺼내 보인다.
그리고 음악과 퍼포먼스의 총체적인 에너지는 뮤직비디오를 만나 명확한 궤적을 찾아낸다. 뮤직비디오에서 이달의 소녀는 그들만의 폐쇄적인 가상세계를 벗어나 현실 세계로 접속한다. 그간 이(異)세계와 같은 공간을 연출하려 동원되었던 해외 로케이션 위에는 실지(實地)의 소녀들이 소환되고, 저마다의 날갯짓을 지닌 이들은 또 다른 ‘이달의 소녀’로 명명되어 이달의 소녀의 역동을 이어받는다. ‘Butterfly’는 자연스레 이 세상의 모든 소녀를 향한 송가의 지위를 얻는다. 지극히 지엽적인 부분에 머무르던 세계관이 비로소 바깥세상으로 손을 뻗치며 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이 순간의 파괴력은 실로 형용할 수 없다. 아티스트를 철저히 사물화, 객체화시켜 현실성을 도려내 버렸다 지탄받았던 전작에는 균열이 발생하고, 조은재의 표현을 빌리면, ‘가상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작은 균열 그 틈으로 현실로 끌어내려’진다. 그 여진은 강하고, 오래도록 지속되며, 야속하리만치 근사하다.
“[X X]”로 이달의 소녀는 힘찬 날갯짓을 시작했다. 이는 곧 본 그룹은 물론 아이돌 씬의 판도를 송두리째 뒤흔들 폭풍이 될 것이다. 아니, 사실 판도는 이미 흔들리고 있다. 레드벨벳의 ‘피카부’, 오마이걸의 ‘비밀정원’, (여자)아이들의 ‘LATATA’, CLC의 ‘No’ 등 걸그룹의 관습을 벗어던지는 작품들이 지속해서 등장하고 있고, ‘Butterfly’는 이에 쐐기를 박는 결정타로 자리할 것이다. 나비효과는 시작되었다.

이달의 소녀
[X X]
BlockBerry Creative
2019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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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idology.kr 에디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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