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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ft : SF9 – First Collection (2020)

SF9 – “First Collection” (2020년 1월 7일, FNC 엔터테인먼트)

하루살이: 첫 정규 앨범이다. 이제껏 쌓은 경험치를 바탕으로 자신 있는 것만 살뜰히 모아 만들었다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남자 댄스 아이돌의 이미지를 아주 서툴게 콜라주 하던 데뷔 초를 되돌아보면 과장 조금 보태서 기적 같은 발전이다.

‘Good Guy’의 도입부터 무엇을 좇는지 명백하다. ‘질렀어’와 상당히 유사한 톤과 구성이 이어진다. ‘질렀어’ 후렴 직전의 드롭처럼 케이팝 문법에 기반한 예측을 비껴가는 센스는 부재하지만, 대신 피아노로 기둥을 세우고 보컬 레이어를 풍부히 쌓아 밀도를 높였다. 멤버들의 역량에 비해 늘 아쉬웠던 보컬 운용도 개선되었다. 개성 있는 음색들 사이에서 균형을 지키는 재윤과 서늘함을 자아내는 로운이 들린다. 다원의 예쁜 비성도 귀를 끄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후렴을 한두 사람이 완창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모두가 적재적소에 배치되었다는 인상을 준다.

안무에서 드디어 특색이 보인다는 점도 짚고 넘어갈 부분이다. 정중하게 인사하는 포즈로 시작해, 동작을 잘게 쪼개기보다는 절제하고 비워냈다. 여기에 정장까지 갖춰 입어 묵직하고 긴 선이 돋보인다. 2절의 로운 파트에서는 걷기만 해도 볼 맛이 난다는 신체적 장점을 극대화한다. 효율적으로 흘러가는 동선마저 우아함을 추구한다. 기술적인 난이도와 별개로 아무나 쉽게 할 수 없는 선택의 연속이다.

수록곡도 “First Collection”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각 곡의 원류가 쉽게 떠오르는 동시에 균질적인 분위기를 유지한다. 팬덤 내에서 꾸준하게 호응이 이어진 ‘머리카락 보일라’를 닮은 ‘One Love’나 ‘Fall In Love’, ‘Never Say Goodbye’와 같은 맥락의 ‘널 꽉 잡은 손만큼’, ‘더 잔인하게’ 등으로 니즈를 충족시킨다. 품위 있는 섹시를 위해 무게감을 꾸준히 유지하다가 ‘춤을 출 거야’, ‘Beautiful Light’에 와서는 상쾌하게 마무리한다. 코스요리의 마지막 레몬셔벗 디저트 같다고나 할까. 매끄럽게 구색을 맞췄다. 귀에 가장 맴도는 곡은 ‘Shh’와 ‘타’. 재밌는 그루브 위에 멜로디가 자연스럽다. 무대가 기대된다.

다만 전반적인 가사의 정서가 어쩐지 ‘하루’보다는 ‘오남주’를 연상케 한다. 지극히 전형적인 설정과 표현에서 오는 이 오글거림의 미학이 2020년에도 통용되는지는 재고해 볼 문제다. 세련된 사운드와 유치한 가사의 간극도 처참하다. 그럼에도 <킹스맨>과 <오란고교 호스트부> 사이 갈팡질팡하는 콘셉트의 조악함이 무마되는 것은 역시 퍼포머의 침착한 태도 덕이겠다. 결론적으로 이 서늘한 자태와 등온한 가사를 염원한다. 부디 얼토당토않은 퇴보를 더 이상 반복하지 않기를.

스큅: 데뷔 5년 차의 첫 정규앨범이다. 정규앨범을 내기까지 걸린 기간만큼이나 팀 정체성 확립에 오랜 난항을 겪어온 SF9은 마침내 그 해답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타이틀곡 ‘Good Guy’는 국내외로 좋은 반응이 있었던 ‘질렀어’의 짙은 관능을 ‘오솔레미오’의 맵시로 말쑥하게 정돈하여 보여준다. (“‘오솔레미오’와 ‘질렀어’의 중간 지점을 했으면 좋겠다”던 인성의 바람이 반영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수트 차림으로 선보이는 UK 개러지 하우스의 매무새는 중구난방이었던 팀 역사의 틈새를 파고드는 동시에 시원시원한 피지컬과 안정적인 보컬로 대표되는 멤버들의 기량을 효과적으로 조명한다.

‘Shh’와 ‘타’ 등의 수록곡 역시 팬들이 기대하던 신사적인 섹시함, 소위 ‘청담 섹시’를 우직하게 구현해 보이며 SF9이 드디어 궤도에 진입했다는 인상을 준다. SF9이 현재 거두고 있는 소기의 성과는 이에 대한 긍정적 피드백이라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다만 이 ‘청담 섹시’가 과연 <킹스맨>도 아닌 <오란고교 호스트부> 식의 콘셉트로 풀어져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약간의 의문이 남는다. 이 콘셉트는 상당 부분 작사에서 기인하는데, 크레딧을 확인하며 10곡의 수록곡 중 8곡의 작사에 참여한 한성호 대표가 <미남이시네요>, <상속자들>의 OST를 작업한 당사자였음을 상기하게 된다.

다소 케케묵은 감성을 환기해주는 것은 멤버들이 주도적으로 작사한 9, 10번 트랙. 가사의 결 자체는 비슷하지만 ‘가오’라 칭할 수 있는 부담스러운 무게감이 한껏 덜어져 기껍게 들을 수 있다. 멤버들에게 더 마이크를 쥐여주었더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쉬운 지점은 여전히 남아있으나, 오랜 연구 끝에 그룹의 타개책을 찾아냈다는 것만으로 큰 의미가 있는 앨범.

“First Collection”은 SF9에게 끝끝내 부여된 공전축과도 같다. “First Collection”을 구심점 삼아 그룹의 활로를 모색해나갈 SF9을 기대해본다. ‘오솔레미오’ 뒤에 ‘맘마미아’로, ‘질렀어’ 뒤에 ‘예뻐지지 마’로 궤도 이탈을 해버린 실수를 다시는 답습하지 말기를.

First Collection
FNC 엔터테인먼트
2020년 1월 7일

By Editor

idology.kr 에디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