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디: 포미닛 때부터 전해 내려오는 큐브 여자 아이돌의 막연한 레거시가 있다. 일명 ‘쎈 캐’. 모르긴 몰라도 수동적이지는 않은, 에너지 발산적인 컨셉. CLC의 시작은 포미닛과 꽤 달라서 이 레거시가 한동안 잊혔었다. 작정이라도 한 듯, 큐브는 CLC에게 포미닛으로는 해보지 못한 가사를 제공하고 스타일링을 입혔다. 그동안 불러온 가사들 몇 개를 꼽아보면 주옥같다. ‘오빠가 좋아 너무 좋아 (Eighteen)’ ‘내 모든 미모 각선미 비결이 뭐 / 그건 내가 신은 높은 하이힐 (예뻐지게)’ ‘이것 봐요 그만 해요 엄마한테 다 말할 거야 (이어 삽입되는 울프휘슬) (아니야)’ 아… 큐브가 상상한 예쁜 여자 아이돌이란 이런 것이었다.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2017년 발매한 ‘도깨비’부터였다. 급격한 노선 변화였다. 그러나 CLC는 마치 이것만 준비해온 사람들처럼 파괴력 있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실은 귀염뽀짝 컨셉 시절부터도 퍼포먼스의 레벨만큼은 절대 만만하지 않은 그룹이었다. 중간에 ‘어디야?’ 같은 멜로우한 넘버도 발매하긴 했으나 결국 포텐이 터진 곡은 ‘Black Dress’였다. 남성을 유혹한다는 내용의 가사는 거의 들리지도 않을 정도로 강렬한 EDM 힙합곡이었고, 올블랙 수트로 스타일링한 멤버들의 일사불란한 파워 걸스힙합 안무는 그토록 긴 기다림 끝에 CLC 멤버들이 마침내 쟁취한, CLC가 잘할 수 있는 컨셉으로 보였다.
“No.1” 앨범의 ‘No’는 그의 연장선이나, 그보다 더 볼드한 한 발짝을 내디딘다. 지난 한 해 젊은 여성층에서는 ‘꾸밈’에 대한 논의가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인구수에 비해 압도적인 규모를 자랑하는 메이크업 시장 등에서 볼 수 있듯, 현대 한국은 꾸미기 문화가 유독 발달한 사회다. 동시에 이 급격한 확장 속에 ‘왜 꾸미는가’ 에 대한 철학은 부재했다. 개개인이 느끼던 피로감은 일명 ‘웹 페미니즘 리부트’를 만나 거대한 흐름이 되었고, 여성들은 저마다의 저항을 시작했다. 꾸미기를 보이콧 하는 사람이든, 여전히 꾸미고 있는 사람이든, 2019년의 사람들은 전보다 훨씬 더 자주 ‘왜 꾸미는가’를 질문한다.
이 곡을 작사·작곡한 전소연은 이런 시대의 물음에 메시지를 던진다. ‘더 멋져질 방법은 말고 멋대로 망쳐봐 내가 제일 나일 수 있게’ 같은 라인으로 정형화에서 벗어나는 해방감의 순간을 조명했다. 전소연은 mnet ‘프로듀스 101’에 출연하던 시절부터 유독 외모 공격을 많이 받은 여자 아이돌이다. 지금도 연관검색어에 그의 외모를 비난하는 단어가 뜰 정도다. CLC는 큐브가 작정하고 ‘예쁜 여자 아이돌’로 키운 그룹이다. 상반돼 보이는 이들의 이미지는 결국 정형성 강요와 자유의 억압이라는 주제 아래 만나며 ‘No’라는 거부의 선언으로 폭발한다.
곡은 코드 진행이나 멜로디의 복잡성을 최소화해서 노래가락보다는 외침처럼 들린다. 곡의 도입부터 주문처럼 읊조리는 ‘Red lip, no / Earring, no / High heel, no / Handbag, no’ 는 단순한 인트로가 아니라 이 곡의 테마이자 사비로 기능한다. 마지막 예은의 나지막한 브리지가 ‘착한 척?’으로 끝나며 이 테마가 반복된다. 트랩 비트가 와르르 쏟아지며 승연을 필두로 한 클라이맥스 안무가 펼쳐질 때는, 이제껏 갈팡질팡한 CLC의 컨셉에 드디어 확실한 종지부를 찍는다는 후련함마저 느껴진다.
스타일링은 유독 가사와 불협하고 있다. 레드립과 하이힐을 거부하는 가사에 레드립과 하이힐을 갖추고 무대에 오른다. 이 곡에 더 어울릴 다른 스타일링에 무엇이 있었을까 생각하다 큐브의 선배 여자 아이돌 포미닛의 후반 활동을 떠올렸다. 허가윤이 적극적으로 비주얼 디렉팅에 참여했던 ‘미쳐’ 때는 얼굴을 반 이상 가리는 검정 버킷햇을, ‘싫어’ 때는 바디라인을 다 가리는 오버사이즈 트레이닝복을 입었다. 일반적 여자 아이돌 스타일링에 대한 안티테제 격으로 봐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뜨거운 해외 반응에 비해 국내 성적은 부진했다. 큐브는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래도 한국에서 여자 아이돌 의상은 타이트해야 인기 있어, 당당한 이미지의 여자는 하이힐이 어울려’ 하고 버티고 있을지 모르겠다.
‘No’는 케이팝이 안전하다 인정하는 프레임 밖으로 삐죽삐죽 튀어나온다. 전체적인 프로듀싱에 일체감은 부족하나, 적어도 전소연이 짓고 CLC가 무대에 올린 가치는 어떤 시대 정신을 반영한다. 기록되어야 마땅한, 훌륭한 여성 창작물이다.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2017년 발매한 ‘도깨비’부터였다. 급격한 노선 변화였다. 그러나 CLC는 마치 이것만 준비해온 사람들처럼 파괴력 있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실은 귀염뽀짝 컨셉 시절부터도 퍼포먼스의 레벨만큼은 절대 만만하지 않은 그룹이었다. 중간에 ‘어디야?’ 같은 멜로우한 넘버도 발매하긴 했으나 결국 포텐이 터진 곡은 ‘Black Dress’였다. 남성을 유혹한다는 내용의 가사는 거의 들리지도 않을 정도로 강렬한 EDM 힙합곡이었고, 올블랙 수트로 스타일링한 멤버들의 일사불란한 파워 걸스힙합 안무는 그토록 긴 기다림 끝에 CLC 멤버들이 마침내 쟁취한, CLC가 잘할 수 있는 컨셉으로 보였다.
“No.1” 앨범의 ‘No’는 그의 연장선이나, 그보다 더 볼드한 한 발짝을 내디딘다. 지난 한 해 젊은 여성층에서는 ‘꾸밈’에 대한 논의가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인구수에 비해 압도적인 규모를 자랑하는 메이크업 시장 등에서 볼 수 있듯, 현대 한국은 꾸미기 문화가 유독 발달한 사회다. 동시에 이 급격한 확장 속에 ‘왜 꾸미는가’ 에 대한 철학은 부재했다. 개개인이 느끼던 피로감은 일명 ‘웹 페미니즘 리부트’를 만나 거대한 흐름이 되었고, 여성들은 저마다의 저항을 시작했다. 꾸미기를 보이콧 하는 사람이든, 여전히 꾸미고 있는 사람이든, 2019년의 사람들은 전보다 훨씬 더 자주 ‘왜 꾸미는가’를 질문한다.
이 곡을 작사·작곡한 전소연은 이런 시대의 물음에 메시지를 던진다. ‘더 멋져질 방법은 말고 멋대로 망쳐봐 내가 제일 나일 수 있게’ 같은 라인으로 정형화에서 벗어나는 해방감의 순간을 조명했다. 전소연은 mnet ‘프로듀스 101’에 출연하던 시절부터 유독 외모 공격을 많이 받은 여자 아이돌이다. 지금도 연관검색어에 그의 외모를 비난하는 단어가 뜰 정도다. CLC는 큐브가 작정하고 ‘예쁜 여자 아이돌’로 키운 그룹이다. 상반돼 보이는 이들의 이미지는 결국 정형성 강요와 자유의 억압이라는 주제 아래 만나며 ‘No’라는 거부의 선언으로 폭발한다.
곡은 코드 진행이나 멜로디의 복잡성을 최소화해서 노래가락보다는 외침처럼 들린다. 곡의 도입부터 주문처럼 읊조리는 ‘Red lip, no / Earring, no / High heel, no / Handbag, no’ 는 단순한 인트로가 아니라 이 곡의 테마이자 사비로 기능한다. 마지막 예은의 나지막한 브리지가 ‘착한 척?’으로 끝나며 이 테마가 반복된다. 트랩 비트가 와르르 쏟아지며 승연을 필두로 한 클라이맥스 안무가 펼쳐질 때는, 이제껏 갈팡질팡한 CLC의 컨셉에 드디어 확실한 종지부를 찍는다는 후련함마저 느껴진다.
스타일링은 유독 가사와 불협하고 있다. 레드립과 하이힐을 거부하는 가사에 레드립과 하이힐을 갖추고 무대에 오른다. 이 곡에 더 어울릴 다른 스타일링에 무엇이 있었을까 생각하다 큐브의 선배 여자 아이돌 포미닛의 후반 활동을 떠올렸다. 허가윤이 적극적으로 비주얼 디렉팅에 참여했던 ‘미쳐’ 때는 얼굴을 반 이상 가리는 검정 버킷햇을, ‘싫어’ 때는 바디라인을 다 가리는 오버사이즈 트레이닝복을 입었다. 일반적 여자 아이돌 스타일링에 대한 안티테제 격으로 봐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뜨거운 해외 반응에 비해 국내 성적은 부진했다. 큐브는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래도 한국에서 여자 아이돌 의상은 타이트해야 인기 있어, 당당한 이미지의 여자는 하이힐이 어울려’ 하고 버티고 있을지 모르겠다.
‘No’는 케이팝이 안전하다 인정하는 프레임 밖으로 삐죽삐죽 튀어나온다. 전체적인 프로듀싱에 일체감은 부족하나, 적어도 전소연이 짓고 CLC가 무대에 올린 가치는 어떤 시대 정신을 반영한다. 기록되어야 마땅한, 훌륭한 여성 창작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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