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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산 2019 : 퍼포먼스 Pick!

퍼포먼스는 아이돌의 콘텐츠가 생생하게 실연되는 현장이자 아이돌의 갈고 닦은 기량이 빛을 발하는 곳이기도 하다. 지난 해 우리를 경탄시키고 감격시켰던 퍼포먼스를 모아보았다. 게재는 무순.

퍼포먼스는 아이돌의 콘텐츠가 생생하게 실연되는 현장이자 아이돌의 갈고 닦은 기량이 빛을 발하는 곳이기도 하다. 지난 해 우리를 경탄시키고 감격시켰던 퍼포먼스를 모아보았다. 게재는 무순.

청하 – 벌써 12시

랜디: 2019년 한 해를 뜨겁게 달군 청하를 빼놓을 수 없겠다. 화려한 메이크업을 했지만 그가 퍼포먼스를 통해 전달하는 이미지는 관능보다는 포식자의 자신감이다. 섹스어필과 취약성이 유독 가까워 신경 쓰이는 아이돌판 한가운데서 청하는 탁월한 실력자만 선보일 수 있는 경지를 너무도 수월해 보이게 이루어낸다. 솔로로 데뷔한지 불과 2년 만에 말이다. 버스에서는 주로 얼굴 근처로 가져가는 손동작을 많이 넣어 섬세한 느낌을 살렸다면, 후렴부터는 시간을 제 뜻대로 감았다가 돌리는 마녀처럼 능란한 슬로우모션 동작을 보여준다. 이런 구성이 크게 대비되며 극적인 긴장감이 배가된다. 가사로는 ‘신데렐라’ 서사를 차용했지만 무대 의상으로 본인이 신데렐라 아닌 왕자의 옷을 입어 살짝 뒤틀어준 것도 좋은 기획이었다.

루나 – Do You Love Me

스큅: 독보적인 보컬 실력에 가려 비교적 주목받지 못했으나, 루나는 본래 춤으로 SM에 캐스팅된 출중한 댄서다. ‘Do You Love Me’는 이제까지의 모든 퍼포먼스를 통틀어 루나의 기량을 가장 잘 보여준다. f(x)와 지난 솔로/유닛 활동에서는 강렬한 전자음악에 맞추어 정확하고 절도있는 안무 구사력을 보여주었다면, ‘Do You Love Me’는 PB R&B 장르를 따라 본격적으로 어반한 안무를 선보인다. 시종일관 깃털 같이 가뿐한 그루브를 유지하면서도 적재적소에 힘있게 홀드와 팝을 걸어주며 텐션을 팽팽하게 잡아당기는 수행력에는 곡의 BPM과 별개로 모종의 속도감이 느껴질 정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경탄스러운 점은 고난도의 안무를 소화하면서도 절대 여유를 잃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유에 찬 루나의 표현력은 ‘Do You Love Me’의 아늑한 분위기를 견인하며 곡의 주도권을 오롯이 그가 쥐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안무’가 루나만의 독보적인 ‘퍼포먼스’가 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그의 관록에 있다.

베리베리 – 불러줘

마노: 뉴잭스윙이라는 장르에 맞춰 각 잡힌 군무를 추기란 쉽지 않다. 동작이 일직선으로 곧게 떨어지는 것도 아니거니와, 장르 특유의 그루브를 살릴 수밖에 없는 안무를 일체감 있게 소화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베리베리는 해낸다. 그것도 소위 말하는 ‘쿠세’나 ‘쪼’가 거의 개입되지 않은, 극도로 잘 정돈되고 정제된 ‘칼군무’를. 유튜브로 공개된, 똑같은 옷을 입고 추는 안무 연습 영상(‘Hoodie Ver.’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을 보면 과장 조금 보태 멤버 구별이 어려울 정도. 그야말로 일사불란한 군무를 보이면서도, 뉴잭스윙 특유의 그루브와 리듬을 과하지 않을 정도로 산뜻하게 소화하고 있다. 안무의 강약조절까지 마치 한 몸인 것처럼 해내는 것을 보면 설마 7명이 복제 인간인 것은 아닌지 싶은 엉뚱한 상상마저 들 정도. 데뷔곡이 이정도면 당연히 앞으로가 기대될 수 밖에 없다.

태민 – Want

스큅: ‘Move’의 말초신경을 타고 올라가 당도한 중추신경계가 바로 ‘Want’가 아닐까. ‘Move’의 원초적인 에너지를 이어받은 ‘Want’는 치밀한 계산 하에 이를 견고하게 연성해간다. 천천히 자맥질을 하는 듯한 움직임으로 “심해 밑 고요를 깨우”며 태동하는 퍼포먼스는 몸의 세포와 관절 하나하나를 차례로 깨우며 점차 맥을 추려가고, 이윽고 힘 있는 몸짓으로 넓은 무대 곳곳을 유영하기에 이른다. 브리지 말미 거센 발 구름으로 태민이 각성하는 순간의 압도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 이어지는 마지막 후렴구는 마치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를 목도하는 것만 같은 경의를 품게 된다. 어떠한 경지에 다다른 퍼포머만이 해낼 수 있는 퍼포먼스.

있지 – 달라달라

조은재: 한동안 필드에서 유행했던 다인원 그룹이 화려한 동선 변화를 통해 퍼포먼스를 채워나갔다면, 최근의 대세는 소수 정예의 탁월한 댄서들을 모아 퍼포먼스의 퀄리티를 높이고 개별 멤버에게 좀 더 집중하기 쉽게 만들어주는 방식이다. 그래서 있지의 등장은 네 명의 무용수 콘셉트로 데뷔 했던 미쓰에이를 떠올리게 한다. 다른 건 몰라도 춤 하나는 잘 추는 멤버들만 모은다는 JYP가 만든 히트 공식인 셈이다. 트와이스가 ‘Cheer Up’을 통해 누구나 따라할 수 있는 동작으로 흥을 돋구는 퍼포먼스를 구사했다면, 있지는 ‘달라달라’에서 아무나 따라할 수 없을 것 같은, 비트를 잘게 쪼개면서도 크고 힘찬 동작으로만 이루어진 화려한 안무로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가히 현존 걸그룹 중 가장 높은 난이도를 자랑하는 ‘달라달라’의 안무가 겨우 데뷔작이라면, 있지에게 앞으로 더 멋지고 환상적인 무대를 기대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이달의 소녀 – Butterfly

마노: 다인원 그룹의 안무가 대체로 그렇기는 하지만, 이달의 소녀가 선보인 ‘Butterfly’는 특히나 한 명이라도 빠지면 자칫 어그러지기 쉬운 극도로 섬세하고 치밀한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치 한 조각이라도 빠지면 완성되지 않는 퍼즐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며 수행하는 안무의 반복인 셈이다. 기본적으로 10명 안팎의 다인원이 군무를 추면 동선이 복잡해지는 것이 당연지사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Butterfly’의 동선과 구성은 보는 이의 혀를 내두르게 한다. 카운트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박자를 세밀하게 쪼개고 또 쪼갠 위에 12명의 인원으로 가능한 거의 모든 종류의 구성 안무와 강도 높은 군무를 엮어 역동적이고 입체감 있는 무대를 조형해낸다. 마치 경건한 의식과도 같은 인트로를 지나 크고 작은 날갯짓을 반복하며 커다란 돌풍을 빚어내는 일련의 과정에 왠지 모를 연대감마저 느끼는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닐 것이다. 팀의 성장과 더불어 끈끈해진 팀워크까지 증명한, 12마리 나비의 눈부신 비상. 다인원 그룹으로서 수행 가능한 무대의 진정한 이상향.

투모로우바이투게더 – Cat & Dog

스큅: 이만한 고강도의 ‘셀프 모에화’가 또 있을까. 고양이 혹은 강아지를 형상화한 아기자기한 도입부가 이목을 끌면 곧이어 강도 높은 안무가 펀치를 날린다. 고양이와 강아지의 장난기는 물론 운동신경까지 빼다온 듯한 퍼포먼스에 눈은 쉴 틈이 없다. 박자를 잘게 쪼개넣은 동작들은 자칫하면 난잡하게 흐를 수 있으나 멤버들의 갈고 닦은 실력은 이를 허락하지 않으며, 손발이 바쁜 와중에도 잊지 않고 날려주는 “꾹꾹이”를 보고 있노라면 혀를 내두르게 된다. ‘아이돌’에게 기대되는 다층적인 매력과 기량을 ‘Cat & Dog’이라는 주제로 단번에 풀어낸 수작.

에버글로우 – 봉봉쇼콜라

마노: 에버글로우가 데뷔 당시부터 숱한 관심을 끌었던 이유는 그토록 매력적이고 ‘멋진’ 데뷔곡에 마찬가지로 ‘멋진’ 안무를 곁들였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으로는 슬픈 사실이기도 하지만, 데뷔 초부터 이렇게까지 ‘멋짐’을 극단적일 정도로 추구하는 걸그룹이 흔치 않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고. 어쨌든 에버글로우는 ‘멋진’ 데뷔곡을 ‘멋진’ 안무에 맞춰 정말로 ‘멋있게’ 소화해낸다. 이제는 케이콘의 고정 코너가 되다시피 한 랜덤플레이댄스에서는 블랙핑크, 트와이스, 있지 등의 쟁쟁한 라인업과 어깨를 나란히 할만한 공인된 뱅어(Banger) 취급을 받는 등, 해외에서의 뜨거운 반응도 확인할 수 있다. 안무를 맡은 리아킴과 함께 한 원밀리언 댄스 스튜디오 영상은 무려 조회수가 1500만 회에 육박한다. 리아킴 특유의 키치함과 절도 있는 스왜그가 돋보이는 걸스힙합 안무는 상대적으로 느릿한 박으로 움직이지만 꽉찬 느낌을 주는데, 이것이 오히려 에버글로우의 신인답지 않게 여유 넘치는 애티튜드와 시너지를 일으키며 일거수 일투족에 집중하게 한다. 2020년에도 눈을 떼서는 안 될 수퍼루키.

방탄소년단 – Dionysus

랜디: 타이틀곡 ‘작은 것들을 위한 시(Boy with Luv)’가 관객(특히 팬)과의 연결을 테마로 한 산뜻한 무대였다면 ‘Dionysus’는 그와 정반대에 위치한, 퍼포머를 신체 능력의 한계까지 밀어붙여 퍼포먼스에의 몰입, 혹은 도취를 이끌어내는 격정적인 무대다. 제목이 암시하는대로다. 지금은 신체적인 부담을 고려해 수정되었으나, 2019년 4월의 컴백 무대를 보면 똑바로 선 채 그대로 낙하해 바로 푸시업으로 연결하는 등 고난도 동작도 있었다. 안무를 맡은 더랩(The Lab)의 시에나 라라우는 미국 하와이 출신의 여성 댄서로 올해 19세다. 젊고 적극적인 안무가의 도움을 받아 완성한 퍼포먼스는 완드(“티르소스”)와 테이블, 계단 등 소품과 세트가 번갈아 등장하며 박진감 뿐아니라 장엄함까지 이끌어낸다. 스타디움 공연으로 다져진 방탄소년단의 무대 노하우가 노래의 마지막까지 빠듯하게 지속되는 것이 감상 포인트.

트와이스 – Fancy

랜디: 데뷔 때부터 트와이스는 케이팝 씬에서 가장 춤을 잘 추는 팀 중 하나였다. 비록 트와이스의 대표곡 안무들이 누구나 따라하기 쉬운 간단한 동작 위주였을지라도, 매서운 연습과 서바이벌을 모두 통과하고 살아남은 이들의 실력이 결코 만만할 리 없었다. ‘Fancy’는 세간의 과소평가가 틀렸음을 증명하듯 빠르고 현란하며 일사불란하다. 안무는 디스코의 네 박을 쪼개고 또 쪼갠 프레임으로 긴박하게 진행된다. 트와이스의 시그니처 같은 섬세한 손동작은 여전하지만 손목의 회전이나 클랩으로 훨씬 더 격렬하며, 팔다리를 길게 뻗어 퍼포머가 점유하는 공간을 더 크게 쓰도록 했다. 개개인 안무에 비해 대형의 이동은 비교적 단순해졌지만 9인이라는 대인원이 도미노처럼 움직이는 몇몇 구간에서 역시 속도감을 느낄 수 있다. 케이팝의 지금을 대표하는 팀이라 할만하다.

위키미키 – Picky Picky

스큅: 멤버간 피지컬 차이가 큰 그룹은 퍼포먼스를 꾸리는 데에 애로사항이 있는 것이 사실이고, 대개는 어떻게든 통일성을 부여하기 위해 멤버들을 평균치로 수렴시키거나 차이가 부각되지 않도록 동작과 대형을 조정하는 등 타협안을 찾아 헤매기 마련이다. 위키미키 역시 그를 신경쓰기는 하나, 근본적으로 타협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르다. 위키미키의 퍼포먼스를 보면 키가 큰 멤버와 키가 작은 멤버가 나란히 서는 것을 굳이 마다하지 않으며, 시종일관 큰 폭으로 각을 맞추어 뻗어대는 군무를 소화한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이렇듯 아랑곳 않는 태도로 뿜어내는 입체적인 생동감이야말로 위키미키만의 강점이자 정체성이라 할 수 있겠다. 그것이 바로 이들이 주창한 ‘틴크러시’가 아닐런지. ‘Picky Picky’는 위키미키의 생동감을 증폭시키는 동시에 이를 정연하게 편집해 보인다. 펄떡이는 멤버들 개개인의 매력은 쉴새없는 파트 체인지에 맞춰 난사되는데, 이에 따라 센터, 대형, 동선이 시시각각 변하면서도 군더더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 놀랍다. 퍼포먼스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20초. 대열을 갖춰 힘차게 뛰노는 가운데 리나-유정-도연이 차례로 나와 존재감을 뽐내는 구간은 단언컨대 위키미키를 대표할 모먼트가 될 것이다.

에이스 – Undercover

조은재: 어딘가 필사적이기만 했던 신인 시절을 지나, 이제는 무엇을 어떻게 보여주어야 하는지 취사선택하는 연출력을 본격적으로 발휘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빠른 비트에 록 밴드로 편곡된 굵직한 사운드를 사용하고 있지만, 이제는 그 모든 박자와 소리의 틈을 퍼포먼스로 채워 넣겠다는 강박이 빠진 대신, 보여주고 싶은 것만을 분명히 추려내서 충분히 어필한다. 퍼포먼스를 통해 커뮤니케이션 한다는 것이 바로 이런 과정을 일컫는 것 아니겠는가. 결정적으로 ‘Undercover’의 퍼포먼스를 통해 이 다섯 멤버가 얼마나 훌륭한 댄서들인지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댄서 제이블랙이 KBS2 <댄싱하이>에서 했던 명언 ‘댄서는 춤 잘 추면 짱이다’라는 말이 떠오르게 하는, 적어도 ‘보는 재미’ 하나만은 확실하게 제공하는 퍼포먼스.

갓세븐 – Eclipse

스큅: “어둠이 삼키기 전에 이겨내려 몸부림쳐”라는 가사는 ‘Eclipse’의 테마와도 같다. 여위어가는 월식 뒤 천체의 격동을 담아낸 듯 잔영을 좇아 치열하게 달려가는 퍼포먼스는 간절함을 실체화한다. 동작의 변주를 거듭하며 마지막 코러스에서 극에 치닫는 “몸부림”이 “너라는 빛”에 당도하며 이완되는 순간 퍼포먼스는 일단락 되며 관중으로 하여금 여운을 오롯이 떠안게 한다. 가사나 비트, 사운드의 맥을 짚는 것을 넘어 어떠한 감성을 명확하게 이끌어내는 케이팝 퍼포먼스는 분명 흔치 않기에, ‘Eclipse’를 주저없이 2019년의 케이팝 퍼포먼스 중 하나로 꼽고 싶다. 추가로 ‘Eclipse’를 자그룹의 세계관 위로 불러들이며 색다른 감흥을 불러일으킨 이달의 소녀의 ‘Eclipse’ 커버 역시 감상하기를 추천한다.

NCT 드림 – Boom

조은재: 아이였던 소년들의 성장을 테마로 하는 곡답게 안무 또한 자라나서 길어진 팔다리를 충분히 활용하는 동작으로 채웠다. NCT 127이 바운스를 강조한 힙합 동작을 자주 보여줬다면, NCT 드림의 ‘Boom’은 상대적으로 적은 인원으로도 충분히 역동적으로 보이게끔 디자인 된 어반 코레오를 자주 볼 수 있다. 멤버 개인 파트보다 후렴 합창 파트의 비중과 임팩트가 더 큰 곡의 구성에 맞춰, 군무 또한 어느 때보다도 좋은 합을 보인다. 칼 같은 각도로 똑같이 맞춘 동작보다, 조금 자유롭게 움직이는 프리스타일 구간에서 더 합이 잘 맞음을 느낄 수 있어 이 팀의 팀워크가 상당히 고조되어 있는 상태임을 알 수 있다. 처음부터 수준급의 무대를 꾸며 오던 완성형 아이돌은 그렇지 않은 아이돌에 비해 활동을 거듭하며 성장하는 모습을 보기 쉽지 않다. NCT 드림은 여전히 수준급의 퍼포먼스 실력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새로운 레퍼토리와 새로운 국면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통해 결국 아이돌을 좋아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바로 성장사의 공유에 있다는 점을 정확히 짚고 있다.

더보이즈 – DDD

마노: 누차 이야기해온 것이지만, 비슷한 연차의 보이그룹 중 더보이즈만큼 다인원의 미덕을 최대치로 활용하는 그룹은 흔치 않다. 특히 10명이 넘는 군상이 같은 동작을 수행하면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을 볼 때 느껴지는 본능적인 쾌감을 잘 이끌어내는 팀이라 할 수 있다. 각이 잘 잡힌 군무를 강조하며 개인보다는 하나의 팀에 집중하던 초창기를 지나, 팀으로서의 일체감을 유지하면서도 좀 더 개개인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기 시작했다는 점도 하나의 관전 포인트. ‘적시에 폭발하듯 시원하게 터뜨려내’는 곡처럼 퍼포먼스도 적재적소에 터지는 듯한 타격감을 불러일으키며 보는 이로 하여금 어떠한 즐거움을 느끼게 한다. 제목처럼 같이 춤추고 싶어지거나, 혹은 흐뭇한 미소를 짓게 만들거나, 그런 류의 즐거움 말이다.

에이티즈 – Wonderland

마노: 보는 이가 압도당할 듯한 폭발적인 에너지가 돋보이는 에이티즈의 퍼포먼스 중에서도 최고봉이라고 할 만한 작품. 팀이 일관적으로 보여온 ‘매운 맛’ 퍼포먼스 중에서도 단연 극강이라고 할 만하다. 격정적으로 몰아치는 중간중간 느긋하게 흐르는 곡 진행에 맞춰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면서도 시종일관 팽팽한 텐션을 잃지 않는 안무 구성이 돋보인다. (안무 연습 영상) 마칭밴드 사운드가 특징적인 곡의 특성에 맞춰 발을 구르는 동작을 많이 넣었는데, 안무 연습 영상을 보면 이 때문에 바닥과 카메라가 거세게 흔들릴 정도. 그야말로 화면을 뚫고 분출될 듯한 팀의 에너지를 증명하는 부분이다. 특히 브릿지 이후의, 마치 군악대가 행진하는 듯한 마칭밴드 사운드에 맞춰 멤버와 댄서 전원이 몸이 부서질 기세로 수행하는 군무 파트는 단연 퍼포먼스의 백미. 적재적소에서 본능을 자극하는 타격감과 팀 특유의 넘치는 에너지, 안무를 빈틈 없이 소화해내는 멤버들의 수행력이 보는 이의 쾌감을 자극하며 잊지 못할 짜릿함을 선사한다.

AOA – 너나 해

서드: 비트와 리듬감을 강조한 편곡에 멋드러진 수트 의상을 더해서, 트로피컬한 색채가 강한 마마무의 원곡과는 전혀 다른 또 하나의 버전을 창조해낸 무대. 지민과 찬미가 각각 돌출, 사이드 스테이지에서 따로 등장해 나머지 세 명의 멤버와 중앙 스테이지에서 합류하는 구성은 멤버마다 골고루 주목받을 수 있도록 파트 분배를 시각적으로도 활용하는 다이내믹한 연출이었다. 또한 화제가 되었던 중후반 보깅 댄서들과의 댄스 브레이크는 이전까지 걸그룹의 무대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시도. ‘너나 해’의 퍼포먼스는 대중이 보길 원하는 AOA의 모습이 아닌, AOA가 보여주길 원하는 모습으로서의 무대이자, 재정비된 그들이 앞으로 어떤 팀으로 거듭날 것인지 엿볼 수 있는 예고편일지도 모른다. 엔딩에서 보여준 멤버들의 만족감 넘치는 표정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오마이걸 – Destiny

서드: 원곡의 느낌을 그대로 가져오면서도 다양한 악기를 활용한 동양풍의 편곡, 시선을 잡아끄는 안무 구성, 호위 무사를 연상시키는 의상까지 모든 요소가 통일성 있게 조화되어 마치 한 편의 퓨전 사극을 보는 듯한 강렬히 기억에 남을 무대를 연출해냈다. 특히 흰 천을 활용한 동작들은 파트에 따라 승무처럼, 또 필요에 따라 무대 장치나 소품처럼 활용되어 차분하고 어두운 의상에 자칫 단조로워 보일 수 있는 무대를 화려하게 장식해낸 아이디어의 승리.

(여자)아이들 – Lion

랜디: 이 곡을 <퀸덤>의 첫 경연 준비와 동시에 만들기 시작했다는 소연은, 과연 >퀸덤<이 이렇게 ‘신들의 전쟁’이 될줄 알았을까? ‘한수 위/아래’ 제도 등 캣파이트를 의도한 흔적이 선연한 이 프로그램을 쟁쟁한 여성 아이돌들의 진검승부의 장으로 만든 것은 출연진 본인들이었다. 참가자 중 가장 신인인 (여자)아이들은 초반부터도 기세에서 전혀 밀리지 않았고, 마지막 컴백곡 공개에서는 스스로를 왕에 즉위시켜 서사를 완성해버렸다. 마지막 순번도 최종 우승곡도 아니었지만, 누가 뭐래도 ‘Lion’은 <퀸덤>의 엔딩곡이었다. 소연이 ‘비밀병기’로 아껴왔다던 슈화의 퍼포먼스가 단연 눈길을 끌었다. 데뷔 초 언어를 이유로 많은 파트를 맡지 못했던 그였으나, ‘Lion’의 인트로 솔로 댄스와 중반의 버스를 통해 그 자신이 곧 작은 소녀에서 사자왕으로 자라난 장본인임을 보여주었다. (여자)아이들의 성장과 증명의 서사를 실시간으로 목격하는 것은 시청자로서도 큰 기쁨이었다.

By Editor

idology.kr 에디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