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ies
Annual

결산 2019 : 놓치기 아까운 수록곡

아이돌로지의 2019년 결산 마지막으로는 수록곡을 꼽아 보았다. 뮤직비디오가 제작되고 무대에 오르며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곡은 아닐지 몰라도 마찬가지의 노력과 정성으로 준비된, 그리고 앨범 안에 담긴 채 팬 및 대중과의 소박하지만 중요한 관계를 이어가는 것이 수록곡이다. 한해 동안 인상 깊었던 수록곡을 필진이 꼽아 보았다.

아이돌로지의 2019년 결산 마지막으로는 수록곡을 꼽아 보았다. 뮤직비디오가 제작되고 무대에 오르며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곡은 아닐지 몰라도 마찬가지의 노력과 정성으로 준비된, 그리고 앨범 안에 담긴 채 팬 및 대중과의 소박하지만 중요한 관계를 이어가는 것이 수록곡이다. 한해 동안 인상 깊었던 수록곡을 필진이 꼽아 보았다. 게재는 무순이며, 모든 곡은 제목을 클릭하면 보다 자세한 내용을 읽을 수 있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 – Blue Orangeade

스큅: 한껏 부풀어오른 비트 뒤에 정교하게 쌓인 화음이 내려앉는 순간 항복을 외치고야 말았다. 데뷔 앨범 도입부 5초만에 ‘방탄소년단 동생 그룹’이라는 타이틀의 중압을 가뿐히 딛고 선 TXT는 태연자약하게 자신들만의 푸른 빛깔을 펼쳐내기 시작한다. 상큼하게 터지는 아카펠라 샘플 사이를 유영하는 멜로디를 듣고있노라면 불순물 없이 청량한 ‘Blue Orangeade’를 한가득 들이키는 기분이 절로 든다. 흡사 00년대 이모(emo) 밴드를 연상케도 하는 오묘한 음울함으로 ‘TXT 스타일’을 구축한 타이틀곡 ‘어느 날 머리에서 뿔이 자랐다’와 ‘9와 4분의 3 승강장에서 널 기다려’ 역시 빼어났지만, 개인적으로는 ‘Blue Orangeade’의 낭만동화에 더 마음을 내준 한 해였다. “꿈의 장: Star”가 2019년의 앨범 중 하나로 손꼽히게 된 데에는 1번 트랙인 이 곡의 공이 결코 작지 않을 것.

CLC – Breakdown

스큅: ‘Black Dress’, ‘No’, ‘Me’ 등 위풍당당한 뱅어(banger)를 주축으로 CLC의 경로가 갖춰지고 있는 가운데 ‘Breakdown’은 정반대 방향에서의 접근법을 보인다. 뭉근하게 일렁이는 R&B는 톡 쏘아붙이는 역대 타이틀곡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모양새지만, 열정과 냉정 사이를 가로지르는 가운데 나타나는 고고한 태도만큼은 궤를 같이 한다. CLC가 납작하게 단타를 연발하는 것이 아닌 꽤나 입체감 있게 그룹 상을 쌓아올리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트랙.

이달의 소녀 – Curiosity

스큅: 사운드의 겹 사이로 멤버들의 목소리가 촘촘하게 스며들고, 단단히 뭉쳐진 사운드의 총체는 덜컹이는 화성 전개를 따라 아슬아슬한 주행을 펼친다. 마치 “허리케인”으로의 변태를 앞둔 “작은 날갯짓”의 고요한 격정을 포착한 듯하다. 루나버스 사운드스케이프의 정점에 서있다 해도 좋은 곡.

에이티즈 – Desire

마노: 마치 피부에 닿는 차가운 공기처럼 서늘하게 퍼지는 야실한 질감의 사운드가 오감을 자극한다. 예의 날카롭게 찌르는 고음의 진성보다는 야살스레 감싸는 듯한 가성을 주로 사용하여 느른하고 섹슈얼한 텐션을 더했다. 내지르며 한 차례 클라이맥스를 찍는 랩 버스가 지나가고 난 뒤의 격정적으로 치닫는 듯한 반전 역시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팀의 아이덴티티를 해치지 않고 가져가면서 동시에 과하지 않을 만큼의 섹스 어필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낸 트랙.

드림캐쳐 –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마노: 드림캐쳐는 ‘악몽 사냥꾼이 된 일곱 소녀’라는 호러 서사를 메탈이라는 장르를 빌려 끊임없이 이야기해왔는데, 제목부터 대놓고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 소설을 따온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조금 다른 화법을 추구하고 있다. 스산한 기타 리프에 담담한 베이스가 겹쳐지고, 멤버들은 지금껏 꾸준히 이야기해온 ‘악몽’을 이번에는 서늘하고 건조한 창법으로 노래한다. 잔잔한 오케스트레이션을 지나 짧고 무덤덤한 빌드업을 거쳐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라는 아홉 음절을 리드미컬하게 읊는 프리코러스가 백미. 치솟는 고음이나 격정적인 클라이맥스 없이, 스산하고 어딘가 쓸쓸하기까지 한 서스펜스를, 그럼에도 드림캐쳐답게 변주해내는 트랙.

있지 – Want It?

스큅: 거리 곳곳에서 ‘달라 달라’가 울려퍼진 한 해였지만, ‘달라 달라’의 서브곡이자 멤버 공개 티저 ‘Prologue Film: ITZY? ITZY!’의 배경음악으로 쓰이기도 했던 ‘Want It?’을 놓쳐선 안 된다. 시원시원한 샤우팅으로 펑크 풍 기타가 뼈대를 이룬 트랙 위를 자유분방하게 쏘다니는 멤버들은 ‘달라 달라’에서보다도 한층 더 격렬한 에너지를 뽐낸다. 목소리가 뒤집힐 정도로 한도 없이 몰아붙이는 기세는 팝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며 극강의 쾌감을 안긴다. 작년 케이팝 씬을 통틀어 가장 발산적인 에너지를 보여준 트랙.

베리베리 – 나 집에 가지 않을래

스큅: 95~00년도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 멤버들이 만든 90년대풍 신스팝으로 결코 회고적(retro-spective)이지 않은 레트로의 천연함이 빛난다. ‘그땐 그랬지’ 식의 ‘추억팔이’ 필터를 거치지 않고 ‘그때 그 시절’을 길어올렸기에 이 레트로 팝은 오히려 더욱 풋풋하고 생생하게 다가온다. 이토록 말간 투정을 거부할 수 있을 리 없다.

JBJ95 – Milky Way

마노: 마치 새까만 밤하늘에 흩뿌려진 별빛과도 같은 예쁘장한 신스 사운드가 문을 열면, 밤길을 드라이브하듯 느긋하게 뻗어 나가는 질주감에 몸을 자연스레 내맡기게 된다. 환희와 경탄에 찬 코러스 파트를 묵묵히 받쳐주는 색소폰, 멤버 켄타가 목소리를 보탠 다소 빈티지한 느낌의 코러스, 기분 좋은 질주감을 배가시키는 베이스 등 조목조목 뜯어볼 만한 요소도 가득하다. 별이 잔뜩 빛나는 밤에 드라이브를 나간다면 꼭 BGM으로 삼아봄직한 트랙.

밴디트 – 연애의 온도

심댱: 체념조의 가사에서도 상대에게 곤두세운 신경은 숨길 수 없다. 썸도 사귀는 사이도 아니지만 쉽게 설레는 마음은 마음에 들지 않고, 상대에게 속수무책으로 끌려다닐 수밖에 없어 답답하다. 제목 그대로 ‘연애의 온도’. 간절기에 잘 어울릴 애매하고 씁쓸한 정서. 이연의 랩 파트에서는 툴툴대는 화자가 그려져 퍽 귀엽게 들린다. 복잡미묘한 감정선을 너무도 편하게 들려준 ‘꾼’들인데, 눈에 띄는 2019년의 신인들 사이에서 조금 더 들여다봐야 할 이유를 남긴 수록곡.

방탄소년단 – Home

랜디: 트랩은 이제 하우스와 함께 이 시대 케이팝의 디폴트 장르로 자리잡은 듯 하다. 90년대를 연상시키는 신스에 멤버 각자의 색깔대로 돌아가며 얹히는 보컬과 랩이 모두 트랩이 얼마나 포용성이 큰지를 잘 보여준다. 특히 세 명의 래퍼가 같은 비트에 저마다 다른 에너지와 플로우로 텐션을 쥐락펴락 하는데 이것에 어색함이 전혀 없다. 가성에도 각자의 음색이 살아있는 보컬라인의 매력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올드스쿨적 사운드와 공간을 상정한 가사 모두 방탄소년단이 아주 잘하는 것들이다. 2020년 발매된 확장판 앨범에는 수록되지 않아서 더 놓치기 아까운 수록곡. 2019년 나온 숱한 트랩팝 곡들 중에 가장 좋았다.

백현 – Betcha

마노: 누구라도 리듬을 타지 않고는 못 배길 느긋하고 경쾌한 힙합 리듬에 맞춰 백현은 ‘서투르지만 너의 마음을 누구보다 간절히 바라는 나’를 여유롭게 연기해보인다. 능글맞기까지 한 그 여유로움에 어느덧 마음을 빼앗겨버리고 마는 곡.

공원소녀 – 밤의 비행 (The Interpretation of Dreams)

심댱: 개인적으로 빚을 많이 졌던 곡. “생각이 많은 Day and night / 같은 고민 똑같아”라며 청자를 자신의 내면으로 훅 끌어들였던 버스는 오묘한 화음이 펼쳐지는 후렴구로 나아가는데, 마치 옷장을 통해 엿본 환상적인 세계를 청각화한다면 이와 같지 않을까. 현실에 살짝 눈 감은 채 꿈으로 날아가는 비행은 고민에 짓눌린 눈꺼풀을 한층 가볍게 만들어주었다. 괴로운 소식이 유독 많았던 2019년의 케이팝에서 필자의 안식처와 같은 트랙.

NCT 127 – Highway to Heaven

스큅: 찬사도 회의론도 많았던 ‘Superhuman’에 가려있었지만, NCT 127의 제 2막을 견인한 곡은 단연 ‘Highway to Heaven’이었다. 아리아나 그란데의 히트 싱글을 다수 작업한 Social House의 곡으로 북미 대중의 취향을 정조준하는 동시에, 트랙에 부력을 불어넣는 보컬 멤버들을 전면에 배치하며 세련된 공간감으로 대표되는 기존 ‘네오 시티’의 도회성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킨다. 케이팝을 본격적으로 들여오기 시작한 북미 미디어는 물론 그에 발맞추어 북미 팝 트렌드를 품고자 하는 케이팝 업계 내에서도 더욱 회자되어 마땅한 곡.

EXID – 어떻게 지내

랜디: 멤버들이 한 명씩 돌아가며 이어가는 보컬-랩 시퀀스가 예술이다. 하니가 저음역대부터 서늘하게 쌓아올린 집중도를 LE가 이모셔널한 랩버스로 이어받고, 솔지의 목소리로 시원하게 터지는 코러스 뒤에 정화의 섬세한 가성이 1절을 마무리한다. 혜린이 2절로 넘어가는 노래의 허리를 단단하게 이어가면 벌써 노래는 중반을 훌쩍 넘겨있다. 딥하우스스러운 진득한 신스가 EXID가 지향해온 ‘로맨스로 번민하는 성인 여성’ 캐릭터에 설득력을 더한다. 코러스의 멜로디에도 중독성이 있다. 타이틀 컷해도 나쁘지 않았을 것 같은데.

이달의 소녀 – 위성 (Satellite)

마노: 전체적으로 보컬에 과할 정도로 리버브를 걸어 마치 우주를 유영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는데, 역시나 행성계의 조형을 의식한 듯한 편곡과 썩 잘 어우러지는 데다 팀이 가진 세계관과도 어느 정도 맞물려 떨어지는 부분이다. “맴 맴 맴돌고 있어 난 난 난 너의 행성”에서처럼 리듬감과 말맛을 백분 살린 노랫말도 인상적이다. ‘행성처럼 너의 주위를 맴도는 나’에서 조금 더 나아가 ‘중력을 거슬러’서라도 언젠가 다가가고 말겠다는 심지 곧은 소녀상을 표현한 가사와, 이를 받쳐주는 오밀조밀하고 탄탄한 구성의 사운드가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

저스투 – Love Talk

마노: 이렇게까지 본격적인 딥하우스 트랙을 그것도 케이팝에서 만나게 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보통 케이팝에서의 하우스 장르 트랙은 빌드업-드롭 요소를 넣어 ‘케이팝스럽게’ 변주되곤 하는데, 그런 요소를 제외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엇비슷한 텐션으로 끌고 가면서도 무척이나 댄서블하고 신나는 딥하우스 트랙을 만들어냈다. 그 외에도 앨범 전반적으로 매력적이고도 본격적인 하우스 트랙으로 가득하니, 하우스 장르를 사랑하는 리스너라면 꼭 놓치지 않기를 권한다.

설리 – 도로시

스큅: 다양한 수식어와 함께 끝없이 소환되는 ‘도로시’. 별다른 문장 없이 한참 동안 되뇌이는 그 이름만으로 버거운 사색에 빠져들게 된다. 후반부 격동하는 리듬의 파형 가운데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나지막한 읊조림은 점차 심연에 내려앉고, 끝내 리듬이 걷어진 자리에는 ‘도로시’만이 끝없는 잔향으로 울려퍼진다. 그 잔향을 품고 오늘도 그를 그리며 “낙원은 더 이상 존재 않더라도 깊은 물속에서 미래를 위한 기도”를.

정세운 – 온도차

조은재: 영어 제목이자 가사 중 일부이기도 한 ‘Love in Fall’이라는 문구가 잘 어울리는 곡. 현악 사운드나 발라드풍 곡조, 어쿠스틱 사운드 등 ‘가을’을 테마로 한 곡에서 으레 등장하게 마련인 클리셰가 하나도 강조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가을에 시작된 사랑’을 단지 멜로디와 보컬, 그리고 가사만으로 그려낸다. 프리코러스가 시작할 때 잠시 포즈를 주며 보컬에 집중하게 만드는 연출은 마치 연극 무대의 핀조명처럼 작동하는데, 코러스에 진입하면서는 전체 조명을 켜듯 사운드가 몰아치며 감정을 고조시킨다. 가을엔 가을의 벅참이 있게 마련이기에, 가을에 듣게 되어 더욱 좋았던 노래.

더로즈 – California

하루살이: 드라이브 플레이리스트에 꼭 넣어두기를 추천하는 바다. 청각화된 환상은 캘리포니아 해변을 청량하게 그려낸다. 반복해 외치는 “Young and wild”의 감각은 맛깔나는 베이스 라인, 청량한 일렉기타 리프 따위의 상투적 표현에 상쾌하게 들어맞는다. 여러 차례 라이브를 통해 선공개했던 곡인 만큼 공연장에서 그 순간을 만끽하기에도 제격이다. 이 또한 상투적이지만 “믿고 듣는”다는 표현이 아깝지 않은 더로즈의 흠잡을 데 없이 근사한 팝 록.

드림캐쳐 – Diamond

마노: 드림캐쳐의 주무기는 분명 메탈이지만 그 외의 장르도 꾸준히 ‘잘해왔’는데, 그것을 증명하는 대표적인 예시 중 하나로 들 수 있을 만한 트랙. 최근 케이팝 씬에서 새로운 강자로 떠오른 뭄바톤과 드림캐쳐가 꾸준히 추구해온 메탈의 이종교합을 이루어냈는데, 전반적으로 티피컬한 뭄바톤 리듬을 취하면서 동시에 프리코러스와 코러스 파트에 묵직한 디스토션을 걸어 놓은 기타 리프를 넣은 점이 귀를 잡아 끈다. 후반부에 몰아치는 듯한 뭄바톤 리듬 위에 곡 내내 테마처럼 반복되던 기타 리프가 얹어지는 전개도 매력적.

갓세븐 – 끝

마노: 타이틀곡 ‘Eclipse’의 후속편처럼 따라붙는, 제목 그대로 끝자락을 맞이한 관계의 씁쓸함을 서늘한 트로피컬 하우스에 실어 노래한 트랙. 트로피컬 장르인만큼 적정량의 청량함을 머금은 동시에 전반적으로 적당한 무게감을 주어 서늘하다 못해 쓸쓸하게까지 느껴지는 무드를 조성했다. 끝을 향해 가는 관계(연인 관계라고도, 그 이외의 관계라고도, 혹은 ‘탈덕’하는 덕후의 심정이라고도 해석될 수 있을)를 마치 관망하듯 담담히 읊조리는 화자의 태도가 되려 그 쓸쓸한 무드를 배가시킨다. 멤버 진영이 작사 및 작곡에 참여한 자작곡.

레드벨벳 – 친구가 아냐

심댱: 정신이 어지러울 정도의 Red. 타이틀곡 ‘짐살라빔’은 리브 페스티벌로 끌어들이기 위한 단체 손님용 주문이라면, ‘친구가 아냐’는 한 명만 콕 찝어서 홀리게 하려는 1인용 주문과도 같다. 긴장을 고조시키는 기타와 청자를 둥그렇게 둘러싼 백 보컬은, 우린 반드시 연인이 되어야만 한다고 최면을 거는 것처럼 들린다. 사랑에 빠지면서 겪는 내적 혼란은 얼른 친구의 장벽을 허물고 싶은 조급함을 만나 아찔하게만 들리는데, 좀체 가라앉지 않는 텐션은 ‘짐살라빔’에 비견할 만하다. 이 노래를 듣고 레드벨벳의 주문과 최면에 마음이 끌린다면 당신 역시 리브 페스티벌의 초대장을 받았을 테니 주머니를 뒤져볼 것.

공원소녀 – Total Eclipse (Black Out)

스큅: 하우스를 주축으로 한 매끈한 일렉트로닉 팝 사운드부터 별난 가사까지. 공원소녀는 데뷔 초부터 f(x)와 유사하다는 평을 들어왔으나, 분명한 차별점은 이들이 끊임없이 ‘재잘댄다’는 데에 있었다. f(x)식의 발화가 온갖 망상이 교차하는 난잡한 두뇌를 그대로 꺼내 놓은 것 같은 그로테스크함을 지니고 있었다면, 공원소녀에게서는 자신들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암호를 주고받으며 키득거리는 듯한 장난기가 두드러진다. (여기서 재밌는 지점은 ‘암호’스러운 가사보다 ‘키득거림’ 그 자체가 더 부각된다는 점이다. 가사가 기묘한 단어와 내용으로 채워져 있긴 하지만, 노래를 다 듣고났을 때 결국 그 뜻에 대한 호기심보다는 이들이 끊임없이 ‘재잘거렸다’는 사실인식만을 뇌리에 남기게 된다.) ‘Total Eclipse’는 그러한 공원소녀의 유희성이 십분 발휘된 트랙이다. 대개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소재인 개기일식을 그저 한여름 열기를 식혀주는 선물로 풀어낸 가사도 그렇지만, 의미론적인 해석 없이 코러스 드롭의 짜릿한 사운드 낙차와 그에 맞춰 울려퍼지는 낙천적인 ‘재잘거림’ 그 자체만으로 공원소녀의 미덕을 예증하기엔 충분하다. 그들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복잡한 세계관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남들은 모르는 ‘밤의 정원’에 초대되어 비밀스러운 파티를 벌인다는 데에서 오는 원초적인 즐거움일 테니.

에이티즈 – Light

심댱: 이전 퍼스트리슨에 남긴 평인 ‘팬덤에게 스며들 수 있는 부드럽고도 내밀한 이미지’에 근거가 되는 트랙. 유사 연애라고 쉽게 말하기 힘든, 아니 말하고 싶지 않은 ‘아이돌과 이어진 것만 같은’ 그 막연한 감각을 떠올리게 한다. 나지막하게 속삭이는 보컬은 따뜻한 멜로디를 만나 안온한 애정을 띄운다. ‘Treasure’를 함께 구할 동료로 인식했던 팬덤을 ‘Treasure’ 그 자체로 인식하게 된 순간을 담은 팬송처럼 다가왔다. 동료애에서 깃든 로맨스, 혹은 그 반대도 가능한 장면이라고 생각한다면 비약일까.

여자친구 – Paradise

스큅: 데뷔 초 조금은 투박하기도 했던 여자친구의 ‘친근함’은 연차를 더해갈수록 세련되게 정제되어왔다. ‘Paradise’는 그 좋은 예시이다. ‘<불후의 명곡> 감성’이라 칭해도 좋을 어쿠스틱 밴드 편성과 사근거리는 어투의 가창, 정직하게 내뱉는 여음구(“빠리얍빱빠~”)는 여자친구 특유의 친근한 정서를 보여주지만, 화려한 베이스와 탄탄한 드럼, 적재적소에서 맛을 더하는 신스, 교묘한 화성과 당김음은 곡을 한껏 고급스럽게 포장해보인다. 어느덧 수정구슬로 영글은 유리구슬을 보는 듯한 느낌.

드림캐쳐 – Silent Night

마노: 드림캐쳐는 앨범마다 ‘악몽’을 다소 새로이 변주한 트랙을 꾸준히 수록해왔다. 그러면서도 드림캐쳐만의 고유한 컬러를 일관적으로 계승한 것이 특징적인데, ‘악몽’ 시리즈의 외전격인 “Raid of Dream”에서 그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이 ‘Silent Night’이라는 트랙인 셈이다. 도입부의 음산하게 가라앉은 기타 리프, 비트를 드롭하며 마구 내달리는 코러스 파트, 스타카토처럼 끊어서 부르는 나지막한 저음도 매력적이지만, 무엇보다 두 번째 코러스 후에 퓨처베이스 기반의 사운드에서 프로그레시브 하우스로 전환하는 후반부가 극강의 백미라 할 수 있다. 드림캐쳐의 음악적 세계관을 더 알기 원한다면 절대 놓쳐서는 안 될 트랙.

투모로우바이투게더 – New Rules

조은재: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세계관에 본격적으로 들어서게 되는 “꿈의 장: MAGIC” 앨범에서 타이틀곡 ‘9와 4분의 3 승강장에서 너를 기다려’와 함께 팀의 색깔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트랙. ‘9와 4분의 3’이 앨범의 최종적인 메시지라면, ‘New Rules’는 서론에 해당하는 트랙인데, 3분이 채 안되는 짧은 곡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어떤 배경에서 왜 ‘9와 4분의 3’을 부르게 됐는지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고 있다. 이후에 전개될 앨범의 서사에도 분명 키 포인트를 제공할 것 같은 예감이 드는, TXT를 알아가는 데에 있어서는 반드시 참고해야할 곡.

청하 – Chica

마노: 타이틀 곡만큼이나 많은 사랑을 받았던 서브 타이틀곡. ‘Chica’는 스페인어로 ‘소녀’라는 뜻으로, 음반 소개에 따르면 ‘소녀였던 나에게 성장한 내가 건네는 자신과의 대화를 담았’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Chica chica si, you’ve got it all”, “Woman go wilder” 같은 가사를 통해 넓게는 우먼 임파워링의 메시지를 담았다고도 볼 수 있는 부분. 청하가 가진 특유의 ‘강하고 당찬 여성상’과도 잘 맞아 떨어지는 웰메이드 라틴팝 트랙. 걸파워 케이팝 트랙을 찾는다면 그 대표곡 중 하나로 꼽아도 좋을 듯 하다.

우주소녀 – 행운을 빌어

랜디: 디스코를 연상시키는 감각적인 코드 진행과 멜로디가 찰랑거리는 비트와 어우러져 멋진 곡이 탄생했다. 타이틀곡 ‘이루리’가 기승전결에 따라 리듬변환이 확실하고 분명한 드롭이 있는 ‘우리가 아는 그 케이팝 EDM’이었다면, B면에 숨은 ‘행운을 빌어’는 UK 개러지 스타일에 보다 충실하다. 우주소녀의 강점이자 풀블룸(Full8loom)의 장기는 이런 멜로우한 음 진행에 클래식한 EDM 비트를 매칭해 타이트하게 내달리는 곡에서 잘 드러난다. 은혜 갚는 고양이 화자에 맞춰 보컬들도 성우가 연기하듯 발성에 음압을 높인 것이 재미있다. 다인원 그룹인데도 당기는 리듬감에서 뒤쳐지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믹싱과 마스터링도 깔끔하다. 케이팝 프로덕션이 이룰 수 있는 어느 경지를 보여주는 곡.

엑소 – 춤

심댱: “Obsession”의 초반부는 엑소와 X-엑소의 대결 구도였다면 중반부터는 한 톤 밝은 멜로디로 노래하는 로맨티시스트가 자리한다. 이 선회의 기점인 ‘춤’은 세계관의 무게를 살짝 지우며 매혹의 세계로 우리를 초대한다. 조심스러운 가성은 손끝에 닿는 옷자락처럼 귓가를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멜로디 사이사이로 쪼개지는 비트는 몸을 움직이게 한다. 압권은 아우트로에 등장하는 플루트. ‘몽환’을 감각적으로, 그리고 성공적으로 전달한다. 풀랭스 앨범의 흐름을 바꾸는 기능적 효과를 차치하더라도 그 매력이 빛을 발하는 트랙이었다.

에이티즈 – Utopia

마노: 에이티즈라는 팀 특유의 ‘매운맛 케이팝’과는 조금 다른 매력을 엿볼 수 있는 곡. 여태까지 선보인 적 없었던 명랑한 업템포의 댄스곡이라는 점이 팀으로서는 다소 이색적이다. ‘Treasure’ 연작 시리즈 내내 강조해온 ‘보물을 향해 가는 모험’을, 사뭇 다른 결이지만 그럼에도 일관성을 유지하며 이야기하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다. 발매 시기인 여름과도 무척 잘 어울리는 시원하고 청량함 가득한 트랙.

데이식스 – Deep In Love

스큅: 데이식스 특유의 익살 섞인 록스피릿이 구현해낸 LA 메탈. 메탈에서 흔히 떠올릴 마초성 대신 풋풋한 청량함이 곡을 가득 채운다. 메탈로도 이렇게 간지러운 설렘을 일깨울 수 있다. 대형 스타디움에서 곡을 떼창하는 풍경이 절로 떠올라 다년 간의 라이브 경험을 바탕으로 공연에 최적화된 곡을 만들고 있다는 인상이 든다.

브라운아이드걸스 – 하늘

스큅: 어쿠스틱 기타와 플루트로 전원적이고 수더분한 분위기를 자아냈던 어떤날의 ‘하늘’이 탁 트인 하늘이 펼쳐진 들판에서 이리 오라 수줍게 손짓하는 것 같았다면, 브라운아이드걸스의 ‘하늘’은 이를 몽상적인 일렉트로닉 재즈로 탈바꿈시키며 청자들을 허공으로 성큼 잡아끈다. 산소를 한껏 머금은 멤버들의 보컬이 트랙 위를 부유하면 윤상과 정마태가 매만진 다채로운 리듬 세션과 신스 사운드가 리드미컬하게 공기를 놀린다. 사뿐히 하늘을 거닐다 포르르 공중제비를 넘는 듯한 간주 구간은 케이팝에서 좀처럼 체험하기 힘든 종류의 황홀경이었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 – Our Summer

마노: 한여름밤의 공기를 연상케 하는 서늘한 공간감이 몸을 감싸고는, ‘끝이 없는 기말고사’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탄식이 이어지는가 싶더니, 현실과는 확연히 다른 어떠한 환상이 펼쳐지며 눈을 번쩍 뜨이게 한다. ‘잿빛 도시’와 대비되는 ‘우윳빛 은하수’, ‘금빛 계절’ 등의 심상을 통해 손에 곧바로 닿을 듯한 풍경을 풀어놓은 점도 인상적. 마치 소음으로 가득한 잿빛 도시를 벗어나 우윳빛 은하수가 펼쳐진 여름 하늘로 두둥실 떠다니는 듯한 유영감이 돋보인다. 열대야에 뒤척이는 밤을 위로해줄 한여름밤의 동화와도 같은 트랙.

레드벨벳 – In & Out

조은재: 서늘하지만 나른하게 펼쳐지는 ‘Psycho’와 달리, 쉴 틈 없이 달리는 비트에서 오는 ‘In & Out’의 속도감은 ‘피카부’와 ‘Bad Boy’를 기대했던 사람에겐 그 어떤 곡보다 큰 만족감으로 다가올 것이다. 곡의 분위기는 다르지만, 가사의 내용은 애정의 양가감정을 표현하는 ‘Psycho’와 같은 맥락에서 전개된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여기에 레드벨벳 특유의 풍성한 보컬 화음 구성과 Kenzie의 촘촘한 사운드 레이어링은 이 곡 한 곡만으로도 지금의 레드벨벳이 가지고 있는 모든 음악적 장점을 체험할 수 있게 해준다. ‘벨벳’을 계승하는 것은 사실 ‘Psycho’보다는 이 곡이 아닐지.

온앤오프 – 모스코 모스코

심댱: 샤이니 ‘방백’, 이달의 소녀 ‘Hi High’ 등을 작업한 황현의 역작. 2019년 결산에 이름을 올린 팀, 온앤오프의 이 곡은 재생하는 동안 모스크바 왕복 여행이 가능하다는 간증이 있을 정도로 매력적이다. 이국의 민요를 연상시키는 마이너 베이스의 코드는 지나간 사랑에 이질감 한 방울을 똑 떨어뜨려 청자를 압도한다. 브리지에 위치한 디테일-나무 바닥 위에서 느리게 춤을 추는 듯한 발소리- 역시 주목할 만한 포인트. 낯섦의 조우와 변태적인 디테일 등을 미루어보건대 ‘놓치기 아까운 수록곡’이라는 부문에 들어맞는 곡이라 할 수 있겠다.

에버글로우 – 달아 (Moon)

랜디: 데뷔반의 1번 트랙으로 이런 표정없는 딥하우스를 선보이다니, 대체 뭐하는 팀인가 하고 깜짝 놀라 들여다보게 된 것이 사실이다. 한국 중소 기획사와의 합작으로 이름 정도만 들은 적 있던 어느 중국 기획사는 팀의 멤버 구성으로도 (왕이런 1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한국인이다) 음악으로도 예외적 행보를 보여주며 위에화라는 이름을 확실하게 각인시킨다. 고조된 기대감이 타이틀곡 ‘Bon Bon Chocolat’에서 터지며 2019 주목할만한 신인 에버글로우의 화려한 데뷔를 알렸다. 앞으로의 기획이 더욱 기대되는 팀.

아스트로 – Merry-Go-Round

스큅: 흔히 ‘청량함’은 신인의 ‘풋풋함’과 동의어로 여겨져 ‘성장’을 빌미로 지워지곤 한다. 그러나 이는 고착화된 패턴을 답습하는 게으른 기획의 문제일 뿐, ‘청량함’과 ‘성장’은 결코 양립 불가능하지 않다. 아스트로의 ‘Merry-Go-Round’는 그 훌륭한 방증이 될 만한 곡이다. 전에 없는 박력이 눈에 띄었던 타이틀곡 ‘All Night’과 반대로 나긋나긋하게 일관하지만, 도리어 그 여유에서 성숙을 읽어낸다. 종종 서투름을 연기하는 대목에서조차 멤버들의 안정된 기조가 돋보이며, “언제나 네 곁에서 같이 걸을게”라는 구김살 없는 고백에서는 아스트로의 신사적인 면모를 확인할 수 있었다. (차은우가 괜히 크린토피아 모델을 맡은 게 아니다!) 추가로 2018년 선공개된 크리스마스 에디션 버전과 비교해 듣는 재미도 놓치지 말기를.

오마이걸 – 심해 (마음이라는 바다)

서드: 음색 부자 오마이걸의 7인 7색 보컬을 마치 뷔페처럼 한껏 느낄 수 있는 노래로, 절제된 어쿠스틱 사운드 사이에서 멤버들의 목소리가 잔잔한 파도처럼 다가온다. “마음이란 바다 저기 끝이 난 아득해 널 바라보다 나도 모르게 어느새 깜짝 발이 닿지 않아 겁이 나지만 처음 느껴보는 떨림이야 손을 저으면 네가 느껴져”라는 후렴의 가사만으로도 곡의 이미지와 정서가 단번에 와닿는다. 이제는 오마이걸의 앨범에서 빠지면 서운한 이름 서지음 작사가의 터치와, 멤버들 각각 곡을 해석해내는 감성의 시너지가 새삼 또 한 번 빛을 발한 작품으로 “상상의 바다를 첨벙첨벙”거리던 ‘Liar Liar’의 화자가 조금은 성장하여 사랑을 얘기하는 일종의 속편처럼 읽는 재미가 있다.

그 외에도…

By Editor

idology.kr 에디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