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아이돌팝 신보 중 주목할 만한 발매작에 대한 아이돌로지 필진 단평. ‘Weekly’ 등 타 기사에 수록되었던 평들의 일부 발췌를 포함하여, 코르티스, 빌리, 엔믹스, 유나이트, 차동협(드리핀), 태양, 태용, 롱샷&박재범, 아이오아이, 크리스탈, 엑스러브, 하트오브우먼, 에스파에 관한 리뷰가 수록되었다.

예미: 케이팝 보이그룹의 포맷으로 한국 어딘가에 있을 법한 날것의 ‘영 크리에이터 크루’를 그려보겠다는 목표의식이 앨범 전체에 걸쳐 뚜렷하게 드러난다. 앨범은 으레 ‘영’한 사람의 장으로 알려진 동시대 힙합 특유의 숏폼 친화적이기까지 한 거친 질감과 특유의 ‘무지성함’을 굳이 깎아내지 않으면서도 장르 씬 대비 비교적 건전한 주제의식을 통해 아이돌 팝으로서의 소구력을 만든다. 안무와 스타일링, 휴대폰 카메라로 일부러 조악하게 찍은 듯한 뮤직비디오, 여유와 자유분방함을 지향하는 무대에서의 태도까지 모든 구성 요소가 음악의 질감을 극대화한다. 이처럼 밀도 높은 기획이 멤버들의 퍼포먼스와 합쳐지니 무대 위에서 보여주는 ‘날것’의 페르소나가 멤버 개인의 실제 아이덴티티와 분간되지 않을 지경이다. 더불어 일산 라페스타 등 여러 구 도심을 배경으로 한 뮤직비디오에서는 ’강남스타일’ 등을 통해 해외에서 사랑받아 온 한국적 토속성이 두드러지는데, 이러한 시각이 시작부터 글로벌을 지향하는 그룹의 방향성과 어우러지는 점도 주목할 만 하다.
케이팝의 모든 요소를 동원하여 얼핏 ‘무지성’해 보일 정도로 젊음만을 강조하는 이 앨범은 흥행 가도를 달리며 한국 사회에서 ‘어린 사람’을 대표하는 작품의 자리에 올랐다. ‘영크크‘는 어린 사람이 스스로를 구별짓는 데 손꼽히는 유행어로 자리잡았고, 얼마 전 지명된 국무총리 후보자는 ‘REDRED’를 인용하여 각오를 다지기도 했다. 케이팝 아이돌에게 정제된 음악과 잘 훈련된 퍼포먼스, 깊이 지향의 콘텐츠를 기대하는 청중을 철저히 배반하는 이 작품의 흥행과 소속사의 시장 지배력은 결코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이 앨범이 현재의 위치에 오르는 과정이 ‘요즘 애들’의 정서와 이를 뒷받침하는 숏폼 환경의 양상을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기에, 호불호와 관계없이 무시할 수 없는 작품이 되었다는 것은 기억해두어야 할 것이다.
퀴비: “일자무식함으로 유쾌하게 밀어붙이는 기세가 돋보였던 선공개 타이틀곡 ‘REDRED’에 이어 러프함을 넘어 투박하기까지 한 트랙들이 이어지는데, 이러한 투박함을 애써 숨길 생각 없이 오히려 과시하듯이 드러낸다는 점이 흥미롭다.” (“Weekly : 2026년 5월 1주차” 中)

비눈물: 더블 타이틀곡의 포문을 여는 ‘ZAP’은 문수아X시윤 유닛의 ‘SNAP’에서 먼저 시운전해본 중독성 강한 힙합 사운드를 빌리의 팀 컬러 안으로 자연스럽게 확장한다. 단순히 강한 인상을 남기는 데 그치지 않고, 빌리가 가진 리듬감과 무대 감각을 한층 직관적인 방식으로 정리해 초반의 열기를 끌어올린다. ‘ZAP’이 제목 그대로 잽처럼 짧고 민첩하게 선공을 건다면, 이어지는 ‘WORK’는 그 에너지를 조금 더 묵직한 타격감으로 밀어붙인다. 데뷔 앨범의 킬링 트랙이었던 ‘flipp!ng a coin’이 빌리의 날카롭고 변칙적인 매력을 처음 각인시킨 곡이었다면, ‘WORK’는 그 계보를 확신에 찬 방식으로 이어간다. 퍼포먼스, 보컬, 랩이라는 빌리의 장기가 한 곡 안에서 맞물리며, 이번 정규가 팀의 강점을 어떤 방향으로 전면화하려는 방식을 드러낸다.
‘WORK’의 인상은 시윤의 랩이 앞으로 치고 들어오는 도입부터 결정된다. 빌리의 곡들이 대체로 독특한 분위기나 서사적 장치를 먼저 세운 뒤 멤버들의 개성을 배치했다면, 이 곡은 보다 직선적인 비트 위에 멤버들의 에너지를 곧장 전면에 내세운다. 시윤과 문수아가 벌스의 초입을 날카롭게 열어젖히면, 션이 주도하는 움직임은 곡의 추진력을 안무적 쾌감으로 전환한다. 특히 퍼포먼스 비디오에서 첫 후렴구에 션이 포니테일을 휘두르며 앞으로 걸어나가는 장면은 아찔한 스릴을 남기며 속도감과 통쾌함을 그대로 전달한다. 그 뒤를 잇는 하람과 수현의 보컬은 앞선 파트의 기세를 밀도 높은 감정선으로 이어받는다. 랩 파트가 곡을 밀어붙이는 동력이라면, 보컬 파트는 그 힘이 단순한 질주에 머무르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준다. 그래서 ‘WORK’는 단순히 센 곡을 잘 소화했다는 차원을 넘어, 빌리가 본래 잘하던 무기들을 정교하게 정렬해 군더더기 없이 드러내는 트랙이다.
수록곡들은 이러한 흐름을 무리하게 흩뜨리지 않으면서 빌리가 지나온 디스코그래피를 여러 방향으로 되짚는다. ‘$ECRET no more’가 데뷔 초반부터 이어온 비밀과 불안의 정서를 다시 소환하며 팀의 오리지널리티를 다지는 곡이라면, ‘TBD’는 빌리의 다채로운 음악 안에서도 비교적 낯선 하이퍼 팝의 감각을 끌어들이며, 후반부 리믹스 트랙들과 함께 본작의 실험적 축을 맡는다. 반대로 ‘B’yond me’는 앞선 트랙들이 만들어낸 속도를 잠시 낮추며, ‘B’rave ~ a song for Matilda’나 ‘nevertheless’처럼 보컬의 결을 길게 가져가던 빌리의 장기를 다시 확인시킨다. ‘SOUPASTA’는 제목부터 장난스럽고 유별나지만, 바로 그 이상함을 끝까지 밀어붙인다는 점에서 ‘GingaMingaYo’의 후속처럼 들린다. ‘OFF-AIR’는 팬송이나 직접적인 메시지의 발라드로 정서적 결론을 내리는 관습 대신, 앞선 곡들이 만들어온 긴장을 풀면서 작품의 결을 흐트러뜨리지 않는 설득력 있는 마무리 역할을 맡는다. 리믹스 트랙들은 본편이 끝난 뒤 이어지는 애프터 파티처럼 핵심 곡들의 매력을 더 또렷하게 부각하거나 미처 보지 못한 새로운 색깔을 드러내 주기도 한다. 이처럼 정규앨범으로서의 유기성과 확장성은 분명히 챙겼지만, 그와 별개로 본편의 체감 분량이 다소 짧게 느껴지는 점은 아쉽다. 특히 ‘cloud palace’처럼 이 앨범의 정서와 충분히 맞물릴 수 있는 곡은 원곡 형태로 중반부에 놓였다면 트랙 간 흐름을 한층 더 풍성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the collective soul and unconscious: chapter two”는 빌리가 지금까지 펼쳐온 세계관을 다시 설명하기보다, 그 세계관을 음악 안에서 실제로 작동시키는 쪽에 더 무게를 둔다. 티징 콘텐츠와 설정은 팀의 서사를 받쳐주지만, 본편에서 맨 앞에 놓이는 것은 결국 노래와 퍼포먼스, 그리고 멤버들의 역량이다. 빌리의 강점은 낯선 것을 이상한 채로 밀어붙이는 데 있었지만, 이번 앨범은 그 낯섦을 단순한 콘셉트가 아니라 전체 구성의 질서로 정리한다는 점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단순한 집대성이라기보다, 지금까지의 빌리를 현재의 감각으로 다시 배열한 결과물이라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이 정도의 완성도와 팀 고유의 논리를 동시에 확보한 앨범은 케이팝 안에서 흔치 않다. 그 성과가 내부의 완성도에만 머물지 않았다는 점에서, ‘WORK’를 통해 이전보다 가시화된 대중적 반응 역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빌리는 츠키의 강렬한 표현력으로 먼저 널리 각인된 팀이지만, 이번 앨범은 그 너머에 있는 멤버들의 랩, 보컬, 퍼포먼스 역량 또한 꾸준히 준비되어 온 팀의 탄탄한 내공이었음을 함께 드러낸다. “the collective soul and unconscious: chapter two”는 빌리가 해온 작업을 정리하는 동시에, 아직 다 보여주지 않은 다음 단계를 기대하게 만드는 앨범이다.
퀴비: “찌릿찌릿한 사운드의 곡들이 리드하는 전반부는 “the Billage of perception” 시리즈의 괴상야릇하게 삐죽이는 성정을, 유려한 리믹스 트랙들이 중심이 되는 후반부는 “the collective soul and unconscious: chapter one”과 부록 앨범 “Of All We Have Lost”의 사근사근하고 신비로운 지향을 따르는 듯하다.” (“Weekly : 2026년 5월 1주차” 中)

퀴비: “‘Blue Valentine’ 이후 엔믹스는 카오스의 “믹스팝”을 인도할 나침반으로 사랑이라는 보편적 소재와 그를 실어나르는 선명한 멜로디를 채택한 것처럼 보인다.” (“Weekly : 2026년 5월 2주차” 中)

조은재: “케이팝적으로 잘 다듬어진 하우스에 상투적인 가사 표현을 끼얹어 ‘재미있는’ 곡이 되려는 것을 포기하려는 듯한 찰나에 절박하게 매달려오는 것은 곡에 끌려가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DEY의 까칠한 톤의 랩이다.” (“Weekly : 2026년 5월 2주차” 中)

조은재: “마치 잘못된 곡을 어쩔 수 없이 발표한 듯 일말의 집중력도 발휘하지 못한다. 물론 이런 무기력한 상태의 멤버들을 잘 조직해내지 못한 기획자의 책임도 분명 있다. 12년전 인피니트F가 데뷔했던 시절로부터 아무런 레퍼토리 차별점을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기획자의 안일함, 혹은 권태를 느낀다.” (“Weekly : 2026년 5월 2주차” 中)

에린: “QUINTESEENCE”는 태양의 9년만의 정규앨범으로, 어느덧 솔로로서도 20주년을 앞둔 베테랑의 관록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풀어내며 그가 여전히 유효한 팝스타임을 드러낸다. 도입부를 여는 ‘BAD’는 굵직한 비트 위로 힘 있는 보컬이 짧고도 강렬하게 몰아치고, 위켄드가 연상되는 신스팝 ‘LIVE FAST DIE SLOW’는 보컬의 묵직한 ‘땜핑’감과 노련한 그루브로 파워풀한 보컬로서의 정체성을 각인시킨다. 이어 까끌까끌한 전자 사운드를 노련하게 아우른 ‘OPEN UP’과 일렉트로닉 댄스곡인 ‘NOW’는 현재의 트렌드와 감각적으로 호흡하는 면모를 보여준다. 반면에 ‘태양’하면 떠오르는 익숙한 보컬로서 전형적인 R&B 트랙인 ‘LOVE LIKE THIS’나 담백한 목소리로 깊은 여운을 남기는 ‘G.O.A.T’는 그의 보컬 본연의 정체성과 깊은 내공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QUINTESEENCE”는 다양한 장르적 변주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관록의 보컬을 현명하게 활용하여 그가 여전히 웰메이드 대중 팝을 선보일 수 있는 아티스트임을 영리하게 증명한다.
퀴비: “역대 태양의 디스코그래피를 통틀어 가장 팝스타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앨범이다. (중략) ‘LOVE LIKE THIS’에서 ‘YES’로 넘어가는 대목에서는 25년 전 크레이그 데이빗의 모습이 언뜻 비치기도 한다.” (“Weekly : 2026년 5월 3-4주차” 中)

퀴비: “페이스(pace)가 빨라도 너무 빠른 작금의 아이돌팝 세계에서 ‘군백기’를 거친 이들의 복귀작 정도가 드물게 인내의 미덕이 있는 ‘원기옥’ 작업을 보여주곤 하는데, 태용의 정규 1집이 바로 그 예시라 할 수 있겠다.” (“Weekly : 2026년 5월 3-4주차” 中)

퀴비: “정규작보다도 여러 장의 믹스테잎을 의욕적으로 발매하는 컴백 방식, 케이팝보다도 국내 힙합계와 더 조응하는 프로덕션, 그 역시 아티스트인 기획사 대표와 나란히 힘겨루기를 하는 구도 등 기존 케이팝의 공정법과는 판이하게 다른 실험을 끊임없이 이어나가는 모습이 흥미롭다.” (“Weekly : 2026년 5월 3-4주차” 中)

예미: ‘프로듀스 101’이라는 한 시절을 통과한 이들이 이후 10년을 성실히 살아내어, 10주년 기념 재결합을 이뤄냈다는 감격을 우선 말해두겠다. 이 감격을 만들어낸 멤버들은 활동 당시 어수선한 상황으로 인해 불가피했던 ‘세련되지 못함’을 레트로 기반의 ‘친근함’으로 바꿔내는데, 트로트를 연상케 하는 구성진 후렴구가 아련한 감정선과 어우러지는 타이틀곡 ’갑자기’가 대표적이다. 군데군데 최신의 음악을 선보이는 곡들도 있지만 정확히 10년 전의 딥 하우스를 연상케 하는 ‘IOI (Where My Girls At)’, 팀을 대표하는 아련한 감정선을 보여주는 발라드 ‘그때 우리 지금‘ 까지, 본작은 그룹의 주 활동기에 흥했던 문법을 지금의 내공으로 구현하며 한 시절의 추억을 아름답게 그려내는 데에 집중한다. 오늘을 자축하며 ‘웃으며 안녕’을 외치는 앨범을 가능케 한 것은, 결국 성실히 삶을 쌓아올렸고 또 쌓아올릴 멤버들의 족적이었을 것이다.
퀴비: “통속적인 레트로 신스팝 ‘갑자기’는 애틋한 감성을 꽤나 팽팽하게 쌓아올리다 마지막 후렴구 “라라라~”에 이르러 긴장감을 완전히 풀어버리며 기어코 듣는 이를 너털웃음 짓게 만드는데, 이것이 황당함의 실소보다도 유쾌함의 미소에 가깝다는 점이 바로 아이오아이가 가진 미덕일 듯하다.” (“Weekly : 2026년 5월 3-4주차” 中)

마노: 후배 그룹을 기획할 때, 소속사에서 가장 많이 저지르는 패착이란 단연 ‘제 2의 선배 그룹’ 혹은 ‘선배 그룹의 카피캣’을 조형해버리고 만다는 점이다. 에이티즈의 후발대로서 2023년에 데뷔한 싸이커스에 대해서도 이러한 패착은 여지없이 감지되곤 했다. ‘복붙’ 격인 프리-데뷔 프로모션 과정은 특히나 그 패착의 정점으로, 판이한 기획과 마케팅 방향성을 가졌어야 할 팀에 필요 이상의 부담을 안겨버리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본작에 이르러서야 프로덕션은 두 팀이 ‘다르다’는 것을 비로소 인정한 듯하다. 폭발적인 에너지와 안정적인 라이브 실력으로 꽉 채우는 무대력은 닮아있으되, 어떤 기획 방향성을 가져가야 팀의 매력을 최대한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 제대로 인지하고 있다는 인상. 이것을 실현 가능하게 하는 멤버들의 꾸준한 성장세도 결코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팀에 있어서 소위 ‘키 플레이어’가 아직 보이지 않는다”는 치명적인 단점도, 상당히 설익은 느낌이었던 수행력도, 프로덕션과의 합 같은 부분도 매우 개선된 점을 보이고 있으며, 디스코그래피도 이를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잘 서포트하고 있다. 전작까지만 해도 ‘한끗’이 여전히 부족해서 고개를 갸웃하게 했다면, 이제야 드디어 흩어져있던 모든 요소가 정확히 맞물려 정렬되기 시작했다는 확신이 든다.
그런 ‘확신’을 폭발적인 에너지와 생기, 그리고 온 세상을 울릴 듯한 포효로 밀어붙이는 타이틀곡 ‘OKay’는 일종의 선언이다. “‘제 2의 누구’로서가 아닌, ‘제 1의 싸이커스’로서” 세상을 향해 던지는 도발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10명의 ‘별종’들이 펼치는 반란은, 어쩌면 지금부터가 정말로 시작인지도 모르겠다. ‘도발’에 가까운 자신감을 올드스쿨풍 스웨거로 풀어낸 ‘Trophy’, ‘별종들’로서의 긍정과 희망을 발랄할 디스코 리듬에 담아낸 ‘문제아’를 꼭 놓치지 마시길.

퀴비: “오혁과 선셋 롤러코스터 궈궈의 축축한 반주가 관조적으로 흐르는 가운데, 보정을 일부러 많이 하지 않은 듯한 로(raw)한 질감의 보컬은 세상에서 도망치면서도 사람들이 왜, 어떻게 함께 살아가고 싶어하는지(“People Want to Live Together”)에 관해 계속해서 궁금해하는 자신을 응시한다. 결국 ‘Solitary’의 권태와 염세 이면 깊숙한 곳에 사실 관계에의 갈망이 자리함을 은근하게 드러내고 있는 듯하다.” (“Weekly : 2026년 5월 3-4주차” 中)

퀴비: “‘젠더 프리’ 스타일링을 넘어 본격적으로 ‘퀴어’ 코드를 표방하기 시작한 앨범. 그렇다고 해서 단지 의의만으로 효용을 가지는 작품은 아니다. 혹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아직도 있다면 이들의 무대 퍼포먼스를 확인하시길.” (“Weekly : 2026년 5월 3-4주차” 中)

예미: 신생 기획사의 첫 신인 걸그룹이 데뷔작으로 정규 앨범을 내놓는 일은 무척 이례적인데, 그 앨범과 무대가 명확한 테마와 괜찮은 설득력을 갖고 있다는 것은 더더욱 이례적이라 할 만 하다. 첫 두 곡인 ‘ALIVE’와 ‘SHOW H.O.W’부터 힙합과 R&B의 향이 묻어나는 2000년대 팝 사운드를 명확하게 드러내는 앨범은, 탄탄한 코러스 라인과 랩 사이사이 비음 섞인 목소리로 포인트를 잡아 나아간다. 이처럼 걸그룹의 포맷으로 가능한 장르성을 한껏 보여주는 수록곡들 사이 위치한 타이틀곡 ‘나를 잃지 않는 방법’은 뉴 질 스윙 사운드 위에 눈에 띄게 친숙한 멜로디 라인을 내세워 향수의 배경을 잠시 한국으로 옮긴다. 신화와 보아 등 당시 한국의 아이돌 팝이 연상되는 동시에, 장르성을 추구하면서도 통속성을 놓지 않던 소속사의 공동 창립자 휘성의 성향도 떠오르는 장면이다.
만만치 않은 난이도의 기획에 설득력을 부여하는 것은 결국 멤버들의 역량이다. 데뷔곡부터 다수의 댄서를 동원하여 규모 있는 무대를 꾸린 이 그룹은 2000년대 안무의 들썩임을 현재에 맞는 역동성으로 살려내면서도 무대 위에서 라이브 가창을 매우 높은 비중으로 해낸다. 완성도 높은 무대를 보여주는 그룹이기에, 고전의 재해석으로 가장 고전적인 음악가로서의 덕목을 앞세우려는 그룹의 앞날을 기대해보게 된다.

마노: “Complæxity”라는 완전히 새로운 시즌을 선언하고 새로이 내놓는 풀-렝스 앨범이라는 점을 구석구석 납득케 하는 한 장. 풀-렝스로서는 전작인 “Armageddon”이 완성도로서는 이견이 없는 명작이긴 했으나 후반부의 집중도가 (개인의 취향에 따른 편차는 있을 수 있어도) 다소 루즈해지는 경향이 있었다면, 본작은 그런 집중도를 바짝 끌어올리며 집중도와 완성도까지 모두 챙겨냈다. 그런 점에서 에스파 디스코그래피의 정점이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위협적일 정도로 당당하고 주체적인 여성상을 “특이점”과 “변종”이라는 경외와 공포의 이중성으로 풀어낸 ‘WDA’로 스타트를 끊고, 스피디하게 내달리며 세상의 ‘균열’을 나름의 위트로 돌파해버리는 애티튜드의 타이틀곡 ‘LEMONADE’로 분위기를 한 번 환기하고 나면, 에스닉하고 묵직한 비트가 돋보이는 ‘Shakin”, ‘Rich Man’의 궤를 잇는 자기애적 메시지를 담은 팝록 넘버 ‘Can’t Help Myself’, 메탈릭한 질감의 신스가 돋보이는 하이퍼팝 ‘Camouflage’, ‘투어용 폭탄’으로서 철저히 기획된 하이브리드 트랙 ‘Switchblade’, 천진한 영어 동요 샘플링이 흥겨운 ‘Roll’, 공연 피날레 넘버로 손색이 없을 ”Till We Die’ 등 하나같이 준수한 퀄리티의 수록곡이 차례로 이어진다. 특히 필자를 ‘두 손 두 발 다 들게 한’ ‘Can’t Help Myself’, ‘Switchblade’는 놓쳐서는 안 될 본작의 백미. ‘시즌 3’를 성공적으로 열어낸 에스파의 다음 에피소드가 기대되지 않을 수 없다.
퀴비: “결국 준수한 프로덕션과 멤버들의 기세로 모든 걸 돌파해내는 앨범이다. (중략) 절뚝거리는 트랙과 신경이 바짝 곤두선 멤버들의 가창이 얽히고 설켜 맹렬히 쏘아붙이는 ‘Shakin’’, 역대 케이팝 아이돌과 서구권 팝스타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케미스트리를 보여주는 ‘Switchblade’ 등 그룹의 콘셉추얼함과 멤버들의 퍼포먼스가 모두 예리하게 벼려진 트랙들을 특히 추천한다.” (“Weekly : 2026년 5월 3-4주차”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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