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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산 2019 : 뮤직비디오 Pick!

2019년에도 새로운 기술과 기법, 발상과 태도의 수작 뮤직비디오들이 쏟아졌다. 이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작품들을 아이돌로지 필진이 꼽아 보았다.

케이팝 아이돌의 미학적, 전략적 지향점을 가장 정제된 형태로 보여주는 것이 뮤직비디오다. 2019년에도 새로운 기술과 기법, 발상과 태도의 수작 뮤직비디오들이 쏟아졌다. 이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작품들을 아이돌로지 필진이 꼽아 보았다. 게재는 무순.

이달의소녀 – Butterfly

마노: 뮤직비디오에 앞서 공개된 티저에는 “For all LOOΠΔs around the world(세상의 모든 이달의 소녀들을 위해)”라는 부제가 붙었다. 영상은 다양한 인종의 소녀들과 멤버들의 군무를 교차적으로 비춘다. 무심히 카메라를 응시하던 소녀들은 어디론가 달려나가거나, 춤을 추거나, 책상 위에 올라서기도 하며 각자의 ‘자유’를 갈망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인다. 뮤직비디오 역시 이와 다르지 않은 구성을 보이는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히잡을 쓴 아랍계 여성과 흑인 여성이 등장한다는 점이다(필자는 앞서 본작의 Draft에서 이를 두고 “케이팝 뮤직비디오의 역사에 있어 가장 진보적인 순간으로 기억될 것이라 감히 확신한다”고 평한 바 있다). 무엇보다 이 ‘이달의 소녀들’을 전시하는 데 있어 물화(物化)적 시선이 일절 개입되지 않았다는 것 역시 이 뮤직비디오의 큰 미덕이라 하겠다. 인종도 출신도 체형도 다른 ‘이달의 소녀들’을 소환함으로 인하여 곡과 뮤직비디오는 ‘자연스레 이 세상의 모든 소녀를 향한 송가의 지위를 얻‘고, 동시에 보는 이에게 단단한 연대와 임파워링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까지 성공한다. 물론, 아름다운 영상미가 이 모든 것을 뒷받침 해주었기에 가능한 결과물이라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재차 강조하건대, 이는 지금까지의 케이팝 뮤직비디오 역사에 있어 가장 진보적인 결과물 중 하나이다.

선미 – 누아르

심댱: 뮤직비디오 속 총천연색의 색감이 메시지를 더욱 살려냈다. ‘가장 빛나는 비주얼을 두르고 어두운 부분을 노래하는’ 선미는 현대사회의 ‘누아르’를 SNS 세상에서 찾았다. 타인의 관심을 좇느라 저지르는 기행, 감정을 느끼기도 전에 현장을 공유하는 모습을 #관심, #소통해요 등으로 담아냈다. 심지어 그 모순을 스스로에게도 드리우는데, 스튜디오 촬영 후 폭발한 자신의 차를 등진 채 셀피를 찍는 마지막 장면은 자신 역시 관심의 늪에서 벗어나기 어려움을 찝찝한 형태로 고백한다. 무표정으로 띄우는 손가락 하트, 그리고 하트 캔디는 SNS의 하트를 연상시키는데, SNS는 피곤하지만 차마 끊어내기 힘든 중독으로 생각했던 걸까 싶다.

Jus2 – Focus on Me

마노: 시네마스코프(2.35:1) 비율의, 서늘하고 차가운 질감의 화면 안에서 크고 작은 사각의 프레임이 마치 마뜨료시카 인형처럼 끊임없이 열리고 포개지고 교차한다. 노이즈 내지는 글리치(glitch)로 가득한 프레임 안에서 춤을 추는 JB와 유겸의 모습이 계속해서 겹쳐지고 교차하길 반복한다. 뮤직비디오는 특별한 서사보다는 마치 최면을 거는 듯한 이미지의 나열로 몽롱하고 몽환적인 곡의 무드를 최대치로 증폭하며, 고조 없이 담담하게 흘러가는 음악을 시각적 요소로 번역하여 전달하는 것에 오롯이 집중한다. 태민의 ‘Move’, 종현의 ‘빛이 나’, 몬스타엑스의 ‘Follow’ 등 굵직한 작품을 연이어 작업해온 하이퀄리티피쉬(Highqualityfish) 특유의, 노이즈와 글리치를 활용한 감각적인 영상미가 돋보이는 작품.

블랙핑크 – Kill This Love

서드: 블랙핑크의 뮤직비디오는 케이팝이 해외에서 각광받는 요소들을 잘 알고 그 수요에 부합하는 퀄리티의 비주얼을 언제나 충실히 제공하고 있다. ‘Kill This Love’는 현시점에서 그 정점에 달한 작품으로, 복잡한 세계관이나 서사보다는 파편적이면서도 단도직입적인 이미지들을 나열하며 영상미만으로 보는 이를 압도한다. 파트가 전환될 때마다 각기 다른 세트와 의상, 콘셉트로 전개되면서 멤버의 개성을 강조하고, 코러스에서는 <툼레이더>를 연상케 하는 전사의 이미지로 통일시켜 샷건을 쏘는 듯한 안무와 함께 “Kill This Love”라는 구절을 강렬히 전달한다. 게다가 1절과 2절, 또 브리지와 두번째 코러스에서조차 세트와 의상이 중복되지 않는 점은 얼마나 이 뮤직비디오가 초호화인지를 여실히 말해준다. 마칭 사운드와 함께 백댄서들과 군무를 펼치는 마지막 시퀀스는 이 화려한 쇼의 마침표를 찍기에 더할 나위 없이 걸맞은 스케일. 누군가 “케이팝 뮤직비디오란 대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가장 먼저 보여주기에 충분한 작품이다.

에이스 – Undercover

스큅: 에이스의 독보적인 면은 속칭 ‘후까시’라 불리는 일종의 마초성을 극한으로 밀어붙이는 가운데 포장 과정에서 이를 완전히 뒤틀어버리는 ‘메타-후까시’에 있다. 단순히 고전 SMP에 지드래곤 식의 아이코닉한 스타일링을 덧씌운 것이라 여길 수도 있지만, 이들이 나란히 제시하는 이미지의 남다른 극단성은 그 너머를 시사한다. 흉포하게 찍어대는 비트, 비장하고도 통속적인 멜로디, 기합이 바짝 들어간 과시적인 안무 등 현존하는 그 어떤 그룹보다도 강도 높은 ‘후까시’를 선보이면서 여기에 핫팬츠와 크롭탑 의상을 곁들여버리는 위용은 분명 메타적인 무언가다. 부끄럼도 헛바람도 없이 착실한 멤버들의 수행력은 여기에 일말의 위화감도 내어주지 않는다.
‘Undercover’의 뮤직비디오는 에이스 표 ‘메타-후까시’의 결정체와도 같다. 고전 SMP에서 선을 배제하고 힘과 각만을 취한 듯한 퍼포먼스가 우악스러운 기타와 드럼 사운드 위에서 길길이 날뛰면, 짧게 크롭한 제복, 과한 색조 섀도와 글리터가 고삐를 바투 잡으며 퍼포먼스의 지향점을 분명히 한다. 2절 도입부 병관이 호피무늬 크롭탑에 노란 퍼 코트를 걸쳐 입고 등장하는 장면은 가히 압도적인 수준. 여기에 맥락 없는 영어문구와 구색용 이미지까지 더해지니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다. 지독한 선해일 수 있겠지만, 이쯤하면 다분히 사카즘적으로 케이팝을 해체하고 재구성하고 있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니지 않을까. 2019년을 통틀어 케이팝의 과잉, 아니, ‘캠프(camp)’의 미학을 가장 잘 구현한 뮤직비디오.

NCT 127 – Superhuman

서드: 전통적 SMP에 NCT 특유의 네오함이 결합되면 어떤 결과물이 나올까? ‘Superhuman’의 뮤직비디오는 마치 그 의문점을 풀기 위한 실험 같다. 휘황찬란한 조명과 매끈하게 빠진 세트의 비주얼은 그동안 NCT 127이 타이틀 곡에서 보여주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양새지만, 곡의 속도감과 폭우처럼 쏟아지는 화음이 영상과 어우러진 시너지가 결국 몰입감과 설득력을 만들어낸다. 가장 높이 사고 싶은 부분은 이 모든 현란함이 멤버들의 미모와 퍼포먼스를 충실히 조명하는 데에 쓰이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이들이 추구하는 ‘네오’란 멤버들이 지닌 능력치이며, 그렇기에 그들이 바로 ‘Superhuman’이라고 주장하듯이.

청하 – Snapping

마노: 구성으로만 보면 티피컬한 케이팝 뮤직비디오와 별반 다를 게 없으나, 뮤직비디오를 감독한 리전드필름의 시그니처로 자리 잡은 화면비 변화를 통해 영상미와 피사체 자체에 오롯이 집중하였다. 마치 세로로 찍은 ‘직캠’을 가로로 놓은 듯한 립싱크 장면과 가로로 찍은 군무 장면이 교차하는 부분, 2절로 돌입하며 화면비가 가로에서 정사각형으로 변화하는 부분, 그리고 정사각형의 화면 뒤로 붉은 드레스를 입은 청하가 낙하하는 장면이 교차하는 부분은 시각적으로 짜릿한 쾌감을 주는 예시들이다. “화면 비율을 바꿔서 특수효과 같은 느낌을 내는 것”이라 밝힌 바 있는 리전드필름의 의도를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풍부한 색감을 가진 장면들이 곡의 리듬에 맞춰 시시각각 다이내믹하게 교차하고 변화하는 감각적인 연출 역시 인상적이다. 한 번 보면 그 누구라도 쉽사리 잊지 못할 임팩트 있는 작품.

하성운 – Blue

심댱: 일렁이는 수면, 푸른 하늘 등 ‘Blue’를 연상시키는 모든 것을 끌어안는다. 하얀 의자 사이에 놓인 그가 구름 위를 떠다니는 한 마리의 고래가 되거나, 안무 씬에서 절도 있는 동작이 파도가 되는 식으로 하성운은 고래 혹은 물이 되어 ‘Blue’의 소재로 쓰인다. 하늘을 떠도는 고래와 깊고 푸른 방안에 자리한 인물은 하나로 연결되는데, 물을 매개로 타인을 자기만의 환상적인 공간으로 끌어들인다. 색감을 감각적으로 표현한 뮤직비디오.

슈퍼엠 – Trailer: Mark (Super Car)

스큅: 산업적/상업적 성과를 제쳐두고 보면, 슈퍼엠의 유일한 효용은 재능 있는 멤버들에게 새로운 판이 부여 되었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었다. (물론 그것이 각자의 본진 그룹이 아닌 슈퍼엠으로서만 가능했던 것인지는 의문이지만.) 마크의 개인 트레일러는 그러한 효용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준다. 회사의 야욕으로 점철된 판도 위에서, ‘Super Car’라는 탐심의 상징 위에서, 알 껍질을 깨고 나온 소년은 태연자약하게 자신의 자아에 대해 노래하기 시작한다. ‘Super Car’를 클리셰적인 ‘플렉스’의 소모품이 아닌 굳센 자아를 은유하는 소재로 활용한 래핑은 마치 욕망의 수렁 위에서 부리는 외줄타기 묘기를 보는 듯하다. 좁은 사각형 단상 위에 서서 카메라와 눈을 맞추며 랩을 하고 있음에도 그 어떤 시선과 환경에도 구속되지 않는 듯한 초탈함이 감지된다는 점이 놀랍다. 사람들이 그토록 부르짖는 ‘스왜그’는 바로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멤버 태용의 말을 인용하며 평을 마무리해본다: “갑니다 아시아 최고의 래퍼”.

드림캐쳐 – 데자부

마노: 드림캐쳐의 음악은 늘 ‘애니메이션 오프닝 테마곡 같다’는 평이 끊이지 않는데, ‘데자부’의 뮤직비디오는 이것을 아예 현실로 구현한 듯한 만듦새다. 케이팝 뮤직비디오의 필수 요소인 군무 장면을 최소화하고, 대부분의 장면을 서사 이미지의 나열로 채워넣은 뒤 애니메이션 오프닝 특유의 클리셰적 연출을 군데군데 얹었다(서로를 바라보며 웃던 회상 씬에서 갑자기 혼자가 된 유현을 비추는 장면으로의 전환, 쓰러져있는 지유 위로 날아다니는 나비 등). 군주, 기사, 마법사 등 판타지 세계관에 입각한 캐릭터들이 반목하고 대립하며 서로를 배신하는 스토리를 암시적으로 비추는 것 역시 애니메이션 오프닝의 흔한 구도. 게임 <킹스레이드>와 콜라보 했다는 것 역시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겠으나 사실 둘 사이의 공통분모는 그다지 크지 않으며, 오히려 지금까지 드림캐쳐가 이어온 “악몽 시리즈”의 외전격 스토리를 판타지 세계관적 서사로 풀어냈다 보아야 할 것이다. 선명하고 다채로운 색감 속 상상력을 돋우는 오브제의 적절한 사용도 하나의 관전 포인트. 피아노 반주만 흐르거나 무반주로 노래가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느릿하게, 그러다 코러스에서 격정적으로 폭발하면 마찬가지로 빠르게 몰아치며 곡과 호흡을 같이 하는 영상미도 만족스럽다. 첫째로는 눈이 만족하고, 둘째로는 상상력을 자극하며 마지막 장면 후 보는 이로 하여금 길고 긴 여운에 빠지게 한다. 꾸준히 이어온 서사와 세계관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효과적으로 상업적 콜라보까지 이루어내고, 영상미와 서사 그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은 수작.

카드 – Dumb Litty

랜디: 카드는 2019년 한 해 두 장의 디지털 싱글만을 발매했지만 곡마다 임팩트가 상당했다. 그 중 9월에 발매한 ‘Dumb Litty’는 멤버 BM이 프로듀싱한 곡으로, 비트는 트랩으로 조정했으나 이제까지 카드가 히트 시킨 뜨거운 뭄바톤 베이스 곡들과 비슷한 분위기를 공유하고 있다. 4인이 거의 인터랙션 하지 않으면서 각자의 방향으로 발산하는 에너지가 뮤직비디오 안에도 고스란히 들어있는데, 해를 거듭할수록 여남이 무대에 서면 반드시 보이리라 기대받는 ‘헤테로섹슈얼 무브’를 철저히 배제하면서 더 재미있는 결과물을 낳고 있다. 특히 ‘Dumb Litty’에서는 지우가 연기하는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관능이 눈에 띈다. 일부러 홑꺼풀이 더 도드라지도록 붉게 발린 메이크업이나 자기 반신만한 장검 소품은 카드가 표현할 수 있는 영역을 더욱 확장하며 지우의 존재감을 4분의 1 그 이상으로 못박는다. 멤버 구성만으로도 충분히 실험적이었던 이 팀은, 이미 티피컬한 케이팝 그 이상의 형태로 자라난지 오래다. 2020년에도 멋진 활동을 기대한다.

트와이스 – Feel Special

조은재: 스스로가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은 외로움을 표현하기 위해 역설적으로 가장 화려하게 꾸며진 트와이스 멤버들은, 서로를 향한 위로와 응원을 나누는 가사가 흐르면서 마침내 곁에 있던 다른 멤버를 발견하고, 눈을 맞추고, 서로를 ‘응시한다’. 적극적인 응원이나 위로가 아니라, 그저 ‘지켜본다’. 늘 연기해 오던 ‘트와이스’라는 캐릭터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짧은 뮤직비디오 안에 이 정도로 강렬한 ‘연대’의 메시지를 녹여냈다는 게 놀랍다. 트와이스의 디스코그래피를 팔로우 하던 사람에게는 더욱 큰 감동으로 다가올 만하다. 대답이 돌아오지 않을 막연하고 수동적인, 그래서 더 적극적이었던 애정 표현을 넘어, 마침내 의연한 자매애(sisterhood)를 만난 가사를 영상 언어로 직역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연대감이 필요한 입장에서는 이 메시지가 변화한 시대상과도 같은 방향을 향한다는 게 반갑다. 이 뮤직비디오를 보고 나니 앞으로도 서로의 용기가 되어주기를 바라게 된다. 트와이스 멤버들끼리도, 트와이스를 응원하는 사람들과도.

투모로우바이투게더(TXT) – The Dream Chapter: Magic Concept Trailer

스큅: 뮤직비디오 ‘티저’와 별개로 새로이 품을 들여 만든 이 ‘콘셉트 트레일러’는 앨범 콘셉트의 예고편을 넘어 새 시대의 아이돌이 탄생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처럼 느껴진다. 프로젝션 매핑을 이용한 퍼포먼스는 현실 위에 판타지를 아슬아슬하게 중첩시키는 그룹의 세계관을 효과적으로 각인시켰다는 점에서도 의미있지만, 케이팝의 패러다임 전환의 측면에서도 언급할 만한 가치가 있다. 지금껏 케이팝에 동원되었던 미디어 아트는 대개 2차원의 벽면에 이미지를 띄우고 특정 심상을 일방향으로 전달하는 식이었다면, ‘The Dream Chapter: Magic Concept Trailer’의 프로젝션 매핑은 멤버들이 자리하는 3차원 공간으로 시청자를 불러들인다. 세심한 카메라워크를 쫓아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환상특급을 따라가다 보면 이 영상이 단순 시청을 넘어 체험을 촉구하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마침내 다다른 노란 대문 앞에서 휴닝카이가 “도망갈까?”라며 손을 뻗는 순간, 새로운 차원에서 넘어온 초대장을 받아든 느낌이 들기도. ‘4세대 아이돌’의 분수령을 논함에 있어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콘텐츠. 더불어 이러한 새로운 구도를 제시하는 것이 SM이 아닌 빅히트가 되었다는 점에서 부정할 수 없는 헤게모니의 이전을 절감한다. (영상 초반에 샘플링된 곡의 제목이 ‘New Rules’라는 점은 결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몬스타엑스 – Follow

조은재: 색온도 대비를 통해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뮤직비디오. 이글거리는 태양광을 느끼게 하는 붉은 필터와, 서늘한 달빛을 표현하는 푸른 세트와 의상이 빠른 템포로 교차 전환되는데, 이런 연출 방식은 ‘달이 거짓말처럼 태양에 겹친 날’, 즉 개기일식이라는 테마를 직관적으로 나타낸다. 여기에 군무 장면을 해시계 위에 연출해 멤버들을 시간을 초월한 존재로 그려낸 부분이나, 멤버의 뒤에 광원을 배치해 절대자의 이미지를 연출한 것은 이 팀이 발산하는 에너지와 운동성을 상징 기호로 시각화 해낸 메타포겠다. 뜨거웠다 차가웠다 하며 땀과 소름을 피부로 느끼게 하는 영상미가 일품인 가운데,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보이그룹의 넘치는 패기와 몬스타엑스 특유의 건강미까지 덤으로 느낄 수 있다.

태연 – 불티 (Spark)

스큅: 뜨거운 불꽃보다도 서늘한 음영의 이미지가 도드라지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이제 막 피어나는 불티의 치열함을 포착해낸다. “불티를 깨워”라는 가사와 함께 조명이 붉게 물들며 태연의 비장한 표정을 비추는 컷은 4분 여의 뮤직비디오를 한 컷으로 압축해낸 순간이라 할 수 있다. 옥상 위에서, 크레인 위에서 “춤추듯 온 몸을 사르”고 “새벽을 훨훨 날아가”는 태연과 댄서들의 모습을 비추는 장면들은 별다른 메타포나 상징을 환기하지 않더라도 그 이미지 자체만으로 ‘불티’라는 노래와 태연이라는 인물에 대해 입체적이고 풍부한 인상을 남긴다. 2019년 SM에 비주얼 디렉터로 새로이 부임한 김세준의 깔끔한 패션 잡지식 미감이 가장 좋은 시너지를 발휘한 뮤직비디오이기도 하다.

(여자)아이들 – Lion

스큅: ‘Lion’은 “날 가둘 수 없어 아픔도”라는 결의로 시작해 “길들일 수 없어 사랑도”라는 포고로 끝난다. ‘Lion’의 뮤직비디오는 가사의 흐름을 고스란히 영상언어로 옮기고 있다. 도입부 민니가 자리하던 제단 위에는 숫사자가 놓이게 되고, 숫사자상이 자리한 계단 위에는 (여자)아이들이 올라선다. 미연과 우기를 가둬두던 프레임에는 불이 붙고, 마지막 장면은 끝내 숫사자의 초상에 불을 지른다. 초상 앞에 선 수진의 타투 “Self love is the best love”가 증거하듯 이것은 자존에 근거한 해방이다. 2019년의 시대정신으로 기억될 뮤직비디오.

마마무 – Hip

랜디: ‘평행우주’라는 콘셉트를 빌어 마마무 멤버들이 하고 싶은 캐릭터 연기를 각자 네 가지씩 보여준다. 멤버가 네 사람이니 총 열여섯 개의 캐릭터다. 환경운동가나 대통령처럼 노골적으로 정치적인 인물도 있고, 치마를 뜯어버리고 궁에서 탈출하는 공주나 남편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는 아이 엄마처럼 고전적 여성상을 비튼 역할도 있으며, 엔터사의 CEO나 뮤직비디오 감독처럼 이제껏 마마무가 노동해온 환경 속 뒤바뀐 갑을을 꿈꾸는 캐릭터도 있다.
마마무는 티피컬한 걸그룹의 모양틀에 잘 맞지 않는 그룹이다. 어느 걸그룹인들 틀에 박힌 모습을 보이고 싶겠냐마는, 마마무는 아예 출발점을 달리 해 접근했다는 점에서 언제나 특별했다. 예쁘고 순순한 이미지는 애초에 가진 적이 없었고, 전형적 미인상이 아닌 멤버 네 명이 만드는 들쑥날쑥함이 오히려 이 팀의 매력이자 아이덴티티가 되었다. 그러나 그런 위치인 이들이기에 세간의 공격은 더욱 다각도에서 들어왔다. 고전적인 걸그룹 스테레오타입으로 남기를 강요하는 시선부터 남다른 팀이니 더더욱 소녀들의 모범이 돼야 한다는 버거운 기대까지, 마마무가 겪어온 대중 반응은 이것저것 다 잘하고픈 욕심많은 여자가 듣는 말의 엔터테인먼트 버전이었다. ‘Hip’이 보여주는 것은 그런 압력에도 불구, 이것저것 다 해보겠다는 욕심을 포기하지 않는 여자 그 자체다. 모든 욕망이 정치적으로 올바르지는 않을지도 모르나, 여자에게는 애초에 욕망이라는 자체가 아주 좁은 범위로만 허락되기에 다양한 시도 하나하나가 소중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노래 좀 잘하는 걸그룹 정도로 정의하고 지나가기에 마마무는 그릇에 넘치도록 커다란 그룹이다. 멤버 문별의 2020년 신곡이 ‘Hip’ 속 ‘평행우주’ 중 하나의 연장인 것을 보며, 앞으로 지경 없이 뻗어나갈 마마무의 미래를 기대해 본다.

우주소녀 – 이루리

조은재: 다른 군더더기 없이 ‘우주’, ‘소녀’, 그리고 ‘소원’이라는 키워드에 집중했다. 우주라는 광활한 공간에는 소원을 비는 소녀와 소원을 들어주는 소녀가 산다는 아주 간단한 스토리를 전화교환국, 케이블카 등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장치를 매개로 하여 전달한다. 보통 지구에서는 별을 보면서 소원을 비는데, 우주소녀의 기본 세계관이었던 별자리 수호성 콘셉트와도 궤를 함께하고 있어 서사적 개연을 완성한다. 둥근 창문 너머 우주의 푸른 밤하늘을 배경으로 소원을 빌고 또 들어주는 소녀의 실루엣을 연출한 장면은 최근 본 뮤직비디오 중 가장 훌륭한 미장센인데, 그 영상미 자체도 신비로운 분위기로 표현되어 강한 인상을 남긴다.

CL – +DONE161201+

스큅: YG와의 전속계약 만료 후 오랜 공백을 깨고 발매된 “사랑의 이름으로”는 수록곡 제목의 +시그니처 표기법+이 시사하듯 그의 개인 SNS를 고스란히 옮겨온 듯한 질감을 지닌다. 그 중 처음으로 공개된 수록곡 ‘+DONE161201+’의 뮤직비디오는 직접적으로 인스타그램 스토리의 형식을 차용해 지인들의 립싱크 스니핏 영상을 콜라주하여 보여준다. 가장 사적이고도 공적인 CL의 공간에 기꺼이 동참하여 노니는 동료들의 모습에서는 유쾌하면서도 묵직한 지지와 연대가 느껴진다. “많은 걸 이루고, 많은 걸 느끼고, 또 많은 걸 잃기도 했”던 지난 13년 동안에도, 그리고 “누군가 선택해 주기를 기다리지 않고 다시 CL로 돌아가 하나씩 스스로 해 나갈” 앞으로의 시간 동안에도, 그가 항상 좋은 사람들과 함께함을 확인하며 감격하고 또 감히 안도해본다. 앞으로 그와 더 많은 “시간과 추억, 그리고 감정을 함께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한다. 나 역시 그 과정을 ‘팔로우’하며 약소한 지지와 연대를 보태리라. CL을 위해, 사랑의 이름으로.

그 외에도…

잊고 넘어가기에는 아까운 뮤직비디오 몇 편을 더 목록으로 정리했다.

By Editor

idology.kr 에디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