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입니까? 언니들 vs 소녀시절

Tweet about this on TwitterShare on FacebookShare on Google+Share on TumblrEmail this to someone

아이돌이십니까?

아이돌로지의 유제상 필자는 지난 1st Listen : 2014.03.11~03.20 기사에서 언니들의 ‘늙은 여우’를 들으며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편집장님, 이분들도 아이돌의 범주에 들어가나요?”

룰라의 디바였던 김지현의 복귀작인 언니들, 그리고 며칠 뒤 데뷔한 소녀시절. 두 팀 모두 ‘걸그룹’이란 표현을 쓰고 있다. 그러나 아이돌팝 웹진을 표방한 아이돌로지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이들이 “아이돌인가” 하는, 혹은 “아이돌이십니까” 하는 점입니… 아니, 점이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나이다. 여성에게 나이를 기준으로 어떤 ‘자격’을 부여한다는 것이 심히 찜찜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소녀시절은 28세~35세의 멤버 구성으로 평균 나이 34세라고 한다. 반면 언니들의 나이는 쉽게 확인할 수 없는데, 최근 기사(동아닷컴, 3월 25일)에 의하면 (위키피디아에는 1982년생으로 등재된) 블랙펄 출신의 나미가 “서른여섯 막내”라고 하니, 대략적인 감을 잡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몇 살부터 아이돌이 아니라고 해야 할지도 알기 어렵고, 실제로 이 두 팀과 비슷하거나 보다 나이가 많으나 “아이돌…이죠^^”로 활동하고 있는 팀들도 있다.

이 얘기 아닙니다

이 얘기 아닙니다

아이돌의 정의를 내리기는 쉽지 않다. 내가 판단하는 기준들은 있다. 지난 해 GQ에 실린 원고 <댁의 아이돌은 어떻습니까?>(단, 링크된 문서의 후반부는 내가 작성한 원고가 아니다.)에서 나는 몇 가지 기준을 이야기했다. 유감스럽게도 언니들과 소녀시절의 경우 이 기준에서 판단을 내릴 정보가 충분하지 않다. 이를테면 결성과 프로듀싱 과정에서 언니들이나 소녀시절 멤버들의 입김이 얼마만큼 작용했는지를 내부 정보 없이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분명 두 팀의 곡은 상당한 ‘성인 가요’ 취향을 보인다. 그러나 ‘성인 가요’의 바운더리가 명확히 규정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더구나 반짝이는 메이크업 속에 트로트 성향의 곡을 부르는 아이돌과 성인 팬들의 강한 존재감을 감안한다면, 그것이 아이돌 세계에서 이들을 배제할 결정적이고 선명한 근거가 되는가.

그나마 억지로 결론을 내리자면, “양성과정이 없었(던 듯하)기 때문에” “덜 아이돌적”이라고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돌로지에서는 이 두 팀을 다루지 않기로 하겠다. …… 하지만 그래도 피처 기사로서 다룰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은, 이들의 음악과 비디오에서 아이돌의 특질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실제 음악을 들어보며 이야기해보자.

언니들 – 늙은 여우

언니들의 ‘늙은 여우’는 아쉽게도 공식 비디오를 찾을 수 없기에, 영 좋지 못한 자료임을 알면서도 일단 음원 비디오를 링크했음을 양해 바란다. 유제상 필자의 지적처럼 정진 정명의 트로트 댄스라 해도 좋을 곡이다. 그러나 곳곳에서 특이점이 보인다. 비극적인 분위기 속에 후렴을 먼저 제시하고, 일렉트로닉 사운드의 전주를 깐 다음 본편으로 들어가는 방식, 간단하고 인상적인 후렴을 몇 번이고 반복하면서 변주를 통해 지루함을 회피하는 방식 등이 그렇다. 또한 “늙은 여우야 – 어우야” 같이 가사를 음절 이하의 단위로 해체해 라임을 살리면서 내용을 바꾸거나, 음악 전체가 빠져나가고 시계 초침 소리가 들린다든지 하는 드라마적 연출도, 말하자면, ‘케이팝스럽다’.

물론 이 중 일부는 원래 한국 댄스 가요의 클리셰에 해당하는 부분도 있고, 특별한 제약 없이 모든 음악적 요소를 빨아들이는 것이 트로트의 중요한 특질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곡이 최근의 아이돌팝의 작법을 의식한 듯한 인상을 준다는 점만은 대체로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티아라의 ‘롤리폴리’ 인트로를 따와 변형한 듯한 메인 루프만 해도 그렇다.)

재밌는 것은 이 곡의 가사다. 자신에게 주어진 “늙은 여우”란 호칭을 표면적으로는 부정하고 있지만, 가사의 행간은 오히려 언니들에게 ‘늙은 여우’의 타이틀을 부여한다. 당찬 소녀, 쎈 언니, 풋풋한 연하남, 탐정, 좀비, 뱀파이어, 평행우주의 초능력자까지, 아이돌은 캐릭터의 세계다. 특히 데뷔곡의 서사는 그룹의 전체적인 콘셉트를 형성하기에 더욱 캐릭터적이다. 그러고 보면 시작부터 “누가 늙은 여우야?”를 외치는 이 곡은 무척 자극적인 캐릭터를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소녀시절 – 여보 자기야 사랑해

소녀시절의 ‘여보 자기야 사랑해’는 뮤직비디오와 함께 감상해 본다. 멤버들의 캐릭터는 같은 콘셉트를 밴디지 레깅스, 레이스 탑, 가죽 바지, 미니 원피스 등으로 변주하는 의상으로 나타난다. 멤버들의 얼굴은 누군가는 써니와 티파니, 누군가는 혜리와 재경을 그리고 누군가는 사랑과 전쟁의 히로인 이시은 연상시킨다. 안무와 대형, 시선 처리를 비롯해 비디오의 컷 호흡도 분명 어딘가에서 익숙히 보아온 모습들을 고스란히 재현하고 있다. 말 없는 남자 배우 한 명을 놓고 멤버들이 번갈아가며 애정을 고백하는 3분 2초~8초의 시퀀스는 말할 것도 없다. “자, 기, 야” 하는 백업 보컬의 오글미, 애틋한 감정을 끌어올린 뒤 조용하게 가라앉았다가 다시 후렴을 반복하는 방식도 그렇다.

그러나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 비디오의 도입부이다. 인터뷰의 형식을 빌었으나 실제로 인터뷰의 내용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는, 처음부터 멤버들의 캐릭터를 선언하고 나서는 데 그 의의가 있다. 수줍은 소녀(수아), 수다쟁이(유정), 시크한 소녀(왕희), 꾸미기 좋아하는 소녀(예은)가 그것이다. 취향을 분류해 설정된 캐릭터들을 빤하지만 비언어적으로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보도자료에서도 수없이 반복되는 서사 또한 이 인트로에서 확고하게 자리를 잡는다. 이러한 서사의 제공, 특히 ‘소녀가 꿈을 이루는’ 유형의 서사는, 2007년 이후 수많은 여성 아이돌의 뮤직비디오에서 반복되어 온 것이다.

여성 아이돌의 정수

이미 눈은 높아질 대로 높아지고 떠먹여 주는 마케팅에도 익숙해진 우리의 시선에서, 두 곡은 다소 아쉬움이 있다. 이를테면 ‘여보 자기야 사랑해’는 뒷벽에 멤버들의 그림자가 그대로 비쳐 흰 배경 촬영의 무공간성을 해친다. ‘늙은 여우’의 전주는 테마의 화성 진행에 대한 고려가 부족해 언뜻 듣기엔 ‘왜 지금 브레이크가 걸리지?’하는 어색함을 낳는다. 언니들의 소속사인 이든 엔터테인먼트(원빈, 이나영의 소속사인 이든나인 엔터테인먼트와는 다르…지 않을까 싶다)의 공식 홈페이지도 찾기 어렵고, 이는 소녀시절의 소속사 SC 엔터테인먼트도 마찬가지다. 소녀시절은 그나마 공식 뮤직비디오가 있지만, 지메일 하나만 있으면 되는 유튜브 계정도 개설하지 않아 AsianDreamVOD 채널에 등록돼 있다. 적어도, ‘완벽하게 가공된’ 아이돌과는 거리가 있는 모습이다.

그럼에도 이 두 곡이 보여주는 걸그룹의 전형들은 흥미롭다. 워낙 다양한 콘셉트의 걸그룹이 등장한 탓에 이젠 ‘변형이 등장했다’고 하기에도 민망하지만 말이다. 무엇보다도 두 곡의 공통된 결론은 직선적인 애정 고백이다. 어쩌면 여성 아이돌의 정수는 다른 곳에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통 아이돌’로서 마츠다 세이코의 세계가 한국의 주류 정서와 어딘지 맞지 않았던 걸까. S.E.S.의 ‘I’m Your Girl’로 시작된 한국 여성 아이돌의 세계에서는, 이것이야말로 그 정수라 보는 것이 옳다. 특히 데뷔곡에서는 더욱 그렇다.

딱 꼬집어 ‘아이돌이 아니다’라 말하기는 애매한, 그러나 ‘누가 봐도 아이돌’이라기에도 애매한 언니들과 소녀시절. 이들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대략적으로 ‘성인 가요’에 위치할 이들이 이토록 디테일한 곳까지 아이돌의 언어를 도입하는 것은 왜인가. 어쩌면 아이돌 세계는 우리 대중음악에 좀처럼 씻어내기 힘든 고랑을 남긴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곳에서 (어떤 것이 됐든) 싹이 올라오기 시작하는 것은 지금부터인 것은 아닐까.

미묘

Author:

가식과 내숭의 외길 인생. 음악 만들고 음악 글 씁니다. f(x)는 시대정신입니다.

http://verymimyo.egloos.com
http://twitter.com/mimyo_
http://facebook.com/demimyo

Share This Post On
Logo Header Men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