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로지가 집계한 2024년 12월 ~ 2025년 11월 정식 데뷔 아이돌은 보이그룹 18팀, 걸그룹 16팀, 혼성그룹 1팀, 총 35팀이었다. 이 중 전/현역 필진 9인과 객원 심사위원 5인(도니언, 만나, 잔물결, 티미랩, 파이)의 투표를 통해 선정한 올해의 신인 10팀을 소개한다. 순위는 별도로 산정하지 않았으며, 순서는 데뷔 순으로 정렬했다. 이들은 물론 리스트에 없는 이름들 역시 2026년에 멋진 활동을 기대한다.
엑스러브
퀴비: 퀴즈. 4인조 걸그룹을 5개 이상 말해보시오. 핑클, 쥬얼리, 천상지희 더 그레이스, 브라운아이드걸스, 2NE1, f(x), 씨스타, 미쓰에이, 마마무, 블랙핑크, 에스파, 키스오브라이프… 기라성 같은 이름들이 줄줄이 쏟아진다. 자, 그럼 4인조 보이그룹은? 하이라이트, 위너, 데이식스, 에이비식스… 어라 더 없나? 심지어 이들은 전부 멤버 재편으로 후천적 4인조가 되어버린 사례다. 서구권 보이밴드로 시야를 넓혀도 4중창 보컬 앙상블이나 록 밴드가 아닌 4인조 댄스팝 그룹은 찾아보기 어렵다.
엑스러브는 그 드물다는 4인조 댄스팝 보이그룹이다. 아니, 사실 이들을 보이그룹이라 단정하긴 어렵다. 이들의 콘셉트가 다름 아닌 ‘젠더리스’이기 때문이다. 지드래곤, 태민 등 젠더리스 수식어가 붙던 남자 아이돌은 이전에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이 유독 새삼스러운 이유는 보이그룹이 으레 넘어가지 않던 ‘중성적’인 회색지대를 껑충 넘어가기 때문이다. 롱팁 네일, 비녀, 튀튀 스커트와 같은 스타일링부터, 다리찢기, 트월킹이 들어간 안무까지. 엑스러브는 체면치레처럼 남아 있던 보이그룹 젠더 규범의 마지노선에 X표를 친다. ‘홍석천의 유익함’에 출연해 팬들에게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존재하길 당부하며 자신들이 대신 세상의 편견에 맞서 싸워주겠노라 이야기하는 모습에서는 모종의 저항정신마저 느껴진다.
리더 우무티가 10여년 간 여러 서바이벌 프로그램과 기획사를 전전한 끝에 직접 기획하고 멤버들을 모았다는 후문에 걸맞게, 멤버들에게서는 콘셉트 수행에 일말의 위화감도 감지되지 않는다. 해외 팬들은 이들을 지칭할 때 자연스레 여성 대명사(she/her)를 사용하기도 한다. 이쯤하면 눈치챘겠지만, 애초에 엑스러브는 그룹으로서의 역동을 중시하는 보이그룹보다 멤버 개개인의 걸출한 존재감을 과시하는 디바(Diva) 그룹의 지향을 따른다. (이들이 투어에서 앞서 언급한 4인조 걸그룹의 히트곡들을 주로 커버했던 것은 이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프로듀서 기질이 번뜩이는 우무티, 무용에 기반한 놀라운 몸놀림을 보여주는 루이, 유려한 보컬의 현, 절도 있게 퍼포먼스의 중심을 잡는 하루. 동아시아 각국에서 모여들어 압도적인 무대를 선보이는 이들은 관념적인 ‘팝 디바’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이들을 향한 환호는 퀴어 친화적인 해외 팬덤에서 더욱 뜨겁다. 이들의 대표곡 ‘1&Only’는 20년대 데뷔 보이그룹의 근래작을 통틀어 손꼽히는 스트리밍 기록을 달성하고 있고, 11월 발매한 첫 미니앨범은 아이튠즈 월드와이드 앨범 차트에 9위로 데뷔했다. 케이팝 탄생 30년 만에 마주하는, 모든 경계를 초월한 케이팝 디바 그룹의 등장이다.
킥플립
미묘: “‘킥플립’이 스케이트보드 기술 이름이라서인지, 무대 퍼포먼스가 활기차면서 ‘재간둥이들’ 같은 인상을 준다. JYP 보이그룹이 자주 그렇듯, 멤버들은 모두 소문난 마당발은 아니어도 친화력 좋은 ‘인싸’일 것 같고, 활달한 체육계 외향형 캐릭터일 것 같은 느낌이다. 어언 11년 전 데뷔한 갓세븐(GOT7)의 초기 모습을 다시 보는 듯한 기분도 든다. 다만 훨씬 유쾌하고 귀여워 보인다. (중략) 킥플립은 JYP가 여전히 ‘듣기 좋은 음악’을 통해 청자에게 ‘즐거운 시간’을 제공한다는 목표를 고수하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또한 그것이 얼마나 매력적인 신인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입증하는 사례라고도 할 만하다.” (〈주간동아〉 2025.02.06. “JYP 새 보이그룹 킥플립의 익숙한 매력” 中)
하츠투하츠
비눈물: SM 엔터테인먼트가 4년 만에 선보인 걸그룹 하츠투하츠의 데뷔곡 ‘The Chase’에 대해, 일각에서는 다소 희미한 임팩트와 수수께끼 같은 비밀스러움에 의구심을 품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그룹의 신비로운 색깔과 멤버들의 다채로운 음색을 주춧돌로 삼으려는, 분명히 계산된 첫걸음이었다. 하츠투하츠는 이후 듣기 쉬운 친근한 멜로디와 생기 넘치는 퍼포먼스로 반짝이는 풋풋함을 발산하는 ‘STYLE’을 통해 세대를 관통하는 매력을 선보였고, 이어 섬세한 코드 보이싱과 보깅 안무를 앞세운 ‘FOCUS’를 통해 절제된 우아함 속 유려한 전개로 시대를 타지 않는 세련미를 완성했다.
이들은 이 과정에서 다인원 무대의 정교한 합(合)과 시너지, 경계를 허무는 실험적 감각, 그리고 정교한 다층 구조 화음 등 역대 소속 걸그룹들이 쌓아온 음악적 유산을 투영한다. 그러나 이를 단순히 답습하는 대신 그 토대 위에 하츠투하츠만의 대체 불가능한 내러티브를 견고히 쌓아 올린다. 그 중심에는 일상의 언어에서 이상(異常)의 미학을 길어 올리는 켄지의 가사가 있다. ‘세상 빼기 너 그건 재미없어’, ‘내 시선의 중심 / 세상을 뒤로 미는 중’, ‘같이 걷자 난 다 궁금해’와 같이 평범한 단어에서 색다른 의미를 만드는 아이코닉한 노랫말은 하츠투하츠의 이름을 뇌리에 콕 박히게 만든다.
‘The Chase’ – ‘STYLE’ – ‘FOCUS’로 이어진 빌드업은 신인 그룹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데뷔 플랜이자, 외부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고 그룹의 근간을 세우는데 집중한 뚝심의 결과이다. 앞으로 보컬적 성취와 함께 스펙트럼을 넓혀갈 일만 남은 이들의 모험에 누구든 홀린 듯이 따라 걷지 않을까.
키키
퀴비: “이 그룹의 모순을 대체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실마리를 찾은 것은 11월 발매된 싱글 ‘To Me From Me’였다. “나로 살기가 너무 외로워.“ 타블로가 딸 하루와 함께 써 내려간 노래를 들으며 키키가 그려왔던 건 역설적으로 세대를 막론한 미스핏(Misfit)의 감성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성세대와 반목하면서도 실은 또래 집단에서도 겉도는, 그래서 이따금씩 내가 잘못된 시대와 장소에 태어난 게 아닐지 의심해보는, 그런 별난 스스로가 좋다가도 한편으로 한없이 외로워지는, 누구나 어느 정도씩은 느껴봤을 질풍노도의 혼돈.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이들의 핵심 아닐까.” (〈W 코리아〉 2025.12.15. “2025 연말결산, 아듀 Vol 1 – K팝 신인 보고서” 中)
클로즈 유어 아이즈
미묘: “클로즈 유어 아이즈는 지난해 12월 ‘내 안의 모든 시와 소설은’으로 데뷔하고 며칠 만에 가요계 정상에 올라 많은 이의 기대를 모으고 있는 팀이다. 이 그룹 프로듀싱을 맡은 이해인은 2023년 파란을 일으킨 걸그룹 ‘키스오브라이프(KISS OF LIFE)’의 디렉터이기도 하다. 그 영향인지 두 그룹 이름이 서로 대구를 이루는 듯 들린다. 또 키스오브라이프와 비슷하게 클로즈 유어 아이즈의 음악 또한 ‘좋은 취향’의 맛이 톡톡히 감도는 게 매력이다. (중략) 어쩌면 최근 K팝은 노력주의에 지나치게 경도돼 있는지 모른다. 물론 모든 아이돌은 호수 위 백조다. 하지만 어떤 때는 수면 위에 보이는 날개에서 좀 더 힘을 빼야 우아함이 돋보이기도 한다. 클로즈 유어 아이즈는 좋은 취향과 일견 편안하게 들리는 목소리로 이를 입증한다. 눈이 내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찬란해지는 크리스마스 저녁처럼 말이다.” (〈주간동아〉 2025.07.24. “폭염 속 크리스마스, 클로즈 유어 아이즈 ‘스노이 서머’” 中)
이프아이
마노: 이제 갓 씬에 등장한 신인 팀이 씬에서 살아남기 위해 갖추어야 할 (혹은, 갖추면 좋은) 덕목은 많다. 보컬, 퍼포먼스, 무대력, 비주얼, 스타성 등이 그런 덕목 중 일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담백하고 실키한 질감의 보컬, 날렵하고 가볍게 잘 벼려진 퍼포먼스 같은 부분도 분명 이 팀의 주목해 보아야 할 부분이지만, 아무래도 전체 프로덕션을 관통하는 가장 주요한 요소는 에이티즈와 드림캐쳐를 담당한 바 있는 프로듀서 LEEZ가 정성스레 쌓아올리고 있는 디스코그래피가 아닌가 한다. 트렌디하고 캐치한 멜로디를 위시한 타이틀곡을 앞세우고 거기에 양질의 수록곡을 꽉 채워내는 정성에서 이프아이라는 팀의 미래를 조심스레 기대하게 되는 부분이 분명 있다. 아이돌이며 동시에 가수이자 아티스트이고, 가수 및 아티스트의 주 콘텐츠는 음악이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들이 앞으로 선보일 활동이 분명 기대되지 않을 수 없다.
올데이 프로젝트
에린: 올데이 프로젝트는 5인 혼성이라는 구조적 특수성을 음악적 시너지를 창출하는 핵심 동력으로 활용한다. 올해 발표한 타이틀 곡 ‘FAMOUS’, ‘ONE MORE TIME’, ‘LOOK AT ME’를 살펴보면, 후렴구를 제외한 파트들이 각 멤버의 고유한 캐릭터를 조명하고 있어 각 멤버의 개성을 각인시킨다. 저음역대 보컬로 곡의 몰입감을 조율하는 애니부터 리드미컬하고 농밀한 음색의 베일리, 정석적인 보컬로 곡의 중심을 잡는 영서, 그리고 여유로운 그루브의 타잔과 테크니컬한 래핑을 구사하는 조우찬까지. 이들의 서로 다른 질감은 각 파트마다 확실한 독자성을 부여하며 곡의 층위를 풍성하게 만든다. 특히 ‘FAMOUS’의 무대 퍼포먼스 중 베일리의 댄스 브레이크와 타잔의 독무 부분은 각 멤버의 출중한 기량을 보여주는 동시에 자유분방한 그룹의 이미지를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이처럼 올데이 프로젝트는 곡과 퍼포먼스에서 개개인의 개성이 선명하게 보이는 구성을 통해 독립적인 아티스트들이 결집한 ‘크루’에 가까운 면모를 완성한다. 기존의 견고한 남성, 여성 아이돌 그룹의 문법에 얽매이지 않고 각자의 고유한 색깔을 퍼포먼스의 동력으로 전환하는 이들의 실험적인 행보가 내년에 어떤 새로운 풍경을 그려낼지 기대된다.
앳하트
예미: 안무가의 존재가 가시화된 현 케이팝 시장에 안무가의 이름을 내건 아이돌 기획이 등장하는 것은 꽤나 자연스러운 일이겠다. 안무가 리아킴이 공동 창립자로 있는 타이탄콘텐츠의 첫 걸그룹 앳하트는 창립자의 명성을 반영한 듯, 출중한 안무 소화 능력을 가진 멤버들로 구성되어 있다. 앳하트는 ‘Plot Twist’ 특유의 꼬인 구성과 불규칙적인 리듬을 정확히 이해하고 이질감 없이 소화해 내며, 잘게 쪼갠 비트 속에서 핵심만을 집어내며 곡의 흥을 더하는 ‘Push Back’의 퍼포먼스도 그룹의 장점을 보여준다. 살랑살랑한 보컬과 비주얼로 걸그룹의 전형을 지키는 그 아래에 비트를 정확히 해석하는 내공이 돋보이는 그룹.
아이덴티티
랜디: 아이돌 팝이 제공하는 재미에는 아이돌 팀 운영 시스템도 있다. AKB48이나 이달의소녀 같은 시스템형 아이돌은 마치 도감 같아서 단순히 구조를 파악하다가 투표에 참여하며 덕질에 빠져들기도 한다. 이달의소녀와 트리플에스(TripleS)를 프로듀싱한 정병기가 모드하우스의 첫 보이밴드로 기획한 아이덴티티(idntt)는 8인조 서브유닛 세 개가 모여 총인원 24명의 원팀으로 데뷔할 예정이다. 2025년 하반기에 먼저 첫 유닛 uneverm8t가 데뷔했다. 모드하우스에서 나온 작품들에는 항상 트렌드에서 반발짝 앞선 좋은 음악과 적당한 콘셉트가 있다. idntt의 트리플 데뷔곡들 모두 준수한 수준의 힙합-팝 댄스곡들이다. 아무리 복잡한 걸 싫어하는 세상이라지만, 이정도의 복잡성은 케이팝 팬들에게는 유희로 작용한다.
코르티스
미묘: “다만 ‘작곡돌’들을 보면서 우리가 깨달은 것이 있다. 전문 인력과의 공동 작업을 “남이 다 해줬다”와 동의어로 볼 필요가 없고, 자기 명의를 건 작업을 통해 아티스트는 성장한다는 점이다. 즉 코르티스가 크리에이터로서 다방면의 크레디트를 선언한다면 그 부분을 통해 이들의 성장을 지켜보게 될 것이다. 두 곡이 들려주고 보여주는 러프한 매력은 앞으로를 기대하기에 꽤 좋은 출발점으로 보인다.” (〈주간동아〉 2025.08.26. “BTS·T×T 잇는 신인 보이그룹 ‘코르티스’” 中)
- 결산 2025 : ①올해의 신인 10선 - 2025-12-29
- 결산 2024 : ④뮤직비디오 Pick! - 2025-02-28
- 결산 2024 : ③올해의 앨범 16선 - 2025-02-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