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ies
Annual

결산 2025 : ②올해의 노래 20선

2025년의 아이돌 팝을 돌아보며, 아이돌로지는 전/현역 필진 9인과 객원 심사위원 5인(도니언, 만나, 잔물결, 티미랩, 파이)의 투표를 거쳐 2025년 발매 아이돌 팝 싱글 중 올해의 노래 20곡을 선정했다. 별도의 순위는 산정하지 않았으며, 순서는 발매순으로 정렬했다.

2025년의 아이돌 팝을 돌아보며, 아이돌로지는 전/현역 필진 9인과 객원 심사위원 5인(도니언, 만나, 잔물결, 티미랩, 파이)의 투표를 거쳐 2025년 발매 아이돌 팝 싱글 중 올해의 노래 20곡을 선정했다. 별도의 순위는 산정하지 않았으며, 순서는 발매순으로 정렬했다.

Honorable Mention

20선 소개에 앞서, 아쉽게 최종 선정되지 못한 12곡을 오너러블 멘션 리스트로 공유한다. (순서는 발매순)

텐 – BAMBOLA
이즈나 – SIGN
클로즈 유어 아이즈 – To The Woods
하츠투하츠 – STYLE
리센느 – Deja Vu
트와이스 – THIS IS FOR
선미 – BLUE!
조유리 – 이제 안녕!
82메이저 – Trophy
싸이커스 – ICONIC
저스트비 – TRUE HEART
크래비티 – Lemonade Fever

아이브 ‘REBEL HEART’

REBEL HEART
스타쉽 엔터테인먼트
2025년 1월 13일

랜디: 한동안 ‘REBEL HEART’가 불러온 일명 ‘밴드 챌린지’ 덕에 즐거웠다. 오랜 시간 록과 팝 장르의 옹호자들은 각각 록키즘과 팝티미즘으로 나뉘어 대중음악을 이분하는 진영을 만들고 서로 대립해왔지만, 2025년 한국 대중음악 신은 일단 거대 자본과 흥행 규모로 압도하는 케이팝이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있는 형국이다. 록 한우물을 파온 분들에게는 근래의 변화가 꽤 놀랍고 또 우려도 되는 현상일 것 같다. ‘REBEL HEART’ ‘밴드 챌린지’ 열풍은 음악의 생산자들에게 점점 작아지고 있는 한국 음악 시장을 어떻게 나눠쓰며 생존할 것인가 하는 고민들의 발로였던 것 같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이런 ‘대통합’을 가능케 한 건 곡 자체의 힘이었다. 직관적으로 시원시원한 편곡의 팝 록에 두려움 없이 나아가는 소녀들의 가사가 곁들여진, 그리고 마침내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아이브의 가창으로 완성된 좋은 곡이었다.

키키 ‘I DO ME’

UNCUT GEM
스타쉽 엔터테인먼트
2025년 3월 24일

미묘: 한 신인 걸그룹이 세계를 향해 모험을 떠나지만, 그들은 자신들만을 바라보고 있다. 모험을 떠나는 이들에게 세계는 불확실한 곳이지만 두렵지 않고, 넘어져 무릎에 묻은 흙을 툭툭 털면 되는 정도의 존재다. 아르페지에이터가 모터처럼 뿜어내는 리듬과 신스웨이브 식의 아련한 감성미가 결합하지만, 전혀 절박하게 들리지 않는다. 그게 거대 농장주의 딸들 같은 유복함 덕분으로 보인다면, 그건 이들이 4세대까지 케이팝 걸그룹들의 어깨 위에 선 새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남 눈치’s why’d you care?” 같이 ‘부서진 한국어’도 케이팝 생존경쟁에서 눈길을 끌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것이 완전히 양식화된 위에서 ‘그저 나 자신이기(=do me)’의 일환이 된다. 맥락의 계승과 세대의 분절이라는 출발점에서 이 겁 없이 사랑스러운 신인의 여정을 지켜본다는 건 어쩌면 잔인할지 모를 일, 하지만 뭉클하고 기대되는 일이다. 사운드가 차갑고 축축하게 광막한 공간을 펼쳐보일 때, 케이팝 뮤직비디오 속 자연경관에 울컥해진다는, 실로 기묘한 경험도 제공된다.

제니 ‘like JENNIE’

Ruby
OA 엔터테인먼트
2025년 3월 7일

에린: ‘like JENNIE’는 제니라는 이름을 다시금 새롭게 정의하는 선언문에 가깝다. 기선제압을 하는 도발적인 가사를 시작으로, 거친 질감의 비트 위에 공격적인 가사와 날카로운 래핑을 쉼 없이 구사하며 저돌적인 속도감으로 질주한다. ‘like JENNIE’가 표출해내는 직설적인 가사들이나 ‘Jennie’를 반복적으로 부르는 후렴구는 스스로의 존재감을 위협적으로 확언하며 오직 ‘제니’만이 이 곡의 주인공일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한다. 이후 코첼라와 2025 멜론뮤직어워드 등에서 보여준 압도적 퍼포먼스들은 ‘like JENNIE’의 화자가 가진 에너지를 무대 위에서 시각적으로 구현하여 곡의 주인공 ‘제니’의 존재감을 입체적으로 확장했다. 결국 이 곡은 2025년 현재 그녀가 대중의 선망을 받는 스타를 넘어, ‘제니’라는 이름 자체로 하나의 현상이 되었음을 방증한다.

엔믹스 ‘Papillon’

Fe3O4: FORWARD
JYP 엔터테인먼트
2025년 3월 17일

랜디: 엔믹스는 멤버들의 안정적인 보컬 실력으로 잘 알려진 팀임에도 불구하고, 데뷔 초기 음악으로는 좀처럼 과녁을 맞히지 못 하고 헤맸다. ‘믹스팝’으로 실험정신을 내세웠지만 그 조합이나 배치가 조화롭기보다는 실험에 그쳤다는 인상이 더 컸다. 변화의 단초는 ‘Dash’였다. 소울 힙합 영향과 리얼드럼의 브레이크비트 샘플링, 타이트한 화성이 이 팀의 ‘퍼컬’이라는 것을 찾아낸 이들은 몇 번의 ‘실험’을 더 거쳐 마침내 ‘Papillon’에 도달했다. 예의 ‘NMIXX, change up’ 선언이 없이도 비트는 손으로 세기도 힘든 장르들을 춤추듯이 넘나든다. ‘오리엔탈’한 선율이 아마도 호접지몽을 주제로 했을 법하다 싶고, 베이스와 신스의 질감은 폭력적이지만 움직이는 궤도를 예측하기 어려운 것이 산란하게 나는 나비를 연상 시킨다. (여기에도 ‘믹스’가 느껴진다) 무엇보다 달라진 것은 보컬과 랩 디렉팅, 다시 말해 멤버들의 표현법이다. 옆볼에 힘을 빼고 웃음기를 완전히 지우니 ‘별별별’의 좋다 말았던 –올드스쿨 비트와 그 장르를 애써 모사하는 것 같던– 애매함이 사라졌다. 멤버들의 음역대도 넓어 특히 저음역대가 필요한 곡의 특성이 잘 살아났다. 리듬 상 필요한 곳에 적극적으로 레이드-백(laid-back)을 탄 프로듀싱과 쪼갠 정박으로 긴박감을 표현한 랩이 교차하며, 적당한 긴장과 이완으로 듣는 이의 유영을 돕는다. 이렇게 거칠었는데도, 전체는 반박할 수 없는 ‘나비’의 노래다.

마크 ‘1999’

The Firstfruit
SM 엔터테인먼트
2025년 4월 7일

예미: 제목 ‘1999’는 마크가 태어난 해이자 곡의 이미지가 겨냥하는 시점이다. 시작부터 돋보였던 재능을 10년째 빛내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간단히 전하는 가사가 여유만만한 퍼포먼스로 입증되는데, 프린스를 연상케 하는 레트로 무드의 트랙과 스타일링이 그 여유만만함을 완벽히 뒷받침한다. 곡에 현대적 감각을 부여하는 래핑과 군데군데 덧대진 가창이 훅의 중독성을 각인시키며 트랙의 댄서블함을 극대화한다. 이 댄서블한 트랙 위에 오른, 온 몸을 자유자재로 쓰면서도 상쾌하게 섹슈얼한 퍼포먼스가 마크가 커리어 내내 일관되게 보여 온, 입증의 중압감을 벗어난 태도를 뒷받침하며 이 곡에 퍼포머의 개성을 온전히 각인시킨다. 유쾌발랄한 올라운더를 “세상에다 찍어 Mark it” 하는 한 곡.

캣츠아이 ‘Gnarly’

Gnarly
HYBE UMG, LLC
2025년 4월 30일

미묘: “대중문화에서는 저속함이 문화적 생명력이 될 수 있다. ‘Gnarly’는 성적이기보다 저속하고, 그 저속함을 자신 있게 드러내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K팝 틀 속에 K팝이 그동안 하지 못하던 것들을 멋들어지게 쏟아 넣었다는 점에서 신선한 충격을 준다. 해외시장을 주된 타깃으로 삼은 아티스트라 과감한 시도가 가능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그건 별로 중요치 않다. 어차피 캣츠아이는 존재 자체로 이들을 K팝으로 받아들일지, 거부할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으니 말이다. 이들의 음악을 K팝으로 인식하는 이들 사이에서 ‘Gnarly’는 K팝의 오랜 벽을 허문 멋진 시도로 평가될 것이다. K팝이 아니라고 여기는 이들에게는? 장담하기 어렵지만 캣츠아이는 머잖아 또다시 질문을 던질 것 같다. 필시 더 굉장한 작품을 들고 말이다.” (〈주간동아〉 2025.05.14. “신선한 저속함 캣츠아이 ‘날리(Gnarly)’” 中)

라이즈 ‘잉걸’

ODYSSEY
SM 엔터테인먼트
2025년 5월 19일

퀴비: 질주하는 브레이크비트, 대담한 문어체 표현, 떠오르는 태양이라는 테마까지. ‘잉걸’은 (과거 라이즈가 커버하기도 했던) SMP 클래식, 동방신기의 ‘Rising Sun’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한다. 차이점은 20년이라는 세월차와 곡을 이끄는 조타수의 변화에 있다. 2005년도 유영진의 ‘Rising Sun’이 형이상학적 메시지를 5분여에 달하는 교향곡스러운 전개로 설파해낸 경전처럼 들렸다면, 2025년 이우민이 쓰고 켄지가 노랫말을 붙인 ‘잉걸’은 간명한 팝 댄스곡 구성 아래 고전 SMP의 무지막지한 객기를 펄떡이는 소년만화의 격동으로 제련해낸다. ‘성장하고 실현해간다’는 팀명의 뜻에 걸맞게 한껏 선명해진 캐릭터를 여섯 멤버들은 치열하게 연기해내며, 특히 쾌도난마의 보컬 소희는 드라마의 해상도를 최고도로 끌어올리는 주역으로 자리한다. SM 창사 30주년, SM 엔터테인먼트가 천착했던 셀프-오마주 작업에서 단연 돋보였던 작품. 케이팝의 오리지널리티에 관한 회의 섞인 의견이 늘어가는 현재, 스스로의 유산을 재해석하며 발전을 도모하고 있는 SM의 행보가 흥미롭다.

아르테미스 ‘Icarus’

모드하우스
2025년 6월 13일

예미: ‘Butterfly’의 날개는 이제 ‘Icarus’의 날개가 되어 더 절박한 이의 어깨에 달린다. 공간감 속에 드럼 비트를 배치하여 날개 단 소녀를 다시 공중에 띄운 지하이(G-HIGH)는 반복되는 마이너 스케일의 피아노 패턴, 보다 촘촘한 드럼 배치와 선명한 보컬 연출을 통해 그 절박함의 무게를 더한다. 양 팔로 그린 날개를 달고 고음의 가성을 통해 다시 날아오르려는 이들은 그와 동시에 바닥에 다시 한 번 침잠한다. 14분 분량의 시네마틱 뮤직비디오는 판타지를 가미하여 그룹 아르테미스의 이야기가 함께 손 잡고 날아오르자는 희망에서 그렇게 날아올라야만, 혹은 어딘가에 빠져들어야만 숨 쉴 수 있는 절망으로 확장되었음을 전한다. 이 확장이 여성과 소수자가 마주한 현실을 따라간 듯 하다면 과언일까? 그렇기에 아르테미스는 더 힘 주어 날아오른다.

엑스러브 ‘1&Only’

I ONE
257 엔터테인먼트
2025년 6월 13일

마노: 약간의 ‘퀴어니스 에스테틱’을 취하고 있긴 했지만, 여전히 전형적인 보이그룹의 공식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던 전작 ‘I’mma be’를 생각하면 본작의 방향성이 다소 의아할 수도 있겠다. “체면치레처럼 남아 있던 보이그룹 젠더 규범의 마지노선에 X표를” 거침없이 쳐버리는 콘셉트와 퍼포먼스는 파격적이고 새롭다 못해 조금은 생경할지도. 바꿔서 생각해보면, 데뷔곡에서의 퀴어니스 에스테틱은 (앞서 태민 등의 아티스트로 인해 익숙해진) 대중에게 낯설지 않게 받아들여진 정도의 선에서 ‘안전하게’ 수행되어 있다고도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즉, 본작에 이르러 비로소 모든 것을 ‘봉인해제’ 하고 온전한 팀 컬러를 완전히 내보일 수 있게 된 것이리라. 작금의 씬에서 본작과 이 팀이 그토록 소중한 이유는 단순히 전무후무한 ‘젠더리스’ 콘셉트를 취하고 있는 곡 혹은 아이돌이라서 뿐만은 아니다. 이를테면, 이것은 일종의 선언이고 도발이다. 이분법과 정상성으로 점철되어 있는 산업에 기어코 균열을 일으키고야 말겠다는. 어쩌면 그 균열은 이미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혹시 아는가, 이 균열로부터 움튼 작은 움직임이 어느 가까운 미래에 커다란 나비효과를 불러올지.

아일릿 ‘빌려온 고양이’

bomb
빌리프랩
2025년 6월 16일

미묘: “아일릿이 전작에서 표현해온 소녀상은 여러 생각을 하게 했다. 때로는 남성이 필요 없는 소녀들 같았고, 또는 그마저도 남성들이 상상하는 모습인가 싶기도 했다. ‘빌려온 고양이’는 그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듯하다. 그들이 어떻게 해서 이런 모습이 됐는지는 생각할 것 없이, 그저 아기자기하고 기분 좋게 춤추기를 권하는 것이다. 거절하기에는 무척이나 매력적인 제안이다.” (〈주간동아〉 2025.07.03. “만화 같은 아일릿 ‘빌려온 고양이’” 中)

올데이 프로젝트 ‘FAMOUS’

FAMOUS
THEBLACKLABEL
2025년 6월 23일

마노: 혼성 5인조라는 다소 파격적인 멤버 구성으로 혜성처럼 등장한 팀은 단 두 곡의 싱글로 케이팝 저-관여층까지 끌어들이며 씬을 온통 뒤흔들어 놓았다. 챌린지로 많은 인기를 모았던 ‘WICKED’가 팀의 음악성에 대한 청사진을 그리는 트랙이었다면, ‘FAMOUS’는 팀과 멤버들의 각 면면을 소개하는 서문이자 씬에 대한 출사표 내지는 도전장과도 같은 곡이다. ‘아직 유명해지지도 않았는데 우리의 존재감이 벌써 이 정도다’라는 다소 도발적인 가사는 어쩌면 팀의 근미래에 대한 예언이었을까. 한편 자칫 모나게 튈 법한 각자의 캐릭터성과 독자적인 ‘스타성’을 조화롭게 봉합하면서도, 고유의 매력과 능력치를 온전히 드러내도록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 이 곡의 진정한 미덕이 아닌가 한다. 흔해 빠진 미신(?)이지만, ‘가수는 노래 제목 따라간다’는 말을 결국 믿지 않을 수 없나 보다.

블랙핑크 ‘뛰어’

뛰어(JUMP)
YG 엔터테인먼트
2025년 7월 11일

에린: 블랙핑크의 그룹으로서의 복귀를 알리는 신호탄인 ‘뛰어’는 솔로 활동으로 자신만의 음악적 색깔과 브랜드 가치를 공고히 다진 4명의 멤버들이 다시 모였기에 보여줄 수 있는 결과물이다. 기존 블랙핑크가 폭발력 있는 구성으로 카리스마를 각인시키는 데에 주력했다면, ‘뛰어’는 그 무게감을 덜어내고 유희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춘다. 쉴틈 없이 몰아치는 비트와 날 선 테크노 사운드 위로 낮고 무심하게 툭 던져지는 “뛰어”라는 읊조림은 극적인 대비를 이루고, 그 속에서 블랙핑크라는 그룹과 관객이 한데 뒤섞여 호흡함으로써 날 것의 에너지가 박동하는 춤판이 펼쳐진다. 누구나 자유롭게 유영할 수 있는 직관적인 공간을 펼쳐놓은 ‘뛰어’는 현재의 블랙핑크이기에 제안할 수 있는 가장 여유롭고 세련된 방식의 난장이다.

앳하트 ‘Plot Twist’

Plot Twist
타이탄 콘텐츠
2025년 8월 13일

예미: 소녀다운 비주얼로 미니멀한 사운드에 가벼운 톤의 보컬과 역동성을 부각시키는 안무를 얹는 구성이 2025년의 신인 걸그룹이 가질 법한 전형을 보여주는데, 자세히 들을수록 복잡하게 쪼개진 리듬이 듣는 이를 혼란에 빠뜨린다. 하이라이트에 다가갈수록 멈추지 않고 울리는 드럼과 신스 위에 절대로 정박으로 가는 법이 없는 보컬이 가볍게 오르고, 보코더를 섞어 대목마다 엇박자로 등장하는 “Don’t know what you got till it’s Gone”이 곡의 꼬인 인상을 극대화한다. 이 모든 복잡함을 해소시키는 줄기는 소리가 주는 정신없음을 혼란스러운 소녀의 사랑으로 치환하는 가사, 그리고 안무를 소화하는 멤버들의 기량이다. 리아킴이 제작한 안무는 쏟아지는 소리 속에서 중요한 소리에 주목하게 만들고, 리듬을 체화한 멤버들의 퍼포먼스가 안무와 곡의 요점을 정확하면서도 힘차게 전달한다. 시작부터 고난도의 곡을 소화하는 멤버들을 보며 그룹의 미래를 그려볼 수 있게 하는, 만만찮은 데뷔곡.

코르티스 ‘GO!’

COLOR OUTSIDE THE LINES
빅히트 뮤직
2025년 9월 8일

퀴비: 혹자는 이들의 작업을 두고 ‘돌로 만든 수프’에 불과한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품을지 모르겠다. 혹은 장르 업데이트가 이루어졌을 뿐 12년 전 방탄소년단의 방법론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고 평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일단 모든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고 순수히 이 노래에 귀기울여보자. 수줍게 고개를 드는 전주의 패드 신스, 겅중겅중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는 후렴구의 메인 테마, 그와 완전히 평행하게 전개되는 단순한 멜로디, 상하좌우로 분주히 달리는 아르페지오, 삐죽이는 날것의 가사, 괴팍스레 꽥꽥여(squeak)보았지만 다소 소심하게 뒤에 깔아둔 더블링(2절 벌스 막바지의 “마치 free throw” 파트). 곡의 요소 요소에서 신인의 풋내와 땀내가 제법 근사하게 형상화되어 있지 않은가. 신인의 서투른 출사표를 매력적으로 연출해내는 디자인은 새로운 걸 가져와보라는 도발과 계속해서 나아가겠다는 포부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정말 독창적인 것인가’, ‘정말 새로운 것인가’라는 의문은 최소한 이 곡에서는 무용하다. 중요한 건 독창적이고 새로운 것이 되고야 말겠다는 선언 그 자체이니. 이들의 자기암시가 앞으로의 커리어에 동력이 되어주길 기대해본다.

다영 ‘body’

gonna love me, right?
스타쉽 엔터테인먼트
2025년 9월 9일

조은재: 다영의 소속 그룹인 우주소녀는 촘촘하게 짜여있는 세계관과 빈틈없이 구성된 퍼포먼스를 통해 정교하게 연출된 작품으로서의 케이팝을 선보이는 그룹이다. 고차원, 고맥락의 기획력을 보여준 우주소녀의 모든 곡들과 달리 다영의 솔로 데뷔곡 ‘body’는 직관적으로 다영 단 한 명에게 충분히 집중하게 만든다. 프로모션부터 상투적인 티징을 생략하고, ‘body’라는 곡과 퍼포먼스에만 집중하여 이를 소개하는 숏폼 위주로 최대한 많은 아티스트와의 콜라보를 진행한 것 또한 영리했지만, 가장 영리한 것은 쾌활하고 끼 많은 ‘다영’이라는 아티스트에 모든 것을 포커싱한 곡 그 자체다. ‘body’는 따라부르기는 쉽지만 자연스럽게 연기해내기는 쉽지 않은, 고연차의 아이돌만이 소화해낼 수 있는 까다로운 곡인데, 보통 이런 곡은 이 곡을 부를 아티스트의 보컬 특징을 완벽하게 파악하지 않으면 나올 수가 없다. 커플링곡인 ‘number one rockstar’ 또한 그러한데, 그룹에서 뾰족한 포인트를 만들어내던 쨍한 다영의 음색이 ‘body’와 ‘number one rockstar’에서는 적당한 예민함과 섬세함만을 갖춘 편안한 무드로 감상하기 편하게 연출되어 있다. 마치 쨍쨍하게 타오르는 태양광 아래에서 땀에 젖어 춤추는 다영의 행복한 표정이 가득 담긴 뮤직비디오처럼 말이다. 아이돌에 몰입하게 되는 여러가지 순간 중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성장 서사’를 목도하게 되는 순간인데, 다영의 싱글은 그룹 우주소녀와 유닛 우주소녀 쪼꼬미를 거쳐온 다영의 성장을 우리가 현재 진행형으로 지켜보고 있다는 만족감까지 선사한다는 점에서 단순히 팝적일 뿐만 아니라 아이돌적이기까지 하다.

XG ‘GALA’

GALA
XGALX
2025년 9월 19일

퀴비: 일본의 로컬리티를 가미하며 초국적 케이팝의 정체성을 집대성해낸 2024년에 이어, 2025년 XG는 본격적으로 글로벌 무대를 넘보기 시작했다. 첫 월드 투어와 코첼라 무대를 마친 뒤 2026년 1월 첫 정규앨범을 예고하며 발매한 리드 싱글 ‘GALA’는 멧갈라를 침공하는 에일리언을 콘셉트로 한다. XG 디스코그래피의 두 줄기, (나의 과거 표현을 빌려오면) ‘초싸이언 힙합 걸갱’과 ‘하우스/UKG를 수호하는 사이버 정령’의 노선을 통합시킨 듯한 트랙은 그룹의 한층 커진 스케일을 너끈히 수용하는 토양이 되어주고 있다. 고고한 하우스 비트 위에서 랩 멤버들의 화려한 싸이퍼는 2절 후렴을 집어삼키면서까지 폭주하며 위용을 뽐내고, 전성기 시절 레이디 가가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치사의 프리-코러스 보컬 파트는 완연한 쇼-스토퍼(show-stopper)로서 빛난다. 여기에 더해 보깅과 브레이킹을 오가는 퍼포먼스, 미국-일본 문화 코드의 교차점을 촘촘히 녹여낸 펀치라인은 이들의 혼종성을 어느 때보다도 드라마틱하게 명문화해낸다. XG가 무한히 확장해나갈 “문화적 순환의 환상교차로”를 더욱 기대하게 만드는 싱글. (덧붙여, 코코나의 커밍아웃에 경의를 표한다!)

엔믹스 ‘Blue Valentine’

Blue Valentine
JYP 엔터테인먼트
2025년 10월 13일

에린: 엔믹스의 ‘믹스 팝(MIXX POP)’은 한 곡의 연결성을 의도적으로 해체하며 발생하는 이질감에서 시작되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들은 분절의 강도를 조절하며 ‘믹스 팝’의 고유한 요소를 남겨두되, 멤버들의 보컬을 통해 ‘팝’으로서의 색채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선회해 왔다. 그 중 ‘Blue Valentine’은 그간의 시도들을 통해 도달한 가장 세련된 해답이다. 프리-코러스에서 의도적으로 속도와 보컬의 톤을 조절하며 긴장감을 유도한 뒤, 후렴구에서 드라마틱한 멜로디를 터뜨리는 곡의 전개는 믹스 팝의 ‘믹스’ 요소를 충실히 구현한다. 동시에 물결 흐르듯 자연스럽고 섬세한 보컬들이 각 마디를 유려하게 이어 붙임으로써 곡의 입체적인 구성을 한껏 만끽하게 만든다. 특히 후렴구의 감각적인 선율에 호소력 있는 보컬이 더해지면서 광범위한 청자층을 끌어 모을 수 있는 음악적 확장성을 확보했다. 이는 앞으로의 엔믹스의 ‘믹스 팝’이 실험에만 그치지 않고, 대중적인 설득력을 갖춘 엔믹스만의 영역이 되어 가고 있다는 예고이다.

화사 ‘Good Goodbye’

Good Goodbye
P NATION
2025년 10월 15일

랜디: 무대 위에 게스트를 초대하고, 그 게스트가 무대마다 바뀌는 형식은 케이팝이 즐겨 사용한 포맷이었다. 화사의 ‘Good Goodbye’는 노스탤직한 신스팝 편곡에 우수에 찬 한국어 가사를 얹고, 게스트를 불러 사랑과 이별을 연출하는 무대 연기를 선보이며 노래만으로는 다 채울 수 없었던 낭만의 한도를 한껏 끌어올렸다. 특히 마마무 시절부터도 객석과 호흡하는 라이브로 유명했던 그인데, 뮤직비디오에 함께 출연했던 박정민과의 청룡영화제 축하 무대는 특히 ‘레전드’였다. 객석에 앉아있던 박정민이 뒷짐진 손에 빨간 구두를 들고 무대 밖에서 안으로 덤덤하게 들어오는 연출, 그리고 화사가 그런 박정민의 자유분방한 연인처럼 연기한 마지막 코러스의 연출은 잘 만든 멜로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케미’를 보여주었다. 작별의 노래에 포갠 행복한 한 때 같은 이 장면은 고정할 수 없어서 곧 슬퍼지는 사랑의 순간을 너무나 잘 포착했다. 이 날 무대 영상은 많은 화제를 낳으며 수없이 바이럴 되었고, 12월 6일과 13일 2주간 빌보드 코리아 핫100의 1위를 달성하며 화사를 2025년 연말의 조용한 승리자로 만들었다.

하츠투하츠 ‘FOCUS’

FOCUS
SM 엔터테인먼트
2025년 10월 20일

미묘: “멋들어진 베이스라인과 함께 쭉쭉 뻗어나가던 비트가 잦아들고, 감성과 긴장을 자아내는 현악기가 깔린다. 후렴에서 추출해낸 테마가 제시되고, 그 위에 다시 기세 좋은 비트가 덧입혀진다. 공간이 인공 잔디밭으로 빠지는 대목이 조금 느끼하기는 하지만, 곡은 갑자기 K팝 구조를 벗어나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EDM) 혹은 하우스의 옷을 입는다. 시크한 긴장과 패셔너블한 질주감은 아직 신인인 하츠투하츠에게 꽤 매력적인 컬러를 부여한다. 이를 음악적으로 구현하고자 하우스의 형식과 요소를 영민하게 끌어들였고, 자칫 무미건조해지지 않도록 멜로디의 밸런스와 시각 요소를 안배했다.” (〈주간동아〉 2025.10.29. “시크한 긴장감 자아내는 하츠투하츠 ‘포커스’” 中)

르세라핌 ‘SPAGHETTI (feat. j-hope of BTS)’

SPAGHETTI
쏘스뮤직
2025년 10월 24일

미묘: “정말이지, 얄미운 노래를 르세라핌만큼 해내는 그룹은 없다. 그리고 비호감을 무릅쓰는 주제의 자극성은 당당한 패기로 노래를 완성한다. 바로 이것이 르세라핌이 ‘미움받는다’는 테마를 지속하는 이유일지 모르겠다. ‘미움받고 있다’는 전제하에선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표현들로 번뜩이는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동시에 팝적인 간결함을 유지하는 것도 가능하다. 미움받고 싶지 않은 사람은 도저히 할 수 없는 것들, 예를 들어 미움에 맞서는 얄미움 같은 것을 발휘할 수 있다. 어차피 여성 아이돌이라는 직업은 미움 앞에 설 용기가 필요한 일임에 분명하다. 그런 것치고도 과감하게 느껴지는 ‘스파게티’는 르세라핌의 가능성을 대폭 확장하는 계기가 될 만한 작품이다.” (〈주간동아〉 2025.11.03. “미움에 맞서는 얄미움, 르세라핌 ‘스파게티’” 中)

Editor

By Editor

idology.kr 에디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