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 아이돌은 가능한가 ①

Tweet about this on TwitterShare on FacebookShare on Google+Share on TumblrEmail this to someone

인디 아이돌이란 일종의 모순이다. 아이돌은 자본집약적인 산업이고, 인디는 바로 그것에 반대된다. 질문을 조금 바꿔본다. 어떤 아이돌이 등장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인디 아이돌’이라 부를까. 지난 회차 퍼스트리슨에 포함된 소형 걸그룹 데이트의 경우 아프리카 TV를 통해 활동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이 올해 중 지상파 TV 진출을 목표로 하는데 그것을 ‘메이저 데뷔’라 부른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현재 이들은 ‘언더 아이돌’인 것일까. 사실상 언더그라운드와 인디의 구별이 거의 없는 한국의 상황에서, 그렇다면 이들도 ‘인디 아이돌’의 범주에 포함된다 할 수 있을까.

여기서 굳이 이데올로기적인 (혹은 ‘아이디알러지’적인) 접근을 하지는 않는다. 흔히 저예산 혹은 무자본 정도의 의미로 통용되는 ‘인디’를 바탕으로, 최대한 넓게 상정해 보자. 기획자가 있으나 굉장히 저예산인 경우와, 기획자와 자본이 없는 자생적 아이돌의 경우가 있겠다. 이를 편의상 ‘저자본 아이돌’과 ‘DIY 아이돌’이라 해보자.

저자본 아이돌 – 무엇이 필요한가?

아이돌이 결성되고 활동하는 데에는 자본과 인프라가 필요하다. 치열한 경쟁의 아이돌 시장 속에서 자본과 영향력이 약한 소형 기획사들은 아무도 약자일 수밖에 없다. 가능한 한 모든 아이돌 신보를 다루는 아이돌로지의 퍼스트리슨 코너를 꾸준히 읽어본 독자라면, 세상엔 정말 많은 소형 기획사들이 있다는 걸 절감할 것이다. 밴과 의상, 뮤직비디오, 전담 매니저 정도는 지원할 수 있는 곳이 있는가 하면, 프로듀서 겸 사장의 개인 작업실에서만 존재하는 듯한 아이돌도 있다. 저자본 아이돌을 준비하는 소형 기획사들의 예산 내역은 대체 어떤 식일지 궁금해진다. 혹은, 어디까지 내려갈 수 있을까.

최소한의 예산을 상정하기 위해, 구두쇠로 소문난 가공의 아이돌 기획자 김자린 씨를 상상해 보자.

김자린 프로필 (상상도)

김자린 프로필 (상상도)

지난 몇 년간 아이돌 소송이 연이으면서 몇몇 기획사들은 해당 아이돌의 수입과 지출 내역을 공개하기도 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그 속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지출은 뮤직비디오 제작비와 멤버들의 숙식 비용이었다. 숙소는 멤버들의 관리가 포함된다. 굳이 감금 생활 같은 것을 상상하지 않더라도, 연습과 녹음, 방송 및 행사 등을 위한 스케줄 관리에서도 숙소 생활은 효용을 갖는다. 전설 같은 이야기지만 지금 정상급의 모 아이돌은 소속사 사장과 매니저를 포함한 멤버 전원이 마포구의 빌라 한 층에서 생활했다고 하기도 한다. 물론 이 선택지는 사장 및 스태프와 멤버들의 성별이 다르다면 곤란해지는 부분도 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저자본 아이돌은 걸그룹의 비중이 높다. 남자인 김자린 씨는 어차피 데뷔 초기에 스케줄도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걸그룹 멤버들을 각자 자택에서 출퇴근시켜 숙식비를 대폭으로 아꼈다. 대신 연습에 늦으면 호되게 혼을 내고는 마칠 때쯤 음료수를 사 먹이며 다독였다.

멤버 개인 숙소 >> 멤버 숙소 > 사장 포함 전원 숙소 >>> 숙소 없음

소형 아이돌의 경우 뮤직비디오가 없는 경우도 있고, 거리 공연 영상 등으로 ‘때우는’ 경우도 있다. 대단한 CG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뮤직비디오 제작에서 가장 큰 비용이 드는 것은 사실 촬영이다. 촬영에는 여러 명의 스태프가 필요하고, 장소 코디네이트와 미술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김자린 씨는 스트리트 이미지의 걸그룹을 구상했기 때문에, 홍대 놀이터에서 뛰어 노는 멤버들의 모습을 씨네마 베리떼 풍으로 DSLR 카메라에 직접 담았다. 60만원에 중고로 구입한 이 카메라는 멤버들의 프로필 사진과 음반 커버 촬영에도 사용된 뒤 다시 거의 같은 가격에 장터에 나갔다. 여전히 편집이 필요하지만 뮤직비디오 제작 예산에서 편집이 차지하는 비용은 크지 않다. 이 비용마저 아까운 김자린 씨는 ‘아는 동생’ A를 찾아갔다. A는 김자린 씨가 사준 탕수육을 천천히 찍어 먹으며 뮤직비디오 편집을 마쳤다.

뮤직비디오 제작 >> 저예산 뮤직비디오 >>>> 편집 비용만 지불 > 개인 촬영 및 편집 > 뮤직비디오 없음

곡 제작비는 생각보다 많이 들지 않는다. (물론 쏟아 붓자면 천정 없이 올라가기도 한다.) 요즘 미디 장비는 실력만 있다면 중저가형에서도 스튜디오 표준의 작업을 하기에 모자람이 없고, 중급 이상이라면 이미 ‘1%의 향상을 위해 200%를 투자하는’ 영역으로 돌입한다. 개인 작업실에 기초적인 방음/차음 설비나 보컬용 혹은 다용도 컨덴서 마이크를 둔 경우도 많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그렇다.) 녹음, 믹스, 마스터까지 스튜디오 대여 없이 ‘아는 동생’ B의 작업실에서 해결하기로 한 김자린 씨.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기획사라도 작곡비는 1백만원 선인 경우가 흔하니 뼈 아픈 지출도 아니다. 하지만 김자린 씨는 B에게 러닝 개런티와 저작권료 대박의 꿈을 약속하고 모든 걸 해결했다. 디지털 싱글은 발매 비용도 들지 않는다. 교통비와 깐풍기, 짜장면 여섯 그릇, 그리고 B가 투덜대며 언급한 2천 달러짜리 플러그인 팩을 김자린 씨가 웹하드에서 손수 다운받아 건넨 소액의 비용으로 해결했다. 저작권 협회 가입은 가입비 20만 원이 아까워 일단 미뤄두고 B의 번호를 당분간 차단했다.

수준급 스튜디오에서 녹음+믹스+마스터 >>>> 스튜디오 녹음+믹스+마스터 > 작업실 믹스, 스튜디오 녹음+마스터 > 작업실 녹음+믹스, 스튜디오 마스터 > 작업실에서 전부 해결

멤버들이 각자 댄스 학원에 다니고 있기 때문에 기초적인 댄스 트레이닝은 별로 필요가 없었다. 김자린 씨는 댄스 강사인 ‘아는 동생’ C에게 ‘대박 나면 주겠다’며 안무를 받고, C의 연습실에서 한동안 연습했다. 그러나 C가 “주긴 주는 거냐”고 묻기 시작했기 때문에 시간당 1만원인 다른 연습실을 대여해, 이미 다 배운 안무를 서로 맞추기만 했다. 공식 웹사이트는 흔히들 하듯 네이버 카페와 페이스북으로 대체했다. 의상은 동대문에서 적당한 스쿨걸 의상을 두 가지 색상으로 구입하고, 메이크업은 멤버들이 알아서 하기로 했다. 어쨌든 김자린 씨는 모든 예산을 파렴치하게 줄여가며, 동아리 수준의 예산으로 저자본 아이돌 데뷔 싱글을 발매해냈다.

기초 트레이닝 있음 >>>> 기초 트레이닝 없음

유명 안무가 >> 아는 댄스 강사 > 춤 좀 추는 동생

연습실 마련 >>>> 시간제 연습실 > 연습실 계약

홈페이지 제작 > SNS 활용 = 홈페이지 없음

의상비 : 무수한 단계로 구분

스타일리스트 있음 >>> 스타일리스트 없음

오해 없길 바란다. 위에 포함된 매우 비윤리적인 형태의 노동력 착취들은 실제 소규모 기획사들이 행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많은 작업자들이 이런 식으로 여러 사업에 ‘투입’되고 있는 것은 현실이지만, 김자린 씨처럼 비윤리적인 행동까지 서슴지 않는 기획사는 없을 것이다. 읽어보면 알 수 있지만, 뮤직비디오 제작의 규모와 연습실, 숙소 유무를 제외하면 예산을 아낄 수 있는 여지는 거의 인건비 뿐이다. 아이돌은 다양한 분야의 전문인력이 필요하고, 해당 인력의 전문성에 따라 비용이 심하게 갈릴 수밖에 없다. 당연히 결과물의 퀄리티도 크게 좌우된다. 실제로, 뮤직비디오가 없는 소규모 아이돌들이 탕수육 한 그릇 값이 없어서는 아닐 터이다. 부담 가능한 선에서 최상의 퀄리티를 내기 위한, 고심 끝의 타협이었을 것이다. 인건비 감축을 위해 착취까지 불사하는 김자린 씨는 극단적인 가상의 예일 뿐, 당연히 퀄리티 역시 최저한으로 나오게 된다. 꿈과 사랑을 전하는 저자본 아이돌 업계는 당장 퀄리티를 위해서라도 대다수가 정직하게 노력하고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래도 남는 것은 사무실이다. 그렇다. 사무실이 필요하다. 최소한 사업자 등록이라도 하려면 어쨌든 주소가 필요하고, 결국 한국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일들과 마찬가지로 아이돌도 부동산 문제로 돌아온다. 극장 공연형 아이돌이라는 비비디바도 대학로에 소극장을 임대하는 것으로 상당 부분이 해결되었다 추정할 수 있다. 아프리카 TV를 통해 홍보하고 있는 데이트 역시, 적어도 아프리카 방송을 촬영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이는 바꿔 말하면, 적당한 곳에 사무실을 낼 수 있는 정도의 자본력이라면 아이돌 기획이 거의 가능하다는 뜻도 된다.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그리고 데뷔 음원을 발매하는 순간까지는 말이다.

부동산 있음 >>>>>>>>>> 아이돌 못 함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일단 음원 발매는 했는데 어디서 어떻게 활동해야 할 것인가. 김자린 씨의 저자본 아이돌은 뮤직뱅크의 좁은 문턱을 놓고 SM, FNC, YG, JYP, 큐브와 경쟁할 수 있을까. 다음 편에 이어진다.

미묘

Author:

가식과 내숭의 외길 인생. 음악 만들고 음악 글 씁니다. f(x)는 시대정신입니다.

http://verymimyo.egloos.com
http://twitter.com/mimyo_
http://facebook.com/demimyo

Share This Post On
  • ㅎㅅㅎ

    ㅋㅋㅋㅋ 너무재밌어욧

  • 술탄 오브 더 디스코가 예전에 인디 아이돌을 자처하지 않았었나요ㅋㅋㅋㅋ

Logo Header Men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