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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코드 : 틴탑이 연서복을 피하려면

틴탑이 끊임없이 나쁜 여자와 대치하는 나쁜 남자를 그리는 이유는 뭘까? 어느 정도의 연민을 끌어올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지속적으로 같은 심리 상태를 반복하는 것은 위험부담이기도 하다.

1. 틴탑은 ‘박수’, ‘Supa Luv’를 내놓고 난 뒤 ‘향수 뿌리지마’로 활동했다. 연상의 여성을 대상으로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는 점에서 샤이니의 ‘누난 너무 예뻐’와 비교되기도 했지만, “이러다 여친한테 들킨단 말야”, “누나의 몸매는 너무너무나 섹시해”, “그냥 내가 하자는 대로 해” 등의 가사는 좀 더 센, 소위 말하는 나쁜 남자의 콘셉트를 선보였다. 곡이 발표되었을 당시 이 곡이 방시혁 사단의 작품이라는 걸 알았을 때, 곡의 스타일이나 담긴 내용의 측면에서 기존의 작품들과 잘 매치되지 않았기에 다소 의외라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박수’와 ‘Supa Luv’ 이상으로 이 곡은 틴탑의 정체성을 구축했으며 ‘박수’ 당시 전폭적인 지원사격을 받았을 때만큼 많은 사람에게 회자되었다. 상당히 앳된 모습을 띄었을뿐더러 가늘고 예쁜 아이들이 (심지어 뮤직비디오에서는 배우 박시연을 상대로) 누나를 탐하고 있으니 나에게는 여러모로 기억에 남을 수밖에.

2. 이후 틴탑은 좀 더 남자다운 모습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이때부터 용감한형제와 함께하게 된다. 처음에는 용감한형제가 선보였던 스타일과 ‘향수 뿌리지마’ 사이의 접점이자 연장선인 ‘미치겠어’를 발표한다. 떠나가려는 상대방에게 돌아와 달라고 하는 곡은 사실 비교적 무난한 축에 속한다. 흥미로운 건 그 다음 활동했던 ‘To You’다. 마찬가지로 연인에게 기회를 달라고 호소하는 내용이지만, 문제는 표현 방식이었다. “이 멍청한 바보야”, “나더러 뭘 어쩌라고”, “널 잊고 사느니 나 차라리 죽는 게 낫겠어” 등의 표현은 기회를 달라고 하면서도 청자를 비난하는, 그러면서도 화자의 감정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것을 강요하는 말투에 가깝다. 사실 더 큰 문제는 두 곡 모두 은연중에 화자 자신을 피해자로 인식하는 태도다. 그러므로 이별의 원인이나 책임을 상대에게 돌리는 것이다.

3. 이후 ‘나랑 사귈래’, ‘긴 생머리 그녀’는 앞선 곡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무난한 인상을 준다. ‘나랑 사귈래’는 오히려 화자가 어리고 서툴다는 점을 전면에 드러내기도 한다. ‘긴 생머리 그녀’는 이미 누군가를 만나고 있는 사람에게 반하게 된 경우를 이야기하며, “추억에 젖어 밤새 술 푸면 긴 머릴 풀며 내게 다가와줘”와 같은 식으로 은연중에 어른임을 암시한다. 이후 연차가 있는 아이돌이라면 한 번쯤 한다는 댄스를 위한 댄스곡 ‘장난아냐’를 선보인다. 하지만 이 곡, 어쩐지 좀 수상하다. “장난 아니에요”를 반복하는 후렴구를 제외하고 가사를 보면, “그 앤 너무 잘났어 한마디도 안 지네”, “그 매력에 빠졌어 나만 이렇게 비참해”, “이 모양 이 꼴이 난 게 누구 탓이야” 등 역시 또 이별의 상황을 제시한다. 그뿐만 아니라, 여전히 관계 개선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4. 이렇게 이별의 상황을 꾸준히 제시하더니 결국 ‘쉽지않아’와 같은 곡이 나왔다. 용감한형제가 아닌 블랙아이드필승에 의해 만들어진 곡은 이전의 댄서블한 분위기에서 벗어나 어반한 방향으로 선회했다. 그리고 ‘멤버 전원 20대’라는 것을 내걸며 이전보다 확실히 성숙해졌음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다만 이 곡에서는 성숙해진 만큼 관계에 있어서 훨씬 나아진 이야기를 펼친다. 서로를 위로했다고 하기도, 자신의 단점을 고쳐보려 노력하기도 했다는 말과 함께, 잊는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한다. 니엘의 솔로곡 ‘못된 여자’는 앞서 그렇게 이별을 해놓고도 다시 못된 여자에게 꽂히는 모습을 보여준다. 팀이든 솔로든, 어떻게 보면 참 일관적이다.

지금까지 네 가지 이야기를 풀었는데, 이렇게 틴탑이 끊임없이 나쁜 여자와 대치하는 나쁜 남자를 그리는 이유는 뭘까? 어느 정도 상황은 이해가 간다. 10대일 때, 그것도 아주 어릴 때 데뷔를 했고 여성 팬 확보를 위해서 그러한 콘셉트와 내용을 선보였을 것이다. ‘나쁜 남자’ 콘셉트는 ‘향수 뿌리지마’에서 시작했고, 이별의 상황은 용감한형제와 만나면서부터 시작했다. 이별을 ‘당하는’ 이야기는 단순히 타이틀곡에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1집을 포함한 앨범 전반에서 드러난다. 여기서 어느 정도의 연민을 끌어올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지속적으로 같은 심리 상태를 반복하는 것은 위험부담이기도 하다.

진지하게 말하자면 앞서 말한 곡들은 결국 ‘연서복’에 가깝다. 그렇다. 연애에 서툰 복학생을 말한다. 연애에 서툰 복학생이 가지는 이미지는 사실 그렇게 긍정적이지 못하다. 그야말로 연애에 서툴면서, 이성을 향해 거칠게 들이대고, 표현마저도 거칠게 한다. 혼자서 상대의 감정을 오해하는 경우도 있다. 서툰 감정 표현과 행동, 그로 인한 시행착오는 하나의 뚜렷한 이미지가 되었다(당연히 복학생이라고 해서 다 이렇지는 않다). 차마 여기서 연서복의 예시를 들고 싶지 않기에, 자세한 건 ‘연서복’을 검색해보는 것을 권한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건 연서복이 가지는 이미지다. 이별 상황에서 자신의 잘못을 보려고 하지 않는 점, 상황이 아닌 감정만을 직접 표현하여 자신에게서 이별의 이유를 찾지 않는 동시에 상대 여성에게만 원인을 돌리고 있다는 점 등은 연서복의 ‘하… 시바… 내가 너 그래도 존나 사랑햇다…’의 감정과 비슷하다.

이러한 이미지가 나쁘다거나 이를 정치적으로, 혹은 특정한 시점에서 왈가왈부하려는 것이 아니다. 물론 연애의 과정이나 관계 속에서 서툴거나 극단적인 감정 표현, 거기서 과잉된 표출을 통해 동등한 입장에서 관계를 만들어가며 대화와 같은 방식으로 풀어내지 못하고 다툼으로 번지는 상황 자체는 부정적인 경우에 해당한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의미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틴탑의 곡은 자신의 감정 표현 이상의 서사나 깊이 있는 이야기를 끌어내지 못하기 때문에 점점 그 흥미가 줄어들고, 성숙함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도 어느 정도 한계를 맞이한다.

니엘의 솔로 앨범은 그런 의미에서 어느 정도 환기되는 지점이다. “화가 날 때 참지 않는 건 정말 쉬워 / 남자라서 쉽게 욕할 수도 있어”(‘전화해’)와 같은 말은 안 하는 게 좋았다. 이 가사 역시 앞서 말한 ‘남성성 과잉 표출’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위로하는 상황에서 굳이 ‘네 앞이니까 안 하는 거야’와 같은 말은 꺼내서 좋을 것 없다. 그러나 니엘은 슬로우 잼의 문법에 맞춰 섹시한 가사를 선보이는가 하면, 이별 후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꺼내거나(‘아포가토’), 이별 상담을 해주는(‘전화해’) 등 조금 더 복잡한 상황으로 접근하기도 한다. 루시드폴이 선사한 마지막 트랙이 앞의 연서복 구절마저 상쇄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결론적으로는 앞서 틴탑의 커리어가 가진 문제점들이 하나 둘 해결되고 있는 장면이다.

틴탑은 데뷔 연차에 비하면 정말 어리고, 경력과 가능성이 비례하는 몇 안 되는 그룹이다. 동시에 ‘남친돌’, ‘포켓돌’과 같은 콘셉트가 전반적일 때 꾸준히 남성성을 펼쳐온 그룹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2PM을 포함한 몇 그룹처럼 남성성 이상의 짐승성(미안하다. 표현이 떠오르지 않는다)을 표출하지도 않았으며, 비주얼 때문에 틴탑은 앞서 말한 ‘포켓돌’로 불리기도 한다. 다른 아이돌 그룹처럼 틴탑 멤버들 역시 조금씩 곡을 쓰기 시작했다고 알고 있다. 댄서블한 넘버에서 어반/R&B 스타일로 넘어온 것도 일종의 큰 변화겠지만, 나는 멤버들의 자작곡이야말로 오히려 틴탑을 어른으로, 그리고 시즌 2로 끌어올릴 수 있는 타개책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멤버들이 꺼내는 이야기가 앞서 발표했던 곡들과는 달라야 그 차이가 보일 것이지만, 우선 나는 그 가능성을 믿어보기로 한다. 음악가에게 경험이라는 건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고, 틴탑은 어릴 때부터 음악을 경험해왔기 때문이다. 스무 살은 한국에서 의미부여가 많이 되는 나이다. 멤버 전원이 20대가 되었다고 이야기했던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스무 살을 넘어선 틴탑이 앞으로 큰 발전을 보여줬으면 하는 기대를 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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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럭

블럭이라는 이름을 쓰는 박준우입니다. 웨이브, 힙합엘이, 스캐터브레인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