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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을 연기하는 사람들 : 카고 아이 ②

12세에 데뷔해 일본의 국민 여동생 지위에 오른 카고 아이. 인기가 쌓일 수록 황폐해져간 내면에는 어떤 이유가 있었던 것일까.

한 명의 아이돌, 그 두 가지 탄생 배경

아이돌을 연기하는 사람들 : 카고 아이 ①에서 이어진다.

먼저 카고 아이(加護亜依)의 가정환경에 대해 얘기해보자. 팬들이 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좋은 편은 아니다. 수많은 소문이 난무하는데, 이를 정리하면 대강 이렇다. 먼저 친아버지는 전과자였으며, 카고 아이가 태어날 당시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17살이었다. 때문에 그녀가 1살이 된 뒤에야 출생 신고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출생 신고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부부는 이혼했으며, 친어머니는 이후 두세 번 재혼과 이혼을 반복했다. 카고 아이는 늘 아버지에 대한 어떤 열망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아버지뻘인 남자들과 자주 교제하는 것도 아마 여기서 비롯된 상처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녀의 친어머니는 그다지 좋은 어머니 같진 않다. 집에 있을 때 카고 아이는 절대 어머니를 거역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녀가 모르는 사이에 종종 집안사를 싸구려 연예잡지에다 팔아넘기곤 했다는 얘기도 있다.

자폐증을 앓고 있는 남동생도 있었다. 카고 아이와 피는 이어지지 않은 것으로 짐작되는데, 동생에 대해서 그녀는 모닝구무스메(モーニング娘。) 재적 당시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집안의 실질적 가장은 카고 아이였다. 때문에 그녀는 아득바득 무대에서건 방송에서건 자신의 몫을 챙겼다. 항상 영악하게 머릴 굴렸고 캐릭터로서의 자신을 제대로 어필했다. 그녀를 별로 좋아하지 않던 팬들 사이에는 ‘카고 아이는 그저 콘셉트일 뿐이다’라는 말이 돌았다. 하지만 12살의 카고 아이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다음으로 다뤄야 하는 것은 감정노동을 포함한 직업적 스트레스다. 카고 아이는 지나치게 이른 나이에 연예계 활동을 시작했다. 초등학교 6학년에게 현실은 혹독했다. 모닝구무스메는 기수제로 이루어져 있는 만큼 선후배 관계가 엄격했다. 최연소 멤버였던 그녀와 츠지 노조미(辻希美)는 나카자와 유코(中澤裕子)를 비롯한 선배들에게 자주 꾸지람을 들었다. 게다가 도쿄로 올라오면서 부모님과 떨어졌기 때문에 이 시기 카고 아이는 많이 힘들어했던 것처럼 보인다. 이시카와 리카(石川梨華)와 작은 트러블이 있었던 것도 이때다. 적응을 잘하지 못해서 힘들어하던 카고 아이에게 보인 이시카와 리카의 호의가 당사자에게는 부담스럽게 느껴졌던 것이다. 가정환경 때문에 감정 기복이 심하던 그녀의 우울증은 이때부터 조짐이 보이지 않았나 싶다.

유닛 탄포포(タンポポ)의 활동이 시작되면서 카고 아이는 인기를 얻게 된다. 연이은 유닛 미니모니(ミニモニ。)도 히트를 치면서 그녀는 최고 인기 멤버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귀엽고 깜찍하며 흉내를 잘 내는 엉뚱한 그녀에게 대중들은 매력을 느꼈다. 그러나 인기를 쌓아나가던 아이돌 카고 아이와는 별개로, 인간 카고 아이의 속은 계속 곪아가고 있었다. 이것을 단적으로 드러내 준 것이 바로 교환일기 사건이었다.

탄포포와 미니모니 활동 당시 카고 아이의 모습 ⓒ Upfront Promotions
탄포포와 미니모니 활동 당시 카고 아이의 모습 ⓒ Upfront Promotions

모닝구무스메로 데뷔하기 전 카고 아이는 친한 친구와 교환 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이는 그녀가 모두의 ‘카고쨩’이 될 때까지 이어졌고, 사건이 터졌다. 함께 쓰던 친구가〈부브카(ブブカ)〉라는 삼류 연예잡지에 일기를 팔아버린 것이다.

읽은 이들은 모두 충격을 받았다. ‘오늘은 장례식을 보았다’, ‘죽은 척을 해본 적이 있다’, ‘가방이 피 색깔로 보인다’……. 일기에 드러난 그녀의 내면은 한없이 어둡고 우울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이것이었다.

‘팬티를 보여주는 것이 창피했다’

당시 카고 아이는 동기 이시카와 리카, 솔로 아이돌 마츠우라 아야(松浦亜弥)와 함께 산닌마츠리(3人祭: 삼인제)라는 셔플 유닛 활동을 하고 있었다.

전설의 조합이라 불리는 산닌마츠리의 ‘チュッ ! 夏パ~ティ (츗! 여름 파티)’ 라이브 영상. 문제의 안무는 1분 2초부터 볼 수 있다.

위에 링크한 동영상에서도 볼 수 있듯이, 안무 중 프린트 팬티를 보여주는 동작이 있었다. 이러한 안무는 일명 ‘판치라(パンチラ)’라고 해서 일본 아이돌 계에서는 나름 유서가 깊다. 멀게는 모리타카 치사토(森高千里)가, 가깝게는 AKB48이 시도한 바 있다. 물론 진짜 속옷을 입지는 않고 보여주기 용 속옷을 위에 따로 입는다. 하지만 나이 어린 카고 아이는 이에 수치심을 느꼈던 것이다. 그러나 자칫 큰 파장을 불러올 수 있었던 교환일기 사건은 흐지부지 마무리된다. 아마 소속사인 업프론트 에이전시(Upfront Agency, 현 업프론트 프로모션 Upfront Promotions) 쪽에서 힘을 쓴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사건은 언제나 웃고 있던 카고 아이의 지독히 곪은 내면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시가 되었다. 그러나 소속사 측에서 정신적인 케어를 따로 지원해줬다는 얘기는 없다. 그녀는 절친한 친구가 자신을 팔아넘겼다는 배신감과, 자신의 가장 비밀스런 내면이 불특정다수에게 까발려졌다는 치욕감을 혼자서 견뎌야 했다. 가정도 회사도 그녀에게 휴식처가 되어주지 못했다. 모닝구무스메에 들어온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서 터진 일이었다. 12살의 그녀가 기댈 곳은 어디에도 없었던 것이다.

카고 아이는 쌓여가는 스트레스 때문에 최종적으로 담배와 남자에 기대게 된 것처럼 보인다. 사실 우울증은 아이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흔히 겪을 수 있는 병증이다. 가입부터 졸업까지 모닝구무스메의 얼굴이었던 아베 나츠미(安倍なつみ)도, 활동 당시 우울증을 앓았었다는 사실을 고백한 바 있다.

그리고 문제의 흡연 사건이 터진다. 카고 아이는 당시 18살의 미성년자였고, 여동생 같은 이미지로 국민적 인기를 누렸었기 때문에 타격이 컸다. 그녀에게 있어선 두 번째 맛보는 배신이었다.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같이 있던 친구가 악명 높은 주간지 〈프라이데이(Friday)〉에 사진을 팔아넘겼기 때문이다. 열도를 뒤흔든 흡연 스캔들 때문에 카고 아이는 근신 처분을 받았다. 새 앨범 발매가 예정되어 있었던 W는 결국 잠정 해체되었고, 덩달아 츠지 노조미도 활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그녀의 인생은 끝없이 내리막길을 향해 달린다. 1년 동안 근신하면서 카고 아이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탈모와 거식증을 겪었다. 소속사는 그녀에게 일반 사무 업무를 보게 하고 인터뷰를 하게 하는 등 연예계 복귀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 달 뒤 다시 흡연 사건이 터졌다. 이번에는 연상의 남자와 1박 2일로 온천여행을 다녀오는 길에 담배를 피운 것이다. 2007년 3월 26일. 카고 아이의 부모가 이혼을 결정한 날이었다. 결국 그녀는 소속사에서 계약 해지 통보를 받는다.

이 글은 카고 아이가 담배를 피운 것을 정당화하려는 글이 아니다. 그러나 필자는, 그녀의 흡연이 단순한 일탈 행위와는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해두고 싶다. 그녀에게 주어진 합법적이고 올바른 휴식처는 그 역할을 충분히 하지 못했다. 결국 카고 아이는 비합법적인 휴식처를 찾아서 기댄 것이다. 흡연과 그 후 벌어진 일련의 사건은 확실히 그녀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것이지만, 그녀의 가정과 회사에게 책임이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아이돌이라는 특수한 직책은 차치하고서라도, 한 명의 인간으로 볼 때 그녀에게 적절한 케어가 내려졌다고 볼 수 있을까?

다음 글에서는 흡연 스캔들 이후 연예계에 복귀한 카고 아이에게 일어났던 사건들을 정리하는 한편, 그녀의 인생 역정을 통해 한 명의 아이돌, 나아가 한 명의 불행한 인간을 대할 때 우리가 가져야 하는 자세에 대해 아주 조금 이야기해볼까 한다.

아이돌을 연기하는 사람들 : 카고 아이 ③로 이어진다.

박복숭아

By 박복숭아

박복숭아. 2001년부터 지금까지 하로! 프로젝트 외길을 달린다. 만일 제가 죽으면 층쿠 선생 묘에 민들레꽃으로 수목장해주세요.

4 replies on “아이돌을 연기하는 사람들 : 카고 아이 ②”

아이돌이란 격한 감정노동을 하는 직업군과 우울증은 한번쯤 제대로 다뤄져야 할 문제인 것 같아요. ㅠㅠ 이렇게 상황이 악화됐는데도 적절한 조치가 없었다니 너무하네요. EXID의 하니가 심리상담사가 되고 싶다고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닌듯요…

글 잘 읽었습니다. 하로프로나 카고아이 팬은 아니지만 담배사건 때나 가정환경 이야기는 많이 들어왔는데 매번 안타까웠어요.

미성년자에게 팬티를 보여주는 퍼포먼스를 시키는 사람들이 미성년자가 흡연을 했다고 그것을 조직적, 사회적으로 단죄하고 근신 등의 처분을 내린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무슨 농담인가.

지난 번 편이 짧아서 아쉬웠는데 이번 편 잘 읽었습니다. 내면의 지독한 외로움을 알아 본 ‘나쁜 사람들’이 그녀 주위로 모여든 게 아닌가 싶어 가슴이 아프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