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아이돌 그룹이든 활동 연차가 쌓이다 보면 정체기가 오기 마련이다. 5년 차가 되면 위기를 맞이한다는 ‘5년 차 증후군’도 있고, 이런저런 콘셉트를 가져오는 과정에서 정신적으로든, 체력적으로든 힘에 부치는 시간이 생기기도 한다. 아이돌 그룹의 일원으로 활동한다는 건 직업의 관점에서 봤을 때도 고도의 체력과 정신력이 필요하다. 심지어 한국의 생애주기를 고려하면 아이돌의 활동 시기는 다른 대부분의 사람에게도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한 시기를 어떤 여유 없이 빠듯한 일정을 소화해가며 살다 보면, 물적 공백은 어떻게 될지 몰라도 정신적 공백은 어느 정도 생길 수밖에 없다. 물론 아이돌 그룹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사람 중에는 자아를 고민하는 사람도, 주체적인 발언을 하는 사람도 많이 있다. 아마 그러한 과정에서 오는 피로감은 만만치 않으리라.
그렇다면 아이돌에게도 번아웃 증후군은 있을까? 나는 그 증상을 2PM에게서 본다. 개인적인 착각일까 싶지만, 2PM은 여유를 부려도 여유가 느껴지지 않고, 왕성한 활동을 하면서도 계속 뭔가에 끌려다닌다는 생각이 든다. 2013년 KBS 〈인간의 조건〉 방송 중 옥택연은 2015년까지 스케줄이 있다고 했다. 그만큼 2PM의 일정은 빠듯하다 못해 위험하다는 느낌까지 받게 된다. 당장 두세 달의 스케줄이 꽉 차 있을 때도 답답한데, 2, 3년의 스케줄은 어느 정도일지 남이 쉽게 체감하긴 어렵다. 여기에 각 멤버는 개인 활동도 많고, 해외 활동은 더 많다. 외화벌이에 앞장선 그룹 중 하나인 2PM은 일본에서도 성공적으로 흥행을 이어나가고 있고, 아시아 쪽에서 꾸준히 공연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드라마, 영화, 솔로 활동까지 생각하면 그냥 단순히 힘들기만 한 것이 아니다. 활동 방향 설계에 대한 고민이나 각 작품 안에서의 고민까지 병행해야 하는 것이다.
심지어 2PM은 데뷔 초부터, 아니 데뷔 경로였던 엠넷 〈열혈남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예능 나들이를 가졌다. 케이블 채널에서는 자신들만의 프로그램을 꾸려가기도 했다. 무대 위에서는 화려하고 멋진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무대 아래에서는 열심히 망가지고 굴렀다. 물론 이들만 바쁜 건 아니다. 어떤 아이돌은 하루에 3, 4곳의 지역 행사를 나가기도 하며 그러다 보니 가끔씩 큰 사고가 일어나기도 한다. 하지만 정말 질보다 양을 중시했던 것일까, 당시 2PM의 공개된 활동 스케줄만 봐도 상당한 강행군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게다가 박재범 탈퇴를 전후로 소속사를 두고 벌어진 사건은 더욱 큰 스트레스와 힘든 시간이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심신이 지친 중에도 2PM은 국내외를 오가며 열심히 활동했다. 각자가 개인 활동도 하고, 여기에 작사 및 작곡도 선보인다. 충분한 여유를 가져도 힘든 일을 2PM은 기어이 해내고 만다. 곧 발표할 앨범도 대부분 멤버들의 곡으로 채웠다고 한다.
각 멤버의 SNS만 봐도 2PM은 수동적이기만 하기보다는 능동성을 강하게 지닌 그룹이라는 점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사회적 사안에 대해 의견을 내놓을 줄도 알고, 사뭇 진지한 순간도 많다. 이렇게 무대 위에서의 모습, TV 프로그램에서의 모습, 평상시의 모습 등 여러 맥락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한 팀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다른 팀과는 확실히 다른 인상을 받게 되며, 팀이라는 개념도 다른 그룹과는 조금 다르다는 느낌이 든다. 기회가 되면 직접 물어보고 싶지만, 이미 공개된 스케줄이 빠듯하기 때문에 인터뷰를 가지는 것조차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그래서 2PM을 보고 있으면 번아웃 증후군이 생각난다. 번아웃 증후군은 탈진 증후군, 소진 증후군 등으로도 일컬으며 지식노동자들에게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데, 열심히 일하던 사람이 극도의 신체적, 정신적 피로감으로 인해 갑자기 무기력증에 빠지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증상은 겉으로 드러나는 징후보다 심각한 위험을 초래한다. 기술문화연구소장 류한석 소장은 증후군의 몇 가지 원인을 “스스로에 대한 높은 기대의 설정과 실망 / 업무에 대한 중압감 / 열심히 일할 것을 강요하는 분위기 / 부하직원에게 권한위임을 하지 않을 때 / ‘아니오’라고 대답하지 못하는 성격 / 자기희생에 대한 실망스러운 피드백 / 업무와 개인적인 삶의 상충”으로 소개한 바 있다. 2PM도 이중 몇 가지는 해당하는 것 같다. 그래서 말 그대로 소진된 채 계속 몸을 끌고 가는 느낌이 든다.
논란이 있기는 했지만, 한병철의 〈피로사회〉(문학과지성사, 2012)가 말하듯 현대사회에서 개인은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외부로부터 받는 압박도 크지만,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압박도 만만치 않다는 이야기이다. 2PM은 겉으로 보기에는 어느 정도 무장해제를 한 듯 보이지만, 실은 그러한 여유를 보이는 순간조차 어느 정도의 긴장을 가지고 있다. 끊임없이 카메라 앞에 서야 하고, 시야의 대상이 되며 타자화라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체화하게 되기 때문이다. 비단 2PM뿐만 아니라 많은 연예인이 이러한 과정을 겪는다. 샤이니의 김종현이 연예인으로서, 다른 의미로 대중을 대하는 소수자로서의 다름을 말한 이야기와도 이어질 수 있을 것 같다.
어느 날 ‘미친 거 아니야?’를 보며 그 무대나 음악이 들려주는 흥이 나에게 크게 와 닿지 않는다고 느꼈다. ‘왜 신나는 노래를 해도 신이 나지 않는 걸까’라는 고민과 함께 그들이 나와 비슷한 연령대의 사람들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나 또한 신나는 음악을 듣고 신나는 장소에 가도 최대치의 쾌락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그들의 모습에서 겹쳐 보였다. 어쩌면 이들의 피로가 엿보인 첫 순간은 ‘Hands Up’이 아니었나 싶다. 그때는 지금보다 파이팅이 느껴졌지만, 지금은 쌓인 연차에서 오는 여유는 있어도 보는 사람까지 뛰어놀게 만들 만큼의 흥은 다소 줄어든 것도 사실이다.
누군가는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걱정이 오빠 걱정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고소득 직종을 걱정할 시간에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라고 한다. 그러나 세상에 힘들어야 할 직업은 없고, 고생해야 할 의무는 없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우리 오빠’가 힘들면 나도 같이 힘들지 않은가. 무모한 발상이지만, 어쩌면 ‘오빠와 나’는 ‘고생하는 사람’이라는 공통점을 가진 하나의 연대체로 상상할 수도 있다. 이야기는 2PM으로 시작했지만, 이 글이 아이돌의 직업적 대우나 환경에 대해서 잠깐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끝으로 세상의 모든 지치고 힘든 이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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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replies on “아이돌 코드 : 2PM과 번아웃 증후군”
2pm 팬인데 잘 읽고 갑니다……..
뭔가 짠하네요
2PM 진짜 대단한듯
2008년부터 지금까지 좋은일도 많았던만큼 힘든일도 많았는데
묵묵히 자신들이 해야할 일을 잘 해내는듯매 공연마다 관객들에게 좋은 파이팅 넘치는 좋은 기운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2PM 보면 힘나요 으쌰으쌰 오래갑시다
사랑해용 파이팅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투피엠은 짐승돌이란 타이틀을 가진 건강하고 유쾌한 아이돌 그룹이죠. 그들이 승승가도를 달리다 꼭지점을 찍기직전에 팀맴버 탈퇴로 위기를 맞아 진통을 겪었지만 여전히 대중들에겐 건강한 에너지를 주는 아이돌로 자리잡고 있죠. 한 번쯤은 모든 걸 손에서 놓고 쓰러질 법도 한데 그들은 그럴 수록 더 더욱 손을 맞잡고 앞으로 나아가는 위력을 보여 주네요.참 멘탈이 강한 청년들입니다.요즈같이 청년실업률이 높고 나약한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면 2PM! 이 청년들의 멘탈을 배우라고 말하고 싶네요.
공감 ㅋㅋㅋ 핸즈업때 하나도 안신나는데 신나는척 하는게 너무 애잔했음 ㅠㅠ 강제파티..ㅠㅠㅋㅋㅋ
그들의 에너지는 라이브 콘서트에서 가장 진가를 발휘하지요. 방송 경우도 라이브 무대 실황에서 가장 빛나구요. 아무튼 다른 관점에서 2pm을 볼 수 있는 글이었습니다.잘 읽었습니다
현재도 18년까지 스케줄이 빼곡하다하니 말다했죠 뭐…
열혈남아때 부터 지금까지 쭉 2PM 팬으로 활동하고 있는 팬으로서 공감되는 글이네요..다른 가수들보다 더 힘들었으면 힘들었지 덜 하지는 않을텐데도 더 열심히 하려 하고, 더 좋은 모습을 보이고, 더 웃는 모습을 보여주고, 더욱 팬들을 생각해주고 있는 사람들이라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