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방하는 케이팝, 복제하는 아이돌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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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는 케이팝

앞서 제이팝 복제의 시기를 언급한 바 있지만, 이후에도 제이팝의 공식을 따르는 것은 멈추지 않았다. 기획 단계에서 케이팝의 자체적인 공식은, 외국 작곡가의 곡이 대거 유입되면서부터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존 리(John Lie)가 케이팝의 구성이 영미권으로 넘어왔다고 생각하는 것도 그래서일 수 있다. 그러나 업계나 평론계에서는 동방신기의 ‘주문’을 전환점으로 보고 있고, 이는 단순히 외국의 곡을 사오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세계적인 트렌드에 빠르게 반응하며 영미권의 유행과 동시의 것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시기상으로는 2008년 이후로 외국 곡을 가져오는 일이 늘었는데, ‘주문’을 포함한 몇 가지 성공 사례를 통해 업계 사람들은 외국의 곡을 사오는 것이 흥행에 도움이 될뿐더러 작품성까지도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현재 한국은 일본보다는 영미권의 음악을 많이 참고하고 있다. 몇 작곡가는 아이돌 음악을 작업하는 동시에 영미권 음악가와도 작업하고 있다.

아이돌 시장 흐름의 변화는 시장 자체의 흐름과도 긴밀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 2000년대 중반 솔로 발라드 가수가 흥하는 동안 R&B, 발라드, 심지어는 댄스, 섹시 콘셉트까지 기존의 가요 시장이 가지고 있던 몇 가지 정형화된 색채는 솔로 가수가 다수 차지했다. 그러다 보니 아이돌 그룹은 솔로가 보여줄 수 없는 뭔가를 선보여야 했다. 더구나 2008년부터는 아이돌 그룹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며 빠르게 양적 성장이 이루어지면서, 이때부터는 ‘생존을 위해’ 콘셉트를 만들고 지켜야 할 필요가 생겨났다. 워낙 많은 그룹이 생기다 보니 그 안에서 차별화를 둬야 했고, 차별화의 결과는 직관적으로 드러나야 했던 것이다.

엑소는 평행우주라는 하나의 거대한 콘셉트를 바탕으로 멤버들에게 초능력을 부여하는 등 세세한 부분까지 결정하고, 오렌지캬라멜은 B급, 코믹 등의 정서를 바탕으로 캔디 컬처에 기반을 둔 음악과 비주얼을 선보인다. 또한 ‘아이돌 그룹’이라는 포맷의 정형화된 틀을 벗어나는 시도도 많이 하고 있으며, 영화나 장르 음악에서 소스를 가져오고 있다. 이처럼 아이돌의 차별화를 위한 콘셉트는 이전에 없이 다양해졌고, 그 결과 현재 아이돌은 음악과 콘셉트 양면에서 풍성한 텍스트를 지니게 되었다.

레퍼런스의 확장 – 돌리고 돌리고

이처럼 워낙 보유한 텍스트가 풍성해진 탓인지 이제는 다른 아시아권 국가에서 케이팝이라 불리는 아이돌 그룹을 모방하고 있다. 과거 한국 아이돌의 참고 대상이었던 일본도 예외가 아니다. EXILE 쇼키치의 ‘Back To The Future’는 태양의 ‘Ringa Linga’로부터 뮤직비디오 의상과 안무의 일부를 차용했다. 플라워(Flower)라는 그룹은 소녀시대를 참고한 흔적이 보인다. 중국에서는 결승단이라는 그룹이 B1A4를 그대로 베끼는 일도 있었다. 2009년에는 중국에서 빅뱅을 표절한 오케이뱅의 등장을 비롯해 ‘Nobody’(원더걸스), ‘링딩동’(샤이니) 등을 무단으로 번안하여 부른 캄보디아의 그룹 등, 다소 엉망에 가까운 베끼기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참고의 결과가 가지는 수준이나 참고의 방식 등은 각국 모두 굉장히 세련되어졌다. 이는 매년 하는 〈한중가요제〉를 보면서 느낄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겠지만, 베트남과 태국의 팝 음악이 어느 정도 수준까지 왔는지를 보면 더욱 체감하기 쉽다. 예를 들어 태국은 보이그룹, 걸그룹이 어느 정도 자리 잡는가 하면, 케이팝, 제이팝을 비롯해 영미권의 것까지 읽어내고 있어 GaiA, FFK, Vamp, Evo Nine, CupC, SHUU 등을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Boyfriend라는 그룹은 유닛 활동까지 성공적으로 해내고 있다. 심지어 이름에서부터 대소문자 활용, 영어로 된 이름이라는 점 등 여러모로 생각해볼 만한 요소가 많은데, 이들의 비주얼이나 곡 모두 케이팝의 그것과 굉장히 흡사한 부분이 많다. 베트남은 ‘V-Pop’이라는 이름을 90년대부터 써왔다고 하며 솔로 음악가를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이들도 케이팝의 비주얼이나 곡 스타일을 적극적으로 차용하고 있다.

태국은 자국 음악가가 차트 상위권을 차지하는 반면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은 팝 음악이나 케이팝 음악이 상위권을 차지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만큼 베트남을 포함한 다른 나라는 아직 케이팝을 적극적으로 모방하기보다는 수입하고 있는 단계라 볼 수 있다.

복제의 복제, 또 다른 복제

한국은 음악 산업에 있어 다른 국가에 비해 후발주자에 속하며, 국가 위치나 사회적 상황 등을 고려했을 때에도 상대적으로 세계 음악 산업 중심에 있지는 않다. 그러나 긴 시간 동안 일본과 영미권 음악을 모방하는 과정을 통해 나름의 성장을 이뤘다. 또한, 음악시장의 성장에 따라 좀 더 체계적이고 복잡해진 제작 환경을 일구면서, 그 과정에서 복제의 방식도 달라졌다. 과거에는 하나의 작품을 통째로 모방하는 식이었다면, 지금은 무수히 많은 참고자료를 바탕으로 그 안에서 좋은 것을 취사선택해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내고 있다.

다른 나라가 케이팝을 모방하는 것은 어쩌면 단순히 겉으로 보이는 것만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 자체를 모방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한국의 시스템 역시 모방에서 출발했다. SM 엔터테인먼트는 초기에 자이브 레코즈(Jive Records)를 의식했고, 이후 일본의 아벡스 뮤직(Avex Music)과 협업 계약을 체결하면서 많은 참고를 했으며, 이후 지금의 SM 엔터테인먼트는 월트 디즈니 컴퍼니를 꿈꾸고 있다. 다른 아시아 국가의 기획사들도 이러한 노선을 모방하고 싶어하는지, 혹은 실제로 모방하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은 또 다른 과제로 남는다.

한국은 창의, 창조에 유난히 강한 관심을 보인다. 하지만 정작 그러한 과정이나 정도 등 행위 자체에 대한 고민은 별로 하지 않는 편이기도 하다. 아직도 다른 예술 작품으로부터 영감을 얻는 것, 혹은 비슷한 것을 선보이는 행위에 대해 옳은가 그른가 하는 정의의 잣대를 가져다 대는 사람이 많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다른 작품의 특징을 노골적으로 취하는 것은 옳고 그름을 떠나 촌스럽거나 능력 부족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존의 무언가를 나의 것으로 멋지게 취하고 싶다면 그만한 고민과 연구, 무엇보다 그것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수반되어야 한다.

참고문헌
블럭

Author:

블럭이라는 이름을 쓰는 박준우입니다. 웨이브, 힙합엘이, 스캐터브레인을 하고 있습니다.

http://www.weiv.co.kr
http://twitter.com/bluc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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