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친구가 만드는 K-걸그룹 유니버스

여자친구의 두 시선 ②

이미지 ⓒ 쏘스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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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친구의 ‘오늘부터 우리는’ 뮤직비디오는 나에게는 약간 의아했다. 2015년의 여름, 케이팝 아이돌 걸그룹의 격전장에서 여자친구는 해변이나 리조트가 아닌 시골의 한옥집으로 MT를 떠나는 소녀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얼핏 봐서는 대수롭지 않은 듯도 하지만 이건 매우 이례적인 선택이었다. 왜냐하면 내가 기억하는 한에는 케이팝 아이돌 걸그룹의 여름에 시골이 등장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뜬금없는 등장은 어떻게 일어난 것일까.

뮤직비디오를 보면 그 의아함은 이내 놀라움이 되었다. 메주가 주렁주렁 걸려있는 시골 한옥집이라든가, 헌책방에서 함께 돌려보는 순정만화, 오래된 문방구 앞에서 사먹는 하드, 귀신이야기를 나누고 수박을 먹는 여름 밤의 슬럼버 파티 같은 것은 마치 이 곳이 한국이라고 크게 외치는 것과 같았다. 생각해보자. 케이팝이 국제적인 팬덤과 영향력을 얻어가면서 대부분의 아이돌 그룹들은 뮤직비디오에서 국적성을 지워가고 있었다. ‘오늘부터 우리는’의 뮤직비디오는 말하자면 이런 흐름에 완전히 반기를 든 느낌마저 든다. 기억해보면 전작인 ‘유리구슬’ 뮤직비디오도 한국이라는 지역성을 드러내는 부분들이 존재했다. 칠판에 적는 한글이라든지, 수업시간에 장난치다가 지적당해 뒤에서 손들고 벌서고 있는 장면 같은 것은 한국이 아니면 떠올리기 어려운 것들이다.

이런 일련의 설정들은 일말의 현실감을 불러일으키는 장치가 된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 세상 어디선가 존재할 것 같은 소녀’와 ‘한국 어딘가에는 존재할 것 같은 소녀’의 차이점 정도일 것 같다. 비록 아이돌은 판타지이지만, 터무니 없는 판타지가 아닌 있음직한 판타지로서 존재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이들이 출발한 건 아니었을까.

여자친구 - 오늘부터 우리는

그런데 한국이라는 지역성을 제외한다면 뮤직비디오는 그다지 새로운 것을 보여주고 있지는 않다. 어찌 보면 이제까지 아이돌 씬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노림수로 가득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판타지로서의 자매애(sisterhood)는 이미 망가나 아니메에 많이 존재했다. 여학생들만의 학교생활이라는 것도 대표적인 덕후 판타지로 존재하는 것이다. 심지어는 시골에서 보내는 여름의 이미지마저도 푸른 초원이나 평상에서 맛보는 수박, 마츠리의 풍경, 여름 밤의 불꽃놀이 등으로, 일본 아니메에서 자주 등장하는 이미지들을 로컬라이즈 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유리구슬’ 뮤직비디오에서 등장하는 반바지는 부르마를 한국 실정에 맞게 입은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심한 상상일까.

자, 이것은 또 하나의 하이브리드이다. 대개 케이팝 아이돌 뮤직비디오에서의 학교란 무국적으로 존재하거나 미국식으로 표현되었고, 오히려 한국이나 일본식의 학교는 등장한 적이 드물었다. 조금 부자연스러운 이런 면모는 일종의 콤플렉스를 드러내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케이팝 아이돌의 역사에서 한 번도 호의적으로 읽혔던 기억이 없는 일본이라는 키워드, 여자친구는 그것을 받아들였고 이를 통해 한국을 재창조했다. 사실 한국의 시골 풍경이라는 것은 뮤직비디오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그렇게 아기자기하지 않으며, 심지어는 그 자체로 일종의 판타지이다. 그런 시골 풍경을 기억하는 이들도 많지 않다. 한국의 학교생활도 그런 파스텔 빛이 아니다. 그런가 하면 일본의 청춘 망가나 아니메 또한 리얼리티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대표적 이미지 중 하나인 부르마조차 현재는 거의 입지 않는 복장이다. 양쪽 공히 판타지인 것이다.

여자친구 - 오늘부터 우리는

말하자면 가장 친근한 방법으로 덕후를 노린다는 말이 가장 정확할 것 같다. 반챠의 글 “올 여름, “뭔가 제이팝스럽지 않아?””에서 언급된 “프레임 자체는 서브컬처의 그것 그대로지만, 수용자 입장에서는 서브컬처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라는 말은 이것에 대한 가장 정확한 표현처럼 느껴진다. 많은 이들이 일본의 서브컬처 코드에 이미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그 흐름에 그대로 편승해 직접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이라는 지역성을 만든다는 것은 또 다른 의미이다. 그것이 어쩌면 케이팝 아이돌 걸그룹의 새로운 방향성일 수도 있다.

다시 한 번 이야기하자면 재잘재잘 웃고 떠드는 소녀들은 그 자체가 빛이다. 자매애는 걸그룹의 기본이고 그것이 팀워크나 끈끈함(bond)으로 이어진다. 이런 보석 같은 판타지에 잊혀졌던 지역성과 국적성이 덧입혀져 일말의 리얼리티, 1%의 가능성이 더해지는 것이다. 이를 통해 가깝고도 먼 일본은 다시 읽혀졌고 두려움 없이 받아들여져 결국 한국이란 국적성마저 재탄생했다. 여자친구가 내놓은 첫 수는 어쩌면 이런 파괴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여자친구
Flower Bud
쏘스 뮤직
2015년 7월 23일

   


맛있는 파히타

Author:

덕후는 혈관으로 흐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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