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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의 고백은 전해지고 있다

여자친구의 ‘오늘부터 우리는’은 오늘부터 우리는 어떤 사이인지 결론 내리지 않는다. 시간이 걸리는 손편지처럼, 전해질 때까지의 시간적 공백은 설렘으로 가득한 시간이다.

여자친구의 두 시선 ①

편지와 카톡 메시지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속도이다. 카톡은 보냄과 동시에 상대가 받는다면, 편지는 보낸 순간부터 받는 순간까지의 시간적 공백이란 게 존재한다. 편지가 카톡보다 마음을 전하기에 적합한 까닭은 바로 그 느림에 있다. 카톡은 빠르다. 좋아하는 선배에게 수줍게 편지를 건네는 소녀가 카톡도 페이스북 메시지도 아닌 편지를 건네는 것은 선배가 편지를 꺼내서 읽는 그 순간까지, 나의 마음이 그 사람에게 닿는 그 순간까지의 시간적 공백이 있기 때문이다. 그 시간은 온전히 설렘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 시간이다. 돌려 말하진 않지만 돌아 돌아서 닿는다. 마음은 아주 가득 담겨있다.

여자친구의 ‘오늘부터 우리는’은 온통 설렘으로 가득 차있다. 벅차오르는 감정은 이미 주체할 수가 없다. 나는 너를 좋아하고 있고, 사실 너 역시 나를 좋아하고 있다. 단지 부끄러워서 “센치해지지” 못할 뿐. 소녀에게 고백은 부끄러운 일이다. 휙 던져버리고 도망치는 방법 외에는 할 수 없는 일. 잔뜩 상기된 얼굴로 좋아하는 선배에게 손편지를 건네주고 저 멀리 도망가 버리는 일. ‘오늘부터 우리는’은 고백을 담은 노래지만, 소리 내어 고백하지 않는다. “당신을 좋아해요.”라는 한마디 말조차 낯선 스페인어로 전하는 부끄러움으로 가득 차있다. ‘Me gustas tu’ 라는 말의 의미를 알아챘을 때까지의 그 시간적 공백, 의미가 전해지는 그 순간은 소녀에게 온통 설렘의 순간이다. 소녀는 돌려 말하지 않았지만, 직설적이지도 않다. 그렇게 돌아서, 돌아서 전해지는 고백이 그에게 닿았을 때 우리는 어떤 사이일까? 오늘부터 우리는 무엇일까. ‘오늘부터 우리는’이 오늘부터 우리는 어떤 사이인지 결론 내리지 않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소녀의 고백은 전해지는 중이고, 온통 설렘으로 가득한 그 공백이 아직 진행 중이어서다.

‘유리구슬’과 비교해봤을 때 ‘오늘부터 우리는’은 좀 더 부끄럽다. 내내 당찬 태도를 보이는 ‘유리구슬’과 달리 ‘오늘부터 우리는’은 알 수 없는 두려움을 어느 정도 동반한 상태이다. 그러나 그 불안함을 내딛고 센치함에 한 걸음 더 다가가려 한다. 전작 ‘유리구슬’이 “나는 약해 보이지만 사실 약하지 않다.”라고 말한다면, ‘오늘부터 우리는’은 자신의 약함을 극복하고 소극적이지만 한 걸음 나아가려 하고 있다. 비록 비유를 잔뜩 써서 에둘러 말하고, 우리말도 아닌 낯선 언어로 한 번에 알아챌 수 없게 말했지만, 그래도 벅차오르는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전한 진심이다. 그것은 “영원히 널 지켜줄게”보다 더욱 커다랗다. 아무런 수식도 없는 작은 말이지만. 가끔은 그 작은 말이 더욱 클 수도 있다.

여자친구 - 오늘부터 우리는

결국 소녀는 고백을 하고 말았다. 마음은 전해졌고, 어떤 말은 전해지는 것만으로 그 역할을 다 하기도 한다. “Me gustas tu.” 결국 돌아 돌아서 너에게 이 말이 닿을 것이다. 설렘을 가득 안은 그 말은 지금 전해지고 있다.

글: 김누누


Flower Bud
쏘스 뮤직
2015년 7월 23일

By Editor

idology.kr 에디터입니다.

One reply on “소녀의 고백은 전해지고 있다”

그 소녀는 외유내강, ISTJ 일꺼라 추측해봅니다 ^^ 그리고 두 사람 응원하는것으로 팬은 행복하다고 전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