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유, 설리, 엠버, 그리고 자아를 갖는 아이돌

이미지 ⓒ SM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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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3월 29일에 작성되었다. – 편집자

오늘 아이유의 ‘스물셋’을 들은 것은 정말 우연한 일이었다. 아이유의 ‘너랑 나 (FPM Technorchestra Mix)’를 검색해 듣고 나자 벅스는 바로 다음 곡으로 아이유의 가장 최신곡인 ‘스물셋’을 플레이했다. 운전 중에는 말을 걸어주는 이가 없기 때문에 가사가 전보다 훨씬 선명하게 들렸다. “맞춰봐. 어느 쪽이게?” 문득 이틀 전부터 떠들썩한 설리의 인스타그램 동영상이 떠올랐다.

인스타그램에서 설리는 나를 바라보며 입안 가득 휘핑크림을 쏟아부은 채 웃음을 참지 못한다. 성적인 함의를 가진 행동이라고 하는 이들, 휘핑크림 먹는 게 뭐라고 오해를 하느냐 하는 이들, 야하면 또 어떠냐는 이들… 타임라인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휘핑크림을 가득 머금고 웃음을 참지 못하는 설리만이 뇌리에 남아 있었다. “맞춰봐. 어느 쪽이게?” 그것은 어쩌면 설리의 대사였다.

마침 오늘은 설리의 생일이다. 스물셋, 기이한 우연이다. 아이유 또한 스물셋의 나이에 내놓은 “CHAT-SHIRE” 앨범의 아트워크와 수록곡으로 논란에 휩싸인 바 있었다. 소아성애(pedophile)의 함의를 품고 있다거나 반대로 의도된 바 없는 단순한 디테일을 너무 확대해석한다는 등의 의견이 맞섰다. 결국 아이유는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그것으로 논란이 사그라들지는 않았다.

‘스물셋’의 가사는 그런 모든 일이 있고 나서 곱씹어 볼 것이었다. 가사는 심지어 예언적이라 소름이 돋기까지 한다.

어느 쪽이게?
얼굴만 보면 몰라
속마음과 다른 표정을 짓는 일
아주 간단하거든

어느 쪽이게?
사실은 나도 몰라
애초에 나는 단 한 줄의
거짓말도 쓴 적이 없거든

여우인 척, 하는 곰인 척, 하는 여우 아니면, 아예 다른 거
어느 쪽이게?
뭐든 한쪽을 골라
색안경 안에 비춰지는 거 뭐 이제 익숙하거든

우리는 간단히 답을 찾을 수 없는 미궁 속에 빠져들고, 그걸 내려 보며 아이유는, 또는 설리는 간신히 웃음을 참아낸다. “맞춰봐. 어느 쪽이게?” 그 웃음은 전지전능(omnipotent)하다. 미궁 속의 사람은 미궁의 설계자에게 닿을 수 없기 때문이다. 높이 올려봐도 헤아릴 수 없는 스타의 자아가 거기에 있다.

일찌기 아이돌이 이런 확장된 자아를 가진 적이 없다. 오히려 아이돌에게 자아는 걸림돌이다. 콘셉트와 설정에 충실한 ‘납작한’ 아이돌은 언제나 환영받았고, 아이돌 공학에서 아이돌의 자아는 계산되지 않았다. 더구나 여자 아이돌에 대한 대중의 요구는 매우 분명했다. 예쁘고 밝고 명랑하고 청순해야 하는 것, 순종적이고 예의 바르고 팬들에게 상냥하며, 무엇보다도 어려야 하는 것. 그리고 그걸 벗어났을 때의 대우는 매우 가혹했다. 예쁘지 않거나 어두운 표정(예쁘지 않은 아이돌은 없다)을 보이면 자격을 논했으며, 예의 바르거나 상냥하지 않으면 인성을 이야기했다. 무엇보다도 스물셋을 넘어서면 ‘이모’나 ‘아줌마’라는 태그가 붙었다. 결국 대중들이 원하는 이미지는 그대로 ‘아이돌’로 돌아왔다. “Your wish is my command.” 아이돌은 그런 위치였다.

여자 아이돌의 자아가 깨어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엠버가 작년 발표한 첫 미니앨범 “Beautiful”에 수록된 동명의 곡 ‘Beautiful’은 자신을 향한 외부의 시선과 요구를 스스로 벗어 던지는 선언문과 같았다. 그때 나이도 우연히 스물셋이었다. 그리고 최근 SM 스테이션을 통해 개인적 경험을 담았다는 설명과 함께 발표한 싱글 ‘Borders’도 넷상에서 수많은 논란을 낳았지만 엠버의 메시지는 짧고 명료하다. “Fight your way, through the borders,” 그뿐이다. 대만계 미국인 톰보이 케이팝 아이돌이라는 전례 없는 아이덴티티가 만드는 장벽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버렸다.

작년 레드벨벳의 ‘Dumb Dumb’을 리뷰하며 아이돌이 자아를 갖게 되는 순간을 묘사한 바 있다. 이 모든 것들은 징조이다. 자아를 가진 아이돌이 다가오고 있다. 기획사의 홍보 문구처럼 단순히 ‘스스로 작사, 작곡하는 아이돌’의 차원에서 시작되기는 했지만, 점차 아이돌은 프로덕션에 참여하며 그 이상의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기획사의 프로덕션에 자기 크루(crew)를 동원해 작품을 만들어 내는 예도 나타나고 있고, 기획사의 프로덕션 밖에서 믹스테입을 발표하는 아이돌도 있다. 무엇보다도 개인 활동의 증가는 이런 경향의 기폭제가 될 것이다.

우리는 기존의 스테레오타입과 해묵은 논리의 잣대를 무시하고 자기를 온전히 드러내는 아이돌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애석하게도, 자아를 드러내기 시작한 아이돌과 대중의 기대가 충돌됨으로 말미암은 사건들은 아직까지도 현재진행형이다. 아이돌은 우리 사회에서 제일 급진적이고 세상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일련의 흐름이 가져올 큰 변화를 우리는 아직 헤아리기 힘들다.

맛있는 파히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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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후는 혈관으로 흐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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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기

    가만히 생각 해보면 과거에도 이런 아이돌이 있지 않았나요?
    자아를 찾은 아이돌이라면 ‘이상은’씨가 시초이지 않을까 싶어요.
    2집 이 후 인기를 뒤로 하고 돌연 유학을 떠난 다음
    셀프 프로듀싱으로 3집 앨범을 발표하고,
    김홍순씨와 함께 작업한 4집은 팝씬의 최신유행 장르를 담았고,
    확실히 5집 ‘언젠가는’을 부를 때까지는 아이돌 카테고리 안에 있었다고 봅니다.
    6집 ‘공무도하가’부터는 아티스트 반열에 올라서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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