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인보우의 “Prism” 미니앨범에는 ‘Black & White’라는 곡이 수록돼 있다. 굳이 타이틀 ‘Whoo!’가 아닌 이 곡을 논하고자 하는 것은, 우선 너무나 매력적인 곡이기 때문이다. ZigZagNote가 마련한 이 트랙은 기존 음반에 수록되었던 ‘Cosmic Girl’에 이어 화려한 디스코 하우스 기조의 사운드를 더욱 현란하게 펼쳐놓는다. 또한 ‘Whoo!’와 짝을 이뤄 이 EP의 프리즘 모티프를 담아내는, 표제곡은 아니나 주제곡에 가까운 성격이기도 하며, 더 나아가 레인보우라는 그룹의 많은 것을 설명해주는 트랙이라고도 생각된다.
곡의 첫인상은 휘황찬란하다. 스트링과 훵키 베이스, 장엄한 분위기의 코드워크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매우 많은 변화를 겪는다. 큰 덩어리로 묶어보자면 인트로 – A – B – 후렴 – A – B – 후렴 – D – 브리지 – 후렴 – D로, 그런대로 정상적인 팝송의 구조처럼 보인다. 그러나 곡을 재생하자마자 들려오는 인트로부터 벌써 세 개의 파트로 나뉘는 것이다. 서정적인 스트링으로 네 마디, 가요적인 스트링 전개로 4+1마디를 간 뒤, 피아노와 함께 “Yeah, Uh, In the shadow”라는 ‘진짜 인트로’가 등장하고, 그다음에야 비로소 1절이 시작된다.
A, B 파트는 리드미컬한 신스와 베이스 밑으로 드럼이 기본박을 짚으며 흐른다. 이것이 후렴에서는 드럼 비트 자체도 좀 더 쫄깃하게 변한다. 그런데 코드워크는 조금씩만 움직이면서 근음 B와 각각 텐션을 이룬다는 기조를 공유하고 있다. 이를 통해 곡은 많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일관된 공간을 유지한다. 특히 2절의 후렴은 “In the black, 특별한 내 맘이”로 시작하는 새로운 모티프 D를 추가하는데, 이때 역시 후렴의 코드워크와 리듬은 그대로 유지된다. 아래의 사운드 샘플에는 킥과 스네어의 비트 패턴과 함께 코드 진행을 연주해 보았다.
이런 흐름에서 호흡을 끊어주는 역할을 맡는 것은, 1절에선 “이 순간엔 이미”로, 2절에선 “Hey, 내 안에 꿈틀대는”으로 시작하는 B파트다. 1절은 짧은 단위(2마디+1마디+1마디)로 멜로디와 랩이 교대하며 분위기를 바꿔 나가고, 2절은 네 마디를 고스란히 채운 랩이, 잦아드는 비트와 함께 멈춰 가면서 긴장감을 준다. 이후 이어지는 네 마디의 전개도 흥미롭다. 주목할 것은 1절에선 “고갤 들어 봐봐”, 2절에선 “어둠에서 나와”라는 가사가 담긴 프레이즈다. 1절에서는 “참아왔던 내 맘 숨길 수 없어 / 고갤 들어 봐봐”까지 세 마디의 멜로디로 구성돼 있는데, 2절에서는 “감춰봐도 소용없어…”의 두 마디 멜로디가 흐르다가, “어둠에서 나와”가 별개의 목소리로 치고 들어옴으로써 또 한 번의 시선 전환을 가져온다. 그리곤 일종의 빌드업 같은 역할로 1, 2절 공히 “오오오”하는 한 마디가 이어진 뒤 후렴으로 넘어간다.
후렴의 구성 또한 역동적이다. 첫 줄인 “Just fly away”는 못갖춘마디로 일찌감치 치고 들어오며 상승해 근음인 B를 찍어 시원하고 단호한 선언처럼 후렴을 연다. 위의 사운드 샘플에서 들을 수 있듯, 후렴의 화성은 베이스를 근음 B로 고정한 채 진행하는 페달 기법으로 강한 긴장을 유지한다. 그리곤 5번째 마디부터 시작되는 후반에는 베이스가 큰 폭으로 떨어지며, 낙하하기 시작하는 롤러코스터처럼 순식간에 넓혀진 공간 속으로 날아간다. 반면 멜로디는 꾸준히 점점 더 치고 올라간다. 선적으로 오르락내리락하는 멜로디라인은 마지막 부분에 변화를 주어 “그 누구도 표현”에서 (E까지) 다시 한 차례 상승한다. 2절에서는 후렴을 다시 확장하는 D 파트(2’04”~)가 따라붙는데, 여기서는 또다시 “In the black”에서 기존의 고음이었던 E를 찍으며 높다랗게 시작한다. 이처럼 후렴은 너울너울 흐르며 높은 곳을 향해 (날갯짓처럼) 꾸준히 상승하고 활강한다.
다시 한 번 전환을 맞는 것은 브리지(2’28”~)다. 지금껏 등장하지 않았던 IV에 해당하는 GM7로 시작하는 브리지는, 텐션을 조이던 지금까지의 화성보다 훨씬 익숙하면서도 ‘예쁜’ 보이싱을 통해 감상적이고도 맑은 느낌을 자아낸다. 비트가 잦아든 8마디의 내레이션과, 비트가 추가되기 시작하는 8마디의 멜로디(2’36”~). 점진적으로 비트가 강해지면서 킥의 주기가 빨라진다. 전형적인 빌드업 역할이다. 그런데 곡은 여기서 또 한 번 호흡을 꼬아놓는다. 바로 후렴으로 달려가기보다, 멜로디는 후렴이지만 한껏 응축된 에너지를 바로 터뜨리지 않고 다시 묶어두는 것이다. 후렴의 절반인 “날 둘러싼 아우라”까지 진행되고 나서야 폭발을 일으키는데(2’54”), 이때조차 “Just fly away”의 외침과 함께 또다시 리듬을 꼬아서 다음 마디에서야 ‘브레이크다운’을 시작한다(2’56”~). 비트는 곡 전체에서 처음으로 포온더플로어(4 on the floor) 리듬을 맞이하며 긴장 없이 시원하게 D 파트까지 내달린다. 그리곤 아직 또 한 번, 멜로디를 변주해 새로운 장면을 만들어내면서 아우트로로 빠져나간다.
이렇듯 한 편의 뮤지컬처럼 많은 기복과 장면 전환을 부여한 이 곡은, 화려한 긴장과 시원한 폭발을 거듭하며 어둠과 빛이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공간, 곧 무대를 연상케 한다. ‘Whoo!’가 무대 양 끝과 스피커 양쪽에서 나란히 기둥처럼 솟아오르는 두 명의 솔로로 절정을 맞이하며 멤버들을 횡적으로 펼쳐 보였다면, 이 곡은 그룹 전체가 하나의 덩어리를 이뤄 무대를 휘젓고 다니는 곡에 가깝다. 각 파트는 강한 긴장 속에 높은 집중력을 제공하고, 그것이 자주 역동적으로 뒤집히곤 하며, 최종적으로는 합창이 액센트를 짚어주는 편성으로 강력하게 몰고 나간다. 힘 있는 고음과 가는 목소리의 시원한 음색의 배합이 거들면서, 미녀들이 즐겁고 화려한 무대를 펼친다고 하는, 대중음악의 정통적인 엔터테인먼트 요소를 구성한다. 그리고 그것은 레인보우라는 그룹이 가진 자산을 가장 멋지게 활용하는 방식의 하나다.
여기서 잠깐 (누구나 아는) 토막 상식, 물감의 모든 색을 섞으면 검은색이 되고, 빛의 모든 색을 섞으면 백색광이 된다. 또한 (음반의 커버아트처럼) 백색광과 분산이 가장 뚜렷하게 빛나는 것은 어둠 속에서다. “Prism” 미니앨범은 색상 콘셉트를 다시 채택하면서, 그저 멤버들의 미모를 즐겁게 보여주기만 하는 느긋한 모습을 선보였다. 나는 그것을 굉장한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타이틀 ‘Whoo!’가 색상에 관한 곡이라면, ‘Black & White’는 그것의 합과 세계에 관한 노래가 된다. 그렇게 음반의 주제를 포괄하는 이 곡은 가사가 묘사하는 열정과 자신감을 통해 그룹에게 멋진 입체감을 제공한다. 가사의 일부가 거의 자전적 내용처럼 들리고야 마는 것은 그래서다.
레인보우가 거둬온 지금까지의 제한된 상업적 성공의 이유로는, 모두가 제각각의 가설을 제시하곤 한다. 그러나 이 곡을 듣고 있노라면 레인보우의 가능성과 장애물마저 여기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굉장히 좋은 디테일과 당당한 야심을 갖췄지만 그것이 조직화되는 과정에서 약간의 결정적인 약점이 생기고 마는 곡이기 때문이다. 또한 완벽하게 짜여진 안무보다는 그룹이 한 덩어리로 무대 위를 날뛰어야 할 것 같은 화려하고 역동적인 곡, ‘Cosmic Girl’ 때부터 느껴온 레인보우의 이미지에 너무나 근사하게 어울려 “그 누구도 표현 못 할 날갯짓”처럼 느껴지는 곡, 그러나 케이팝 시장에서 타이틀곡이 되기에는 성향이 맞지 않는 곡이기도 하다.
마침 이 곡의 마지막 파트는 2분 56초간의 기대감에 비하면 어쩐지 조금 더 달려줬으면 하는 서운함을 남긴다. 그래서 다시 앞으로 가기 버튼을 누르게 하기도 한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말이다. 이왕 개인적인 이야기로 빠진다면, 나는 언젠가 “어쩌다 못된 마법에 빠져버렸나”라는 듬직하게 유쾌한 프레이즈를 커다란 라이브 현장에서 꼭 들어보고 싶어진다. 그러다 보면 브리지의 “달이 지기 전에, 안아줘요”라는 속삭임이 유난히도 가슴 속에 덜컹거린다. (바로 그것을 후반에서 풀어줘야 하는 건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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