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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페디의 방

김예림과 오마이걸의 뮤직비디오에서 방을 다루는 방식은 디지페디의 독특한 공간의 의미를 보여준다.

이 기사는 멜리사 존슨(Melissa Johnson)이 운영하는 케이팝 걸그룹 중심의 분석 비평 블로그인 “the mind reels”에 게재된 2016년 5월 4일자 기사 “Digipedi’s Room”를 번역한 것이다.

비디오 프로덕션 디지페디의 스타일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것이 아예 어떠한 스타일이 아니라고 상정하는 것일 것이다. 대신 내가 제안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의 ‘방’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하나에서 세 개의 벽이 있고, 때론 천장이 있지만 관객을 향해서는 벽이 뚫려 있는, 극장 형태의 상자 말이다. 그 크기는, 좁은 복도에서부터, 하나의 그룹이 들어가 편안하게 춤출 수 있는 넓은 방까지 다양하다. 색깔을 말하자면, 바닥과 벽은 파랑과 노랑, 분홍과 녹색, 빨강과 파랑 등 밝은 단색으로 채워져 있다. 종종 창문이나 문이 있기도 한데, 이중 후자는 때로 다른 방으로 이어지는 기능을 갖기도 한다. 하지만 때론 모양에 불과하기도 하여 흔히 쓰이는 프레임 몰딩이나 패널로서 벽을 장식하며, 이것이 상자가 아니라 ‘방’이라는 것을 확인해 주는 의도로 쓰이기도 한다.

디지페디의 방에는 사전에 정해진 목적이 없다. 비어 있고, 단조로우며 또한 흔한 것이라, 어떠한 기능이나 스토리 또는 콘셉트도 들어앉을 수 있다. 그저 약간의 가구와 설득력 있는 스토리만 있으면 방은 변화한다. 이는 자이언티의 ‘Babay (feat. Gaeko)’에서 보이는 바와 같다. 경비원과 조명이 있고, 15세기에서 19세기까지 여성의 모습을 담은 유명한 회화 작품들이 걸린 이 파랗거나 녹색인 방은 미술관이 된다. 그러나 약간의 조작, 그러니까 그림을 떼어 내고 벽과 바닥의 색을 바꾸는 정도로, 이 방은 식당으로 변한다. 자우림, 아지아틱스(Aziatix)와 이디오테잎(Idiotape)의 ‘#PeepShow’에서처럼 말이다.

그러나 디지페디의 방은 늘 그렇게 정의가 가능한 특정 장소나 집안의 일부로서 전통적인 역할만을 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김예림의 ‘Voice (feat. Swings)’에서 방은 그저 배경이나, 스토리 전개를 위한 세팅만으로 활용되지 않는다. 방은 그 위에서 연기를 펼쳐야 하는 오브젝트로서 기능하고, 노래의 화자는 옛 연인의 목소리를 떠올린다. 여기서는 이곳이 어떤 방인지보다, 그 방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이다.

김예림 - Voice MV
김예림 – Voice MV

사실 이 방과, 벽에 늘어선 아날로그 라디오들은, 모두 비디오 속 김예림이 과거로부터 목소리를 소환하기 위한 마술적인 의식 행위의 일부로서 연관돼 있는 것처럼 보인다. 벽과 테이블에 늘어선 아날로그 라디오들은 그녀의 제단으로 사용되며, 그녀가 주문을 외듯 노래할 때마다 벽이 흔들리고 액자들이 떨리며 라디오가 떨어진다. 이 의식은 그녀가 자신의 손가락을 찔러 핏방울이 지진계와 전화기에 흘러들고 최후의 지진이 일어나고서야 완성된다. 그때에서야 지진의 강도가 높아져 스프링클러가 작동되고 방에는 물이 흘러넘치며, 그녀는 고인 물에 헤드폰을 말 그대로 찔러 넣음으로써 드디어 원하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다.

방의 역할이 늘 그렇게 수동적인 건 아니다. 때론 방이 더 선명하고도 적극적인 역할을 받는다. 오마이걸의 ‘Liar Liar’ 뮤직비디오에서 방, 더 정확히는 ‘방들’은,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는 일종의 ‘악마의 변호사devil’s advocate’ 같은 독특한 역할을 부여받는다. 방들은 오마이걸 멤버들이 좋아하는 한 남자(스포일러: B1A4의 공찬이다)의 정체를 다른 멤버들에게 숨길 수 있도록 돕는데, 이와 동시에 멤버들 사이에서 위기일발의 순간들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효정이 파란 방에 서 있는 씬을 보자. 그녀는 분홍색 방 안에서는 안 보이는 문밖에 가만히 서서, 방 안에서 비니와 승희가 속삭이는 내용을 훔쳐 들으려 한다. 나중에 등장하는 씬에서는 파란 방이 효정에게 다른 목적으로 활용되는데, 카메라가 보라색 복도에서 그녀를 찾아내자 그녀가 도망치는 방이 된다.

비디오의 나머지 부분 역시 유사한 아슬아슬한 장면과 숨바꼭질로 채워져 있다. 이 모든 것은 각 공간이 서로서로 연결돼 있기 가능한 일이다. 파란 방은 한쪽 문으론 분홍색 방, 다른 한쪽 문으론 보라색 복도로 이어지고, 아치형 문으론 또 다른 분홍색 방으로 이어진다. 이에 더해 보라색 복도에 놓인 계단은 이 비디오에서 대체로 멤버들이 숨는 장소로 활용되며, 그것이 이 공간을 디자인하는 주된 원칙인 듯하다. 이런 설정이 의미를 갖는 것은 오직 드라마틱한 술래잡기를 통해 비디오에 동력을 부여하기 위함일 때이다.

오마이걸 - Liar Liar MV
오마이걸 – Liar Liar MV

이는 다시 한 번 고찰할 가치가 있다. 반드시 그중에 어떤 새로운 것이 있어서는 아니다. 디지페디가 ‘Liar Liar’나 ‘Voice’에서 한 모든 것은 누군가 이미 했던 것들이다. 그것이 중요한 건, 내가 이 글에서 추론하지만 말로 표현하진 않았던 어떤 것에 가서 닿고 있기 때문이다. 디지페디의 방은 맥락특정적context-specific이다. 방이 어떤 공간인지, 어떻게 보이는지는 매순간 달라진다. 이는 방에 부여된 역할이나, 스토리, 또는 맞춰야 하는 예산에 달렸을 것이다. 넓든지 좁든지, 벽이 녹색이든지 파란색이든지, 그곳이 주유소든지 혹은 어떤 숨은 의미를 담고 있든지, 디지페디의 방은 상황에 따라 그 모든 것이 될 수 있다. 때로 그것이 지나칠 때면 디자인적인 흠결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실은 그것이야말로 디지페디의 방이 보여주는 아름다움이자 또한 핵심이다.

By Editor

idology.kr 에디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