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장에 달하는 5월 초순의 신보 단평. 방탄소년단, 믹스(MIXX), 솔티(Sol-T), 김동준[제국의아이들], 악동뮤지션, 에즈원, 블링(Bling), I.O.I, 스테파니, R3hab & 엠버 & 루나, 리브하이, 남우현, 아이시어(Icia), 아이스(I.C.E), K2P, VAV, 헬로비너스, 솔찬[에이션]의 새 음반을 다룬다.
김윤하: '청춘 2부작'을 통해 방탄소년단이 거둔 가장 큰 성과는 어쩌면 '대세'라는 타이틀과 눈부신 각종 기록들이 아니라, 다양한 팝의 요소를 유려하게 체득해 낸 점이 아닐까 싶다. 소년들에게는 다소 무겁고 더워 보이던 학교 3부작의 긴 터널을 통과한 뒤 한층 가볍게 떠오른 이들이 지나간 자리엔 늘 노래의 자리가 남았다. 신곡 'Save Me'와 '불타오르네(Fire)'는 특유의 거칠고 위태로운 정서를 각각 서정성와 와일드함으로 나눠 담아내며 팀의 도약을 이끌어낸 'I Need U'와 '쩔어'의 뒤를 충실하게 잇는 킬링트랙들이다. 그토록 찾아 헤맨 청춘을 향한 송가 'EPILOGUE : Young Forever'와, 의도와 결과물의 적절한 밸런스가 돋보이는 리믹스 작업들까지, 화려했던 여정의 마무리와 차기작에 대한 기대를 부풀리기에 이보다 더 적절한 결과물은 당분간 찾기 힘들지 않을까 싶다.
돌돌말링: "화양연화" 연작을 마무리하는 스페셜 앨범. 뮤직비디오가 공개된 세 곡의 신곡 'Young Forever', '불타오르네', 'Save Me' 이외에도 기존 앨범에 실렸던 곡들을 새로이 믹스한 곡들로 가득하다. (개인적으로는 지난 리뷰 때 언급한 'Butterfly'의 프롤로그 믹스가 들어가서 기쁘다. 방탄소년단의 슬로우 넘버들은 영화적인 맛이 있는 것이 좋다.) 전체 앨범의 흐름에서는 칵스의 숀이 작업한 'I Need U' 리믹스가 이질적인데, 연말 시상식 공연에서 먼저 선보였던 걸 감안하면 그 무대를 위해 준비했던 독립적인 트랙이 아니었나 싶다. 일 년을 쌓아온 서사에 이렇게 유종의 미를 찍었는데, 이다음엔 무얼 해야 이만큼 혹은 그 이상의 임팩트를 얻어낼 수 있을지... 한창 높아진 기획력과 멤버들 개개인의 역량에 앞으로의 기대를 걸어본다. 방탄소년단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선물하기 좋은 앨범.
조성민: 기존 연작 앨범에 새로 추가된 '불타오르네'와 'Save Me'는 그저 투어용 릴리즈라기엔 그동안의 방탄소년단의 음악적 색깔을 유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어떤 면에서는 조금 더 영역을 확장해내기까지 한 곡들이다. '불타오르네'는 방탄소년단의 정체성의 중요한 일부인 '칼군무'를 위해 설계된 곡으로 '호르몬전쟁'과 '쩔어'를 잇는다고는 하지만, 사실 그것보다도 더 간략해진 가사와 더 격렬해진 퍼포먼스로 그들이 소화할 수 있는 영역을 한 번 더 넓힌 작품이기도 하다. 그에 반해 'Save Me'는 "화양연화" 연작의 메인 테마 - 'I Need U'와 'Run'의 무드를 유지하며 1년여에 걸쳐있던 긴 서사의 막을 내리는 '진엔딩'의 역할을 하고 있다. "화양연화" 연작이 요즘 아이돌답지 않게 긴 호흡을 자랑하는 앨범 활동 같아 보이긴 하지만, 1년을 주기로 활동했던 예전의 아이돌을 생각해보면 지극히 정석적인 행보이기도 하다. 아이돌 덕후로서의 역설이지만, 얼핏 뻔해 보이기 쉽지만 누구보다 치열해야만 하는, 정도(正道)를 걷는 팀을 보는 것만큼 가슴 뛰고 흥분되는 일이 또 있을까. 자기만의 호흡을 가진 아티스트에게서 느낄 수 있는 에너지가 보여서 좋다.
돌돌말링: 뮤직비디오를 처음 재생하면 차임벨 소리와 함께 디지페디 풍의 색감이 맞아주는데, 당연히 마이비 같은 댄스 비트를 기대했다가 살짝 뒤통수를 맞는다. 심플한 R&B 비트에 고의로 얹은 아이돌 보컬의 미숙함이 '이거 봐, 조금 다르지?'하고 묻는 듯하다. 물론 미숙함으로 가장한 섹슈얼함을 누군가는 크리피함으로 받아들일 법도 하나, 이 정도의 수는 조금 빤히 보여도 성의 없는 기획 같지는 않아서 마음이 열린다. 흥미롭게 듣고 보았다.
유제상: 상당히 평이한 외형을 취하는 것 같으면서도 뭔가 기존의 것들과 조금씩 어긋나 있는 싱글. 'Oh Ma Mind'는 기본적으로 걸그룹에 어울리는 곡이지만, 한 걸음 멀리 물러서서 들어보면 템포도 느리고 가사가 은근 섹슈얼해서 일반적인 걸그룹의 그것보다는 안다 같은 개성파 솔로의 곡을 연상케 한다. 뮤직비디오도 팝 컬러로 채색해 위장하고 있지만, 뜯어보면 이종 스포츠 대결이라든지 빈 곳에 의외의 물건을 쑤셔 넣는 등 인상 깊은 시각 이미지들이 가득. 다만 이런 포인트들이 눈에 잘 띄지 않고 〈월리를 찾아라〉처럼 숨어 있어서, 대중에게 어느 정도 어필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햄촤: 다른 걸그룹들이 바쁜 안무와 스펙터클한 사운드로 무장하고 있는 이 시기에 '데뷔 싱글인데 이렇게까지 패기 없어도 되는 걸까?' 싶을 정도로 나긋나긋한 분위기의 곡이라 거꾸로 눈길이 간다. 다만 그 이상의 무언가가 없다는 점이 아쉽다. 인스타그램에서 예쁜 이미지들을 모아 편집해 놓은 것 같은 뮤직비디오는 종종 재미있지만 썩 특별하지는 않으며, 이미 다른 가수들의 뮤직비디오에서 지겨울 정도로 보아온 '팬톤 올해의 컬러'로 도배된 색감 덕분에 대중의 뇌리에서 빠르고 쉽게 잊힐 것이다. 썩 나쁜 시작은 아니라 생각하지만, 다음엔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지 의문이 생긴다.
미묘: 소규모 신인 걸그룹이 '쎈 언니'를 하는 경우 중에서는 꽤나 그럴듯한 기세를 보여준다. 결정적으로 터뜨려주는 맛은 (곡의 특성상, 음원만으로는) 부족하지만, 적어도 곡을 이끌고 나가는 것만은 부족함이 없다. 히스테릭한 연출도 제법 효과적. 그보다는 작곡 면의 허점들을 지적하고 싶다. 트랩의 영향을 받은 베이스의 배음이 낳는 불협이 각 파트를 이끄는 화성과 정면으로 충돌하는데, 이로 인해 이뤄지는 불안한 공기가 과연 이 곡에서 효과적으로 사용되는지 의문이다. (그 위에 랩이 실릴 때는 그나마 괜찮은 조합이 나온다.) 멜로디 파트에서 베이스가 빠져나가면 갑자기 굉장히 안심이 되는데, 그 연결이 상호 이질적인 파트를 매력적으로 잇는 것과는 거리가 있어, 파트 조합에 충분한 공을 들이지 않았다는 아쉬움이 있다. 강렬한 콘셉트의 신인 걸그룹들이 등장했다가는 지속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듯한데, 꾸준히 개선돼 나가는 커리어를 기대하고 싶다.
유제상: 〈삼국지 3〉의 메뚜기떼처럼 아이돌계를 휩쓴 교복 소녀에서 비껴나, 간만에 쎈 언니 콘셉트를 들고나온 것이 높이 평가할 점이나, 그 외에는 그다지... 노래는 EXID가 하는 그런 계통인데 긴박한 도입부도, 애절한 노래 파트도 모두 한 세대 전의 유행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이건 개인적인 생각인데, 쎈 언니 콘셉트를 잡을 땐 아무래도 남성이 개입하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어디서 본 듯한 이미지-모피, 형광색 머리카락 염색, 진한 화장, 각목(!?) 등-가 자꾸 등장하니까. 이 또한 편견이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도...
햄촤: 2NE1이나 포미닛 이후 다소 뜸했던 '센 언니' 콘셉트를 표방하고 나온 것만큼은 반가운 일이지만, '돌직구'라는 제목의 패기와는 달리 "넌 날 지켜준답시고 애써 나를 밀어내/오죽하면 내가 먼저 라면 먹고 가라 해", "남자답게 잡아줘/이 밤이 지나면/날 놓칠 지도 몰라"라는 식의 가사는 근본적으로 '센 언니' 콘셉트에 대한 오해를 하고 있거나 겉포장만을 가져왔다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 그룹이 팬으로 삼고자 하는 타깃을 정확히 설정하는 것이 선결과제는 아닐까.
유제상: 사실 별 기대는 없었다만 의외로 거의 완벽한 수준의 J-R&B를 구사하여 놀랐다. 본토박이 R&B가 이제 우리 취향에 너무 멀리 가서 찐득찐득 블루스에 힙합이 뒤섞인 형국이라면, 일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90년대 후반 이래 자로 책상 치는 비트 아래 숨 가쁜 R&B를 불러대는데, 김동준의 'Healing'은 (그거랑 비슷하다, 느낌이 산다, 같은 게 아니라) 그냥 J-R&B를 불렀다. SM산 아티스트들이 일본 가면 부르는 바로 그것 말이다. 좋다 나쁘다의 판단을 떠나서 이제 가수의 국적이 크게 중요하지 않구나를 느끼게 해주는 그런 싱글. 여담이지만 앨범 정보 얻으려고 네이버 뮤직 들어갔더니 팬들끼리 댓글 창에 옛날 예능 출연 문제로 머리 끄댕이 붙잡고 싸우고 있어서 안쓰러웠다.
햄촤: 2016년 가요계 한복판에 난데없이 생명에 대한 찬가를 들고나와 음원 차트 상위권에 올려놓다니. 악동뮤지션은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태연하게 해낸다. '사람들이 움직이는 게'의 이야기다. 노래의 전개도 구조도, 사운드도 모두 제멋대로인 듯 어느새 정리되는 모습은 여느 때와 같지만 그럼에도 내겐 매번 '악동뮤지션이 노래하는 게' 신기한 일이다. 이런 사춘기라면 아주 오래도록 머물러 있어 주어도 괜찮을 것 같은데.
유제상: 제목만 보면 '그' 애즈원이 돌아온 것 같아 잠시 설레었다(*팬이었다). 음... '헤이야'는 걸스데이가 최근 타이틀로 들고 오는 쪽('링 마 벨'이라든가)에 가까운 흥겨운 곡인데, 상대적으로 흥겨움이 느껴지지 않는 단점이 있다. 그게 후렴구 포함으로 곡에 딱히 클라이맥스라고 부를 만한 게 없고, 비트가 단조로워 그런 것 같다. 아름다운 아가씨들이 흥에 겨워(사실 이것도 의심스럽다) 춤추며 노래 부르는데 호응할 수 없다니 유감이다.
조성민: 사운드부터 비디오까지, 간단히 말하자면 '때깔이 좋다'. 외국인 특유의 어눌한 발음과 강약 조절 없는 억양도 서툴다기보다는 차라리 신선하게 느껴질 정도로, 작업물의 퀄리티는 상당히 준수한 편이다. 그동안 한국 외부에서 시도했던 케이팝 프로듀싱 중에서는 가장 위화감이 없다. 이쯤에서 드는 의문은, 케이팝 원류와의 싱크로율을 높이는 작업이 결과적으로 케이팝의 위상이라든가 경쟁력이라든가 하는, 이를테면 산업과 시장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냐 하는 것이다. 이대로 자생력을 갖추어 케이팝을 대체하게 될 것인지, 아니면 케이팝의 저변을 넓히는 방향으로 포괄될 것인지, 좀 더 서둘러서 고민해봐야 하지 않냐는 질문을 던진 싱글.
유제상: 정말 검색되기 힘든 평이한 그룹 이름에, 네이버 인물정보도 부재, 유튜브 뮤직비디오도 부재. 힘든 상황 속에서 들은 타이틀 곡 '이젠'은... 그러니까 지금처럼 서바이벌 쇼가 일반화되기 전에, XX가요제니 OO가요제니에서 들을 것 같은 기타 소리 위주의 담담한 노래였다. 딱히 센스가 낡았다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들었을 때 이거 '걸그룹 노래야'라고 하기엔 왠지 모르게 무겁고 축축한 느낌. 심지어는 랩 파트마저도.
조성민: 쨍한 색소폰 소리와 그루브한 비트가 먼저 들려와 댄스팀의 데뷔 싱글치고는 꽤 의외로 느껴지는데, 여기에 파스텔톤으로 얹어진 앳된 음색의 보컬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조금 고민이 된다. 조금 촌스럽지만 나름 신선하게 들리는 작곡에 비해 지나치게 유치한 내용으로 채워진 가사가 신경 쓰인다. 괜찮은 듯 허술하고, 미숙한 듯 흥미롭다.
미묘: 보컬 트랙의 빈약함이 극명하다. (재녹음된 'Pick Me'를 원곡과 비교해 보라.) 유감스럽게도 지금은 2016년, 플러그인 몇 개로 간단히 해결될 수준의 허점도 수두룩한 녹음 퀄리티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여기까지는 그나마, 급하고도 빡빡한 일정을 감안할 수 있겠지만, A&R과 프로덕션 차원으로 가면 어떤가. 'Dream Girls'는 단지 2007년 무렵을 부유하던 레퍼런스들 중 클리셰가 된 것들을 무작정 갖다 부었는데, 그 조립마저 엉성하다. 멜로디 라인은 쉽고 캐치하다기보다는 그저 즉물적이다. 1세대 아이돌 곡을 그대로 가져온 듯한 'Doo Wap'의 곁에서 '똑똑똑'이 그나마 불과 몇 년 전의 향취일 뿐, '같은 곳에서'의 나쁜 쌍동이 같은 '벚꽃이 지면', 눈 뜨고 들을 수 없는 재녹음의 'Pick Me'까지. 설마하니 'Crush'가 이들에게서 기대할 최대한일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더 입맛이 쓴 건, 이 프로덕션은 이 정도 수준의 음반을 제작하는 비용과 시간도 아깝다고 생각할 것이란 상상이다. 최대한을 뜯어내기 위해 불량 상품을 팔더라도, 기간 한정 활동의 인질로 잡힌 멤버들과 팬들에겐 손 쓸 길이 없으니 말이다.
유제상: 최근 드물게 꼼꼼히 여러 번 들은 EP. 일단 타이틀 'Dream Girls'는 역대급으로 좋지 않다. 더 나쁜 표현을 썼다 지웠다를 몇 번이나 했는지... 다른 수록곡도 마찬가지. 전체적으로 느리거나, 촌스럽거나, 촌스럽게 느리다. 다만 음원의 전반적인 퀄리티를 섣불리 예단하기 어려운 것이 아무래도 이들은 특수성을 띤-서로 소속사가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뜬, 모자란 모습이 매력인- 걸그룹이고, 어떤 방식으로 표출되는 것이든 이들의 부족함은 제작자(와 당사자인 멤버들)의 의도적인 연출로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근거는 부족하지만 멀쩡한 뮤직비디오를 들고 타이틀을 홍보하는 이들에게 Pick!을 주련다. 어찌 되었건 걸그룹 생태계의 다양성을 증대시켰으므로.
미묘: 곡 자체는 평범한 편이다. 때려주는 비트에 피아노와 어쿠스틱 기타가 들어가는 평이한 셋업이기도 하지만, 메인 멜로디 자체에도 여백이 많다. 멜로디가 '덜 채워졌다'는 점도 있지만, 꼭 흘려버려야 할 것은 아닌데 흘려버리는 식으로 정보량이 낮다고 해야겠다. 그래서 더 어정쩡하게 심심해지는 면이 있다. 그 대척점에 있는 것이 보컬의 음색인데, 중저역이 단단한 것이 '진솔하게 울리기'보다는 통쾌하게 찌르는 맛이다. 그것이 비트와 나란히 싸울 때, 곡의 밋밋함도 중화되고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흐르는 것도 막아준다. 스테파니가 보컬리스트로서 갖는 분명한 강점인데, 이를 보다 잘 활용할 수 있는 곡이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유제상: 처음 보고 뭐여, 왜 스테파니가 춤을 안 춰, 했지만 의외로 솔로 커리어가 길어지고 꾸준해지고 있다는 걸 감안하면 그런 의문도 잠깐. 다만 이전에도 그런 끼가 보이긴 했는데 보컬 톤이 등산 마치고 한 잔 걸치신 것처럼 탁해졌다. 처음 감정 잡을 때 흠칫 놀랄 정도. 춤 최고로 잘 추시는데 그런 콘셉트로 다시 돌아오시면 좋은 평 써드릴게요. 이번 건 그다지...
김윤하: 세계적인 일렉트로 하우스 DJ, 국내 프로듀서 듀오, 케이팝 아이돌 그룹 멤버 둘의 조합에 이토록 아무런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더없이 흥미롭다. R3hab과 Xavi & Gi, 그리고 f(x)의 엠버와 루나가 함께 완성해낸 곡 'Wave'는 그 구성적 특별함과 결과물의 준수함이 기분 좋게 함께 가는 상큼한 트랙이다. 이미 LDN Noise에서 펫샵보이스까지 거쳐온 엠버와 루나의 콩떡처럼 이야기해도 찰떡처럼 알아들을 것만 같은 보컬 운용은 물론, 곡의 뼈대를 담당했다는 Xavi & Gi의 스피드감 넘치는 리믹스 버전까지, 단 두 곡이 실린 디지털 싱글 릴리즈이지만 'EDM의 대중화'라는 무척이나 저항감 넘치는 단어에 대한 해맑은 해답이라 해도 손색없다. 이 싱글을 시작으로 SM 엔터테인먼트에서 정식으로 런칭한 EDM 레이블 ScreaM Records의 움직임에도 더욱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미묘: 보컬 트랙이 자신의 자리에 안착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보컬 파트와, 보컬 없는 드랍, 보컬이 추가된 드랍의 사운드가 모두 꽤나 이질적인데, 보컬이 얼만큼 튀어나와야 하는지에 대한 안배의 문제인 듯하다. 같은 곡의 Xavi & Gi 버전에선 훨씬 안정감 있게 들리기 때문이다. 이곳이 아이돌로지니까 하는 이야기지만 멜로디 라인이나 디렉팅은 두 보컬리스트의 특색을 잘 살릴 만한 성격의 것들은 아닌 듯하다. 스크림 레코즈의 전격적인 첫 결과물로서는 다소 실망스러운 구석이다. 그것은 이 곡이 아이돌팝으로서 착실하게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EDM 트랙으로서 보컬리스트의 활용이 담보하는 설득력이 기대만큼 만족스럽지 못하기 때문이다. EDM 사운드와 그 방법론을 아이돌 보컬리스트와 조합함에 있어 SM은 꽤나 오랫동안 실험해 왔다. 가사와 무대 효과, 브랜딩을 활용한 여름 페스티벌 튠의 화학식에 이만큼 신경 썼다면, 음악 문법에서도 조금 더 기대하는 게 자연스럽지 않을까.
유제상: 멤버의 짜임새를 봐도 그렇고 상당히 솔깃할 구성이건만 그다지 땡길 게 없는 것은 아무래도 음원 자체의 문제인 것으로 생각된다. 오해는 없었으면 싶은 것이, 리믹스 버전을 포함해 수록곡 모두 말쑥하게 잘 나왔다. 단지 땡길 게 없을 뿐이다. 정말 춤만 추려고 클럽 가서 춤만 추다가도 흥이 죽어 자정 전에 밖으로 나오는 사람 마음처럼. f(x)나 샤이니 음악을 들으면서 늘 들었던 생각이 이들의 음악적 모체가 북유럽 댄스 넘버냐 케이팝이냐 하는 것이었는데, 이 싱글을 들으면서 그런 생각은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싶었다. 그만큼 케이팝은 엄마 몰래 파묻어 놓은 당근마냥 냄새가 강한 것이므로.
유제상: 김동준의 곡이 쌩 J-R&B였다면 이쪽은 문자 그대로의 아니메 팝. 반 음씩 떨어지는 건반, 긴박하다 못해 숨이 차오를 비트, 요사스러운 기타 간주까지 그냥 아니메 주제가 그 자체다. 음성 변조를 하지 않았다든지, 보컬로이드가 아니라 사람이 그냥 부르고 있다든지 하는 게 오히려 놀라울 정도. 그럼 평자는 오타쿠니까 이런 게 좋지 않느냐고 누군가 되물을 수도 있겠지만 땡! 이런 게 좋으면 그냥 아니메 주제가를 듣지. 게다가 안무가 묘하게 섹슈얼해 콘셉트를 종잡을 수 없다. 좀 더 시간을 들여 후속곡을 들어본 뒤 판단하련다.
햄촤: 수도 없이 반복되는 "사랑해"와 "I love you"라는 가사, 그리고 왠지 모르겠지만 뮤직비디오에 섞여 들어간 일반인들의 이미지 덕분에 일종의 캠페인 송인가 착각했다. 다소 정리되지 않은 듯한 사운드와 단순한 곡의 흐름이 아쉽긴 하지만 긍정적 에너지만으로 꽉 채운 듯한 밝은 멜로디와 없는 기교를 굳이 꾸며내지 않으면서 또박또박 가사를 전달하려 노래를 부른다는 점만큼은 마음에 들었다. 이 정도면 왠지 아무 캠페인에라도 써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김윤하: 인피니트의 뜨거운 노래들에서 가장 뜨거운 부분을 담당해 온 우현의 모습만 기억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당황스러울 수도 있을, 그야말로 순수한 발라드 앨범이다. 메인 보컬의 첫 솔로로서는 다소 뻔할 수도 있는 이 첫 수는, 전반적으로 감정과 색을 더하기보다는 덜어내기 위해 애쓴 정성 어린 프로듀싱에 의해 기적적으로 생명력을 얻는다. 아이돌 출신 발라드 적자로 인정받고 있는 슈퍼주니어의 규현이 이문세를 앞세운 80년대식 발라드의 재구성에 집중했다면, 남우현의 경우 90년대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사랑받아 온 한국식 발라드의 지형도를 재구성하는 데 집중하는 것처럼 보인다. 곡마다 미묘하게 다른 감정선을 조심스레 짚어가는 우현의 목소리는 첫 앨범의 설레임과 앨범이 완성되기까지 필요했던 긴 시간을 품은 채 섬세하게 조율되어 있어 듣는 재미를 더한다.
조성민: 인피니트의 캐릭터였던 '집착'을 벗어나, '상실'에 따르는 '기다림'을 표현하는 언어로 가득하다. 인피니트가 초기에 출시했던 유닛 인피니트 H와 솔로 김성규가 장르를 기준으로 모그룹과 구분되었다면, 인피니트 F부터 남우현까지는 캐릭터로써 구별되기 시작했다는 것이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사실 그동안 인피니트의 스펙트럼 중에서도 한가운데에 놓여있던 핵심적인 캐릭터를 담당했던 만큼 기존의 인피니트와의 차별화에 더욱 각별한 신경을 써야만 했을 남우현이, 결국 인피니트와 다르면서 동시에 자신만이 표현할 수 있는 영역을 찾아냈다는 것은 팬으로서 무척 반길 만한 일이다. 다분히 아이돌적인 기획 하에 제작된 음반치고 내용물이 상당히 가요적인 것도 흥미롭다. 특히 '그 사람' 같은 곡은 인피니트 '나란 사람'과도 비슷하게 짜여있지만, '나란 사람'에서는 남우현의 창법이 소년미를 강조한 아이돌 메인보컬 스타일에 맞춰져 있었던 것에 비해 '그 사람'에서는 임창정 등 기성 발라드 가수들의 창법을 구사한다. 트랙별로 모티브가 된 발라드 가수들을 상상해보는 것도 꽤 재밌는 일이 될 것 같다.
미묘: 인정할 것은 인정하자. 전체적인 맵시가 다소 빈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곡 자체는 우습게 볼 만한 것이 아니다. 트랙이 리드할 구간과 보컬리스트가 리드할 구간이 선명하게 나뉘어 있는데, 후자는 멤버들의 기량이 충분히 만족스럽지는 않으나 제법 그럴싸한 연출로 이를 어느 정도 보완해낸다. 전자도 그 역할을 썩 잘해내는데, 곡의 흐름을 이끌고 나가는 방식이 '충분히 가요적'이지 않은, 다른 종류의 호흡이다. 멜로디의 취향은 아마도 타기팅 차원의 선택이 반영되었으리라 짐작한다. 여러모로 '그럴듯한 케이팝'과는 거리가 있지만, 어설프게 흉내 내다 삐걱거리는 류의 모자람은 분명 아니다. 라이브 현장을 한 번쯤 경험해 보고 싶어진다.
유제상: 으하, 교복 입은 쎈 언니, 늘씬한 타이즈 페티시, 2000년대 초반을 연상시키는 멜로디와 랩, 다소 철 지난 것 같은 전자음까지 모든 게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이 평자 취향이다. B급 정서로 점철되어 있지만, 각 요소들의 배분이 잘 되어 있고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친숙함을 느끼게 할 정도. 만드는 쪽이 이런 요소 전반을 정말로 좋아함이 분명할 정도의 완성도다. 퍼스트 리슨을 쭉 읽고 평자와 취향이 비슷하다고 생각한 사람이라면 아니 들을 수 없는 싱글.
미묘: '내가 아까워'의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참으로 즐거운 건 떠올릴 수 있는 이름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었다. 전체적인 무드는 초기 포미닛을 중심에 놓고, 이런저런 익숙한 클리셰와 유명한 안무들을 끌어다 놓는다. 거기에 보이시한 래퍼의 존재나 적당한 롱테이크까지 등장할 때면, 어쩔 수 없는 저예산의 질감은 차치하고도 그 깨알 같음에 정감을 느끼기 충분하다. 곡은 뒷박에 신스 브라스를 찍으며 청승 멜로디를 풀어나가는 것까지도 너무나 90년대 댄스곡의 전형이다. 이것저것 동원한 것까지는 좋으나, 마침 'We are not compatible'이란 영어 제목처럼, 결국 그 호환성을 '맞추는' 부분이 문제다. (덧붙여, 커버아트 종횡비를 어떻게 좀 해주셨으면 한다.)
유제상: 전술한 아이시어와 기조는 비슷한데, 이쪽은 곡이 너무 뽕끼가 강한 것이 마이너스. 곡뿐만이 아니라 멤버들의 외양이나 의상, 안무 모두가 묘하게 성인가요의 느낌을 주는 것이 좋지 않은 의미에서 인상적. 그건 그렇고 이번 회차에는 이상하게 EZ2DJ스러운 2000년대 초반 게임 음악 같은 음원이 쏟아지고 있다. 유행이 한 바퀴 돌았나?
미묘: DJ DOC와 빅뱅을 엮어놓은 기묘함이 인상적이다. '배드 보이'가 아닌 '양아치' 정서의 본격적인 지향, '나이트 씬'과의 연결점, 곡의 구조 속에서 작동하는 유머 같은 것들이 매우 특이한 감상을 준다. 당장은 아이돌로서 성립 가능한가 하는 의문에 회의적인 답만을 할 수 있겠지만, 이런 식의 조합이 어떤 특이점을 만들어낼지도 모른다는 기대도 갖게 한다. 곡은 흔한 'EDM 사운드' 프리셋들을 적당히 넣어, 적당히 믹스했다. 다른 음반 같았으면 이것은 흠결이었겠으나, 적어도 이 그룹과 뮤직비디오가 구사하는 세계관에는 잘 부합하고 있다.
유제상: 음원은 'Fantastic Baby', 뮤직비디오는 의도된 듯 의도되지 않은 듯한 B급 영화의 정서가 있는데 어느 쪽이든 밀어붙일 수 있을 만큼 밀어붙이지 못하여 차라리 좀 더 막 나갔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멤버의 개성이 강하여 오히려 남성들에게 어필할 것 같은 그런 그룹이었는데 끝까지 가지 못해 아쉽다.
미묘: 보도자료에서 "멤버들간의 브로맨스(형제애)"라는 문구를 보고 여러가지로 놀랐는데, 실제 뮤직비디오나 가사에서 이 부분은 적당히 얼버무려져 있다. 아시안 타운을 배경으로 한 뮤직비디오와 느닷없이 들이치는 시타르의 브레이크가, 이젠 흔해진 키워드지만 무국적성을 그런대로 재미있게 표현한다. 주술적이고 긴박한 분위기를 살리는 편곡 요소들이나 곡의 흐름까지는 제법 설득력이 있는데, 결국 사운드가 결정적인 몰입을 막는다. 몰아치기에는 비어있고, 보컬 트랙들 사이의 밸런스도 좋지 못하다. 보컬과 랩을 다양하게 활용하려는 의욕이 보이는 것이 긍정적으로 다가오지만, 그에 비해 보컬의 질감과 밸런스의 컨트롤에 손이 너무 적게 간 것은 아닌가 한다. 그러다 보니 뭔가 소리치고는 있는데 아무래도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기만 한다. 보다 멜로디컬한 '소문내지마'에서 너무나 맥없고 건조하게 담긴 보컬은 치명적이라 해도 좋을 듯. 뮤직비디오와 보도자료에 크레딧을 표기한 점을 긍정적으로 본다.
유제상: 서태지 4집을 연상시키는 충격적인 래핑이 인상적인 EP. 디스토피아적인 분위기의 웹툰을 연상시키는 뮤직비디오도 그렇고 전반적으로 장르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이 만들었구나 하는 인상을 준다. 평이한 가사에 비해 옆에서 직접 떠들어대는 듯한 래핑을 구사하기 때문에(음향도 이에 일조하고 있다) 호불호가 어느 정도 갈릴 것으로 생각. 평자는 일단 처음 듣고 깜짝 놀라긴 했다. 이런 방법론을 쓸 수도 있구나 하고.
미묘: 따뜻하고 매끄러운 사운드의 R&B 트랙이다. 스윙감이 살아있는 버스(verse) 멜로디가 매력적으로 흐르면서 후렴으로 이끄는데, 후렴의 멜로디라인이 가요계에서 익히 들을 수 있는 류의 것이라 다소 평이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사운드와 그루브의 질감이 고급스러워서 격을 떨어뜨리지 않고, 느긋하면서도 애잔한 감상을 기분 좋게 전해준다. 후반에는 고음이 자주 등장하는데, 고음으로 치고 올라가는 음색들이 조금씩 차이를 보이고, 또 간절한 느낌을 살려주기도 한다. 예쁘장하거나 가녀린 느낌을 더해 아이돌의 색채를 내주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곡 자체의 분위기가 우아하다 보니 그것이 '어린 목소리'로 쉽게 묶이고, 각각의 차이가 두드러지지 않는다. 차라리 음역을 조금만 낮췄더라면 어땠을까 상상하게 된다. 커버 아트에서 멤버들이 양쪽으로 나뉘어 서 있는데, 양쪽 각각이 묘하게 통일감 있는 표정을 보이고 있는 점이 재미있다.
햄촤: 오랜만에 헬로비너스가 돌아왔다. 발라드 곡을 내세우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멀리서 단지 돌아온 거야/이제 난 제자리를 찾아가"라는 소절이 단순한 사랑 노래의 가사처럼 들리지 않는 것은 그룹이 겪어온 시간들 때문일까. 하마터면 잊을 뻔한, 헬로비너스가 매우 좋은 목소리를 가진 그룹이라는 사실을 되새기게 해주는 곡이다. 벌써 데뷔 4주년이라 하는데, 제 색깔을 다시 찾아 새 앨범으로 만나볼 수 있길 기대해본다.
미묘: 에이션은 근래 안정적인 분위기의 곡들을 도입하면서 부쩍 좋은 인상을 남겼다. 멤버 찬희의 첫 솔로 작업인 "멜로디"도 비슷한 미덕을 공유한다. 느긋한 무드로 시작해 꽤나 큰 스케일로 번져나가는 곡인데, 몰입감 자체가 대단하지는 않지만 의외로 한눈팔 틈을 주지 않는다. 편곡이 곡의 흐름에 개입하면서 종종 '끼를 부리'기도 하는 것이 한몫하여, 듣고 있다 보면 어느새 상당히 커져 있는 스케일에 기분 좋게 놀란다. 보컬의 음색은 크게 서너 가지로 나뉘어 활용되는데, 그윽하거나 유쾌할 때의 목소리를 따로 분류해 놓고, 다소 금속성 섞인 음색을 그 나머지에 할당함으로써 중심축으로 삼은 듯하다. 나름의 개성이 있고 표현력도 나쁘지 않아 '솔찬의 목소리'로 내세우기 좋은 음색으로 보인다. 다만 유독 이 음색으로 노래할 때 가창이 단선적으로 흐르는 경우들이 있어, 한창 좋다가 맥이 빠지곤 하는 아쉬움을 남긴다. 매너리즘은 아니길 빌며, 조금만 더 섬세한 연출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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