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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캐쳐 – 악몽·Escape the Era (2018)

소녀가 반드시 ‘깨끗하고 맑은’ 존재인 것은 아니다. 드림캐쳐는 바로 이 지점을 절묘하게 파고든다. 이 앨범은 어두운 시절을 보내는, 보냈던, 혹은 보내고 있는 소녀들을 향한 찬가이며, 동시에 그들만의 ‘악몽’을 나와 새로운 세계로 향하고자 하는 송가이다.

어둑한 소녀 시절을 향한 찬가 혹은 송가

세간에서 흔히 저지르는 패착 중 하나는, ‘소녀’란 자고로 ‘화사하고 해맑은 존재’일 것이라는 일종의 스테레오타입이다. 그리고 이는 많고 많은 걸그룹의 존재로 인해 여실히 증명되고 있다. 그러나 진짜 소녀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소녀가 반드시 ‘깨끗하고 맑은’ 존재인 것은 아니며, 그늘진 사춘기 시절에 흑마법사를 가슴 속에 품은 소녀들이 생각 외로 많다는 것을. (네, 사실은 필자의 자기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저 한때 꿈이 진지하게 흑마법사였어요.) 사춘기, 고민, 친구, 호기심, 불안, 환멸, 증오, 분노, 슬픔, 절망, 원망, 그리고 이를 모두 아우른 오컬트. 어둑어둑한 시절을 보낸 소녀들이 한 번쯤 빠져보곤 하는 그것이다. (다들 분신사바 한 번은 해보았잖아요? 타로카드 한 덱쯤은 있잖아요?)

드림캐쳐는 바로 이 지점을 절묘하게 파고든다. 그룹명부터가 우선 주술적이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악몽을 잡기 위해 만들었다는 전통 주술품 드림캐처(dreamcatcher)에서 따왔다. 뮤직비디오에서는 다 같이 의식을 치르거나, 주문을 외우거나, 저주인형을 나무에 매달아 놓는 장면이 등장하는 식으로 이곳저곳에서 오컬트 코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심지어 음악은 ‘어둠의 다크함’이 넘치다 못해 뚝뚝 흘러내리는 하드코어 헤비메탈 사운드다. 오컬트, 헤비메탈, 그리고 소녀. 이 앨범은 어두운 시절을 보내는, 보냈던, 혹은 보내고 있는 소녀들을 향한 찬가이며, 동시에 그들만의 ‘악몽’을 나와 새로운 세계로 향하고자 하는 송가이다.

드림캐쳐는 지금까지 디스코그래피 단위로 스토리를 풀어가며 ‘어둑한 소녀’를 꾸준히 보여왔다. 자신들의 공간에 찾아온 불청객을 악몽이라는 형태로 괴롭히기도 하고(‘Chase Me’), 그를 악몽의 세계에 봉인해놓고는 ‘악몽의 정령’으로 각성하기도 하며(‘Good Night’), 희망과 불안을 동시에 안은 평범한 소녀였던 시절의 이야기를 풀어내기도 한다(‘날아 올라’). 그리고 이번 앨범에서도 역시 그러한 소녀들의, 소녀들에 의한, 소녀들을 위한 서사가 이어진다.

호러 영화 풍의 음산한 사운드 이펙트로 시작해 폭풍처럼 몰아치는 오케스트레이션, 기괴한 일렉트로닉 사운드에 둔탁한 베이스와 비명소리를 닮은 기타 리프를 얹은 인트로 ‘Inside-Outside’는 마치 미로처럼, 뫼비우스의 띠처럼 돌고 도는 악몽을 그려낸다. 소녀는 방황과 절망 속에서 애타게 구원을 갈구하며 구조 신호를 있는 힘껏 외친다(‘Mayday’). 현실이 악몽인지, 악몽이 현실인지 알 수 없는 고통 속을 하염없이 헤매는 소녀를 향해 구원의 손길이 내밀어진다(‘You And I’). 하늘에는 붉은 달이 떠 있는, 길 위에는 새빨간 괴물이 튀어나오는, 어깨 위에는 작은 새가 다가와 재잘대는 이름 모를 어느 별에서 소녀는 잠시나마 올망졸망 꿈결 같은 시간을 보낸다(‘어느 별’). 행복도 잠시, ‘더럽고도 추한’ 현실을 깨달은 소녀는 발버둥 치며 다시금 절망한다(‘Scar’). 악몽과도 같은, 혹은 악몽보다도 못한 현실 속에서 어쩌면 악몽은 소녀에게 차라리 구원이고 안식이었던 것일까.

지금까지 드림캐쳐가 ‘악몽을 사냥하는 정령’이 되는 과정을 설명하고 소개해왔다면, 이 앨범에서는 다른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며 영원히 함께할 것을, 영원히 ‘네 편’이 되어줄 것을 약속한다. ‘네’가 가진 고통과 절망에 깊이 공감하고, 구원과 유대를 약속하는 것이다. 손을 내미는 대상은 확실하지 않다. 이 앨범을 듣는 청자들일 수도 있고, 어쩌면 ‘악몽 사냥꾼’이 되기 전의 드림캐쳐 그 자신일 수도 있다. 인트로 트랙의 제목 ‘Inside-Outside’처럼 꿈과 현실은 혼재되어 있고, 가사 속 ‘너’와 ‘나’의 경계도 모호하며(‘Scar’), 심지어 타이틀곡에서도 ‘너와 나’를 강조하고 있으니. 구원받을 길 없던 스스로를 향한 위로일지, 혹은 지금 이 순간에도 악몽 같은 세상을 헤매는 누군가를 향한 격려와 응원일지, 그것은 듣는 이가 결정할 몫이리라.

지금도 어디선가 어둠으로 가득한 시절을 보내고 있을 소녀들을 향한 애정 어린 위로와 응원의 찬가를 전심전력으로 부르며, 드림캐쳐는 ‘악몽의 시대’에 스스로 막을 내렸다. 새까만 악몽의 세계에서 나온 그들이 앞으로 향하는 곳은 어디일까. 바라건대, 어느 곳을 가더라도 그 어둑했던 소녀 시절을 잊지 않았으면.

악몽·Escape the Era
해피페이스 엔터테인먼트
2018년 5월 10일
마노

By 마노

음악을 듣고 쓰고 말하고 때때로 트는, 싫어하는 것보다 좋아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을 때 반짝이고 싶은 사람. 목표는 지속 가능한 덕질, 지속 가능한 말하기.

2 replies on “드림캐쳐 – 악몽·Escape the Era (2018)”

너도 나도 사이좋게 교복입고 소녀 컨셉잡는 요즘 걸그룹과 닫리 눈에 띄는 차별성이 맘에 듭니다만 워낙에 대중성이 떨어지는 음악을 하는지라 홍보 방식을 다르게 가져가야 하는데 그걸 모른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죠

[…] Mano: A new track that declares itself to be the end of the ‘Nightmare series’ which Dreamcatcher has tirelessly continued till now. While one can’t help but be reminded of how homework or project files end up with names like ‘Nightmare_series_real_final’, as they have declared the series to be over in the past, the album’s quality is nothing to laugh at. This time, in the lead track, PIRI, the group joins Trap beats with the team’s signature heavy metal sound. ‘Diamond’, on the other hand, is a successful crossbreed between Moombatone and heavy metal. Beginning with ‘Intro’, a track notable for the usage of the PIRI main theme to lead the track, as well as imposing orchestrations and drum-and-bass sounds, followed by the lead track and then throughout the rest of its running time, the album keeps up a tight sense of tension and interconnectedness, displaying a level of quality befitting the finale of the series and of Dreamcatcher’s world building. The performances from the members, who seem to have reached a certain level, are also superb. The music video, which implies a story of how the girls chose to become the Nightmare itself within the ever-repeating Nightmare, almost seems like a summary of the series up to this point. While it’s sad to see the ‘Nightmare series’ end, I hope they bravely continue on their new path without forgetting their dark pas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