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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친구 “回:Walpurgis Night” (2020)

“回:Walpurgis Night”은 ‘Fingertip’ 이후 멀리 돌아온 여자친구의 “제 2막”이다. 여자친구는 직선적으로 전진하는 “파워 청순”의 1차원, 닫힌 도형과도 같은 세계 속 방황을 담은 “격정 아련”의 2차원을 지나, “그저 원하면 원하는 대로 기쁨과 슬픔 그대로 다 내가 될 거”라 외치는 (‘MAGO’ 中) “청량 마녀”의 3차원을 구축한다.

멀리 돌아온 여자친구의 “제 2막”

여자친구는 세계관 영상 ‘A Tale of the Glass Bead : Previous Story’와 ‘교차로’의 뮤직비디오에서 ‘Fingertip’을 “回” 시리즈의 기반으로 삼았다. 처음에는 의외의 선택으로 보였다. ‘Fingertip’은 그룹의 서사에서 가장 괴리되어있는 곡이기 때문이다. 학교 3부작에 이어 정규 1집 “LOL”까지 “파워 청순”이라 일컬어지는 시그니처 스타일을 완성한 뒤 ‘Fingertip’으로 “파워 시크”라는 표어를 내세워 “제 2막을 시작”한다 선포했지만, ‘귀를 기울이면’과 ‘여름비’로 “‘Fingertip’을 스핀오프로 한 새로운 연작 시리즈”를 기획하며 재차 기존의 노선으로 선회하고, 이후 ‘시간을 달려서’와 ‘여름비’의 서정을 단서 삼아 ‘밤’과 ‘해야’로 “격정 아련”을 표방해온 그들의 행보에서 ‘Fingertip’은 잊혀진 과거와 다름없었다.

마지막 시리즈 “回:Walpurgis Night”에 이르러 비로소 여자친구가 ‘Fingertip’을 꺼내든 저의를 읽게 된다. 타이틀곡 ‘MAGO’의 디스코는, 2020년 해외 팝 트렌드이자 빅히트가 방탄소년단 ‘Dynamite’와 투모로우바이투게더 ‘5시 53분의 하늘에서 발견한 너와 나’로 줄곧 몰두해왔던 장르이기도 하지만, ‘Fingertip’의 디스코와 접합점을 만들어낸다. ‘Fingertip’이 펑키하고 화려한 디스코에 로킹한 사운드를 얹어 맹렬한 기세를 다졌다면, ‘MAGO’는 당당하고 흥겨운 태도를 견지하되 박자감을 한층 단순하게, 현악을 한층 가볍게 늘어뜨리며 기합이 걷어진 자리를 여유로 가득 채운다. ‘Fingertip’과 ‘MAGO’를 나란히 이어듣는다면 기대 이상으로 매끄러운 흐름에 놀라게 될 것이다.

한편 이어지는 수록곡은 역대 여자친구의 모든 미덕을 고급스러운 만찬처럼 펼쳐놓는다. 러프한 기타 반주 위에서 “파워 시크”함을 과시하는 ‘Love Spell’을 지나면, ‘Three Of Cups’, ‘GRWM’, ‘Secret Diary’에서 작년 “Fever Season”으로 업그레이드된 여자친구만의 청량함과 사근사근함, “파워 청순”을 마주치고, ‘Better Me’, ‘Night Drive’에서 “격정 아련” 시기의 성숙한 사색을 감지하게 된다. “回” 시리즈의 주요곡들을 돌이키고 당도하는 ‘앞면의 뒷면의 뒷면’은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소회를 풀어헤치며 기나긴 여정을 마무리한다. “지금 이 길이 맞는지 / 수없이 되묻고 또 의심한 날들 / 끝이 어딜지 몰라도 / 난 가볼게 계속”, “이젠 멈춰 서지 말자 / 마음의 나침반을 믿기로 해 / 끝은 정해진 게 아냐 / 더 가보자 계속”이라는 되뇌임을 듣고 있자면, 이제까지의 모든 행보를 긍정하면서도 새로운 내일을 향한 정진을 멈추지 않겠다는 심지가 느껴진다. 이전의 앨범들과 비교했을 때 유달리 ‘나’에게 초점이 맞춰져있는 가사 역시 그 방증이리라. 이제와 돌이켜보면 ‘Apple’의 과감한 변화는 ‘Fingertip’ 이후 ‘귀를 기울이면’을 내놓았을 때와 같은 번복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결의의 표명이 아니었을까.

“回:Walpurgis Night”은 ‘Fingertip’ 이후 멀리 돌아온 여자친구의 “제 2막”이다. 빅히트의 집도 하에 다소 급작스러워보이는 전이를 단행하는 가운데 이질감이 없었다면 물론 거짓말이다. 그러나 이 이질감을 곧바로 위화감으로 단정짓기는 곤란하다. “날 위해서라면 저 끝까지 갈” 것이라는 (‘Labyrinth’ 中) 결단이 뿜어내는 생명력 때문이다. 여자친구는 직선적으로 전진하는 “파워 청순”의 1차원, 닫힌 도형과도 같은 세계 속 방황을 담은 “격정 아련”의 2차원을 지나, “그저 원하면 원하는 대로 기쁨과 슬픔 그대로 다 내가 될 거”라 외치는 (‘MAGO’ 中) “청량 마녀”의 3차원을 구축한다. 입체적으로 변모한 세계관 위에서 이들이 또 어떤 교차로를 마주하고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이들의 달음박질이 결코 멈추지 않으리라는 것만큼은 분명해보인다. ‘발푸르기스의 밤’을 기꺼이 즐길 이유는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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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큅

머글과 덕후 사이(라고 주장하는) 케이팝 디나이얼 러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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