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견 터무니 없기까지 한 미래적인 세계관 하에 초인간적 퍼포먼스를 제시하는 A2O의 콘셉트에 대단히 새로울 것은 없다. 가까이는 에스파의 2020~2022년 행보(‘Black Mamba’, ‘Next Level’, ‘Savage’, ‘Girls’)에서부터 멀리는 2000년 H.O.T. 〈평화의 시대〉와 보아 ‘ID Peace B’에 이르기까지. 이는 분명 SM 엔터테인먼트 1세대에서부터 이어져온 이수만 프로듀서의 아주 “오래된 미래”다. 그러나 A2O 라이트의 ‘NEON’은 분명 그 오래된 미래를 새삼스럽게 느껴지게끔 하고, 이는 단지 경업 금지에 따른 이수만의, 그리고 이수만을 따라 SM을 나온 유영진 작곡가의 3년 공백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수만과 유영진이 SM에서 발매했던 곡들과 비교했을 때 ‘NEON’이 유난스러운 점은 (특히 멜로디에서 두드러지는) 로보틱한 질감이다. ‘NEON’의 메인 멜로디 최소 절반 가량은 C5 원 노트로 구성되어 있다. 인트로부터 첫 벌스(verse)까지는 거의 C5 음만으로 일관하고, 후렴구 역시 장조와 단조를 오가는 화음 가운데 C5를 끈덕지게 짚는다. (심지어 이 단일음을 거의 내내 8분음표로 일정하게 내리찍는다.) 포인트가 되는 후렴구의 하이 노트(“다시 불 붙여 무지개빛의 불” 뒤의 “Neon-” 부분)도 옥타브만 높인 C(C6)다. 원 노트 멜로디에 가까운 단조로운 선율은 다분히 기계적이다. 앵커 노트를 중심으로 한 다채로운 화성과 리듬의 변주도 기계적인 인상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디자인된 대목이 많다. 정직하게 3도 화음을 쌓는 후렴구의 진행은 뻣뻣하다 싶을 정도로 똑바르다. 이전의 벌스와 달리 16분음표와 8분음표를 휙휙 넘나들며 원 노트를 쏘아붙이는 프리-코러스의 조흥구(아이징과 시리의 “Here we come come here we come come / Here the drum rump uh pum pum” 파트)는 흡사 모스 부호 송신을 연상케 한다. “감각도 마비”, “분석 중”, “Do the math”, “System down”, “See me in a different form” 같은 구절이 포진된 가사도 이러한 지향을 더욱 선명하게 한다. 이쯤 하면 현재 사실상 활동 중지(?) 상태인 나이비스(naevis)의 곡이어야 할 것만 같은 느낌마저 든다.
그리고 이에 방점을 찍는 것이 바로 아홉 멤버들의 치밀한 퍼포먼스다. 안무가 제이블랙이 아이돌 작업으로서 이례적으로 거듭 ‘더 어렵게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밝힌 아이찡과 시리의 인트로 페어 안무는 ‘안드로이드’ 내지는 ‘병기’라는 수식어를 촉발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위용을 뽐낸다. 이어지는 9명의 군무 역시 텃팅을 활용한 깔끔한 대형 운용부터 바디 컨트롤이 돋보이는 암 웨이브, 완력 넘치는 주먹질 동작에 이르기까지 날이 바짝 선 퍼포먼스 합을 보여준다. 린아-티파니-윈터 등 심지 곧은 보컬 계보를 잇는 영과 바다-닝닝 등 청아한 보컬 계보를 잇는 라다를 앞세운 보컬 앙상블도 물샐 틈 없다. 소위 “육각형”을 꽉 채운 듯한 초인간적 퍼포먼스를 근래 케이팝 중에서는 가장 의욕적으로 드러낸 A2O 라이트는 뮤직비디오나 멤버별 개인 직캠도, 그 어떤 부속 콘텐츠도 없이 최초 공개 무대 하나만으로 일약 화제의 중심에 섰다.
멤버들의 퍼포먼스는 (의미는 알쏭달쏭해도 일단 귀에 내리꽂히는 말맛 좋은 가사와 더불어) 사업적인 야욕과 그 야욕의 맹점은 아무렴 상관 없이 곡을 즐길 수 있도록 한다. 새삼스러움이 주는 신선함은 이수만이 주창한 ‘멋진 신세계’의 비전이 실제로 얼마나 새로운 것인지에 대한 검토를 무화시키고, 최소한 무대를 보는 시간만큼은 그가 그토록 힘주어 강조했던 4DGS 기술에 대한 여러 질문과 의문을 잊게 한다. A2O 쇼케이스에서 20여 분 간 거창하게 자신의 비전을 설파하고는 말미에 “보시면서 그냥 ‘어 좋다’ 이런 단어 하나, 그런 느낌만 가져주시길”이라고 당부했던 이수만의 말이 어느 정도 실현된 셈이다.
혹자는 이러한 구도를 두고 도구적이고, 따라서 비인간적이라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주지해야 할 것은 초인간적 세계관을 혈혈단신으로 구현해내는 멤버들의 퍼포먼스가 역설적이게도 이들의 인간성과 주체성을 부각한다는 것이다. 한계를 넘어서는 퍼포먼스를 구현하기 위해 결국 지극히 인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러한 역설은 A2O 라이트가 갓 초등학교를 졸업한 만 13세 멤버 셋을 포함해 전원 미성년자로 구성된 그룹이라는 점을 상기하면 한층 무겁게 다가온다. 미묘가 X의 포스트에서 지적했듯, “’인간을 초월하는 기계장치의 스펙터클’이 작품의 핵심일 때 퍼포머가 13세라면, ‘대단한 재능이네’와 동시에 ’13세 아동에게 뭘 시켰기에?’라는 질문이 상식적 감각”이다. 의식적인 의도였든 아니든, 애초에 이들이 보여주는 초인간적 스펙터클의 기저에는 인간이 통념적인 발달 과정을 초월하는, 즉 ‘어린 아이가 어른만큼 (혹은 어른보다 더) 잘한다’는 것에 대한 다소 시혜적인 감탄과 본능적인 경악이 뒤엉켜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13세 아동들의 기용이 “13세의 놀라운 재능!”이란 충격과, “기계장치 속 해맑은 미소!”라는 충격이란 스펙터클을 위함이라면 윤리적 질문을 피해갈 도리는 없는 법”이다(미묘의 동일 X 포스트 타래에서 인용). 물론 이수만 프로듀서가 어린 멤버의 데뷔에 대한 걱정의 목소리를 알고 있다며 “제가 잘하겠다”고 직접 언급하고, A2O 라이트처럼 미성년자 때 데뷔해 오래도록 아이돌 라이프를 지내온 써니가 일찍이 A2O의 트레이닝 프로그램 디자인과 연습생 심리 케어까지 관여하는 프로듀서로 부임했다는 점은 미미하게나마 희망을 품게 한다. 그러나 성인에게도 버거운 업계 ‘표준’을 가지면서도 미성년자 아이돌 및 연습생 노동에 대한 제동 및 보호 장치가 거의 부재한 업계는 회사의 호의를 쉽게 무너뜨릴 소지를 안고 있다. (예컨대 A2O 라이트는 데뷔 싱글 발매 차주 일주일 간 거의 매일 새벽 음악방송 사전녹화를 진행했는데, 아이돌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진 적 있는 이들이라면 다인조 신인 그룹에게 이것이 얼마나 녹록지 않은지 알 것이다.)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찬탄하는 반응과 어린 퍼포머를 내세운 기획자를 비판하는 반응이 격전을 벌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고, 또한 유효하다. 그러나 나는 찬사와 비판을 막론하고, 최소한 멤버들을 기획자의 청사진에 단지 ‘동원’되거나 ‘소모’되는 부품처럼 취급하는 견해에는 반대를 표한다.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사실은 걸출한 멤버들이 꽉 짜인 세계관에 균열을 내는 주체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NEON’은 결국 아이찡-시리-보라의 맹렬한 댄싱. 영-라다-메르시-히메키의 시원시원한 보컬, 오아-아윤의 아이코닉한 파트 소화를 경유해 회자되고 있고, 이러한 구도는 결국 시스템보다도 개인의 힘을 키운다. 멤버들은 세계관이라는 주머니 속에서도 구멍을 내는 송곳들이다. 그러한 면에서 나는 아홉 멤버들이 마치 끌(chisel)과 같다고 느낀다. 이들은 기획자의 청사진을 정교화하는 역할을 하지만, 동시에 까딱하면 이를 깨부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고, 또한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프로듀싱의 지향은 그 어느 때보다도 초인간적이고, 그에 따라 역설적으로 멤버들의 인간적인 노력과 매력이 그 어느 때보다도 부각된다. 둘은 팽팽하게 대치하며 아슬아슬하게 공존한다. 이 부분이야말로 내가 A2O 라이트를 위시한 A2O에 주목하는 지점이다. (그렇기에 나는 A2O를 단지 이수만-유영진의 익숙한 무언가로만 조명하는, 따라서 전에 없이 극적인 이 대치를 은근히 은폐하는 의견들에 경각심을 느낀다.) 이러한 대립각은 예기치 못한 결과일까, 혹은 충분히 고려된 프로덕션의 일부일까.
최소한 하예진 아트 디렉터와 멜트미러 감독은 이를 감지한 것처럼 보인다. 뮤직비디오에서 유독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부분은 브릿지 파트 뮤직비디오의 시퀀스다. 4차원적 공간 감각으로 “오래된 미래”를 형상화한 댄스 브레이크(2:14~2:28) 이후, 텐션 코드, 서스 코드, 슬래시 코드를 잔뜩 먹인 멤버들의 아카펠라 하모니가 (그리고 이 위에 ‘백 보컬’이라 하기 어려울 정도의 존재감을 과시하는 유영진의 백 보컬이) 펼쳐지는데, 이때 카메라는 돌연 촬영 비하인드 현장으로 시선을 옮긴다(2:29~2:44).

흐트러짐 없이 대형을 갖춰 안무를 소화하는 멤버들 뒤로 스태프들이 지나다니는 뮤직비디오 세트장이 보이고, 이어서 촬영장에서 대기 중인 듯한 멤버들의 얼굴을 하나씩 비추는 러프한 몽타주 컷들이 지나간다. 멤버들의 목소리 외에 거의 모든 요소가 걷히고, 이전의 딱딱한 화음과 달리 교묘한 전개가 펼쳐지는 시점, 게임 캐릭터 내지는 휴머노이드에 가까워 보였던 멤버들이 일순간 현실 속 평범한 소녀의 얼굴로 등장하는 것이다. 하예진 디렉터는 이 시퀀스에 대해 “조금 전까지는 가상의 세계 안에 존재하던 소녀들이 어느 순간 현실의 우리와 같은 공간에 서 있는 것처럼 느껴졌으면 했어요. 완벽하게 만들어진 이미지에서 잠시 벗어났을 때, 오히려 그들이 가진 순수함과 생동감이 더 선명하게 드러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라고 언급했다(디스패치 “[김도헌의 음감] 미래를 가지고 놀다, 에이투오 라이트 ‘니온’의 비주얼을 만든 이들”에서 발췌). 인터뷰가 상징적으로 드러내듯 실제 인간인 멤버들이 지닌 생동감은 초인간적 세계관을 살(殺)하는 동시에 생(生)하고 또 생하는 동시에 살하는, 이 세계의 원천이자 균열, 즉 알파이자 오메가다.

케이팝-아이돌-월드의 기획이 멤버들 위로 둔중하게 내려앉을 때, 멤버들은 그 세계를 기어코 넘어서려 한다. 그리고 멤버들이 세계를 부수고 나오려는 가운데, 계속해서 환청처럼 곁에 남아 있는 유영진의 ‘백 보컬’처럼 기획의 그림자가 따라붙는다. 이러한 끝없는 앞서거니 뒤서거니를 듣고, 보고, 느끼며 이수만이 그리는 세계가 더없이 ‘완전유결(完全有缺)’해졌음을 실감한다.
- A2O 라이트 ‘NEON’ : 더없이 ‘완전유결(完全有缺)’한 세계 - 2026-10-29
- N년 전 이달 : 10월 - 2026-10-28
- Weekly : 2026년 10월 4주차 - 2026-10-26


